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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신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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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본문: 신6: 4- 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민족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식탁에서 쉐마 이스라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은 오직 하나뿐인 여호와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세 때부터 이어져온 이 같은 신앙고백이 오늘날 작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신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청산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 길을 열어주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막12:3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내 목숨과 내 삶을 다 바쳐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나의 꿈이 있습니다. 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예수에게 미친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성실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범생들이 많이 있고 선행을 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꿈은 오직 사람들을 예수에게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돌아버리는 광신자가 되게 하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교양있고 우아한 신자가 아닌 철저하게 빠져버린 신자..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전 재산을 팔아서 천국보화를 사는 사람을 일으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부르실 때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고 부르십니다. 야곱은 주께 속한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을까요? 온전한 사림입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갈망이 있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사기를 쳐서라도 장자권을 원했고 이는 팥죽을 원하는, 물질과 세상을 구하는 사람과 대비되어 오직 예수를 구하고 찾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의 임재와 얼굴을 구하며 거기서 성취할 때까지 주의 옷자락을 놓지 않는, 그는 갈망의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재능도 부족하고 많은 연약함이 있어도 오직 예수에게 미치고 하나님께 함몰되기를 원하는..그런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야곱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매진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자아의 성취를 위하여 전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얼굴을 구하여 목숨을 거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들은 아주 쉽게 우주보다 크신 보화를 얻기 원하며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의 은혜가 멀다고 한탄합니다.
주를 향하여 목숨을 거십시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님께 드릴 것은 오직 한 가지 목숨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드리고 눈물을 드리며 가슴 중심에서 나오는 한탄과 고통어린 탄식으로 주의 얼굴을 구할 때 주님은 그 사모하는 자의 안타까움을 보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은 미칠 것 같은 강렬한 사랑의 표출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절규하는 주님의 부르짖음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사랑을 고백하는 고통의 고백입니다.
그 가슴을 찢는 주의 눈물 앞에서 우리가 같은 사랑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모독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먹다 남은 찌꺼기 음식을 주님께 던져 놓고 우리는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적은 시간과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중심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알기 원한다면, 당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당신의 가슴을 찢으십시오. 우아함을 버리고 창자가 쏟아지듯이 주님께 당신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주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를 살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에게 나타나시며 능력과 은총을 베푸십니다.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하여 소극적이더라도, 주의 얼굴을 구하는 것에 적극적이 되십시오. 목숨을 던져 주를 구하십시오. 주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처리하십시오.
갈망이 있는 곳에 주님은 오시며 당신은 그분을 가까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온 세상을 천 번 얻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이 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감옥에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차한 살림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숫군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잠시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음부에 가서 숨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이 거기 계십니다. 미치도록 예수를 사모하는 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 1)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미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미쳤다'라고 말할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신병이 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것을 말합니다. 가슴에 있는 불을 아무도 끌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미친 사람이고, 여러분은 안 미친 사람이에요.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좋은 일에 제대로 미쳐야 합니다. 아무나 제대로 미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 그 너머에 꿈 너머 꿈이 있는 사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사람만 미칠 수 있습니다. 미친 사람만 새 길을 낼 수 있습니다. 좋은 길을 새로 낼 수 있습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잠12:28)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잠14:12)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복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 13, 14)
많은 이들이 가고 있는 길, 죄인들의 길로 가지 말고 의인의 회중을 찾으세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 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 1- 6)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미지근한 기독교인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고 노인들만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설교 내용에 대하여 반감을 갖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모두 기도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시작되었는데도 모인 무리들은 고요하고 교회당 안에는 을씨년스러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 누구의 기도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기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러도 도무지 기도의 영이 느껴지지 않는 공동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숨길 수 없도록 그대로 반영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하여 가장 잘 표출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기도보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모이는 대부분의 모임 가운데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과 교제해야겠다는 단호하고도 끈질긴 마음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서 교회와 집 사이를 오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삶의 모습입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네가 미지근하여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므로 내가 너를 내 입에서 뱉어내겠다.’(계3:15, 16)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2서: 9)
갈릴리 공동체는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와 복음을 위해 미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옛적 길 곧 선한 길, 생명과 진리로 인도하는 좁은 길인 갈릴리 공동체를 찾으세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6:16)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용광로처럼 항상 불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식으면 우리 인생에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꺼지면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파산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미치도록 열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모와 열정,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봉사와 사명에 대해 미치도록 열정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맡은 바 사명과 봉사에 미치도록 열심있는 신앙을 회복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께 완전히 미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갈릴리공동체)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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