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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삼하20: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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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 참고 : |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인생
본문: 삼하20: 14- 22
중국 북경에서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세사람이 같은 돈을 내고 환전을 했습니다. 바꾼 돈이 10달러가 나왔습니다.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나누기가 애매했습니다. 한사람의 지분이 3.3이기에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나서서 내가 3달러를 가질테니 나머지 둘이서 3달러, 4달러를 가지라고 하면 해결됩니다. 그래도 갈등하면 한 번 더 양보하면 됩니다. 내가 2달러 가질테니, 두 사람이 4달러씩 가져라고 하면 완전히 해결됩니다. 작은 희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주도권도 쥐게 되는 것입니다.
아는 분과 함께 3명이 쇼핑을 갔습니다. 중국에서는 물건을 깍아서 사야하는데, 3명이 모두 같은 가방을 원했습니다. 원하는 가격은 300위안이었습니다. 400위안 이하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사람이 설교의 원리대로 흥정했습니다. 여기 두 사람은 한국에서 왔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300위안에 사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해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니 이 두사람에게는 300위안에 줘라. 그리고 나는 여기에 사니까 400위안을 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 말에 중국 상인이 감명을 받고 설득 당했습니다. 두 사람뿐 아니라 흥정하는 사람에게도 300위안에 물건을 주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희생에는 강력한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희생하겠다고 나오는 논리는 매우 강력합니다. 그래서 희생의 리더십은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종종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지지말라고 다그칩니다. 양보와 희생은 어리석은 일이라고까지 가르치곤 합니다. 이런 집안에서는 인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 양보와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능력입니다. 양보와 희생이 리더의 자질인 것입니다. 많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은 그럴듯한데, 희생과 양보가 없으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희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서 희생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돈이 50위안밖에 없었으면, 내가 400위안을 주고 사겠다고 나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더 많은 것을 주셨는가? 이 땅에서 희생과 양보로 문제를 해결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주신 여분의 능력입니다. 바둑을 두다보면, 패싸움을 벌이는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예상하고, 패감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패감이 무엇입니까? 희생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버릴 수 있을 때,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희생과 양보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열심히 일하는 법과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 희생과 양보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희생과 양보는 축복받은 사람의 행동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리게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누군가를 설득할 때는 설득의 3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입니다.
아토스는 명성, 신뢰감, 호감등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에 대한 인격적인 측면으로 설득과정에 60%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파토스는 공감, 경청 등으로 친밀감을 형성하거나 유머, 공포나 연민 등 감정을 자극해 마을을 움직이는 감정적 측면으로 설득에 30%정도의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로고스는 논리적인 근거나 실증적인 자료 등으로 상대방의 결정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논리적 측면으로 설득의10% 정도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설득은 다음과 같은 순환과정을 거칩니다. 호감을 사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그다음에는 상대방의 감정에 호소합니다. 그리고 행동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그런 다음 상대방이 마음을 바꾸지 않도록 다시 이토스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설득의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진실성 없는 혀는 시간 지나면 드러나게 됩니다. 설득의 힘은 진실에서 나옵니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는 보석이며 진실은 사람을 오래도록 좋아하게 만듭니다. 진실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본문에 보면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요압 장군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사와 백성을 동원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였습니다. 이 때 한 지혜로운 여인이 요압을 불러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합니까?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면서 요압을 설득하는 글이 나옵니다. 당시는 여인이 천대받고 무시당하는 시대임에도 요압은 이름 없는 한 여인의 말을 따름으로 큰 피해 없이 쉽게 반란을 해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또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나병환자였는데 나아만의 아내를 수종하는 어린 소녀가 이야기하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만나러 찾아갔는데 엘리사는 만나주지 않고 그 사자를 보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하여 깨끗하리라 하는 지라 나아만이 몹시 노하여 돌아가려했는데 그의 종들의 설득으로 나아만은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아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처럼 인생은 설득하고 설득당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목사는 설교를 많이 합니다. 설교가 무엇입니까? 설교는 '선포'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정확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면, 설교는 '설득'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하면, 납득하게, 이해되게, 무릎을 치면서 받아들이게 전하는가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설득력이 있어야 설교가 제대로 전달됩니다. 왜 예화, 유머, 큰 소리를 지르며 설교합니까? 다 설득하기 위한 것입니다. 목사의 경륜이 깊어지면서, 느는 것은 설득력입니다.
요압과 나아만 장군처럼 설득 당해야 넓어지고 고침을 받습니다. 목사가 말씀을 가지고 설득하는 것은 당연하고,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자기 전공분야도 아닌 다른 분야까지 설득하려고 합니다. 독선인 것입니다. 그래도 본인은 모릅니다. 그래서 목사 된지 오래된 분을 보면, 관계성에 문제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설득만 하다가 생긴 일종의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항상 옳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맞지도 않습니다. 성장하려고 한다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되는 인격은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연해지지 않고는 변화될 수 없습니다. 나는 정확한 논지(argue)를 가지고 설득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설득 당했을 때,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성장한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는 내가 보는 눈이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젊은이들 사이에서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패션 디자인을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의 조언대로 옷을 입으니, 매우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훨씬 세련되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 눈은 '개눈'이었던 것입니다. 전문가의 눈이 나의 눈보다 나았던 것입니다. 대가의 말에 설득 당하는 것이 성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설득 당하니까, 세상 보는 눈이 넓어집니다. 나의 작은 울타리 안에 양떼들을 가두어두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설득 당하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세계엔 찬성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 거부하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 좋아하는 자와 싫어하는 자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가 존재합니다. 이를 전제하지 않는 것은 비현실이며 이를 없애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설득력입니다. 상호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목표와 관용, 능력과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정부도 정당도, 회사와 학교에서도 교회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득의 지도력이 있어야 조화와 통합을 통한 진보와 행복이 이루어집니다.
성도는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고 말씀대로 행해야 하며 또 이러한 설득법을 통해 믿지 않는 이들을 전도하는 데 사용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지혜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내 혀로 주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사 우리 입술을 통해 많은 사람을 옳은 길, 의로운 길로 인도하고, 화평의 길로 인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갈릴리공동체)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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