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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일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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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3.8.25 주일 여의도순복음교회 |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장 8절
우리 삶의 절망적 상황은 모두 불순종의 결과
하나님 말씀과 이름, 보혈의 능력에 의지하여
선한 것만 바라보며 믿고 시인하면 복을 얻어
죄는 헬라어로 ‘하말티아’입니다. 이 말의 뜻은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죄를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과녁을 빗나가버린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순종치 않고 곁길로 나가버리면 죄를 짓게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1.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에덴동산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주 정신이 번쩍 들게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죽는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뱀에게 넘어간 하와는 하나님의 엄하신 명령을 자기 멋대로 다시 해석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 1절에서 3절은 “그런데 뱀은 야훼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이것을 따먹기만 하면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알아 하나님이 분별하고 같이 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유혹하였고, 이렇게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나무를 보니 이미 마음에 ‘나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6절은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고 기록합니다. 결국 마귀의 꾐에 빠져 그의 말을 믿고 선악과를 따먹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거역해 죄를 지으면 죄 안에 마귀가 있고 마귀 안에 죄가 있는 것입니다. 죄와 마귀는 분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바로 죄이며, 그 죄가 반드시 또 마귀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보면 악한 원수 마귀들이 많이 찾아와 우리를 공격하는데, 그것에 대적할 수 있는 무기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은 자의적인 변형 없이 정확하게 사용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아는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라고 했는데, 하와는 이를 “죽을까 하노라”로 자기 마음대로 변형했습니다. 그런데 마귀의 주장은 굉장히 강했습니다. “아니다! 절대 죽지 않는다.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렇게 되는 것이 싫으셔서 너희에게 선악과를 못 먹게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단호하게 하나님 말씀을 부인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유혹하였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과 동등 되려하는 끝없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가 직접 할 수 없으니까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특권인 선악간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자기가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의 소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런 마귀의 소원에 이용당한 것입니다. 그렇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었으니 이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사는 땅은 원래는 복된 에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땅이 아담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복과 저주는 바로 사람을 따라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 받은 사람이면 우리가 들어가는 집은 복을 받습니다. 사업을 하면 사업이 복을 받고, 짐승을 기르면 짐승의 새끼까지도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저주를 받으면 아무리 좋은 땅에 가도 그 땅에 저주가 내리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오고, 우리가 집에 들어오면 그 집도 저주를 받고 사업을 하면 사업도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저주도 사람을 통해 오고 복도 사람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제일 중요하고 제일 영광스러우면서도 제일 무서운 존재입니다. 우리 한국이 이렇게 눈부신 발전을 한 이유는 바로 주님을 믿는 천만명의 하나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열 명중에 의인 한 사람이 있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열 명이 똑같이 복을 누리게 되는 원리입니다.
네비게이토선교회의 리로이 아임스는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는 책에서 ‘마귀의 유혹’에 대해 “저의 고향으로 가는 길에 어느 날 고속도로 공사를 하기 때문에 ‘출입금지’라는 화살표를 세워 놓았는데, 그 동네의 장난꾸러기들이 와서 도로에 있는 화살표를 다른 데로 옮기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이정표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차들이 길을 잘못 들어와서 많은 사고가 나고, 엄청난 정체현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하는 짓이 바로 이것과 똑같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요사이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는 우리에게 이처럼 잘못된 이정표 즉, 잘못된 지식을 넣어주고 우리에게 거짓 정보를 주어 유혹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받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마귀가 주는 잘못된 정보에 넘어가서 결국 하나님을 반역하고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갈 길을 정할 때, 이것이 잘못된 길인지 바른 길인지 깊이 알아보고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날 서로를 믿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도 없으며, 그저 죽음의 공포에 억눌려 불안과 공포가 마음에 꽉 들어차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아담과 하와의 범죄의 대가를 우리가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고 산업이 발달되고 생활이 향상되어도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들었으며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하고 허무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해결하고 구원할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타락한 첫 아담 대신 새로운 아담으로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마지막이요 새로운 조상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육신의 아버지 없이 태어난 것입니다. 육신적인 아버지의 DNA나 유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시면서,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신 분입니다. 이처럼 인류의 새로운 조상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왔을 때, 마귀는 이러한 예수님조차 타락시키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것처럼, 예수님께 와서 온갖 유혹과 감언이설로 설득시켜 타락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예수님이 타락하면 인류는 완전히 희망이 없어집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2.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30세가 되셨을 때, 그는 요단강에 가셔서 침례를 받으시고 이어서 성령을 받으신 후 40주 40야 금식하시며 자신의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이때 악한 마귀가 예수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을 변하여 떡을 만들어 보아라. 너 40일동안 굶주려서 배고프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다”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와 어떤 논쟁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를 꾸짖으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뛰어 내려라. 그래서 발에 돌이 부딪히지 아니하고 살짝 내리면 모든 사람이 박수를 치며 너를 인정할 것이다”라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말씀에 굳세게 서서 요동치 않으셨습니다.
이제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네가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넘겨주고 네가 세상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라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며 마귀를 완전히 물리치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받거든 인간의 생각으로 대적해서 논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귀의 올무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서 단호하게 물리치고 절대로 타협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가장 좋은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 다가오는 마귀의 여러 가지 흉악한 궤계를 말씀으로 대적하십시오. 말씀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는 것입니다. 또한 마귀는 예수님의 보혈을 보면 몸서리치며 도망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을 의지하여 말씀으로 물리치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대적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면 마귀는 더 이상 우리에게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셨기 때문에 영혼이 잘됩니다. 마귀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잘됩니다. 범사에 잘됩니다. 그리고 강건해집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완전한 구원을 누리며 살다가 하늘나라에 갈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인류의 새로운 조상인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거뜬하게 이기고 우리 구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3. 죄와 마귀를 대적하라
우리는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마귀의 유혹에 대적하고 조심을 해야 됩니다. 마귀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선악과 밑에 데려가서 그것을 바라보게 하고 “자! 봐라! 어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을 만큼 탐스럽지 않냐?”라고 유혹하여 결국에는 따먹게 만든 것입니다. 무언가를 자꾸 바라보면 결국 그리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을 바라보면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한 대학생이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도박을 하는 오락실 아르바이트였습니다. 그 학생은 오락실에서 청소하고 돈 바꿔주는 일을 했는데, 손님들이 게임 하는 것을 옆에서 자꾸 쳐다보고 있다가 그만 유혹이 돼서 자기도 도박을 하고 돈을 빌리다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결국 도박비를 마련하려고 사채를 써서 시달리다가 강도짓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미용실에 들어가 주인을 협박하여 돈을 뺐고 미용실 주인의 카드로 돈을 인출하다 CCTV에 찍혀 결국 인생이 파멸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학생은 잘못된 것을 자꾸 바라보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것을 잘 관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든지 그 보는 것으로 결국에는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바라 봄으로 말미암아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에 끌려가면 사망 즉,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좋은 것을 바라봐야 좋은 일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늘 바라볼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게 제일 좋습니다. 무조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를 위해 몸찢기고 피흘려 죽으신 모습이 우리 마음에 뚜렷이 각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해서 다 이루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너의 죄와 불의도 내가 청산했고 질병도 다 고쳤다. 마귀도 물리쳤고, 삶의 가난과 저주도 해방시켜 놓았다. 그리고 너희를 위해 죽음 저 건너편에 천국도 예비해 놓았다. 내가 너와 같이 한다. 두려워하고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항상 우리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며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악한 궤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우리 주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믿음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며, 죄와 질병의 멍에도 메지 말고, 저주와 가난의 멍에도 메지 말고, 두려움과 절망의 멍에도 메지 말고 온전한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평안을 가지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바라보다 탐심이 생겨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바라보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때로는 잘못된 바라봄으로 인해 죄에 빠져 절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도 잘못된 바라봄으로 인해 마귀에게 넘어가 죄를 지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다윗이 이제 온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 초저녁이 다 되었을 때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왕궁 뒤를 거닐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보니 백옥같이 흰 살에 얼마나 매혹적이고 예쁘던지 심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전쟁터에 나가 있는 장수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그날 다윗은 남의 아내인 밧세바와 동침을 하여 아이를 갖게 만들었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드는 간접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그 결과로 다윗은 일생동안 굉장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것의 원인도 바로 잘못된 바라봄의 법칙 때문입니다.
요사이는 인터넷과 대중매체를 통해 무제한적으로 세속적인 것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다 보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잘못된 것을 바라보게 되고 그것으로 큰 고통을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26절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서 우리가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해야 삽니다. 영적으로도 기도해야 영적인 힘을 얻게 되고, 육신적으로도 기도해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와서 역사할 수 있으며, 마귀와 싸우는 것도 기도해야 싸워서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날마다 우리는 승리의 말을 해야 됩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기록된 것처럼, 우리가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입술로 언제나 승리를 고백해야 됩니다. “나는 의롭다. 나는 거룩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축복받았다. 나는 하늘나라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는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다”고 늘 희망 찬 말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 말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됩니다.
죄는 살아있는 마귀의 촉수입니다. 죄와 마귀는 늘 함께 합니다. 마귀가 오는 곳에 죄가 오고, 죄가 있는 곳에 마귀가 옵니다. 마귀와 죄는 완전한 일체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죄를 용납하면 마귀가 죄의 옷을 걸치고 우리를 억압하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파멸과 멸망으로 이끌어갑니다. 우리는 마귀를 말씀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 보혈의 능력으로 대적해서 쫓아내면 마귀는 쫓겨나가고 마귀가 쫓겨나가면 죄가 쫓겨나가고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깨어서 마귀와 싸워 승리해야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받은 은혜를 늘 생각하고 좋은 것과 선한 것만을 바라보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고 믿으면 우리의 인생은 평안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생활에 적극적으로 변화를 가져와야 됩니다. 종교적으로 의식적으로 왔다갔다만 하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성령의 감동을 통해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우리는 매일같이 뜨거운 성령의 감동을 통해 행복과 기쁨을 누리고 좋은 날을 기대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죄의 유혹이 날마다 우리를 흔들어 넘어뜨리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죄를 통해 아담을 넘어뜨렸던 것처럼,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리고 보혈의 능력만이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온전히 죄와 사망이 권세와 종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좋은 것과 선한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여 날마다 복과 은혜를 체험케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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