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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2:1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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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
로마서 12:17-21
2011. 6. 19 민족화해주일
민족분단 66년, 6.25 61돌을 맞습니다. 지난 15일은 6.15 1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5일부터 6월 25일까지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정한 민족화해주간입니다. 1997년부터 동족상잔의 비극을 극복하고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6. 25가 들어있는 한 주간(7일)을 민족화해주간으로 지켜왔었습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이 나온 이후에는 매년 6월 15일부터 25일까지를 민족화해주간으로 지키며 민족화해주간 예배를 드리고 공동기도문을 가지고 한국교회가 함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6.25로 멀어진 남북관계를 이제는 화해와 협력으로 상생발전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자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둡기만 합니다. 남북교류가 꽉 막힌 상태입니다. 남북 정상이 만나 6.15 공동선언을 하고, 10.4 평화선언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금강산을 자유롭게 다니고, 개성에 공단을 만들어 왕래하고 활발한 남북교류를 해왔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천안함 사건에 이어서 연평도 사건까지 발발했습니다. 물론 남한에서는 북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잘 나가다가 남한 정권이 바뀐 뒤에 남북관계가 뒤틀리고 발생한 일들이기 때문에 정권이 문제라는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참 묘한 일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이명박 장로 대통령인데 성경을 보고 해석하며 적용하는 면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본문에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 눅 6:27)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굶주리는 북한에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을 끊고 남북관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 대해서는 역사의 준엄한 평가가 내려질 것입니다. 차제에 기독교 상식을 하나 소개합니다. 한국기독교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즉 KNCC에 속한 진보진영과 현재 세간에 돈선거 문제로 욕을 먹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 보수진영이 그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성서해석과 남북관계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올 3월 16일에 중국 북경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조선그리스도련맹(KCF, 조그련)이 만났을 때 조그련은 북한식량사정의 심각함을 호소하고 긴급하게 식량을 지원하여 줄 것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이에 교회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식량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으로 인해 대북식량을 비롯한 인도적 지원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며, 미국의 식량지원마저도 현 정부에 의하여 방해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협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의거하여 지난 5월 16일, 중국단동에서 밀가루 172톤을 북한으로 보냈으며 6월 4일 조그련을 통하여 식량분배확인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정의를 심어 평화의 열매를 맺으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식량을 계속 지원하고, 남북간의 민간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틈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나눔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앙의 꼭지 점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십자가는 남의 희생을 통해 자신이 사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살리는 자리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자리가 우리에게는 생명의 자리이요 구원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길을 간다는 것은 오직 한 길 십자가의 길을 피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한 길입니다. 이 십자가의 길을 회피하는 길에서 신앙적 왜곡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자리는 이것저것을 따지고 계산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자리는 계산을 통해 이득을 얻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머무는 자리이고 그 사랑은 우리에게 아들을 통해 조건 없이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사랑으로 구원의 은총을 체험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빚진 자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햇볕정책을 입안했던 임동원 전 장관은 오늘 본문을 통해 화해 협력정책을 기초했다고 고백했습니다.
1) 네가 직접 원수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라 (화해정책)
2)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협력정책)
3)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변화, 개방정책)
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평화정책)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은 바로 오늘 본문의 성경 말씀에서 그 기초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대북정책에는 분명한 철학과 가치를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생각지 않은 문제들이 돌발적으로 생겨날 수 있습니다. 현 정부 들어서 대북정책은 강경정책으로 일관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현 정부가 비핵개방 3000구상을 내어놓았을 때 북한과 협력하고 그 협력을 기초로 북한을 잘 살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비핵화 문제는 6자회담을 통한 국제적인 문제로 진행되어 오고 있었고 북한을 잘 살게 해주겠다는 것은 이미 내정 불간섭원칙에도 벗어나는 일입니다. 이미 대북정책 속에 지난 3년의 대북정책의 실패가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지금 남과 북은 지난 10년간 이루어 온 화해와 협력의 틀이 망가지고 전쟁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 말씀에 기초해서 생각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경우라도 다투지 아니하며 화목을 지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있더라도 그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마시게 하라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앞에서 잠시 말씀드린 것처럼 인도주의 원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도주의는 이념이나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생존문제에 대해서는 도와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도 적군이 피 흘리면 치료해주고 굶주리면 먹을 것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대북 인도적인 지원마저 정치적인 논리에 휘말려 중단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북교류협력기금이 그대로 잠을 자고 있고 남한의 음식물은 쓰레기로 넘쳐나는데 지금 북한은 심각한 굶주림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풍족하게 남아돌면서도 도와주지 않는 것은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정치적인 서로 다른 견해를 뛰어 넘어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최후심판의 비유에서 심판을 “관계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으며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합니다. “주여 당신이 언제 그런 일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간결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와 주님은 동일시하시며 그들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남과 북의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굶어 죽어가는 북한의 주민들을 외면하는 일에 대해 우리의 정당성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지금 굶어 죽어가는 수많은 어린이들과 임산부들을 바라보며 식량을 지원하면 군인들이 먹는다고 외면하는 일이 과연 성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며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본 칼럼(2011. 6. 7 한겨레)이 생각납니다. “북한 주민도 국민이라면”이라는 칼럼이었습니다.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는 대한민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쓴 글이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 3조에는 영토조항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북한 사회주의헌법 제9조 : 북 반부에서 인민 정권 강화한다.(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뒤 그 이듬해 북반부라고 개정함 : 1992년4월9일 개정) 이 헌법조항에 의하면 북한의 정권은 불법으로 영토를 점령한 불의한 정권이고 몰아내야 하는 정권입니다. 그리고 그 땅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정권이 붕괴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현 정부도 그런 정책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러나 1991년 노태우 정권에서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이 이루어졌습니다. 국제적으로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합법적인 정부가 된 것입니다. 국제법상으로는 둘 다 독립주권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남과 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특수한 관계”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신문에 기사를 쓴 분은 그래도 유일한 합법정부가 대한민국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영토조항에 따라 북한도 대한민국이고 거기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에게 부여된 권리와 의무를 예외 없이 부여하고 시행해 왔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노인수당도 주고 기초생활수급도 해야 하고 징집이나 투표권, 피선거권, 5살 아동보육료지금, 세금부과 등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훗날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이 제기 된다면 어찌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황당한 소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모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영토조항에 따라 우리 국민이라고 여긴다면 그들을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도와주지 않으면 직무유기입니다. 아니면 그들이 이제 유엔에 가입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다면 최소한 국제법상의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을 통해 이것저것을 따지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의 정신에 따르면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우선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목마른 사람이 있다면 우선 마실 것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령 그 대상자가 원수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조건 없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구원의 은총 아래 사는 사람은 누구라도 조건 없이 자신의 것을 덜어 베풀어야 하는 것이 성서의 정신입니다.
지금 남한은 북한보다 경제력이 30배가 큽니다. 30배 잘사는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자원 면에서는 남한보다 북한이 24.1배의 매장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는 길을 택하면 평화로운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부강한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커지는 일입니다. 어떻게든 모든 사람과 화목 하라는 말씀은 평화를 지향하라는 말씀입니다. 平和(평화)라는 한자말은 禾(벼 화)가 口(입 구)으로 고르게 平(고를 평) 들어가게 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굶주리는 자가 없고 모두 공평하게 먹을 것을 먹을 때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먹을 것을 북한의 주민들과 함께 나누지 않고 이 땅에 잔정한 평화가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그리스도인은 어디까지나 선한 행실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선한 일은 지금 굶주리고 있는 북한을 향해 먹을 것을 함께 나누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지극히 작은 자와 동일시하시는 주님에게 하는 일이 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이 순간에도 사람이 죽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철 천지 원수 같이 생각한다고 해도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먹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그 실천을 할 수 있느냐 외면하느냐의 물음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결단만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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