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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1) 회복의 첫걸음, 현실 인정

이사야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535 추천 수 0 2013.09.08 08: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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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57:14-21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3.6.30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회복(1) 회복의 첫걸음, 현실 인정
이사야57:14-21

남편 급매라는 유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시집살이에 시달려 회복 불능상태에 처한 한 주부가 남편을 경매한 것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구청에 정품등록은 이미 했습니다. 구입당시 A급인줄 착각하고 구입했습니다. 외관은 아직 쓸 만합니다. 맘이 바다 같은 줄 알았는데 잔소리가 심해 사용 시 만족감은 떨어집니다. 음식물 소비는 동급의 두 배입니다. 연봉은 4천만원정도 됩니다. 그중 연료인 알코올구입비와 담배 구입비가 연 2000만 원 정도 됩니다. 주요기능으로 추적기능이 있습니다. 집안먼지, 마눌이 노는 곳은 기막히게 포착합니다. 탁월한 음성녹음기능이 있습니다. 옛날에 실수했던 말을 기가 막히게 잘 재생합니다. 간편한 메모리 포맷 기능이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는 바로 잊어버립니다. 아주 뛰어난 연사기능이 있습니다. 1초에 수백마디를 쏟아냅니다. 구입하시면 덤으로 각종 유흥주점의 멤버십 카드와 신용카드도 드립니다. 그 외 구두 10여 켤레, 양복 25벌, 골프채 세트, 중고차까지 다 드립니다. 사용 설명서는 없습니다. 읽어봐도 별 도움 안 됩니다. A/S 안되고, 반품 당연히 절대 안 됩니다. 무대포 시어머니도 끼워 드립니다. 참고로 돈 달라는 시동생도 덤입니다. 구입의사에 따라 날마다 그런 남편 잘났다고 편드는 시누이도 덤으로 드립니다.

 

 이 유머처럼 혹시 내 남편은, 내 아내는, 내 시어머니는, 내 며느리는, 내 아들은, 내 딸은 도저히 회복 불가능하여 경매하고 싶은 분 계십니까? 신문에 보니까 실제 남편을 경매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20대 주부가 게임중독에 빠진 남편을 온라인 경매에 붙였다고 합니다. 미국 유타주에 사는 주부 앨리스 브랜들리는 게임 중독에 걸린 남편을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올해 22살인 내 남편을 판매한다. 하루 종일 비디오 게임을 하는 사람으로 3~5시간에 한 번 물만 주면 되는 등 다루기 쉽다"고 광고했다고 합니다. "판매 조건으로는 집에 인터넷이 설치돼 있어야 하며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남편을 트레이드(맞바꿈)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광고가 나가자 실제로 수많은 e-메일과 전화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원활한 결혼 생활을 위해 상담을 해주겠다" 사람도 있고 "일정기간 남편을 맞바꿔서 살자" 등 다양한 제안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비디오 게임만 하는 남편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시어머니께 불만을 얘기했더니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해 매매 사이트에 올렸다고 합니다. 영국의 이혼 전문 온라인 법률회사 '디보스 온라인(Divorce-Online)'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편의 불합리한 행동으로 이혼한 여성 가운데 15%가 '게임중독'을 이혼 사유로 꼽았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 중에서 내 성격은, 내 가정은, 내 사업은, 내 건강은, 내 인생은, 내 교회는, 내 나라는 도저히 회복 불능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회복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각종 질병을 가져오는 담배일 수도 있고,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알콜 중독이나, 도박 중독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육체의 건강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정신 건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경제 일수도 있고 그것이 남들이 싫어하는 성격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많이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쉽게 분노하는 것을 수도 있고, 너무나 걱정과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향일 수도 있고, 과소비, 우울증, 완벽주의, 게으름 등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다 좋은 삶을 위해,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 보다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으로 달려나가는데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어느 분야에서 회복되기를 원하든지 그 회복 단계는 동일합니다. 무엇이든지 회복하려면 회복의 첫 단계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질병 걸린 사람은 질병 걸린 것을 인정해야 치료받는 길이 열립니다. 자신이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우기면 질병에서 회복될 수가 없습니다. 게임 중독자가 자신의 게임 중독자가 아니라고 우기면 그 중독에서 회복될 수 없습니다. 수렁에서 홀로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욱 깊이 들어가는 것처럼 중독에서 회복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가난을 부인할수록 가난에서 회복될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공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공부 못함을 부정할수록 공부 잘하는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의 알콜 중독을 인정하기 전에는 회복의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회복의 첫걸음은 자신의 현제 상태를 정직하게 인정하는데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인정해야 합니까?

1. 내 상처 내가 고칠 수 없고 하나님이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18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하나님이 고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아시고 하나님께서 회복 불가능한 것과 같은 바벨론 포로생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유다 나라는 스스로 자신들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여 바벨론 포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축복의 땅을 빼앗기고, 나라를 잃어 버렸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면 부자로 살고 싶었지만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200년이 넘도록 경고하고 경고하였지만 지금 이스라엘은 회복 불능사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남 유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57장 1-13까지 나오는 내용입니다.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1,2) 사회가 도덕적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전혀 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1) 각종 우상 숭배로 가증한 일을 합니다.(3-10) 자식을 몰렉에게 바칩니다. 종교적 행사로 간음을 합니다. 종교마더 완전히 타락해 버렸습니다. 한 사회의 종교적 타락은 그 사회의 마지막 타락입니다. 사회가 다 타락하여도 법조계가 살아있으면 회복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조계가 타락한다 할지라도 교육이 타락하면 그래도 회복이 가능합니다. 교육마저 타락한다면 종교가 살아 있으면 언젠가 때가 되면 그 사회는 회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마저 썩어 버리면 그 사회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상태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삶이 중독으로 회복 불능상태에 빠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회복 불능상태에 빠져 버릴 수 있습니다. 그대도 가면 망해버리는 것입니다.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박도 우상과 같은 것입니다. 컴퓨터 중독도 우상과 같은 것입니다. 관계 중독도, 일 중독도 우상과 같은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할 때 공부하지 않고 게임 중독에 빠지고 영상 중독에 빠지고 스마트 중독에 빠지면 회복 불능상태에 도달합니다.

 

신문에서 충격적인 기사를 볼 때가 있습니다. 게임 중독에 걸린 20대 여성이 일주일째 컵라면만 먹고 송파구 삼전동 PC방에서 온라인 게임 '리니지2'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이 여성은 게임 채팅에서 만난 남성과 동거하다가 임신한 상태였는데 양수가 터져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아 비닐봉지에 넣어 쓰레기통에 넣어 버린 것입니다. 7개월 동안 동거하였는데 동거하면서 게임만 했기 때문에 아기 아버지의 인적 사항도 몰랐다고 합니다. 게임 중독 환자가 게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기간은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이르기도 합니다. 게임 중독에 빠지면 내성과 갈망 때문에 거짓말, 도둑질이나 해킹, 가출을 해서라도 게임을 합니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고, 더 많이 해야만 새로운 만족이 일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도박 중독에 걸리면 도박이 양식이 되고 알코올에 중독되면 알코올이 '양식'이 되는 것처럼, 게임에 빠지면 게임이 양식이 되어 버립니다. 중독된 사람들의 뇌 작용은 중심 통제 센터가 망가진 것입니다. 뇌의 관제탑이 게임이라는 테러범에게 접수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중독자들은 뇌신경이 다 타들어 갈 때까지 뇌가 보상과 쾌락을 추구하는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게임을 하다 아이템을 잃어 다른 게이머에게 칼을 휘두른 사건이나, 게임을 하다 아기 돌보기를 잊어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나, 게임에 빠져 있다가 동생을 망치로 살해한 사건 등 그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게임 관련 사건은 정상적 뇌 활동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뇌의 관제 기능을 잃은 상태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심각하면 뇌질환처럼 입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물리적으로 게임과 단절하고, 금단 증상에 대한 약물과 행동 치료를 받지 않고는 회복이 어려운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우리나라 청소년 10%가 중독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태에 이르기 전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회복 불능상태까지 놓아두면 안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야 하는데 인간이 그렇습니까?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17절을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혹시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 학생들이 있습니까? 밤새도록 pc 방에서 게임을 하는 학생들 있습니까?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세요. 이 정도가 되면 자생력을 잃어 버립니다. 봄에 소나무를 여러 그루 가져가 교회에 심었습니다. 다른 나무는 잘 자라는데 한 나무가 고사해 가고 있습니다. 아내가 지나가는 소리로 저에게 안수기도를 하라고 해 보라고 해요.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회복 시기를 놓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회복 시키지 못할 것이 없는 전지 전능한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18절 보세요.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보고 계십니다. 부모를 속일 수 있고, 친구를 속일 수 있고, 자신을 속일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의 우리의 길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복 불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믿습니까? 우리의 고칠 수 없는 악한 습관들 하나님이 고쳐 주실 줄 믿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고치지 못하고, 나 스스로도 고치지 못한 악한 중독도 우리 하나님이 고칠 수 있습니다. 회복되어야 하는데 회복하지 못하는 문제 우리 하나님이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잠을 자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늦게까지 깨어 있으신 적이 있습니까?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몸이 필요한 것보다 많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먹고 마시고 있습니까? 건강을 위해 끊어야 할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옳은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잘못된 것을 아는 데도 불구하고 계속 그것을 행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기적이 되지 말아야 하는 데도 이기적이 되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내려놓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회복시키려고 아무리 예를 써도 회복되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연약한 인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이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내 삶을 다스릴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내 스스로 내 삶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의 본성 때문입니다. 항상 내 속에 죄의 근성이 남아 있습니다.

 

내 삶의 문제의 원인은 내가 하나님 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옳고 그른지를 내게 말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목사님도 내게 말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간섭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서도 내게 말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들 “내가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마음대로 처리하고 내 기분 내 지식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다스리고 내가 불안 해소할 수 있고 내 스스로 환경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인간을 회복 불능상태로 빠뜨렸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것입니다. 내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조절합니다. 가장하고 위장하고 포장합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고 자신이 자신의 문제를 다스리려고 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자신 스스로 다스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처럼 행동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코 회복되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옵니다(창3:10) 하나님을 떠나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온 두려움입니다. 해도 해도 않되기 때문에 좌절감이 찾아옵니다(롬7:21).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롬 7:15)”라고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라고 말합니다. 피곤해 집니다. 계속적으로 실패(잠28:13)의 자리에 머물러 버립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내 문제는 그렇게 까지 나쁘지 않아 내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해결할 수 있어” 우리는 먼저 회복되려면 자신만으로는 해결한 능력이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과거를 바꿀 수 있는 능력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다스릴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나쁜 습관과 성격을 고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무기력한 자신을 고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고쳐 주십니까? 우리 하나님이 고쳐 주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를 고쳐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9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고쳐 주십니다. 그는 유다 나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나를 고쳐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15, 16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우리의 마음을 소생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께 나오면 영혼이 살아납니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마음이 살아납니다. 육신이 회복됩니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복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 15:26)"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렘 30:17)"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렘 33:6)"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고치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 사회도 우리 가정도 우리의 직장도 우리의 교회도 우리의 개인도 회복시켜 주십니다. 아무도 고칠 수 없는 사회와 가정과 개인일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회복시켜 주십니다. 대인관계를 통하여 받은 상처, 일을 이루지 못하여 받은 상처, 감정적 자극을 통하여 받은 상처, 죄로 말미암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한 상처, 감정의 상처, 마음의 상처, 영혼의 상처 모두를 하나님은 다 치료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그것을 치료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먼저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서는 우리 하나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병든 사람이 의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스스로 고칠 수 있다고 착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죽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치료하신다고 합니까? 18절 보십시오. 그를 보았을 즉입니다. 19절에 그를 고친다고 합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15절을 보십시오. 과거의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겸손한 자입니다. 통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킨다는 것을 믿고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입니다. 교만하게 스스로 가정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상처를 스스로 아물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내어 놓으십시오. 주님은 깨끗이 고쳐 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무거운 상처, 회복 불능의 상태에 있다할 지라도 주님께 나오면 우리 주님은 모든 상처를 치유시켜 주시고 회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2. 나의 인생길 내 스스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집을 부리며 내 인생길 내 스스로 인도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회복 불능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내 인생 내 스스로 인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인도할 수 있다면 회복 불능상태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중독된 사람들이 자신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자신 의지에 따라 인생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도 중독으로 회복 불능상태에 빠지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보면 내 스스로 결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친구 따라 가고, 분위기 따라 가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가고 우리 스스로 결단하여 살아가는 것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려고 하다가 결국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불평하고 배신하고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애굽에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른 길로 인도하였습니다.(시107:7) 우리 하나님은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였습니다.(시107:30)
우리 하나님은 샘물 근원으로 인도하였습니다.(사49:10) 우리 하나님은 기름진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렘2:7). 앞서 행하시며 인도하였습니다(출13:21 신1:33). 안전하게 인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출 13:21)“

 

그런데도 그들은 안정되고 평안해지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거부합니다. 자기 인생 자기 스스로 인도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바벨론에게 망해 버린 것입니다. 회복 불능상태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다시 말씀합니다. 고쳐 주실 뿐 아니라 그들을 인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48:14)" 믿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어떤 회복 불능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회복 불능상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니까 옥문이 열렸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도 회복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부채의 문이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면 회복 불가능하게 보이는 성격이 고쳐지고, 습관이 고쳐지고, 질병이 고쳐지고, 중독의 고쳐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회복되지 못하는 상황을 만나면 3가지 반응을 나타냅니다. 첫째는 자신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체념하거나 포기하는 자포자기형입니다. 둘째는 책임을 모두 남에게 전가시키는 책임전가형입니다. 셋째는 아픔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 은혜로 치료하고 시련을 믿음으로 이겨 시험과 상처를 자기발전의 기회로 삼는 전화위복형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 사람입니다.

 

세상에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처없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없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학식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권력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명예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다 문제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내 인생 일끌고 가려고 하지 말고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됩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회복 불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400년 노예 생활서도 해방시킨 하나님이시기고, 70년 포로 생활에서도 해방시킨 하나님이십니다. 죽을 질병에서도, 극한 고난에서도, 풀무불 가운데서도, 전민족이 전멸당할 위기 앞에서도 인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도 살아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던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살려고 허우적거리면 결국 죽습니다. 전문가에게 자신을 맡겨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회복 불능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 인도해 주신다는 인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소원의 항구로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물가로 기름진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이라고 내가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에 맡겨야 인생은 회복불능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접합한 방법으로, 주의 언약, 사명을 이루는 길로, 우리 삶의 현장에 같이 계시면서 인도해 주십니다. “주께서 내 길 인도하시네 주께서 내 길 인도하시네 나의 하루 하루를 주님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 길 인도하시네”

3. 우리는 하나님께 참 위로와 평강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상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자신에게 보상을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위로해 주고, 그것이 자신에게 평안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회복 불능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에 빠진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들이 자신들을 위로해 주고 평강을 줄 것이라고 착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모든 것 다 잃어버리고 포로가 되어 회복 불능상태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누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고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내가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위로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까이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나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가 있는 자나 고국에 남아 있는 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흩어져 있는 자나 유대 땅에 남아 있는 자나 모두에게 평강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쓰라린 아픔을 누가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물질이 주겠습니까? 권력이 주겠습니까? 명예가 주겠습니까? 남편도, 자식도, 아내도, 친구도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동방에서 당대에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7남 3녀를 둔 다복한 가정입니다.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외적이 쳐들어와 재산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아들딸이 다 죽었습니다. 자신은 질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 때 누가 위로하겠습니까? 아내입니까? 욥2:9절을 보십시오. 아내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잘 먹고 잘 살 때는 아내인 것 같더니 어려움을 당하니까 원수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비슷비슷 합니다. 남편이 실직을 당하면 위로해 줍니까? 아내가 시어머니와 갈등에 싸이면 위로해 주십니까? 자식이 시험에 낙방하면 위로해 주십니까? 인간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진정 위로해 주시고 감싸 주실 분은 우리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 많은 권력과 명예와 부를 누렸던 솔로몬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전 4:1)"
부귀 영화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시 69:20)"
욥이 친구들을 향하여 안위하기는 안위하되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 안위자로구나 (욥 16:2)"라고 말한 것처럼 이 세상 그 누구도 진정한 위로자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고린도 후서 1장 3절을 보세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1:3)이십니다.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십니다.(고후1:4 7:4,6 살전3:7 사51:3) 모든 환난 중에서 위로하십니다.(고후1:4) 넘치게 위로하십니다.(고후1:5, 7:4) 위로의 힘으로 고난을 견디게 합니다(고후1:6) 하나님께 받은 위로의 경험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합니다.(고후1:4) 하나님의 위로는 인간의 위로와 다릅니다. 인간은 말로만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능력으로 나타나고 변화로 나타납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이사야 51장 3절을 보십시오. 광야가 에덴 같고 사막이 여호와의 동산같이 되고(사51:3),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고(사51:3, 52:9), 두려워 안 하게 됩니다.(사51:12)
하나님이 위로만 해 주십니까? 19절을 보세요. 평강을 주십니다. 회복 불능상태에 빠지면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옵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의 결여됩니다. 삶에 대한 부정적인 말과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우울증과 강박적인 사고에 사로잡힙니다. 삶의 균형이 깨어져 평강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살롬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원래 샬롬이란 뜻은 "꽉 찼다", "완전하다"란 뜻입니다. 쌀독에 쌀이 가득차 있으면 살롬이고 안차있으면 안살롬입니다. 자동차 기름이 가득차 있으면 살롬이고 비어있으면 안 살롬입니다. 팔이 부러져 있으면 못 살롬이고 팔이 회복되면 살롬입니다. 부모의 마음에 꼭 맞으면 살롬이고 부모의 마음에 안 맞으면 못 살롬입니다. 처음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과 살롬이었습니다. 인간과 살롬이었습니다. 동물들과 살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살롬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살 때 진정한 살롬이 이루어집니다.

 

부자가 그 물질로 평안을 얻지 못하고 미인이 아름다움으로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권력자가 그 권력으로 영원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며 학자가 그 학문으로 참된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기있는 연예인이 그 인기로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언제 그 인기를 잃을까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으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평강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떤 회복불능 상태에 처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롬을 주십니다. 염려되고 걱정되고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십니다. 내가 혼돈된 상태에 있으면 인도해 주신 하나님, 내가 아무 것도 고칠 수 없다고 포기한 상태에 있으면 나를 변화시키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 아무도 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포기하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염려되고 걱정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악인은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평강을 주십니다. 어떤 회복불능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까? 그것 다 하나님께 내어 놓으십시오.

 

한국 대학생 선교회(CCC)를 이끌었던 김준곤 목사님을 아실 것입니다. 목사님의 간증을 읽으면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다른 세분의 형님들이 차례로 급사한 것을 보았습니다. 6.25때는 아버지와 가족들이 눈앞에서 공산당에게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어린 시절 사랑하던 동생이 불놀이 하다가 불에 타서 죽던 날 밤, 그는 그 죽어 가는 동생이 당하는 고통과 숨막히는 슬픔을 그 자리에서 체험을 했답니다. 또 다른 동생 하나는 집 근처 벌목하는 현장에서 놀다가 나무에 치어 죽는 것을 보았답니다. 고등학교 교감으로 봉직하던 착하디 착한 동생이 10살에서부터 16살까지 딸 네 명을 남겨놓고 간암으로 죽는 고통을 겪었답니다. 자기 딸이 위암으로 157일간의 고통을 겪다가 두 어린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 참혹한 비극을 당했답니다. 동생과 제수가 죽고 막내 동생은 간경화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 갔습니다. 고아원을 차려야 할 정도로 모두가 부모 없는 유자녀들을 떠맡기고 떠났답니다. 얼마나 기막힌 상황입니까? 얼마나 무거운 짐입니까? 우리가 김목사님이 겪었던 것 하나만 겪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힘겨워 할 것입니다. 회복 불능을 선포하고 인생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무거운 짐을 지고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하나의 얼굴로는 웃고 다른 얼굴로는 운다. 내 영은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깊은 곳에서 샘물같이 환희가 솟는다. 그러나 다른 마음의 하늘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옆을 보면 정신착란증에 걸릴 것 같고 위를 보면 현기증이 나고 내 안을 들여다보면 죄와 추한 것들이 있고 과거는 회한과 슬픔뿐이고 미래는 안개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나는 주님만 바라봐야 한다. 과거는 아무리 더럽고 아프고 서러워도 내일과 새해와 미래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페이지,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 공주 같은 처녀성이 백지같이 열려있다. 시집가는 처녀처럼 새날을 맞이하여 새 집에서 새 살림 꾸려 새 사랑을 살자. 한해 한해를 사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도 아니다. 한 발짝, 한 호흡, 주님을 사랑하며 창세기 첫날처럼 날마다 영원한 첫사랑으로 살자. 주님을 호흡하며 살자. 내게 깊은 위로와 감사와 찬송과 평안이 있다. 그것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은혜로 내게 주시는 것들이다."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이게 바로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회복 불능의 상태에 있어도 우리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평강을 주셔 인생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회복 시리즈 첫 시간으로 회복 불능상태에서 회복하려면 먼저 내 스스로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쥐구멍으로 소를 몰려고 하면 안 됩니다. 물속으로 코끼리를 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인간은 대단한 것 같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생명의 한계,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쳐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실 줄 믿습니다. 회복의 길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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