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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추적

요나 김동국 목사............... 조회 수 1509 추천 수 0 2013.11.01 23: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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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욘1:1~16 
설교자 : 김동국 목사 
참고 : 온누리 교회 

하나님의 추적 
욘1:1~16

 

어렸을 때 ‘숨바꼭질’이라는 놀이를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숨는 것도 재미있고, 찾아 다니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숨어 다니고 찾아 다니는 것이 현실의 일이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여러분은 빚쟁이에 쫓겨서, 혹은 잘못한 일이 있어서 형이나 아버지를 피해 도망을 간 경험이 있으십니까? 숨어있을 때 심정이 어떠셨습니까? 참으로 절박합니다. 찾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해가 생겨서 서로 다투었을 때, 중요한 부탁을 하기 위해 높은 사람을 찾아갈 때, 환자가 의사를 찾아갈 때 그 애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요나서는 도망가고 찾아가는 애절함과 절박함이 섞여있는 책입니다. 4장이라는 짧은 내용이지만 요나서에는 이 땅에 숨어있는 영혼들을 찾아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기에 많은 설교자들이 이 내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네 번에 걸쳐 요나서를 볼 것입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요나서를 보는 이유는 성장 제일주의에 빠져서 교회를 거대하게 짓고, 교회를 아름답게 치장하지만 굶주림과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이방의 땅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한국교회에 주시는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요나서에는 질책의 메시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나서에는 하나님의 기가 막힌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는 요나를 추적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습니다.

■ 요나에게 하신 말씀

이 감동의 드라마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성경은 오늘의 주인공 요나를 소개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밋대’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밋대’는 ‘아멘’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아멘’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합니다”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듯이, 삶이 바뀌면서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이름은 그 존재의 중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밋대’라는 이름을 가진 이 사람은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아멘’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오직 ‘예’와 ‘아멘’으로 살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도 아들이 하나님께 더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이름을 ‘요나’라고 지었습니다.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비둘기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길조입니다. 아버지의 열망대로 소망대로 요나는 순결한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소식을 이 땅에 전하는 선지자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이름 값을 한 것입니다.

열왕기하 14장 25절을 보면 그가 예언한 내용을 통해 복을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나가 활동하던 시기는 주전 8세기 입니다. 아모스가 같은 시기에 활동을 했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앗수르가 약해지는 시기이고, 앗수르가 시리아와 다투는 시기였습니다. 이때의 왕은 여로보암2세인데, 많은 왕들은 하나님을 떠나 패역한 길을 걸었지만, 여로보암2세는 믿음이 곧았고 인격이 성숙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을 이끌고 축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스라엘과 앗수르가 싸워야 했습니다. 싸움도 되지 않는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로보암2세, 공포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밋대의 아들 요나가 당당하게 외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나의 예언대로 앗수르와의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니 요나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나를 존경하고 사랑했을 것입니다. 어둠의 시대에 민족의 등불로 떠오른 선지자 요나. 그런데 그에게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일어나라, 가라, 외치라”

1~2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저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그냥 찾아오시지 않고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그것도 한 사람을 지목하여 구체적으로 찾아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 우주를 지으신 광대하신 분이지만 항상 한 사람 한 사람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여러분을 지나칠지라도,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을 인정하지 않고, 직장의 상사가 여러분을 무시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에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제 이름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아밋대의 아들을 찾아오신 하나님,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승리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요나를 찾아오셔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것은 “일어나라. 가라. 서서 외치라”입니다. 바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회복시키신 것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요나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제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라. 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일어나라. 가라.”

사랑하는 여러분, 아는 것이 능력이 아닙니다. 아는 것이 순종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것이 순종이요 행동하는 것이 힘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교회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기도를 드립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에 기도 모임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도가 끝나고 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역사를 일으킬 것 같은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힘을 다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우리 교회가 얼마나 행복한 교회인가.’ 우리 교회는 전도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지금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고인 물처럼 썩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흩어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처럼 내가 주님의 대사로서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서 외쳐야 합니다. 내 생각을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생각과 철학은 복음이 아닙니다. 논리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입니다. 우리가 외쳐야 할 것은 나의 생각, 철학, 논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고 준비시키셨습니다.

■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안절부절못합니다. 가야 할 곳이 니느웨이기 때문입니다. 니느웨는 요나의 고향으로부터 8백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힘들어한 것은 아닙니다. 요나는 니느웨보다 다섯 배 정도 먼 다시스로 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 싫었던 것입니다. 왜 가기 싫었을까요? 니느웨는 적국의 수도요 악과 음란이 가득한 철천지 원수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니느웨가 잘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패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보내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요나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요나가 원하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 죽어도 못하는 일,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주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께서 결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호세아에게는 결혼을 하되 음탕한 여인과 결혼을 하라고 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아나니야에게 나타나셔서 교회를 핍박한 ‘사울에게로 가서 안수하고 그의 질병을 고쳐주라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황당한 명령을 받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말을 하실 리 없노라며 믿지 못하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순종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입니까? 우리가 납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우리는 그 말을 깊이 생각하기보다 그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께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자녀에게 손해되는 일을 시키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획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분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분이 이루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샤다이”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싸움을 대신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원수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니느웨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해결하십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에서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약대를 보내고, 처자식을 보냈지만 그래도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밤이 맞도록 기도하고 나서 에서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서의 마음을 녹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분께서 길을 예비해 두셨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렇게 믿고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거슬리고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억지로라도 순종하려고 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기의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가장 어려운 사람은 요나와 같이 자기의 편견을 따라 고집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시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 다시스로 가는 배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로 가라고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니느웨는 악한 곳이었고 원수의 땅이었습니다. 가증스러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나는 가야 합니다. 요나가 갈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됩니다. 그런데 요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3절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선지자인 요나는 자기가 아무리 먼 곳으로 도망갈지라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도망가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영향권을 벗어난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임무, 사명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선지자인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순종할 수 있을까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개인적으로 은밀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말씀하셨다면 요나는 싫어도 가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요나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원수가 좋아하는 일, 내 민족이 싫어하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겉으로는 순종하는 것처럼 포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사람들에게 ‘다시스로 가야할 일이 있기 때문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예언자요 선지자요 그 민족을 구원한 사람이 다시스로 간다고 한다면 그 주변 사람들은 뭔가 의미있는 일이 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아마 요나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하나님이 나를 다시스로 보내셨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스로 가는 요나의 모습이 겉으로는 하나님과 함께 가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로 요나는 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불순종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했을 때에 그들이 회개하고 심판을 면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요나는 이것이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구원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는 것을 자기가 해야 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민족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을 곡해하고 이방을 향해 가라는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다시스로 가기 위해 욥바로 내려갑니다. 문자 그대로 바로 그 길은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멀어지는 길은 항상 내려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위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길은 처음에 좋아보일 수 있습니다. 요나가 욥바로 갔을 때에도 ‘마침’ 배를 만났습니다. 요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피할 길을 주시는구나.’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을 떠나는 길이었기에 좋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욥바로 내려가고, 배 밑창까지 내려가고 결국 물고기 뱃 속까지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삼손은 딤나로 내려갔기 때문에 이방 여인을 만났습니다. 소랙 골짜기에 갔기 때문에 들릴라를 만났습니다. 결국 그는 눈을 뽑히고 감옥에 갇히는 처참한 신세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 갔을 때에 애굽의 왕에게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는 황당한 일을 당합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지라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올라가면 새로운 길을 만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그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올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전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 사랑의 추적자

하나님은 요나를 찾아왔지만 요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만약 여러분의 동역자가 여러분을 버리고 도망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동역자를 버리시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요나를 포기하셨다면 요나서는 여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추적하셨습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한글성경에는 없지만 원어성경을 보면 4절 말씀 앞에 ‘그러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3절 말씀 앞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요나는 불순종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요나도 고집이 세지만 하나님도 고집이 셉니다. 요나가 불순종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추적해 가십니다. 요나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의지가 좌절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요나를 붙잡아 가셨습니다.

우리 말에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대신하여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요나의 일은 요나에게서 찾습니다. 요나에게 맡기신 달란트는 요나에게서만 찾으십니다. 요나가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요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 또한 요나가 유일한 존재요 귀중한 존재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에게서 찾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추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대풍으로 찾아오십니다. 생명을 위협해서 요나를 일깨웁니다. 그런데 요나는 잠을 잡니다. 환경에서 도망간 요나는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요나를 하나님을 포기 하지 않습니다. 흔들어 깨웁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요나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9절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말은 참 잘합니다. 요나는 입술로는 바르게 대답하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 폭풍이 다 자기 때문인 것도 압니다. 그리고 해결 방법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생명을 바다에 던지지도 않습니다. 그는 죽음으로까지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끝까지 붙드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도망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의 존재를 물으시고, 여러분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 여러분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요나는 도망을 갔습니다.
요나처럼 도망가고 있는 저희들의 모습을 봅니다.
사는 것을 내 뜻대로 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옵소서.
순종하게 하옵소서.
행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동국 목사(온누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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