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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시13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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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황홀한 감사
시136:1-3
2010. 10. 17, 추수감사절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벌써 한 해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오늘 아침에는 시편 136:1-3절의 말씀을 가지고 "황홀한 감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방금 함께 봉독한 시편 136편은 다른 시편에 비하여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구절이 무려 스물 여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한 "감사하라"는 말씀은 무려 스물 두 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26절이라는 짧은 구절 속에 "감사하라"는 어휘가 이처럼 많이 반복되고 있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36편의 모든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감사하라"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감사가 없는 삶이란 물 없는 사막처럼 삭막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들이 지키는 삼대 절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삼대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받고 박해를 당하던 애굽에서 탈출해 나올 때, 양의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장자의 죽음을 면하게 된 것을 기념하고 감사하기 위한 유월절이 있습니다. 또한 유월절의 제 2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로서, 첫 열매를 드리는 날인 오순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나뭇가지와 풀잎으로 초막을 짓고 살던 것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초막절이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 이 세 절기 중에서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되는 절기는 바로 초막절인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은 1607년에 영국의 국교와 교권주의에 반기를 든 102명의 청교도들이 박해가 심해지자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180톤짜리 메이플라워호라는 작은 배를 타고 미지의 대륙을 향해 떠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은 63일간의 항해가 끝나는 그 해 겨울을 지나는 동안 마흔 네명이 굶어 죽고 얼어 죽었습니다. 봄이 되자 친절한 인디언들이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고 호의를 베풀어 주어서 땀과 눈물로 첫 수확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곡식, 채소, 과일, 생선 등을 준비한 후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감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후 해마다 감사절을 지켜 오다가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오지 워싱턴이 1789년에 정식으로 11월 26일을 감사절로 선포하였는데, 지금은 11월 셋째 목요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하여 감사절을 공휴일로 정하여 지키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이것만 봐도 미국이 복받을 만한 나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이것을 근거로 11월 셋째 주일을, 우리 세광교회는 10월 셋째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는데, 요즈음은 교회마다 제각기 특성있게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 선조들이 하나님께 감사한 것처럼 그 후손들도 감사할 줄 아는 국민이 되어서 감사절을 국경일로 지키기 때문에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대단히 축복받을 만한 행동입니다.
감사의 행위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 15절에 보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환난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를 모르고 불평과 불만으로 지새는 사람은 아무리 풍요로운 환경 속에 살아도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반대로 감사하는 사람은 기도의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늘 불평과 불만 속에 사는 사람은 기도가 막히고, 기도의 능력이 소멸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감사해야 할 대상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요?
1.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단의 속성은 악하기 때문에 사람을 괴롭힙니다.
마가 9:17-20절을 보면 귀신들린 어린 아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어린 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은 어디서든지 거꾸러뜨려서 거품을 흘리게 하고, 이를 갈며 경련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물에도 불에도 뛰어들게 하였습니다.
또한 마태 8:28-34절에 보면, 귀신들린 자 둘이 나오는데 얼마나 사나운지 그 길로 사람들이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그 성품이 악하기 때문에 하는 일도 악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여 영원한 생명을 빼앗은 것은 사단이 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휘하에 역사가 들어가면 죽음의 역사가 되고, 사단의 휘하에 예술이 들어가면 사단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사단에게 사로잡히면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상대적인 선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선"입니다. 하나님은 "선"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시기 때문에 선한 일만 하십니다. 비록 우리 곁에 악이 존재함으로써 그리스도인에게 고난과 죄악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악을 변화시켜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악을 바꾸어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실 뿐만 아니라 인자하십니다. 인자란 자비, 사랑, 긍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의 독생자까지 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기까지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자하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인자하신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벌써 진멸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자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신 분이시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우상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민족과 나라마다 그 섬기는 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야에는 1,500가지가 넘는 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벨론이나 애굽이나 앗수르도 다신교 국가였습니다. 당시에는 닥치는 대로 다 신으로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나안에도 토속신이 있었습니다. 구약시대 주변 국가들이나 신약시대에도 우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방 신들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세운 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신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 개념 속에 집어넣고 있다고 해서 존재하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 인간의 손으로 깎아서 만들고 부어서 만든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지존자, 영원자"란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보면,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본문 기자는 2절에서 "신들 중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모든 신들 위에서 그 신들을 다스리며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모든 주 위에 뛰어나신 주님이시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애굽 백성들은 바로를 "주"라고 했습니다. 앗수르는 산헤립을 "주"로 여겼습니다.
바벨론은 느브갓네살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로마는 가이사를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숭배하며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절대적인 권능과 권세로 통치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오직 여호와 한분이심을 믿었습니다. 비록 이름은 같은 "주"이지만 그 능력과 권세가 절대적으로 다릅니다.
느브갓네살이나 가이사의 능력은 제한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왕조가 영원히 견고하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애굽의 바로도, 로마의 가이사도 지금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역사의 주인이 되시고 우주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나 우상 또는 재물을 주님으로 섬기고 사는 것을 많이 봅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최고의 능력과 권세가 있는 존재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당대의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권세와 능력을 행사했던 제왕이나 군주도 언젠가는 힘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을 주로 믿고 그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믿었던 사람이 몰락하게 되면 크게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아버지로 믿고 섬기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이 닥쳐와도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주들 중에 뛰어나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책임지시는 주님은 모든 주 위에 뛰어나신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신 위에 뛰어나시고, 모든 주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한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분이시며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를 수없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이처럼 많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하겠습니까?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오늘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나에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가난하다, 어렵다, 힘들다, 고생스럽다고 하지만 오늘도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백성들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감사할 믿음만 있으면 감사할 조건은 수없이 많은 것입니다. 감사의 신앙처럼 성숙한 신앙이 없습니다. 성숙한 신앙, 감사의 신앙을 소유합시다.
끝으로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의 저자 다하라 요네꼬 이야기입니다.
한 소녀가 18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삶에 회의를 느낀 그녀는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살고 보니, 두 다리가 없습니다. 팔이 없습니다. 남은 팔 하나는 멀쩡한가 했더니, 두 손가락이 없습니다. 세 손가락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인생도 사랑하셔서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목사의 사모가 되어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분의 이름이 ‘다하라 요네꼬’로 하나하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쓴 책이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입니다.
한번은 감자를 깎아서 반찬을 만드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감자껍질을 벗기려 하는데, 손가락 세 개를 갖고 동그란 감자를 깎으려 하니, 이리 저리 빠지고 땀범벅이 되고, 감자를 깎으면서 그리 절망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서 무엇 하겠나 하는 절망감에 이 칼로 죽어버리고 싶은데, 한순간 하나님이 두려워 지기 시작합니다. 칼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나 같은 인생을 구원하셔서 살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다리도 없고 팔 하나에도 손가락 세 개밖에 없는 나를 한 남자 만나서 결혼하게 하시고, 아무것도 아닌 몸뚱이에 생명을 잉태하게 해 주셔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가정을 선물로 주시고, 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생각해 보니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나의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하나님 감자를 깎을 수 없습니다. 무엇하나 빼놓지 않고 아시는 하나님, 오늘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 이런 감자 하나 깎지 못해 힘들이고 있는데 방법도 주시고 힘도 주시고 꼭 깎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마음이 평안이 옵니다.
마음에 평안이 오고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감자를 씻어서 도마 위에 올려놓고 감자를 반으로 썰었습니다. 반토막이 된 감자를 도마 위에 놓으니까,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자를 썰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 대접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해서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 고백합니다.
산다는 것은 황홀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처럼 진정으로 하나님을 인하여 역설적인 감사, 황홀한 감사를 드릴 수 있으면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황홀한 감사로 모두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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