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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민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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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신윤식 목사 |
참고 : | 은석교회 http://onlycross.net |
1강. 민 1:1-19
싸움꾼
97.2.9 주일오전 설교
지난 주일 새벽에 예배당에 오기 위해서 집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청구 사거리에서 우회전 차선에서 직진을 하려고 하던 한 승용차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사람을 칠뻔 했습니다. 그러자 제가 타고 있던 택시 기사가 대뜸 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직진할 차가 왜 우회전 차선에 서 있노. 저건 인간도 아니야' 제가 듣기에 좀 민망할 정도로 심한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 욕을 들으면서 저는 제 나름대로 '아하 이 운전수는 교통법규를 잘 지키려고 애를 쓰는 분인가보다 그래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사람을 보면 화가 나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은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동신교를 건너 회전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동신교에서 좌회전을 하면 예배당이 무척 가까움)버젓이, 아주 당당하게 좌회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순간의 황당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그 택시기사에게는 남이 차선을 위반하는 것은 인간도 아닌 짓이 되고 자기는 차선을 위반해도 괜 찮은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을 아십니까?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는 최대한으로 관대해지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사람은 남의 죄는 잘보는데 자기의 죄는 보지를 못합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행동을 해도, 그 사람은 죄를 지은 것이고 자신은 그때 형편과 사정이 어쩔 수 없어서 하게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이해하실 것이라고 관대하게 넘어갑니다. 이렇게 자신은 자신에 대해서 관대하게 넘어가는데 만약 남이 꼬투리를 잡고 시비를 걸면 당장 하는 말이 '당신이 내 사정을 알고나 하는 말이냐?'고 공격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남의 사정은 전혀 돌아볼 줄 모르고 책망하기 바쁘고 욕하기 바쁩니다. 이것이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삶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사우는 삶은 없이 항상 남의 잘못만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비판을 일삼고, 용서를 하지 못하고, 결국에 신앙생활은 자기 자신만 잘하고 있는 줄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분명 자신이 왜 교회를 다니는지,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 분명한 그 이유를 모르고 신자라는 이름을 걸치고 있게 됩니다. 남의 티나 눈에 들어오고 자신에 대해서는 볼 줄을 모르는데 예수를 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물론 '천당가기 위해서'라는 대답은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것은 세상 사람도 다 압니다. 세상 사람을 붙들고 '저 사람들이 왜 교회갈까요?'라고 물어 보십시오. '천당가려고 교회가겠죠.'라 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 도 예수님을 알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교회로 모인다는 우리들만큼은 그 빈약한 대답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물론 천당가는 목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천국으로 인도받기 위해서는 과정이 있습니다. 천국으로 인도받는 자에게서 보여져야 할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심으로 천국이 소망으로 되어 있다면 그자에게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전혀 없이 단지 '천국가기 위해서 교회나온다'라고 해버릴 것 같으면 그야말로 놀고먹다가 천국 가겠다는 고약한 심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봅시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수많은 세월을 교회를 다녔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다면 과연 무엇에 목표를 두고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왔고, 무엇 때문에 기도하면서 살아왔습니까? 여기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내리기가 곤란하시다면 여러분은 단지 막연하게 천국만 생각하고 교회에 다녔을 뿐이지 여러분을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의 마음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신앙을 평가절하하거나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민수기가 바로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제가 우리들에게 있는 문제점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신앙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버리고 민수기를 들여다본다면 여러분은 민수기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의 티나 들여다보고 비판이나 하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교회다녀주는 것으로 다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헌금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열심을 원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원하신 것은 한마디로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되라'는 말을 거꾸로 하면 무슨 말입니까? '너는 인간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인간이냐, 인간이 아니냐는 말은 외형적인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잠시 창세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진짜 인간의 모습이 나옵니다. 진짜 인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형상을 지닌 인간입니다. 즉 죄짓기 전의 아담과 하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상에 대한 설명은 복잡하니까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신학공부 시간이 아니니까 그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냥 간단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기를 원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시다. 그런 인간이 죄를 짓고 나자 맨처음 잃어버린 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짜 인간의 모습인 '형상'입니다. 따라서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처음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 그것이 바로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모습입니다. 결국 외형을 가지고 인간이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상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 우리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실현시켜 볼만한 세상으로 보십니까? 물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꿈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열심히 일해 볼만한 곳으로 보여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를 아는 신자라면 분명 이 세상은 잘못된 세상으로 비춰지게 될 것입니다. 정상적인 세상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세상이 아니라면 그런 세상은 싫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다면 결국 기대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면 자신은 그런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나고자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애쓰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인간은 자연히 언제나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고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께 두기보다는 세상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삶자체가 바쁜 세상을 중심으로 살게 되고, 세상이 흔들리면 나도 흔들리고, 세상이 불안하면 나도 불안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안심하고 하나님만 믿으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교회는 다닌다고 주일이면 예배당에 나와 앉아있으니 설교를 들어봐야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이해되지 않는 말로 그쳐버리고, 그냥 흐리멍덩하게 앉아 있다가 돌아가 버리는 그런 세월을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신자들의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이 문제가 여러분께 있습니까? 있다면 오늘 우리는 분명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가?' 여러분, 비정상적인 인간이라도 좋으니까 세상에서 돈 많이 벌고 잘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다음 주일부터 당장 교회에 나올 필요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면 됩니다. 열심히 일하면 돈은 벌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사는 것이 소원이시라면 여러분은 이제부터 저와 함께 민수기의 여정을 걸어가시면 됩니다. 민수기를 한발자국씩 걸어갈 때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으로 자라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가만히 놀고 있는데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싸움입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민수기는 레위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레위기를 마치고 바로 민수기를 설교했으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인데 순서가 좀 엉망이 된 것 같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레위기가 어떤 책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레위기란 한마디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의 삶의 법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들만큼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계명대로 살아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소유되어서 신자된 너희들만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싸움이 필요한데 그 싸움이 어떤 싸움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 민수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의 말씀을 하신 후에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하라고 하십니다. 인구조사를 하는 목적은 싸움에 나갈 군사를 뽑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인구조사를 하는 기준이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모든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싸움꾼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믿게 된 이후 한평생을 싸움만 하고 살아가는 운명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해서 신자가 놀고먹다가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싸움을 하다가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싸움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서 천국에 가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만약 천국을 그렇게 갈 수 있다면 우리가 이시간 교회로 모일 이유가 없습니다. 네가 이렇게 핏대 올리며 설교 해야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천국은 싸워서 이긴 자가 가는 것임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신자들은 엉뚱한 싸움에 휩쓸려서 살아갑니다. 세상의 싸움에 휩쓸려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싸워야 할 싸움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세상의 싸움에 휩쓸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세상의 싸움이란 어떤 싸움입니까?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아지고, 더 성공하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입니다. 남보다 적게 가지고 낮아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존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거짓말하고, 사기 치고, 시기하고, 미워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비정상적인 세상입니다.
그러면 신자가 싸워야 할 싸움은 어떤 싸움입니까? 싸움이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싸움의 적은 나외에 다른 모든 사람입니다. 하지만 신자의 싸움의 적은 바로 나의 자존심입니다. 우리가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든 원인이 인간의 자존심, 자아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싸움의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습니다. 그 적이 지금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내 자존심입니다. 포기되지 않은 내 자아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부추기는 것, 이것이 바로 내 안의 사단입니다. 그래서 레위기에 등장하는 거룩한 백성의 모습의 기준은 모두 인간의 자존심이 포기되어진 가운데서 드러날 수 있는 삶에 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에 잘못된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십자가를 말하고 천국을 말하면서도 포기하도록 가르쳐야 할 자존심을 오히려 한껏 부추겨 놓고 있습니다. 누구는 헌금을 잘한다, 누구는 봉사를 잘한다고 하면서 인간의 자존심을 한껏 올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나올 때 자신이 죄인임을 알겠습니까? 전혀 알리가 없습니다. 죄인임을 안다면 헌금잘하고 봉사잘하고 구제잘하는 죄인이겠죠.
때문에 저는 목사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어느 한 개인을 칭찬하면서 다른 사람을 자극하는 것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칭찬이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뭔가 좋은 일을 하고서 누군가의 칭찬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다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편에서 여러분을 칭찬하실 것입니다. 사람의 칭찬이 귀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칭찬이 귀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사람의 영광을 바라고 하는 것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여러분은 그 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만약 적을 모르면 우리는 엉뚱한 적을 적으로 오인하고 그 적과 싸운다고 필요없는 힘을 낭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남들은 기도를 하루에 한시간 하는데 나는 10분도 못한다라고 생각될 때 거기에 자극을 받아서 자신도 하루 한시간 기도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쓸데없는 싸움입니다. 필요없이 힘을 낭비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의 신앙 자존심이 일으키는 문제인줄은 모르고 엉뚱한 것을 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적은 기도를 얼마 하느냐, 헌금을 얼마 하느냐, 전도를 몇 명했느냐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존심입니다. 그 자존심이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신앙생활을 힘들게도 하고, 남을 미워하게도 하고, 시기하게도 하고, 인간관계를 힘들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세상으로 당하는 모든 문제들의 내면을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자기를 버리지 못한 자존심이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신자된 여러분이 예배당에서나 어디에서든 서로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 절대 세상의 것을 자랑하지 말라고 많이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서 상처를 입은 지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의 것을 적게 소유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체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남이 세상 것을 자랑했다고 해서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면 그것 역시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자존심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적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를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 적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고, 남을 미워하도록 하고, 시기하도록 하고 세상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내가 이길 수 없는 적입니다. 너무 강한 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이 적과 싸울 싸움꾼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싸움꾼은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자의 힘은 내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힘입니다. 무엇이 힘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입니다. 레위기에 말씀된 거룩한 신자의 삶의 모습에 대한 계명이 힘입니다. 내 모습은 비정상적인 모습임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정상적인 모습을 가르쳐 주고 있는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 안의 내 적이 나를 어떻게 끌고가는 가를 언제나 눈치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싫어하며 하나님께 나를 맡기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며 살아야 합니다. 신자의 힘이란 한번 받으면 몇 달씩 계속 지속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40일 금식기도 한번 한 것을 가지고 평생을 우려먹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단의 모습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40일 금식기도 한번 했다고 하나님의 능력이 저절로 주어지지도 않지만 설사 주어졌다고 해도 그 힘이 평생토록 지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힘이란 말씀 안에서 날마다 공급받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자신의 적을 발견하고, 자신에 죄에 대해서 회개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그리워하면서 현재의 자신을 미워할 때 그것이 곧 싸움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싸우며 사시기 바랍니다. '누가누가 더 잘사나' '누가누가 더 기도 많이 하나' '누가누가 더 봉사 잘하나' 이런 싸움 말고 자존심이라는 마귀와 싸우십시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의 모습이 싫어서 죄와 멀어지기 위해서 싸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항상 소망하십시오. 이것이 참으로 성숙된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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