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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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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allcome |
고난 중에도 감사
본문: 사도행전 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세계적인 신학자요 설교가인 메튜 헨리가 어느 날 밤 강도를 만났습니다. 귀가 중이던 그를 덮친 강도는 피가 철철 흐르도록 구타하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신학자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강도당한 입장인 것을 감사합니다. 돈을 빼앗겼으나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나를 괴롭힌 그 강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가 다시는 강도로 살지 않도록 하옵소서”
우리는 흔히 감사의 조건이 있어야만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감사할 수가 없는 문제들이 많이 생깁니다.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이 쉽게 나와 버립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 중에는 특별히 고난을 받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인물들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고난의 대표적인 성경의 예는 욥이 있습니다. 그는 사단의 제의에 의해 고난이 시작되었으나 그는 원망과 불평이 아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돌이켰을 때 하나님은 욥에게 무한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윗도 그러했고, 요셉도 고난 중에 감사하였습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니엘을 시기한 총리들과 고관들이 다니엘을 죽이고자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지우는 법을 세우고, 이 금령을 어기면 어찌된다는 것을 알고도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본문의 바울과 실라도 억울하게 매맞고 옥에 갇혔어도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미하고 감사했습니다.
실락원의 작가 밀턴은 소경이 된 수에 불후의 명작을 집필하였습니다. 그가 소경이 되었을 때 이렇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육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그가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더 풍성한 영감을 얻으므로 실락원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95:2)
북경에 어느 문둥병 환자 노인이 있었는데 이분이 선교사들에게 말하기를 "저는 제가 문둥병 환자가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자 그가 말하기를 자기가 문둥병이 들지 않았으면 이 병원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것인데, 이 병 때문에 병원에 왔고 병원에 와서 하나님을 알아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병이 완전히 치료되고 구원되는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7:1)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낙심하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계속 문제되었던 게 바로 이겁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 중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하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원망은 곧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원망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민11: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민14:27- 29: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 ”
우리가 혹시 고난을 당할 때면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며 인내하고 감사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지금 처한 고난에는 뭔가 뜻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겁니다. 그 뜻을 헤아리며 인내하고 감사하는 게 성도의 도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시각 장애인으로 작가 겸 설교가였던 스코틀랜드의 죠지 마티슨이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는 주님께 내 인생에 장미꽃을 주신 것 때문에는 천 번도 넘게 감사를 드렸어도 나의 ‘가시’ 때문에 감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주님, 나의 십자가를 지는 영광을 가르쳐 주옵소서. 나의 ‘가시’의 필요함을 알게 하옵소서. 내게 고통의 길이 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기어서 올 수 있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내게 눈물이 있었으므로 나의 무지개가 생겼음을 알게 하옵소서.”
고난과 역경의 때 감사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에 못지 않게 평소에, 일상 중에 감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자 사이의 대화입니다. 아들이 밖에서 헐레벌떡거리며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께 말합니다. “아버지, 저 오늘 정말 감사해요. 교통 사고가 났어요. 자동차가 일곱 번 굴렀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듣고 아버지가 말합니다. “아, 그래? 감사하구나. 나는 너보다 더 감사하다.” 아들이 그 말을 듣고 의아해 하며 말합니다. “아니, 아버지도 교통 사고 났어요? 혹시 자동차가 여덟 번 구른 것 아니예요?” 아버지가 웃으며 대답합니다. “무슨, 나는 교통 사고도 안 났고, 자동차가 한 번도 구르지 않았단다.”
우리가 잊고 살지만 평소에 평탄하게 살아가는 게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니까 평안히 살아가는 겁니다.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특히 건강할 때 감사하지 못하는데, 건강을 잃어보면 평소 건강한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중병으로 산소호흡기를 오래 끼고 있던 분이 호흡기를 떼던 날 하신 고백입니다. “이제 살 것 같습니다. 이거 떼고 혼자 숨쉬는 것만도 어딘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체에 피가 돌고, 호흡을 하고, ... 이 모든 게 내가 신경 써서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복잡하고 힘듭니까? 아예 불가능하죠.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순간 순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나 같은 죄인 십자가 은혜로 구원해 주셔서 자녀 삼으시고 천국 소망 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 당할 뻔 한 것 생각하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우리가 전천후로 감사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복을 내려주십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사실은 인간관계에서도 그런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됩니다. 대학생 몇 명이 어느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부르더니 다음 날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며 봉투를 나눠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좀더 일하고 싶었는데 그만 나오라니까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 사장실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학생은 사장님에게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많은 것 배웠습니다. 사회 경험을 한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봉투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학생들이 다 나가자 사장님이 비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인사성 밝은 학생 있지? 그 학생에게 연락해서 내일부터 다시 나오라고 해. 그리고 졸업 후 본인이 원하면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도록 해.” 감사하는 사람은 이렇게 인정받고 은혜를 입게 됩니다.
사람 사이에도 이럴진대, 하물며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쁘시게 해드리면 얼마나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겠습니까? 살전5:18절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감사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꽃입니다. 마치 꽃 한 송이 들고 그 향기를 맡으며 좋아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이 우리가 올리는 감사의 꽃 향기를 흠향하시며 기뻐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은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6장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예수님이 축사 즉 감사 기도를 드린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생겼습니다. 감사가 있는 현장에 하나님이 기적으로 역사하신 겁니다.
복음성가 함께 부르겠습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신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 하신 것 감사
해처럼 베푸신 은혜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못한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발명왕 에디슨이 67세 되던 해에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실험실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기자재와 실험 자료들이 다 타버렸습니다. 일생 동안 가꾸어 온 것이 잿더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련의 때에 에디슨은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모든 실수들을 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로부터 3주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 18)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하다고 느끼십니까?
만일 불행하다고 느끼신다면 그것은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환경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 원인은 감사의 신앙을 상실해서 그런 겁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전천후 감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중에도 감사하며 사는 행복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거룩하신 주님! 광야 인생길에 날마다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원망했던 우리의 불신앙을 용서해 주옵소서. 어떤 경우에도 인내하고, 감사하며 기도함으로 주님의 축복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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