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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어디에 있는가?(Where Is Justice?)

시편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529 추천 수 0 2013.09.16 17:36:53
.........
성경본문 : 시52:1-9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3년 7월 21일 주일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Where Is Justice?)
시편(Psalms) 52:1-9


1.

2012년 2월 26일, 플로리다의 샌포드에서 올 해 열 일곱 살 난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이 후디를 입고 음료수와 초코렛 사탕을 사서 호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경찰이 되기를 꿈꾸며 지역 순찰대원(Neighbor Watch Volunteer)으로 봉사하던 조지 짐머만(George Zimmerman)이 차에서 내려 트레이본을 검문합니다.
그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두 사람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주민들은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한 사람의 비명 소리가 난 다음, 총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짐머만이 가지고 있던 총에 의해 트레이본이 살해 당한 것입니다. 짐머만은 트레이본이 자신을 해치려 해서 '정당방위'(self-defense)로 총을 쏘았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그 진술대로 사건을 처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 되었고, 플로리다 주 검찰이 짐머만을 2급 살해(the second degree murder)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짐머만의 과잉 대응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CNN같은 뉴스 채널에서는 하루 종일 이 재판 과정을 생중계했고, 국민의 의견이 둘로 선명하게 갈라졌습니다. 한 편에서는 인종 문제로 인해 사법적인 판결이 좌우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짐머만의 정당방위가 맞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이 재판을 통해 미국 사회에 아직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종 차별 의식이 밝혀지고 개선되기를 바랬습니다. 이 사건이 인종 차별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본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2013년 7월 13일 저녁, 무려 16시간의 긴 토론 끝에 여섯 명의 배심원들은 짐머만에게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이 판결이 전해지자, 짐머만이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염려했던 사람들은 "할렐루야!"라고 응답했고, 트레이본이 인종 차별의 희생자였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심하게 분노했습니다.

저도 이 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해 왔고, 그래서 저 나름의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 자리에서 나누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사건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정의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정의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정의의 심판을 얻어낼 수 있는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힘은 법인데, 이 법이 과연 정의를 보장해 줄 수 있는지?  

만일 짐머만의 설익은 정의감에 의해 트레이본이 살해된 것이라면, 그의 억울한 죽음 그리고 그 가족의 아픔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만일 짐머만이 총을 사용하지 않고는 안 될만큼 위급한 상황에 있었다면, 짐머만은 얼마나 억울합니까? 전국민에게 얼굴이 팔린 그는 이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보복이 두려워 평생을 숨어서 살아가야 할 그의 형편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짐머만의 말이 옳다면, 누가 그에게 정의를 찾아 줄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대로, 그 날 밤, 트레이본은 집 안에서 뒹굴고 있어야 했고, 짐머만은 트레이본을 보았을 때 차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불행한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두 사람 사이에 정의의 심판이란 불가능해져 버렸습니다. 두 사람에게 정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2.

오늘 우리는 '교회력을 따른 성서일과'(Lectionary)에 맞추어 시편 52편을 읽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시편에서 다윗은 정의의 문제를 다룹니다. 성서일과를 정한 사람들이 이 시기에 이런 사건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본문을 정해 놓은 것 같습니다.
이 시편에는 머릿말이 붙어 있습니다.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마스길.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로 가서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와 있다고 알렸을 무렵에 다윗이 지은 시.

'마스길'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릅니다. 특별한 형식 혹은 내용의 시편이라는 추측만 할 뿐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에돔 사람 도엑에게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무엘상 21장과 22장에 나옵니다. 그는 사울 왕의 신하로서 왕의 마음을 사서 출세할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을 제거하는 것이 사울 왕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는 길임을 알고, 사울을 피해 달아나는 다윗의 일행에 몰래 잠입합니다. 얼마 후에 그는 사울에게 돌아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보고합니다.

도피하는 다윗에게 제사장 아히멜렉이 음식을 주고 무기까지 제공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울은 격분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도엑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사울은 제사장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사울의 명령에 아무도 나서지 않자, 사울은 도엑에게 명령합니다. 그는 사울의 마음을 살 요량으로 잔인한 살륙을 감행합니다. 그 날, 도엑이 살해한 사람이 제사장의 옷을 입은 사람만 따져도 85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건 앞에 서면 우리는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게 됩니다. 힘 없는 사람들이 힘 있는 자의 폭행에 무고하게 희생 당함으로 정의가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아히멜렉은 그나마 사울의 정적을 도왔다는 잘못이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있다가 죽임을 당한 다른 제사장은 정말 억울합니다. 그들의 무고한 피는 정의를 요구하지만, 그들에게 정의를 찾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 오늘의 시편을 썼습니다. 그는 '인간 백정' 도엑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오, 용사여,
너는 어찌하여 악한 일을 자랑하느냐?
너는 어찌하여 경건한 사람에게 저지른 악한 일을 쉬임없이 자랑하느냐?
너, 속임수의 명수야,
너의 혀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해로운 일만 꾸미는구나.
너는 착한 일보다 악한 일을 더 즐기고,
옳은 말보다 거짓말을 더 사랑하는구나. (셀라)
너, 간사한 인간아,
너는 남을 해치는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지 좋아하는구나. (1-4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다윗의 시대에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에도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도 도엑처럼 악으로 똘똘 뭉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일생을 살면서 그런 사람과 한 번도 얽히지 말면 좋겠지만, 그런 기대는 현실적이 아닙니다. 언제고 그런 사람과 얽힐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악한 세입자를 만나 몇 개월 동안 피를 말리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어떤 교우는 악한 주인(land lord)를 만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작은 사고를 빌미로 거대한 소송을 걸어온 사람 때문에 밤 잠을 못 자는 분도 계시고, 집수리 때문에 만난 업자로 인해 고통받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 일로 건강을 잃을 때도 있고, 적지 않은 재산을 날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누군가가 속 시원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한 사람에게 응당의 벌을 내리고 입은 피해를 넉넉하게 보상해 주었으면 싶습니다. 그래서 법이 있고 법정이 있으며 법조인들이 존재합니다. 적어도 법원에서는 옳고 그름이 제대로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힘 없는 사람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악한 사람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 언제나 정의가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가 아니라 능력있는 검사 혹은 변호사가 승리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정의는 녹색이다"(The color of justice is green)이라는 말이 떠돕니다. 돈 있는 자가 이긴다는 뜻입니다. "정의의 색깔은 희다"라는 말도 어느 정도 진실입니다. 법이 백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에 선다 해도 안심하지 못합니다.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법정에서 자신의 정의가 밝혀졌다 해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해야 하는 정신적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시간 낭비와 돈 낭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이미 온 몸에 오물을 뒤집어 쓴 다음이니, 정의는 온 데 간 데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겪은 사람들은 소송하겠다는 사람들을 만류합니다. 변호사를 통해 적당히 합의를 보고 손해를 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올 때면,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혹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하고 싶어집니다.

3.

이런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정의가 돈과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은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성경은 송사를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악한 의도를 가지고 해를 끼치려는 사람에게 똑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져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마 5:38-42)

모욕을 당할 때 견디고, 소송을 걸어 올 때 손해를 감수하며, 강요 당할 때 기꺼이 당해 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할 수 있겠습니까? 타락한 인간성으로는 어려운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렵지만 순종해 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지난 2천 년 동안 이 말씀을 곧이곧대로 실천하여 그 말씀의 비밀을 맛 본 사람들이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이와 비슷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구체적으로 교인들끼리 소송하는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소송할 일이 있을 경우에, 성도들 앞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재판을 받으려 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습니까? ......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그런데 도리어 여러분 자신이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고 있으며, 그것도 신도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1절, 7-9절)

사도의 말씀에 의하면, 믿는 사람이 다른 믿는 사람에게 소송할 정도로 억울한 일을 한다면 이미 믿음의 길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나 자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여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실패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둘 사이를 중재하고 해결해 줄 영적 지도자가 없다면, 그 교회도 역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믿음의 식구들 사이에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일어났다면 누군가 중재할 수 있어야 하고, 정 안되면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교인들끼리의 송사에 대해서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의 다툼에 대해서도 사도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셨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롬 12:19-21)

결국, 성경은 억울한 일을 당하여 소송을 제기하지 말고, 소송을 당했을 경우에는 악하게 맞대응하지 말고 손해를 당해 주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식구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동일합니다.

이렇게 보면, 소송에 연루되어 고생해 본 사람들이 하는 말과 성경이 주는 가르침이 일치합니다. 둘 다, 할 수 있는 한 소송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소송을 겪어 본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유는 "해 봐야 손해다"라는 실제 경험 때문입니다. 반면, 성경에서 소송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정의를 찾아 줄 분이 따로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4.

오늘 읽은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마침내 정의를 바로잡으실 것이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인간 백정 도엑의 미래를 생각하며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넘어뜨리고, 영원히 없애 버리실 것이다.
너를 장막에서 끌어내어 갈기갈기 찢어서,
사람 사는 땅에서 영원히 뿌리 뽑아 버리실 것이다. (셀라)
의인이 그 꼴을 보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비웃으며 이르기를
"저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의 피난처로 삼지 않고
제가 가진 많은 재산만을 의지하며,
자기의 폭력으로 힘을 쓰던 자다" 할 것이다. (5-7절)

사무엘상은 도엑의 종말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권력자 옆에서 빌붙어 사는 사람들의 종말이 어떠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편을 편집한 사람은 도엑의 비참한 최후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믿고 고백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정의를 바로 잡으셨음을 알았기에 이 시편을 귀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입니다. 매일 겪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고, 믿는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르게 살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한 대로,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 뿐입니다.

얼마 전, 장로 기도회에서 성경 공부를 하다가 이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그 때, 외과 의사로 은퇴하신 장로님이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일찌기 소송에 대한 성경 말씀에 순종하기로 다짐을 했습니다. 외과 의사로 일하다 보면, 소송을 당할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장로님은 그럴 때마다 변호사를 통해 적당한 정도에서 합의를 하고 손해 보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은퇴를 몇 년 앞 두고 큰 소송을 당했습니다. 워낙 큰 액수가 걸린 소송이어서 합의를 보면 당장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65세에 은퇴하려 했는데, 그 계획대로 하려면 소송으로 맞대응해 싸워 이겨야야 했습니다.

 장로님은 그 문제를 두고 깊이 기도했습니다. 62세의 젊은 나이에 밀려서 은퇴하는 것이 너무도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평생 지켜 온 원칙을 깨고 싶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말씀대로 순종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장로님은 계획보다 일찍 은퇴하는 쪽을 택하셨습니다.

그런 사연을 말씀하시면서 장로님은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나에게 복이었습니다. 일찍 은퇴한 까닭에 버지니아에 와서 이렇게 좋은 교회를 만나게 되었고, 건강한 몸으로 선교지를 다니며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금전적으로는 잃은 것이 많았고 억울한 심정도 컸지만, 지금 돌아 보니 하나님께서 다른 것으로 더 크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의 이 말씀을 철저히 믿습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지금 소송에 연루되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 말씀을 너무 무겁게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율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율법처럼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모험입니다. 믿음의 여정에서도 모험을 하지 않으면 가슴 벅찬 경이감을 맛볼 수 없습니다. 최종 심판관이신 하나님,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을 믿고 모험을 할 때, 우리는 그분이 살아계심을 경험할 수 있고, 또한 그분을 믿고 사는 삶의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모험할  만한 믿음이 부족하다면, 법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믿음의 모험을 기도 중에 꿈 꾸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항상 위기의 순간에 도약의 계기를 맞기 때문입니다. 때로, 믿음의 모험을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은총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송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분들, 이를테면 판사, 검사 혹은 변호사로 일하는 분들도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법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정의를 밝히기 위해 힘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날의 사법 제도가 믿을 수 없게 되었기에 더 더욱 믿음의 사람들 즉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법조인들이 필요합니다. 

5.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사회 곳곳에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믿는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을 믿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정의롭게 살고 우리가 사는 사회가 더욱 정의로와지도록 헌신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오늘 시편의 마지막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는
푸른 잎이 무성한 올리브 나무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만을 의지하련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며,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 앞에서,
선하신 주님의 이름을 우러러 기리렵니다. (8-9절)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는 푸른 잎이 무성한 올리브 나무! 아, 이 얼마나 매력적인 비유입니까?  올리브 열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올리브 잎새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하나님 안에 뿌리를 내린 믿음의 사람들이 이와 같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정의롭게 살고 또한 정의를 위해 살 때 우리는 올리브 나무처럼 자라게 됩니다.

정의롭게 산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직원들을 거느린 책임자라면 직원들에게 정의롭게 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직원이라면 자신의 책임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함으로써 정의를 이룹니다. 세입자라면 세입자로서의 책임을 다함으로 정의롭게 행동하고, 집주인이라면 세입자를 정의롭게 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물건을 고르고 판매하며 이익금을 다루는 모든 과정에서 정의를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정의가 실현되도록 자신의 권력을 사용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 스스로 정의롭게 살 뿐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헌신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사회가 잘 못 흘러갈 때,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또한 행동합니다. 부당하게 억압 당하고 착취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냅니다. 정의롭지 못한 법과 제도를 고치기 위해 노력합니다. 때로, 교회는 단결된 목소리와 행동을 통해 불의를 향해 싸우기도 합니다. 거대한 불의는 홀로 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교와 전도는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자는 노력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느려 보이고 가망 없어 보이지만, 실은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어지면,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가 흘러 나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맥클린 캠퍼스에서 멕시코 나다니엘 센터로 단기 선교팀을 보내 선교하고 있고, 센터빌 캠퍼스에서는 페루에 선교팀을 보내어 선교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주님을 알고, 주님의 정의가 그들을 통해 이 땅에 흘러 들어오기를 기도합니다.    

6.

짐머만에 대한 평결 결과에 대해 사람마다 입장이 다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지켜 보면서 누구나 가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정의롭게 산다는 것, 정의를 밝혀낸다는 것, 그리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느 통계에 의하면 세계 전체 소송의 94%가 미국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세계의 전체 변호사들 중 70%가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 사회에서 법으로 정의를 가리는 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과연 여러분의 피난처는 어디에 있습니까? 도엑처럼 재산을 의지하고 폭력을 의지하겠습니까? 법에 의지하겠습니까? 실력있는 변호사를 알고 있으니 안심입니까? 정의가 거기에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런 것으로 정의를 보장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부디, 다윗처럼 정의의 하나님을 여러분의 피난처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든 것을 바로잡고 옳고 그름을 밝히고 정당한 몫을 챙겨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에게만 정의가 있습니다. 그분만이 정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정의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그분 안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청정한 올리브 나무로 자라가십시다. 다윗처럼 그분을 찬양하며 그분의 한결같은 사랑만을 의지하십시다. 늘 주님과의 거룩한 동행에 힘쓰며 주님의 뜻을 찾아 행함으로 하나님의 정의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십시다. 모든 일에서 정의롭게 살고 또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할 일을 찾으십시다. 그리하여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땅에 심긴 올리브 나무처럼 되기를, 그리하여 이 세상이 우리로 인해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변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주님의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는 주님,
저희로 주님을 진실로 믿게 하소서.
주님의 자녀답게
정의롭게 살게 하시며
정의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불의가 싸움을 걸어 올 때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소서.
저희로 하여금
주님의 정원에 심긴
푸른 잎이 가득한 올리브 나무로 자라게 하소서.
아멘.

<속회자료> 2013년 7월 21일 주일 설교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Where Is Justice?)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510장(통 276)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시편 52편을 읽습니다. 또한 사무엘상 21-22장을 읽고 도엑이 행한 일을 살핍니다. 그 사건의 배경에서 시편 52편을 다시 읽습니다. 이 시편이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10분)
4. 말씀의 요약 (한 사람이 말씀을 요약하여 발표합니다. 10분)
5.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분을 넘지 않게 하십시오.)
1) 오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나누어 주십시오.
2) 소송을 제기하거나 당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로부터 당신이 얻은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소송에 대해 경험자들이 주는 권고와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4) 정의에 대해 당신 스스로를 평가해 보십시오. 잘 하고 있는 점은 무엇이며, 잘 못하고 있는 점은 무엇입니까?     
6. 기도
1) 소송에 연루된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2) 정의를 위한 믿음과 용기를 구하십시오.   
7. 중보기도
돌아가면서 기도 제목을 나누십시오. 각자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을 적어 두고 매일 한 번씩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8.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586장(통 521)
9.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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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9 열왕기상 혼이 돌아오게 하옵소서 왕상17:17-24  박노열 목사  2010-05-28 2531
14558 마태복음 정신병원에서 왕노릇하는 신자 마6:10  박신 목사  2012-10-13 2530
14557 베드로전 지식을 따라 벧전3:7  김남준 목사  2012-08-26 2530
14556 창세기 40일-40년-400년의 비밀 창7:12  이정수 목사  2011-05-17 2530
14555 열왕기하 나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file 왕하6:14-19  이정수 목사  2010-08-20 2530
14554 마태복음 삶의 우선 순위를 정하라 마6:33  조용기 목사  2008-09-23 2530
» 시편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Where Is Justice?) 시52:1-9  김영봉 목사  2013-09-16 2529
14552 고린도전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Our Toils Are Not In Vain) 고전15:50-58  김영봉 목사  2013-09-16 2529
14551 요한복음 은혜와 진리가 만날 때(When Grace Meets Truth) 요1:14  김영봉 목사  2013-01-24 2529
14550 빌립보서 자족의 능력 빌4:10-13  김동호 목사  2013-01-10 2529
14549 신명기 하나님이 생명이다 신30:15-20  정용섭 목사  2011-03-07 2529
14548 창세기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실 때 ..... 창27:30-40  이정원 목사  2010-02-12 2529
14547 마태복음 자존심 마15:21∼28  한태완 목사  2009-03-27 2529
14546 에배소서 달라진 나를 발견하자 엡6:10-20  하용조 목사  2013-07-03 2528
14545 마태복음 메시아는 비밀이다 마17:1-9  정용섭 목사  2011-03-07 2528
14544 창세기 하나님의 얼굴 창32:23-33  정용섭 목사  2010-03-30 2528
14543 사도행전 일어나야 할 사람 행3:1-10  김필곤 목사  2009-11-28 2528
14542 히브리서 믿음의 실상 히11:1~2, 17~19  노희정 형제  2008-08-25 2528
14541 욥기 시련과 연단 욥23:10  한태완 목사  2007-11-11 2528
14540 역대하 교만하여 진 웃시야. 대하26:4-12  한태완 목사  2007-11-07 2528
14539 사도행전 좋은 교회 행20:28-31  이상호 목사  2013-06-12 2527
14538 시편 동굴과 터널 시23:4-6  조용기 목사  2012-07-04 2527
14537 시편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 하소서! 시51:10  이정수 목사  2010-07-08 2527
14536 역대하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20:5~12  박노열 목사  2009-12-13 2527
14535 시편 주께서 복 주시기를 시128:1-6  류공석 목사  2013-03-15 2526
14534 고린도전 성령을 받은 사람 고전2:10-16  허태수 목사  2012-06-01 2526
14533 사도행전 고린도에서 - 주님의 위로와 격려 ..... 행18:1-17  이정원 목사  2011-07-14 2526
14532 고린도후 영적인 사람의 4대 특징 고후3:12-18  이한규 목사  2011-06-16 2526
14531 시편 여호와의 산 시온의 찬가 시48:1-14  한태완 목사  2011-05-12 2526
14530 마태복음 너희는 마음에 두려워하지 말라! 마10:29-31  이정수 목사  2010-09-18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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