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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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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기다림의 삶
본문 : 히12:1, 찬송 : ‘주와 같이 길가는 것’ 430장(통 456장)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얼마 전 어느 탄광에 갱도가 무너져서 그 안에 갇힌 광부 들이 모두 질식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은 쉽게 생명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조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던 순간, 그 갱도의 위에서부터 구멍이 뚫려 산소를 마시면서 견디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구출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쉽게 낙심한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다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끈질기게 버티던 그 사람만이 살아나왔다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 최후에 구원을 얻게 됩니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하기를 배우고 기다리기를 배우라." 우리는 기다리기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기다림은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우리는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기도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고, 반항적인 자녀가 철들기를 기다리고,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갈등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곧 인내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웁니다.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전에 방주를 지으면서 오랫동안 기다렸고,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는데 비가 사십일 동안 계속되었고, 다시 물이 빠질 동안 백오십일을 기다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7:1)
샤갈의 작품 중 노아의 방주를 보면 노아의 기다림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기다리다가 백세에 이삭을 낳습니다.
요셉도 형들의 시기로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 13년간 종살이와 옥살이를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에 앞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으며,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보냈습니다.
욥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다윗 왕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서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은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기다리다 마침내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고(눅2: 25- 32), 또 안나라는 선지자도 팔십 사세가 되었어도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다가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눅2: 36- 38)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노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난 후에야 특별한 아이인 세례 요한을 낳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석방되기를 기다리면서 편지들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역시, 세상 죄를 대속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에 얼마나 굴복하며 사는지는 ‘기다림’이라는 도가니에서 시험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운명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체념 상태로 기다리거나 초조해하고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이시요, 그 모든 것의 시간 조절에 있어서도 주님이심을 고백하기 원하십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렘애3:26)
인생은 기다림으로 시작해 기다림으로 마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이 없는 인생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며 희망이 있는 삶인 것입니다.
자녀가 결혼하면 아이를 기다리게 됩니다. 아이가 가정에서 태어나면 커서 가정을 가지고 부모가 되기까지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형편과 처지는 다르더라도 기다림은 한결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기다림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기다림의 인내와 지혜를 하나님 말씀에서 찾아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세상의 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까지 힘쓰고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세워놓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되기 마련입니다. 기다리는 동안에 많은 환경의 장애물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상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것은 목표를 이루어야겠다는 초조감과 긴장감입니다. 이로 인해 염려하게 되고 때론 두려움에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일들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입어야 하나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그의 의를 이루기 위해 인내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3-4)
둘째, 범사에 믿음을 가지고 기다림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동차의 기어를 넣는 것과 같습니다. 기어를 넣었다고 해서, 당장 엑셀을 밟는 것이 아니듯이, 믿음이 있다고 해서 당장 언제나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응답이 오지 않을 때는 기어를 중립으로 다시 돌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신호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이 들 때는 잠시 기다리십시오. 모든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잠잠히 기다리십시오. 분명한 때에 확실하게 응답이 임할 것입니다. 말없이 조용히 기다리며 언제나 부름에 응답할 준비를 갖추십시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라'(벧후3:9)
들에 피는 들풀은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들풀의 아름다움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못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인 크리스천들을 주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고 돌봐 주십니다. 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마음에 대한 믿음이 든든해야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기다림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결과, 즉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셋째, 믿음의 기다림은 하루의 삶을 가치 있고 보람되게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인생의 참된 만족과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이라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된 삶의 보람은 오늘이라는 현실에 충실하고 삶의 가치를 가지고 진정으로 기다릴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매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고 주님과 함께할 때에 삶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다림은 곧 축복입니다. 기다림을 통해 기대하게 되고, 올바른 길로 궤도를 수정하게 되며, 뒤를 돌아보아 앞날에 이루어야 할 것을 오늘의 삶 속에서 하나하나 이루므로 한 번밖에 걸을 수 없는 인생의 길을 행복하게 걸어가게 됩니다.
기다림이 없는 자는 살아있으나 죽은 자입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화가 램브란트의 작품 중에 <나사로의 소생>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무덤 가운데서 살아나오기 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 26)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감옥에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차한 삶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수꾼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 기도: 오래 참으시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시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생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게 하소서. 시련에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약속을 오늘 내 것으로 삼고 누리게 하옵소서. 제게 가장 좋은 때가 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게 하소서. 우리가 마음 졸인다고 일이 더 잘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우쳐 주셔서, 진정 믿음으로 기다림을 통해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복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갈릴리공동체)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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