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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6: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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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하나님의 전신갑주
엡6:10-13
< 오래 전의 한 가지 에피소드 >
인천에서 목회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아침식사 후에 잠깐 쉬려고 누웠는데, 그때부터 바로 눈 앞에서 이상한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꿈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귀신들이 저에게 사생결단을 하고 달려드는 것이 똑똑하게 보였는데, 눈앞 20센티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한 놈은 죽일 듯이 저를 노려보며 저의 목을 세차게 조르고 있었고, 옆에 있는 다른 놈들은 이상한 괴성을 "죽여라! 죽여라!"하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매우 공포스런 장면이었지만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귀신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조그맣게 말했습니다. "야! 그래 봐야 소용없어! 이제 그만 해." 제가 그렇게 웃으면서 반응을 했던 이유는 용기와 자신감과 담대함으로 귀신들의 기를 꺾어 놓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귀신들이 제 풀에 지쳐 떠나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악착같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평안한 모습으로 얼굴에 미소를 띄고 귀신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두려워하면 귀신들이 만만하게 보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팽팽한 어떤 '기운'의 싸움이 한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약 10여분쯤 지난 후에 귀신들은 저의 목을 짓누르다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을 알고 모든 귀신들이 한꺼번에 "휘!" 소리를 내며 사라졌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고 그저 지나가는 한가지 에피소드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지금도 영적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뜰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최면술은 있다고 믿으면서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지 못합니다.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을 초월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초속 30만 킬로를 가는 빛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중성자파는 초속 3억 1천 7백 광년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속도를 계산해보면 빛보다 9천9백9십6조 9천1백2십억 배가 빠르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볼 때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왜소합니까? 인간의 과학으로 아는 것은 전체 세계의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는 존재하고, 영적 세계가 있으면 반드시 귀신도 존재할 것입니다.
< 귀신은 존재합니다 >
지금 우리 주변에는 귀신의 역사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귀신의 세력에 눌려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 사회에 생기는 거센 악의 영향력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요새 이메일을 통해 들어오는 온갖 포르노 광고와 그 포르노 배우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그것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히틀러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살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평생 귓가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를 따라 행동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소리를 듣는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귀신의 존재를 증거하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성경이 귀신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귀신의 실체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귀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귀신이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타조는 위협을 당하면 머리만 모래 속에 파묻습니다. 자기가 보지 못하면 안전한 줄 압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자기를 더욱 위험하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귀신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면 우리의 영혼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의 씨름은 문제와의 씨름이나 사람과의 씨름이 아니라 귀신과의 씨름이라는 말입니다. 사실상 모든 다툼에서 진짜 주범은 바로 귀신입니다.
귀신은 기회만 생기면 싸움을 일으킵니다. 불을 보면 어느새 달려드는 나방처럼, 사람들에게 분노와 한과 불평의 열기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귀신은 어느새 달려들어 문제를 일으킵니다. 가끔 인간관계가 이상하게 꼬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왜 남편이 갑자기 저럴까? 왜 아내가 갑자기 저럴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배후에 악한 영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나 남편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적군이 타고 있는 말을 미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싸울 대상은 말이 아니라 말을 타고 있는 적군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대적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 배후에 있는 악한 영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말을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실망시키는 사람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알고 보면 그분도 희생자입니다. 그분도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사랑하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귀신의 세력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고 사람 배후에서 음탕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자기'라는 토치카에서 나와야 합니다 >
우리가 미워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나의 외적인 것으로 인해서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육체나 외적인 것과의 씨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체나 외적인 것의 부족함 때문에 실망하는 것은 결국 악의 영에게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누가 귀신 들렸다!"는 말을 듣지만 사실상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 자신도 가끔 그런 귀신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원한 귀신, 어떤 분은 질투 귀신, 어떤 분은 섭섭 귀신, 어떤 분은 상처 귀신, 어떤 분은 성공 귀신에 사로잡혀 삽니다. 거라사 지방의 무덤을 떠나지 못하는 군대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습니다. '자기'라는 무덤과 토치카를 떠나지 못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요새 이중인격, 다중인격에 관한 영화를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육신의 나, 과거의 나, 상처 입은 나'를 계속 키우면 그런 모습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속에 있는 '잘못된 나, 잘못된 자기라는 귀신'을 내보내고, '하나님 안에서의 나'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진짜 귀신도 내보내기 힘들지만 '자기'라는 귀신도 내보내기 힘듭니다. 거라사 귀신에게 주님이 "귀신아! 나오라!"고 하니까 그때 귀신이 "돼지 속에라도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눅 8:32). 그처럼 귀신은 자신이 거하는 근거지를 잃어버리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귀신이 나간다는 것이 참 힘듭니다. 그래서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삶은 줄다리기 같습니다. 육신은 옛 모습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성령님은 옛날로 돌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옛날처럼 살고 싶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아도 옛날의 무덤을 그리워하고, 옛날의 토치카를 그리워합니다. 그런 모습이 심해지면 우리도 얼마든지 거라사 광인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인간의 본능과 약점을 알기 때문에 귀신이 우리의 영혼을 넘어뜨릴 때 사용하는 가장 최신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혹입니다. 귀신은 우리 마음속에 찾아와 속삭입니다. "뭐 그럴 것 있나? 한번 즐겁게 살아야지. 예배는 왜 나가냐? 마음으로 믿고 선하게 살면 되지. 봉사는 왜 하냐? 교회만 나가면 되지."
귀신은 사람을 유혹할 때 처음부터 다 요구하지 않습니다. "빵 한 입만 베어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그 한 입만 베어먹는 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귀신이 주는 것은 공짜가 없습니다. 나중에 반드시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조금 더 멀어지고 예배에서 조금 더 멀어지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느새 귀신의 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귀신의 공격을 이기는 방법 >
지금도 우리는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안한 것 같지만 내 영혼이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귀신의 공격을 어떻게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늘은 특별히 귀신을 이길 수 있는 3가지 간단하고도 중요한 방법을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항상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0-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 말씀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귀신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앞세우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것만큼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만 교만하면 귀신의 밥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공할수록 더 겸손해지고, 축복을 받을수록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왜 성도에게 문제와 실패가 생깁니까? 그것은 "겸손해지라!"는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고 가까이 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상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오는 얘기마다 자기 잘난 얘기만 하니까 같이 얘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십니다. 오직 귀신만 좋아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가장 큰 일은 바로 남을 높여주는 일입니다. 그렇게 남을 높여주면 반드시 성공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십니다. 저수지는 깊을수록 물이 많이 차는 것처럼 우리가 겸손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 많이 고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가장 거룩한 분이셨지만 간음한 여인에게 침을 뱉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나쁜 사람, 어떤 나쁜 정치가에게도 "나쁜 사람!"하고 정죄하고 침을 뱉으면 안 됩니다. 잘못한 사람, 나쁜 사람에게 침을 뱉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기도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그 기도처럼 우리가 우리의 배우자와 부모와 자녀와 이웃을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용서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어떤 사람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거룩하신 예수님이 돌을 들지 않는데 우리가 돌을 드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교만죄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저런 인간 같지도 않은 놈! 저런 못된 놈!"이라는 소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소중하게 보십니다. 우리도 모든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고, 겸손하게 그를 높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처럼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용서해주고, 남을 이해하고 높여주는 사람에게는 귀신이 결코 틈타지 못할 것입니다.
2. 범사에 감사를 앞세워 살아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축복의 산실입니다. 정말 축복 받기를 원하면 감사하는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감사로 받아들이는 자를 기필코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대전에 있는 한 교회에 어떤 믿음 좋은 여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남편은 1톤 트럭에 과일을 놓고 파는 술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교회에 부흥회가 있어서 그 집사님이 남편을 억지로 교회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가 교회 건축을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강사 목사님이 "교회 건축은 매우 소중한 일이라서 헌금하면 복 받습니다"라고 설교하고 헌금을 작정하게 했습니다.
이 여자 집사님은 걱정했습니다. 남편이 헌금 설교 때문에 시험에 들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남편이 천만 원을 작정하고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돈은 당시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다음 날 목사님은 술기분으로 작정한 것인지 확인하려고 심방을 가서 "정말 그 많은 돈을 헌금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대답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금년에 사과 농사가 잘 되면 천만 원은 나올 겁니다." 그런데 사과를 수확하기도 전에 사과 농사가 잘될 줄 믿고 믿음으로 헌금을 해버렸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속으로 "큰일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과 농사가 잘못되면 그분의 실망이 클 것이라는 부담 때문에 목사님은 날마다 사과밭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태풍이 불어서 사과가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목사님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급히 그 가정에 심방을 갔더니 태풍에 떨어진 사과를 박스에 넣어서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목사님도 울고 심방대원들도 다 울었습니다. 목사님이 속이 너무 상해서 "하나님! 왜 이렇게 하셨나요?" 하고 막 우는데 술꾼 남편이 "목사님! 울지 마세요. 금년만 해입니까? 내년에 잘 되면 되지요."하고 오히려 위로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분을 축복하지 않겠습니까? 그 뒤 엄청나게 사과밭이 잘 되어서 큰 집도 사고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결국 감사하는 사람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때로 어려운 일이 있어도 불평과 한으로 귀신에게 허점을 보이지 말고 감사함으로 결국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귀신은 범사에 감사하는 자에게 결코 들어올 수 없습니다. 들어온 귀신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금방 쫓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여자 집사님은 차를 험하게 모는 편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남편이 가끔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하는데 자기의 운전 실력을 믿다가 어느 날 고급 승용차를 들이받고 큰 돈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에게 한 마디 질책도 하지 않고,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의 행복이 깨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정상적으로 잘 자랐고, 그 부인 집사님도 "내가 이렇게 훌륭한 남편을 이제까지 잘 몰랐구나!" 하고 남편을 더욱 존경하고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면 마귀가 틈탈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어떤 가정은 돈 얼마 때문에 싸우고 뜯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귀가 신나서 그 가정을 집어삼키게 됩니다. 돈을 잃은 것만 해도 속이 상한데 가정의 행복까지 잃게 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요새처럼 가정의 해체가 급속도로 되어 가는 시점에서 어떻게 우리는 악한 귀신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가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서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비결입니다. 남편이 실수해도 더 큰 실수를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아내가 실수해도 더 큰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면 마귀가 그 가정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 되어도 감사하면 시험 들지 않고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감사할 것을 찾으면 한없이 감사거리를 찾을 수 있지만 불평할 것을 찾으면 한없이 불평거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감사하고, 어떤 일이 터져도 감사하면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3. 항상 말씀 안에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11절과 13절에서 두 번이나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떤 귀신의 공격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멀리 하고 귀신을 이기는 방법은 없습니다. 귀신의 가장 최신무기가 유혹이라면 성도의 최신무기는 바로 하나님 말씀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용기도 필요하고, 자신감도 필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은 귀신을 고문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귀신이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못 듣게 하려고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려고 하면 피곤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교통 체증으로 짜증나게 만들고, 예배 시간이 지루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들려지지 않게 온갖 수단을 다 쓸 것입니다. "저 말씀은 나를 의도적으로 겨냥한 말씀이다"라고 받아들이게 해서 불평하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겨냥해서 말씀해주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부모님의 말씀을 잔소리로 듣는 사춘기 자녀처럼 하나님 말씀을 잔소리로 들으면 내 영혼이 큰 허점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성도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말씀 안에 있을 때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자리를 이탈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머리에 붙어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머리카락이 밥공기에 들어 있으면 밥맛이 떨어집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물을 먹으려고 하는데 물컵에 머리카락이 척 걸려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설교를 망쳤다고 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제 자리를 이탈하면 추하게 됩니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제 자리에 있어야 소중한 것입니다. 침은 우리 몸에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입속에 있는 침은 하나도 더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음식물과 함께 침을 삼키는 것을 누구나 쉽게 합니다. 그러나 입밖으로 나온 침은 모든 사람들이 다 "더럽다!"고 하며 멀리합니다. 어느 누구도 입밖으로 뱉어진 침을 다시 핥아 삼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제 자리를 이탈하면 더러운 것이 됩니다. 비행기는 항로를 따라가야 방공망의 미사일을 맞지 않습니다. 배는 해로를 따라가야 암초에 부딪치지 않습니다. 기차는 레일을 따라가야 부서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야 마귀의 밥이 되지 않고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바위 위에 신앙의 집을 세운 것과 같습니다. 항상 겸손하고, 항상 감사하며, 항상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한규 목사(분당 샛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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