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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안의 세계

민수기 신윤식 목사............... 조회 수 1466 추천 수 0 2013.09.25 23:27:08
.........
성경본문 : 민7:1-11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 http://onlycross.net 

9강.

민7:1-11

장막안의 세계

97.4.13

 

지난 시간에는 축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축복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공과 발전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 정반대인 희생과 섬김의 자리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복은 온전한 나실인의 모습을 보이신 예수님에게 강림하여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리하신 희생의 자리에 우리도 함께 하는 것만이 곧 복안에 있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복의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어떤 잘못에 있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장막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장막은 하나님이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만들라고 지시하신 장막입니다. 출 40:17절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장막을 만들었는데 오늘 본문은 바로 그것과 연결되어지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장막이 이스라엘에게 왜 주어졌는지 그 이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장막은 제물의 피가 뿌려지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를 드리면서 자기들의 죄로 인해서 제물이 피를 흘리고 죽는 것을 봐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막이란 이런 의미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필하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단 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라고 말합니다. 즉 장막을 거룩히 구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라고 하신 장막이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장막 외의 장막은 다 더럽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장막에만 함께 하십니다. 그 외의 것은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세우신 장막만이 거룩합니까? 희생의 피가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장막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 일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거룩한 장막에서 일어나는 일과, 거룩하지 못한 장막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떻게 다르냐는 것입니다. 장막이 거룩하다는 것은 장막을 지은 재료가 거룩해서 장막이 거룩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장막에 기름을 바르고,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서 거룩히 구별했다고 하지만 기구 자체가 거룩해서 기름을 바른 것이 아닙니다. 장막이 거룩할 수 있는 것은 장막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입니다. 즉 희생이라는 일 때문에 장막은 거룩히 구별되는 것입니다. 장막 밖에서 일어나는 일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해 봅시다. 장막 밖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장막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신자의 모임, 즉 교회라고 합시다. 우리는 교회를 거룩하다고 합니다. 왜 교회가 거룩한 것입니까?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거룩합니까? 아닙니다. 교회 밖의 세상과 뭔가 다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그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섬김과 희생입니다. 세상과 다른 정신으로 사는 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남에게 지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남을 누르는 것을 쾌락으로 삼으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결과로 자연히 약자들이 눌림 받고 업신여김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희생이 없는 장막 밖의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장막에서는 자기는 비참하게 되고 피흘리면서 남을 살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막을 거룩하다고 합니다. 세상은 불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는 정의가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모였습니다. 스스로 세상 사람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천국 가고 너희는 지옥 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뭘 믿고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모스 5:24절에 보면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고 말합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는 말입니다. 즉 이스라엘에 공의도 없고 정의도 없다는 것입니다. 공의가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 정의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치를 바로 세우고, 민주화를 이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누군가가 비참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이웃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을 약자로 알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웃을 자기보다 약한 약자로 대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공의이고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모여서 예배드린다고 교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린 아모스 5:21절부터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절기를 지키는 것을 미워하고 멸시하며, 성회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제사도 받지 않으시고 제물도 돌아보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찬송 소리도, 악기 소리도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의가 없고 정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과시하고 약자를 업신여기는 불의를 행하고 있으면서 절기 지키고 성희를 드린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가 바로 이것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이런 성경 구절을 볼 때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하기사 애당초부터 여호와의 법을 세우고 여호와의 정의를 물같이 흐르게 하기 위한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오직 내교회 크게 만들어서 나도 힘좀 써보자는데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눈에 보일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깨달아가기 위해서 힘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만 힘쓰고 있으니 성경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겠습니까? 그런데 거짓된 목사가 가고 있는 망하는 길로 교인들도 함께 가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막 안의 세계는 장막 밖의 세계와는 전혀 다릅니다. 장막 안의 세계는 자기의 본 모습을 피흘리고 죽어 가는 제물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재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사회적인 지위, 재물, 이런 것에 자신의 모습들이 치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 속에 있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을 치장하고 있는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자신도 역시 비참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건강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건강을 잃어봐야 알고, 지금이 최선의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도 더 힘든 환경으로 빠져들어가 봐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것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에 내가 함께 달린다는 것은 나의 비참한 모습을 미리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세상의 것이 뭐가 있든 상관없이 자기를 과시하지 않고, 내가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은혜를 모르고서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은혜라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그러나 보면 진짜 은혜를 알고서 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자기를 과시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건강하다면 이것은 내가 잘나서 건강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라고 했을 때 이 사람이 과연 자신의 건강을 과시하고 자랑하겠는가?


나는 병들고 고생해야 하는 인간인데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설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입혀졌기 때문이다는 것을 안다면 자신의 건강을 자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금 모습은 여러분의 본 모습이 아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 가운데 함께 하시기 때문에 지금 예배당에 나올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믿음에 대해서 소홀하게 여기고 살아갑니다. 돈버는 세상일에는 땀을 흘리면서 열심을 내고 살아가는데 믿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저 사람이 정말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가?'라는 의문점이 들 정도로 믿음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급한 것은 돈이고, 자식 문제이지 믿음의 문제가 급하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예배당은 꼬박꼬박 나오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예배당을 나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모이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고 이것이 곧 장막 안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신자로 살아가고 싶으시다면 장막 안의 세계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나는 약하고, 놀림받고, 비참하게 되어야 할 그런 인간인데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안절부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남과 비교해서 자기에게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있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생각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돈이 없습니까? 건강이 있습니다. 건강도 없습니까?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지 않습니까.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까? 생명이 있지 않습니까? 생명도 잃어버릴 지경입니까? 뭐가 걱정입니까. 하나님을 알았으니 세상의 생명을 잃는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 아닙니까? 이렇게 사는 자가 신자입니다.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는 세상의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세상 것을 자랑할 수도 없고 과시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피흘리고 죽어가는 제물을 통해서 저주받은 우리의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죽을 자가 살아있다는 것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져 있기 때문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막 안에서는 장막 밖의 세상의 사고방식이 보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족장들이 예물을 드립니다. 그 예물은 덮개 있는 수레 여섯과 소 열 둘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드린 예물은 레위인에게 주어져서 레위인이 회막 봉사하는데 쓰여집니다. 족장들이 드린 수레와 소는 레위인이 장막의 기구들을 나를 때 사용됩니다. 이것은 결국 레위인들이 회막을 메고 옮기는 것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이스라엘의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레위인이 회막 봉사를 맡았으니까 레위인에게 다 맡겨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수레와 소를 바침으로 우리 역시 장막을 메고가는 일에 동참하겠다는 뜻입니다. 레위인의 일은 레위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만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은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회막의 일에 참여해야 하는데, 그것은 레위인과 같이 그들도 동일하게 회막을 메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그들의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를 제단으로 삼으시고 스스로 제물 되셔서 피흘리신 예수님은 온전한 레위인의 모습입니다. 그 레위인 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신자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똑같은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그 정신에 함께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신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일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만 하고 있지 실제로 십자가를 지신 그 정신에는 동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나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알지 못하고서 십자가를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수많은 신자아닌 신자들이 자신의 비참한 모습은 보지 못한 채 십자가를 따른다고도 하고, 믿는다고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과는 전혀 다른 십자가의 모습들이 교회에서 보여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지 못한 은혜와 감사는 가짜입니다. 이것은 단지 자신에게 좋은 것을 주셨다는 데에 대한 말뿐인 감사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던 것을 하나님이 빼앗아 버리실 때 원망이 나오고 불평을 할 사람들입니다. 좋은 것이 있어서 감사했는데 감사할 좋은 것이 없으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예수님의 사도들은 전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다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면서 세상 것을 자랑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막 안의 세계와 장막 밖의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장막 안에 거하고자 하면서 장막 밖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장막 안의 세계를 사모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장막 안은 그리스도안을 말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안의 세계와 그리스도 밖의 세계인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안에 살기를 원한다고들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 밖의 세계를 떠나기를 싫어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안을 원합니까? 세상을 원합니까?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원하신다면 세상에서 발을 빼는 것이 곧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눈을 가지고 자신을 보면 결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장막에서 피흘려 죽어 가는 제물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세상의 조건이 좋다고 할지라도 결국 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더러운 죄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 사람은 자기에 대해서 가치를 두지 않게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는 것을 아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내 멋대로 살았고, 내가 나 된 것이 내 힘으로 된것인줄 알았던 것을 용서해 달라고 고백하는 자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막 안, 즉 그리스도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자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시려면 우리가 얼마나 힘없고 부족한 자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에 머무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장막에서 피흘려 죽어 가는 제물을 보면서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하나님이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자이고, 참된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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