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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3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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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영화 목사 |
참고 : | 당진 함께하는 교회. |
성소를 향해 손을 들라
시편 134 : 1 -3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여러분은 ‘밤’ 하면 먼저 어떠한 것이 떠오르십니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해 보았더니 ‘별, 달, 가로등, 야경, 불꽃놀이’ 등은 소수였고 대개 밝은 쪽보다는 어두운 쪽, 선한 일보다는 죄를 짓는 일들이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대는 오후8시부터 새벽3시59분까지인데, 절도, 강도, 방화, 강간, 살인 등의 범죄가 대부분 그 시간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인생의 밤’ 도 있습니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도 낮과 밤이 공존하는 것처럼 인생살이에도 낮과 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즐겁고 기쁜 때를 낮이라고 한다면 외로움과 괴로움이나 가난과 질병등으로 고통하는 날들을 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항상 낮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의 밤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렇다면 그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시134편의 제목을 상단에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절기를 맞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온에 올라와서 그 절기를 지키는 모습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주목할 것이 있다면 바로 ‘시간’ 입니다. 시간이 언제라고 하였습니까? 1절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기서 ‘밤’ 이란 저녁 상번제 시간으로부터 아침 상번제를 드리기까지의 시간을 뜻하는 것으로 저녁 상번제는 일몰 시간에 드려졌고 아침 상번제는 일출 시간에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밤’ 이라고 불렀는데 그렇다면 이런 밤 시간에 성전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 시간에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먼저 본문에 나오는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 이란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말합니다. 제사장들이 밤에 담당했던 임무는 제단의 향과 등잔대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밤에 성전을 지키던 파수꾼이었는데 성전을 지키는 일은 낮 시간뿐 아니라 밤 시간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특히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성전의 문들 가운데 24곳에서 불침번을 섰는데 21곳은 레위인들이 지키고 성전 안쪽의 문들 가운데 세 곳은 레위인과 제사장이 함께 지켰습니다. 각 조는 열 명으로 구성되었고 성전 안쪽의 세 곳은 레위인과 제사장 각각 열 명씩 20명이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일몰로부터 일출까지 레위인 240명과 제사장 30명 등 전체 270 명이 성전 곳곳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 있는 종들’ 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 있는 종들’ 은 멀리서 성전을 향하여 순례를 떠나 저녁이나 밤에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한 순례자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절기를 맞아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온갖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골짜기를 지나 밤 시간에 성전에 도착한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먼 순례의 여정을 마치고 성전에 도착해 보니 시간이 늦어서 묵을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하여 숙소를 따로 얻지 못하고 그냥 성전에 머물러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밤에 성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 특히 불침번으로 성전을 지키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아닌 순례자들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였다고 하였습니까? 2절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기서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든다’ 는 것은 우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한다’ 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들이 밤에 성전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주님이 계시는 성전을 너무나 사랑하고 사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니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사모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절기를 맞아 어렵고 힘든 걸음을 한 그들이었기에 그 밤에 성전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렸습니다. 비록 그 일로 인해 사자 굴까지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다니엘이 하나님의 성전을 얼마나 사모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와 같이 성전을 사모함이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성전을 사모하고 성전을 사모하는 사람은 항상 교회를 먼저 생각하고 예배에 자주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 교회를 나오는 것으로 끝이라면 과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성전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자들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든다’ 는 것은 그 뒤에 나오는 ‘하나님을 송축한다’ 는 뜻으로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의 그 거룩하심과 그 위엄을 높인다는 뜻으로 손을 들고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도 하나님을 잠잠히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지만 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적당한 시간입니다. 하루의 분주함이 모두 끝나고 잠잠해지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분주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가 밤이 되면 조용히 주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가질 수 있기에 그래서 밤은 기도하며 찬양하기에 좋은 시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순례자들이 손을 들고 송축하였다고 하였는데 그들이 성전에서 손을 들고 송축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성도가 손을 드는 것은 그만큼 ‘겸손히 그리고 간절하고도 절실하다’ 는 뜻과 동시에 ‘집중한다’ 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또 손을 들고 하나님을 송축한다는 것은 이유가 있는데 먼저 손을 드는 일은 주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성경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시63:3-4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가장 적당하고도 적극적인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시134: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세 번째로는 영적인 갈급함과 하나님께 대한 항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 밤에 성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은 정말 간절하게 주님의 은혜와 복을 사모하면서 손을 들고 기도했고 또 손을 들고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밤’ 이란 일반적인 해가 지고 달과 별이 떴을 때의 밤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밤’ 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경험하는 고난과 고통, 힘든 삶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영적인 밤’ 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침체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밤은 힘든 시간입니다. 말 그대로 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러한 시간입니다. 이러한 때에 대부분 사람들은 낙심하거나 절망합니다. 특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어찌 할 바를 몰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노래하지 않습니다. 사실 노래 부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세를 탓하거나 누군가를 향한 원망, 불평을 쏟아 내거나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 인생의 밤에 무엇을 하였다고 하였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기도했고 또 손을 들고 찬양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람들이 신약에서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밤에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들’ 하면 떠오르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바울과 실라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당시 마케도니아 지경의 첫 성인 빌립보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뜻하지 않은 고난이 닥쳤습니다. 한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주었는데 그로 인해 더 이상 여종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된 주인들로부터 원한을 사게 되어 당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성을 소란케 한 죄’, ‘로마 사람의 미풍양속을 해친 죄’ 로 모진 고문과 형벌을 받고 겨우 목숨만 붙어있을 정도가 되어 더럽고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그들의 발에는 묵직한 차꼬까지 채워진 상태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더군다나 바울과 실라는 자신의 잘못으로 매를 맞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밤에 두 사람은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의 찬양을 올렸습니다. 행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 찬양은 험악한 죄수들을 감동시켰고 심지어 땅까지 흔들릴 정도의 찬양이었습니다. 그 지진으로 인해 잠겨있던 감옥 문이 다 열려졌고 모든 죄수들을 묶고 있던 차꼬까지 벗겨졌습니다. 이렇게 밤이라 어둡고, 지하 감옥이라 더 어두운 그곳에서 바울과 실라가 부른 찬양이 그 어두움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때문에 죽으려던 간수가 주님을 영접함으로 그와 그의 가족이 밤에서 낮으로 옮겨지는 놀라운 역사까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낮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 일 없이,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소원하던 것들이 다 이루어지면 노래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며 밤이 되면 노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찬양하던 입술에서 원망과 저주가 쏟아져 나옵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참 믿음의 사람들은 밤에도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 가운데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계신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가만히 있지마시고 하나님을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밤의 두려움 속에서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아침을 열어 주실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감사와 찬미의 노래만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고,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꽉 막혀 절망뿐인 어두운 밤. 그 처절한 아픔과 눈물로 얼룩진 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밤에 부르짖는 기도와, 밤에 부르는 찬양을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 응답을 말씀하는 것이 오늘 본문 3절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밤에 성전에 머문 사람들, 특히 인생의 밤에 성전에 머물러 기도하고 송축한 사람들을 어떻게 하신다고 하였습니까?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앞에서 본 대로 순례자들은 밤에 성전에서 봉사하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인사를 받은 제사장들은 마치 민6장에 나오는 아론의 축도처럼 순례자들을 향하여 축복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이 축복의 선포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복은 어디에서 받는 것입니까? 즉 하나님의 복이 주어지는 통로가 ‘시온’ 이라는 말씀입니다. 집에서 수돗물을 받으려면 수도관이 수원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수원지에 물이 넘쳐도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물은 한 방울도 마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물을 받아 마시려면 반드시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복을 받는 수도관 같은 통로가 바로 시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시온은 무엇입니까? 시온의 문자적인 뜻은 ‘요새’, 혹은 ‘성채’ 이지만 오늘 본문에서 시온은 바로 ‘예루살렘’ 입니다. 그래서 시온 성을 예루살렘 성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 시온, 즉 예루살렘을 통하여 신령한 은혜와 모든 복을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시온은 장소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의미로서의 시온은 무엇을 말합니까?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것’ 을 말씀하시며 ‘그래야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머물러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그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신약의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 시대, 성령 시대의 시온은 바로 곧 ‘주님의 교회’ 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의 모임’ 이나 ‘예배드리는 예배당’ 정도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마치 그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말라죽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교회를 떠나서는 결코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 정말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시온성과 같은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찬208장 3절에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 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고 위하여 봉사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각양 은사와 선물이 교회를 통하여 주어진다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성장하는 교회를 연구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장하는 교회에는 그 교회를 오래 섬기는 사람들이 많다’ 는 것이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라고 아픔과 위기가 없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교인이라고 교회가 항상 좋기만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도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여 든든하게 지키고 섬긴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성장했다는 것,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장하는 교회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여 헌신한 사람들의 사업이나 자녀들이 다 잘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기쁨으로 섬기는 자에게 해와 방패가 되어주시고, 은혜와 영화를 주시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교회를 섬기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계신 이 자리가 우리 함께하는교회가 하나님의 복의 통로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가 복 받는 자리입니다.” 여러분 지금 앉은 자리가 복 받는 자리인 줄로 믿으시고 주님의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복을 누리면서 그 풍성함 가운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 내 인생의 밤을 만나신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시련의 밤에 처해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들리도록 힘껏 부르짖으며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깊고 어두운 밤이라도 노래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적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문제가 있든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노래해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전을 더욱 사모하며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시온에서 주시는 축복을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3. 9. 15. 주일예배말씀. 이영화 목사.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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