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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합을 깨자(건축헌금)

요한복음 이상호 목사............... 조회 수 1728 추천 수 0 2013.10.24 11: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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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2:1-8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옥합을 깨자(건축헌금)

요12:1-8                                                             

2011. 8. 7, 오전

 

사람들은 성공을 지향하고 높아지려 하고 남을 이기고 승리하여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비판하고 비방하고 책망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높아지려 하기보다 낮아지셨습니다. 낮아지신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그 죄의 짐을 지시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오만하고 무례하고 교만하다면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병 이어의 기적을 행할 때에는 남자 장정만 5천명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과 여자를 합치면 2만 명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적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들의 유익만을 위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배워나갔습니다. 그러나 저들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도 저들은 누가 더 큰 자인가, 앞으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로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여인,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여인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 여인을 비난할 때에 예수님은 그 여인을 감싸시며 그녀의 행위를 칭찬하셨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그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은 마리아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도 많이 들어왔기에 귀에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오늘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마리아는 참 훌륭한 헌신자로구나, 어떻게 그렇게 값비싼 향유의 옥합을 예수님을 위해 깨뜨릴 수 있었을까? 참 훌륭한 신앙인이야. 나같은 사람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감히 흉내도 낼 수 없어.’ 하고 생각한다면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붙잡아야 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사랑한다면 나는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나의 그 사랑의 표현이 정말 주님을 기쁘게 할 만큼 헌신적인가? 이런 질문을 마음에 두고 오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다 들었을 때에는 마음에 어떤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하면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몰랐지만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나사로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위로하는 잔치 같았습니다. 이 때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향유를 붓는 일이 발생합니다.


3절에 보면,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옥합을 깨뜨리고 그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는 자기의 머리털로 그 발을 씻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 값비싼 향유, 노동자의 일 년 임금에 해당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옥합을 깨뜨림으로 마리아는 예수님이 얼마나 고귀한 분인가를 고백한 것입니다. 그 향유는 마리아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표였습니다. 단순히 향유를 발에 붓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중히 여깁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은 나실인의 규례까지 있어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가장 천하게 살아가는 여자들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남의 발을 씻는 행위는 가장 큰 수치로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주저하지 않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마리아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죽도록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비싼 향유라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헌신이 예수님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신앙고백을 보셨습니다. 마리아는 자기를 낮추되 완전히 낮아져서 예수님이 발아래까지 낮추었습니다. 소중한 머리카락을 예수님의 발을 씻는 걸레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 드렸습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이런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아시지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방법이 이것입니다. 제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부어드리는 이것입니다. 주님은 제게 가장 소중한 분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더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인 것입니다. 이게 바로 사랑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 싶지 않았습니까? 그런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깊은 사랑이 아닙니다.

 

어떤 청년이 사랑하는 애인에게 생일 선물을 사 주려고 함께 백화점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비싸고 저것도 비쌌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으로 애인의 손을 끌고 다니다가 “에이, 이 백화점은 왜 이렇게 비싼 것만 있지. 우리 싼 곳으로 가자.” 하고 끌고 나왔더니 여자가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의 마음이 어떤지 알겠습니다. 잘 가세오.” 하고 떠나가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혼자 가든지, 함께 갔으면 비싸도 거기서 샀어야지 싼 곳으로 가자면 애인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여자가 ‘비싸니 사지 말라’고 말려도 ‘사랑하는 당신에게 주는 선물인데 비싼 것이 문제냐?’ 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아까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심정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는 너무 비싸서 드리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마리아의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망으로 몰고 가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자신의 피를 흘리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기꺼이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그분을 사랑한다면 최고의 것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값을 따지지 않고 아낌없이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고 싶으냐?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고 싶으냐? 그러면 이렇게 사랑해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나를 사랑해라.” ‘죽도록 사랑해라.’ ‘목숨 걸고 사랑하라.’ ‘미치도록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죽도록 사랑한다면 주님을 위해 우리는 최고의 것을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최고의 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 자신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 최고의 것, 완전한 것을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진정 행복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아끼지 않고 내놓을 바로 그 때입니다. 그것이 자녀를 위한 것이든, 남편을 위한 것이든, 아내를 위한 것이든, 아니면 예수님을 위한 것이든 간에 마음속에서 사랑이 끓어올라서 도저히 내가 움켜쥐고 있을 수가 없어 아까운 줄 모르고 줄 때가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이 언제 가장 불행합니까? 더 가지려고 발버둥치고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려고 움켜쥘 때입니다. 남이 가진 것을 시기하고 더 가지려고 욕심을 낼 때입니다.


4절에 보면, 제자 중 하나 가룟 유다는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자 속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저 아까운 향유를 저렇게 허비하고 말다니. 도대체 이 여자가 정신이 있나 없나?’ 그래서 한 마디 했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 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그렇게 허비할 것이면 차라리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나 줄 것이지. 어찌해서 이렇게 낭비했느냐 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계산이 빠른 사람입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 아까운 것을 예수님 발에 부어서 다 낭비해 버리다니 아깝다 아까워."라고 말했습니다. 6절에 보면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니라.”고 했습니다. 공금을 횡령하는 일이 전에도 종종 있었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여인이 단번에 부어버리므로 자기가 한 몫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못내 아쉽고 속이 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마리아를 책망할 때 마리아를 두둔해 주셨습니다. 7절에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준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평소의 말씀을 듣고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죽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아무 것도 아까울 것이 없었습니다.

 

8절에,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구제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신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전도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배가 전도보다 앞섭니다. 구제하는 일은 주님이 너무도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구제보다 앞섭니다. 사회봉사는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사회봉사보다 앞섭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도 앞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바뀌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우리의 삶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선의 이 원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깨뜨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원리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육신의 욕구를 채워 줄 것을 기대하며 따랐습니다. 그리고 열 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어떤 유익한 것을 배울 것인가 생각하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무엇을 드려야 할까를 생각하며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최고의 재산이요 보화인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그것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모두 쏟아 바친 것입니다. 마리아를 책망하는 제자들은 향유를 돈의 가치로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향유로 그리스도의 가치를 고백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유익을 얻을 것인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십일조도 감사헌금도 각종 헌금도 드려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어서 헌금을 잘 드리면 복을 받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드린다면 그 헌금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수단이 될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자녀들이 잘 된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업이 잘 된다.’하는 것 때문에 믿는다면 그것은 기복신앙입니다. 마리아는 받기 위해 바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받은 것이 너무나 커서 자기가 가진 것에서 가장 좋은 것을 바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바쳤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주님 지금까지 받은 은혜가 너무도 큽니다. 나의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왔습니다. 사랑하는 남편도 사랑하는 아내도 주님이 주셨습니다. 사랑스런 자녀들도 주님의 주신 선물입니다. 기업도 가게도 직장도 주님이 주셨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친구들, 사랑하는 성도들, 사랑하는 교회, 모두가 주님이 주신 귀한 선물들입니다. 이제는 제가 가진 옥합을 주님 앞에 깨뜨리겠습니다.” 이런 심정을 갖고 신앙생활 해보십시오.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 주님만이 주시는 행복이 가슴에 충만할 것입니다.

 

어느 여 집사님이 자기 교회 건축할 때 폐품을 모아 팔아서 드리기로 작정하고 열심히 폐품을 모았습니다. 1년 쯤 지나서 건축헌금을 바치기로 한 전 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천사의 인도를 받고 천국에 가서 주님도 만나 뵈었습니다. 천사가 집사님의 집으로 안내하겠다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황금보석으로 지은 집들이 즐비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내 집도 저런 집 들 중의 하나겠지. 생각하며 기분이 들떠서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폐품으로 지은 거지같은 집 앞에 멈추어서는 ‘이 집이 그대가 살 집이니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창피하고 실망이 되었습니다.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천사가 계속 말했습니다. “그대가 정성으로 지은 천국의 집은 폐품 집이니라.” 그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값비싼 보석과 현찰은 장롱 속에 감추어 놓고 폐품을 모아 바치려한 인색한 마음을 용서하소서.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하는데 귀한 것은 감추어 놓고 폐품을 팔아 부스러기 같은 것을 바치려 한 죄를 용서하소서.” 그는 자기가 가진 귀한 것으로 드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폐품을 주워 팔아 바치는 것이 왜 잘못이겠습니까? 그것은 너무도 귀한 일입니다. 과부의 동전 한 닢을 귀하게 보신 예수님이십니다. 가난한 사람이 적은 물질 바치는 것을 탓하시는 주님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더 크다고 주님이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좋은 것은 감추어 놓고 값싼 것으로 바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얼마든지 여유가 있는데도 쩨쩨하게 드리는 것은 주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마리아는 가장 값진 것을 바쳤고 예수님은 그 향유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정작 기뻐하신 것은 향유가 아니었습니다. 그 향유의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그 마음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의 향기였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에게 생일 선물로 좋은 선물을 사 준다면 그 선물도 물론 기뻐하겠지만 무엇을 더 기뻐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사랑하는 자녀의 그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 마음이 너무도 예뻐서 기뻐할 것입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것은 “주님, 제게는 주님만이 가장 귀하신 분이십니다. 주님만이 제게는 최고의 가치가 있습니다. 주님만이 가장 소중하고 존귀한 분이십니다.” 라고 하는 사랑의 고백인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주님이 더 소중하기에 주님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위해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고 정성을 바칠 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그 시간 자체나 물질 자체나 정성 자체 때문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 속에 담겨 있는 여러분의 마음, 그 물질 속에 담겨 있는 그 마음, 그 정성 속에 담겨 있는 그 마음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그 곳에 그 사람의 마음도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은 하면서 주님께 바치는 것이 없다면 그의 말은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허구한 날 힘들게 일만 하는 남편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하게 생각하는 아내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면 사랑을 표현할 줄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도 서툽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하고 말하면 왠지 낯간지럽게 느껴져 그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당신을 사랑해요.’ 하는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을 고백하는 말이 있습니다. 낯간지럽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당신과 사는 것이 참 행복해요’ 라는 말입니다. “당신 때문에 행복해요.” 당신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은 깊은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 해주는 것입니다. 상대가 힘들어하는 것을 대신 해 주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감동을 주는 아내, 아내에게 감동을 주는 남편, 자녀에게 감동을 주는 부모님들이 되십시오.

 

여러분,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얼마큼 사랑하고 있습니까? 마리아의 심정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불행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나 같은 것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자기 생명을 주셨다고 하는 그 사실만 생각하면 그분을 향한 사랑이 항상 가슴에 타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그분에게 좀 더 기쁨을 드릴까? 그분에게 더 좋은 것을 드릴까? 그분에게 더 최고의 것을 드릴까? 하는 빚진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신다면 시간도 아끼지 않습니다. 돈도 아끼지 않습니다. 내 몸도 아끼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드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얼굴이 밝습니다. 기쁨이 충만합니다. 신앙생활이 그들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왠지 어두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가만히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적습니다. 감사가 적습니다.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습니다. 주님께 바치는 일에 인색합니다. 지극히 계산적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기쁨을 누리기보다 많은 부담을 느낍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주님은 헌신자를 찾고 계십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것은 마리아처럼 사랑으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런 생을 살다가 주님 앞에 서고 싶지 않습니까? 옥합을 깨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종합복지관을 지으려면 그냥은 안됩니다. 애지중지하는 옥합을 깨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자신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나의 사랑의 표현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 사랑의 표현은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것인가?’

이시간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고 감격이 있는가?

그 은혜가 주체할 수 없어 흘러내리는 눈물이 있는가?

과연 나는 주님을 얼마큼 사랑하고 있는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라."

죽도록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목숨 걸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미치도록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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