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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Our Toils Are Not In Vain)
고린도전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543 추천 수 0 2013.09.16 17:36:53성경본문 : | 고전15:5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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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영봉 목사 |
참고 :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
2013년 3월 31일 부활주일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15)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Our Toils Are Not In Vain)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To Be Born Again)
-- 고린도전서 ( 1 Corinthians) 15:50-58
1.
Happy Easter!
부활 주일에 미국 교회에서 하는 축하의 말이 있습니다. 목사가 He is risen!하고 말하면 회중은 Indeed!라고 대답합니다. 그 다음, 목사가 Indeed!라고 말하면 회중이 He is risen!하고 대답합니다. 이것을 우리 말로 바꾸어 해 보겠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제가 말하면, 여러분은 "정말입니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정말입니다! "라고 말하면 여러분이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자, 한 번 해 볼까요?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정말입니다!
정말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지난 해 강림절부터 우리는 '사도신경'을 따라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지지난 주까지 열 네 번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부활 주일이니, 순서를 건너 뛰어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에 대해 묵상해 보려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켜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 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고전 15:20)
"잠 든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사람들이 모두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짧은 잠'을 잡니다. 80까지 산다고 하면 6만번 가까운 짧은 잠을 잡니다. 그렇게 살다가 마침내 '아주 긴 잠'에 듭니다. 그것으로 끝난다고 믿는 사람들은 '죽음'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믿은 바울은 '긴 잠'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잠 든 사람들의 첫 열매"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무를 키워보신 분들은 잘 아십니다만, 과일 나무를 키워 첫 열매를 보면 '아, 앞으로 매년 열매를 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것을 믿고 나서, '아,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모든 죽은 자들이 언젠가 부활하겠구나!'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고, 사두개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파가 만나면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하곤 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파 유대인답게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 바울이,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선전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활을 선전하는 사람들이 유대교를 망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을 박멸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피신한 예수 쟁이들을 잡으러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워낙 똑똑한 사람이었고 또한 율법에 대해 통달하고 있었기에 바울은 이 사건을 두고 곰곰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만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던 부활이 미리 한 사람에게 일어났다면, 그는 메시야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에게 부활이 일어났으니, 마지막에 모든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는 것이 틀림 없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부활 사건을 축하하는 한 편,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부활 사건을 기억하고 기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드리는 부활절 예배의 의미는 반쪽이 되고 말 것입니다.
2.
아마도 이 지점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운데, 우리 모두가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까지 믿으라구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실, 믿음이 좋은 분들이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몸의 부활'에 대해서 별로 생각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어서 천국 간다는 믿음도 있고,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살 것이라는 것도 믿고, 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것도 기대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것까지 믿으라는 것이 지나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이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할 것을 믿는 것보다 결코 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을 믿기 위해서 추가적인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을 수 있다면,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이 몸으로 부활하는 것도 믿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적습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52-53절)
어떤 사실에 대해 믿는 것이 어려우면 우리는 이상한 질문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개파 사람들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자주 그렇게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우리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리새파로 간주하고 부활에 대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모세의 율법은 형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위해 자식을 낳아 주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홀로 사는 여인에게 자식이 가장 큰 재산이었던 고대 사회의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법입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일곱 형제의 맏아들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어 둘째가 형수와 동침했으나, 둘째도 역시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셋째도 동생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죽고, 넷째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곱째까지 형수를 아내로 삼았고 결국 자식을 보지 못했다면, 나중에 부활했을 때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겁니까?
머리 좋은 사람들일수록 이런 질문을 만들어내어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머리 좋은 것으로 따지면 우리 주님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주님은 말싸움을 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증언하셨습니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 부활 때에는 사람들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마 22:29-30)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옛날 몸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부활은 죽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인해 멈춰졌던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만, 죽음 이후로 나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금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잠시 '정지'(pause) 버튼을 눌렀다 칩시다. 그 지점에서 '되감기'(rewind) 버튼을 누르면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압니다. 하지만 '재생'(play) 버튼을 누르면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알지 못합니다.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이 죽음 이전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지만, 죽음 이후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일지 알지 못합니다. 아무도 거기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잘 받아야 합니다. 천사와 같이 된다는 말은 영혼만이 존재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 신앙은 '영혼불멸'(Immortality of Soul)에 대한 믿음과는 다릅니다. 기독교는 영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해 분리되었던 영혼과 육신이 다시 합하고 변화되어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는"(54절)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안치되었던 시신이 사라졌습니다. 그분의 몸이 변화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았습니다. 심지어 그분의 손에는 못자국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몸은 과거의 몸과 같지 않았습니다. 안으로 걸어 잠근 방을 마음대로 드나드십니다. "천사와 같이 된다"는 말씀은 따라서 지금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차원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천사와 같이 된다"는 말은 또한 지상에서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만, 우리의 모든 관계는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손주가 그곳에서 여러분을 만나면 "형제님" 하고 인사하게 될 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재혼한 사람이 부활할 때 누구의 짝으로 살게 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관계 안에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부활 신앙에 대해 사두개파 사람들이 제기한 것과 유사한 질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동안 제가 마주했던 부활에 대한 질문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부활할 때 우리가 어떤 몸을 가지게 될 지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신학대학에서 가르칠 때 만난 어느 학생이 기억납니다.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몇 가지 직업에 종사하다가 40이 넘어서 신학교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 학생이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부활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몸을 다시 봐야 하는 겁니까? 이 흉한 몸을 다시 입으라는 말입니까?"
농담으로 말했다면 웃고 말았을텐데, 아주 심각하게,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과히 나쁜 얼굴과 체형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 학생의 자존감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눈치 챘습니다.
그 질문을 받고 나서야, '아, 몸이 부활한다는 믿음이 복음으로 들리지 않을 사람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생김새에 대해 혹은 자신의 신체 조건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몸이 다시 부활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반갑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를 입고 태어난 분들도 몸의 부활을 생각할 때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사실, 몸이 부활한다고 생각할 때, 여러 가지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몇 살 때의 몸으로 부활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장 아름다웠을 때의 모습'으로 부활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대답이 되지 않습니다. 미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형을 한 사람들은 성형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부활하면 어쩌나 걱정할지 모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에도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질문들은 '몸의 부활'을 옛날 몸으로 되살아나는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부활은 옛날 몸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한 몸을 "신령한 몸"(고전 15:44)이라고 불렀습니다. 신령한 몸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몸이 다시 부활한다면 화장(火葬, cremation)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것도 역시 오해입니다. 과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우리의 시신은 서서히 분해되어 다른 생명체에 의해 재활용됩니다. 아니, 살아있는 동안에도 우리 몸의 세포들은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순환 작용을 지속합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 중에서 엄밀하게 말해서 '영원한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설사, 나의 시신을 고스란히 땅에 묻는다 해도 100년도 되지 않아 한 줌의 재만 남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내 몸이 부활할 수 있도록 내 시신을 묘지에 고스란히 매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 말씀대로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생각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면, 우리가 아는 세상 모든 것이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의 몸만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이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태초의 그 능력으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킬 것입니다.
셋째, 만일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인류 역사상에 살았던 모든 인간이 몸으로 부활한다면 이 지구는 발 디딜 틈이 없을 것 아니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른 보면, 부활 신앙의 맹점을 찌르는 질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지구가 그대로 있고 모든 죽었던 사람들이 옛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의 세상은 더 이상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그런 세상이 아닐 것이며, 우리의 몸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그런 몸이 아닐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에 있을 몸의 부활은 하나님 나라에 눈을 떠야만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차원으로 옮겨가셨다는 것을 믿을 때에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있을 몸의 부활을 믿는다 해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 하나님과 함께 했던 우리의 영혼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몸과 합하여 신령한 몸을 이룰 것이라는 사실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4.
어떤 분들에게는 이 모든 이야기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너무도 먼 이야기처럼 들릴 것입니다.
몇 주일 전에 한국에 사는 40대 남성에게서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중학교 시절에 약 2년 동안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 두고 나서 교회를 떠나 살았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사회과학과 유물론은 그로 하여금 기독교를 더욱 불신하게 만들었습니다. 결혼 후, 얼마 있다가 무신론자였던 아내와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아내의 성화로 인해 그 사람도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고, 성경과 기독교 서적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이 기복신앙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마음에 평안을 얻고 물질적인 축복을 받고 자녀들이 잘 되고 만사 형통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비판하던 기독교인들과 동일한 모습으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교회에 발길을 끊었고, 지금은 스스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규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연을 적고는 저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목사님, 왜 제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요? 크리스천이 아닌 제가 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나요? 물질, 건강, 가족을 비롯한 타인과의 화평--이런 것들이 믿음의 본질이 아니라면, 남은 것은 종말에 있어서의 구원과 영생인데, 그것이 제게는 너무 멀고 관념적으로 느껴집니다. (중략)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진 자리에 공허한 구원과 영생이 남아 있습니다. 목사님, 어디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까요?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요?
저는 이분의 정직하고 진솔한 고백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분이 다시 믿음을 가지면 제대로 믿을 분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기우릴 생각입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에도 몸의 부활에 대해 이분과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몸의 부활이 간절히 기다려지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에 부활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믿음에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진실로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에 믿는 것이며,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에 믿는 것이고, 성령께서 하나님 나라에 눈을 뜨게 해 주셔서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이며,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하나님 품에 안기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의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처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전혀 다른 목표를 위해, 그리고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물질을 전부로 알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는 방법을 보며 조롱합니다. 비판합니다. 때로는 박해하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도 육신을 입고 물질을 사용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자주 영적인 세계를 망각하거나 무뎌집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걸음은 흔들립니다. 혹시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헛 것을 잡은 것은 아닌가? 이 시간, 이 노력, 이 돈을 다른 데 사용하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바로 이 때, 부활 신앙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장차 우리 모두가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육신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흔들리는 걸음을 바로잡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 그리고 영혼 구원을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귀한 시간과 돈과 정력이 낭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몸인 교회와 영혼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만이 진실로 영원한 것임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그 일부를 읽은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The chapter of resurrection)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부활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해 설명한 다음, 결론으로서 이렇게 적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 자신의 부활을 믿으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를 간단명료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58절)
5.
지난 목요일 점심 시간에 예배실에 홀로 앉아 오늘 말씀에 대해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한 참 묵상을 하는데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것을 정리하여 오늘 목회칼럼에 실었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부활, 그것은
메마른 씨앗에서 사과나무를 보는 것
굳은 껍질의 알 속에서
독수리의 비상을 보는 것
말라붙은 가지 끝에서
꽃의 향기와 벌의 날개 짓을 보는 것
깊고 진한 어둠 저편에서
동터오는 태양을 보는 것
한낮에 하늘을 우러러
은하수를 보는 것
침묵 가운데
우주의 굉음을 듣는 것
심장 박동 소리에서
우주의 리듬을 느끼는 것
들숨과 날숨을 쉬면서
아담의 코에 불어넣었다는
하나님의 숨을 느끼는 것
아이의 노래를
천사의 합창으로 듣는 것
얼굴을 스치는 봄바람을
하나님의 손길로 느끼는 것
호수 곁에 서 있는 노루를 보고
천국을 보는 것
눈 뜨고 꿈꾸는 것
눈 감고 세상을 보는 것
이미 죽은 것처럼 사는 것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다르지 않은 것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렇게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살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성령께서 오늘 우리를 깨우셔서 그렇게 살게 하십니다. 매일 하늘의 이슬로 우리 눈을 씻고 하늘의 만나로 우리 마음을 채운다면,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산다면, 이 땅에서 겪어야 하는 모든 풍상을 이겨낼 수 있고, 나의 시간과 물질과 힘을 하나님 나라와 주의 교회와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꺼이 내어 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무감각해져서 때로 흔들릴 때마다 걸음을 바로 잡고 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 신비로운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부활의 주님,
저희 눈을 열어 주소서.
저희 마음을 만져 주소서.
저희 귀를 열어 주소서.
주님 나라 보게 하시고
그 나라를 살게 하소서.
이 땅에서 천국을 살고
죽어 천국에 이르며
마지막 부활에 참여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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