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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절의 은혜를 받는 길

열왕기하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386 추천 수 0 2013.11.24 22: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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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왕하2:1-14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3.9.30 http://www.john316.or.kr 

열왕기하(3) 갑절의 은혜를 받는 길

(왕하2:1-14)

 

<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는 삶 >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꼴찌를 하는 안타까운 2가지 항목이 있습니다. 하나는 평균 토플 시험 성적입니다. 영어 공부에 관심도 없고 공부를 안 해서 꼴찌라면 이해가 되지만 관심도 최고로 많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도 꼴찌라면 영어 공부의 기본 패러다임 자체가 뭔가 분명히 문제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 문제점을 이해시키고 영어의 고민을 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네트영어>입니다. 때가 되면 <네트영어>의 진가가 드러날 것입니다.

 또 하나 꼴찌인 것은 한 가정 당 출산율입니다. 인구가 현 수준을 유지하려면 한 가정 당 출산율이 2.3명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출산율은 그 절반인 1.15명 수준으로 전 세계 최하위입니다. 왜 출산율이 그토록 낮을까요?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 문제가 가장 큰 요인입니다. 2011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23개 OECD 국가 중 꼴찌였습니다. 과도한 교육열이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기보다 오히려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는 것은 선대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을 보면 그 사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후손들이 쓸 지구 자원들도 얼마나 남용합니까? 앞으로 지구가 어떻게 될지 심히 염려됩니다. 사람들은 바닷물이 많다고 생각하고 지구의 공기도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큰 오해입니다.

 전 세계 바다 평균 깊이는 3800미터(3.8킬로미터)로서 지구 반지름의 1680분의 1정도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1미터 크기의 지구본에서 방을 도배할 때 붙이는 얇은 벽지 하나 붙인 정도밖에 바닷물이 없는 셈입니다. 만약 대 재앙으로 지구 안에 1미터 지구본 대비 지름 3센티 크기의 공동만 생겨도 바닷물이 그곳으로 다 빨려 들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지구 공기의 99%는 약 30킬로 상공 이내에 있기에 1미터 크기의 지구본에서 벽지 7장 붙인 정도만 공기층이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공기도 지구 전체의 크기에 비하면 많은 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지구에 대 재앙이 생기면 그 공기도 한꺼번에 오염될 수도 있습니다.

 지구의 지름은 약 12350킬로미터입니다. 그런 지구에 지름 2킬로미터 크기의 유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충돌한 곳에 거대한 공동이 생기고 지구 전체 표면에 6개월간 불이 나면서 심해 및 깊은 지하생물 외의 거의 대부분의 생명체가 죽습니다. 지름 2킬로미터의 유성은 지구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요? 1미터 크기의 지구본과 대비하면 일반 모래보다 더 적은 미세 모래 하나의 크기입니다. 그 미세 모래 하나가 1미터 크기의 지구본에 충돌하는 상황인데도 인류 멸망은 물론 대부분의 생명체가 멸종한다는 말입니다.

 거대한 자연계의 상황에 비하면 인간의 무력함이 실감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지구를 지키려고 하고 후손들이 살 기반을 마련하려고 해야 합니다. 후대를 생각하지 않는 성공과 축복은 진정한 성공과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후대를 위해 자원낭비를 줄이고 후대를 위한 먹거리와 일거리 창출에 힘쓰면서 무엇보다 인물을 키워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은 이웃에게 복을 나눈다는 의미도 있지만 좋은 후대를 키워 복을 계승시킨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좋은 후대와 후계자를 남기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 갑절의 은혜를 위한 코스 >

 구약시대에 전설적인 사역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림 받을 때가 되었습니다(1절). 그때 가장 중요한 일은 후계자를 잘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 되려면 지속성이 있어야 하기에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고 후계자를 잘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후계자 문제로 고통과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좋은 후대와 후계자를 남기는 삶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합니다.

 포악한 아합 정권으로 말미암아 흑암이 짙게 드리워진 시대에 누가 엘리야 대신 사역을 잘 감당하겠습니까? 그때는 어느 때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엘리사였습니다. 어떻게 엘리사가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까? 자기에게 찾아온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보통 평생에 몇 번의 결정적 축복 기회가 옵니다. 그 기회를 잘 붙잡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좋은 만남을 주셔도 몸과 마음과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붓지 않고 이리저리 생각만 많이 하면 그 축복 기회를 살리지 못합니다. 이미 거인이 된 사람에게 계산적인 마음을 가지고 억지로 줄을 대려고 하면 큰 유익이 없고 대개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납니다. 숨은 작은 거인을 만났을 때 그가 미래의 거인이 될 것을 예감하고 그의 비전에 동참해야 가장 복된 길이 펼쳐집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보자마자 그가 거인임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소 12겨리(24마리)를 한꺼번에 몰고 밭을 가는 부농이었지만 엘리야의 부름을 받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섰습니다(왕상 19:19-21). 그리고 끈질기게 엘리야를 좇았습니다. 본문에서도 엘리사는 엘리야가 몇 번이나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필사적으로 같이 간다고 했습니다. 그런 엘리사를 갑절의 은혜를 주어 후계자로 선택하려고 엘리야는 마지막 몇 가지 훈련 코스를 통과하게 했습니다. 갑절의 은혜를 입으려면 어떤 코스를 통과해야 할까요?

1. 길갈 코스

 엘리야와 엘리사가 처음 출발한 곳은 길갈이었습니다(1절). 성경에는 길갈(Gilgal)이 두 곳 나옵니다. 하나는 요단강을 건너 12돌을 세웠던 여리고 북동쪽 약 2km 지점의 길갈(수 4:19)이고 또 하나는 벧엘 북서쪽 약 13km정도 지점의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길갈(신 11:30)입니다. 둘이 출발했던 길갈은 흔히 알고 있는 ‘여리고 근처의 길갈’이 아니라 ‘에브라임 산지의 길갈’이지만 그 지명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는 같습니다. 길갈은 무엇을 상징하는 장소일까요?

 출애굽 시대에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요단강을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그 후 여리고 동편에 진을 치고 요단강에서 가져온 12돌로 기념비를 세운 곳이 바로 “수치가 굴러갔다.”는 뜻을 가진 여리고 근처의 길갈입니다. 그래서 길갈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삶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결국 갑절의 은혜를 입으려면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인격관계에서 감사를 주고받을 때처럼 기쁨과 보람이 넘칠 때는 없습니다. 부모가 제일 기쁠 때가 언제입니까? 자녀가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을 표현해줄 때입니다. 가끔 통 큰 헌신을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표현을 그렇게 표출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모습을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감사의 문이 열릴 때 갑절의 은혜의 문도 열립니다.

2. 벧엘 코스

 엘리야는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벧엘로 가겠다고 하면서 엘리사에게는 길갈에서 머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기필코 엘리야를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둘이 함께 벧엘로 내려갔습니다(2절). 왜 엘리야가 혼자 가려고 했을까요? 마지막 순간을 홀로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자신의 승천 장면을 감추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엘리사의 충성심을 시험해보려는 의도가 제일 컸을 것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을 가진 지명으로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잘 때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던 곳입니다(창 28장). 오늘날로 말하면 벧엘은 교회 및 예배를 상징합니다. 갑절의 은혜를 받으려면 구원의 은혜 체험과 감사하는 삶의 체질화도 중요하지만 교회를 사랑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도 잘해야 합니다.

 벧엘로 내려갔을 때 벧엘의 선지학교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십니까?”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으니 너희는 잠잠하라.” 왜 잠잠하라고 했을까요? 승천의 기적을 너무 떠벌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냉철히 생각해보십시오. 기적을 떠벌이는 사람 중에 진실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습니까? 결국 기적을 떠벌이는 집회나 ‘기적의 종, 치유의 종, 능력의 종’이라고 선전하는 사람에게는 안 가는 것이 진짜 기적과 치유와 능력을 얻는 기초적인 최상책입니다.

 또한 엘리사가 “너희는 잠잠하라!”고 한 것은 많은 말로 이별을 앞둔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지 말라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잘못된 말을 들으면 마음의 평안이 깨질 때가 많습니다. 누가 슬프다고 말하면 괜히 듣는 사람도 슬퍼집니다. 평소에도 말을 절제하면 좋지만 힘들 때는 피차간에 더욱 말을 아끼고 대신에 예배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에 더욱 집중하십시오. 그때 갑절의 은혜를 얻습니다.

3. 여리고 코스

 벧엘에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벧엘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이 여리고로 보내신다고 했습니다. 그때도 엘리사는 엘리야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4절). 결국 둘이 함께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여리고는 출애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었습니다. 당시 여리고성은 변변한 무기도 없었던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뜨리기는 거의 불가능한 성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은 인생의 어려운 고난을 상징합니다. 또한 끊지 못하는 잘못된 습관과 성격 등도 축복을 방해하는 일종의 여리고성입니다. 그런 여리고성을 만나도 낙심하지 말고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 힘으로 안 될 때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나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더 좋은 기회를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어떻게 무너뜨렸습니까? 성 주위를 말없이 13바퀴 돌고 마지막에 함성을 질러서 무너뜨렸습니다. 그것은 끈질긴 믿음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큰소리뿐만 아니라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그처럼 끈질긴 기도로 고난의 시험을 이겨낼 때 갑절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시에는 벧엘뿐만 아니라 여리고에도 선지학교가 있었는데 여리고 선지학교 생도들도 벧엘 선지학교 생도들처럼 똑같이 질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십니까?” 그때 엘리사도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으니까 너희는 잠잠하라!” 조금 알면 말도 많고 질문도 많고 자기의 영적 지식을 자랑합니다. 그러다가 연륜과 경험이 쌓이고 더 많이 알게 되면 더 잠잠해집니다. 그처럼 말을 줄이고 기도와 침묵과 자기성찰을 늘일 때 갑절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4. 요단 코스

 여리고에서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또 그곳에 머물라고 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이 요단으로 보내신다고 했습니다. 그때도 엘리사는 엘리야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6절). 정말 집요합니다. 결국 둘이 요단으로 갔을 때 선지학교 생도 오십 명이 멀리서 그 둘이 요단강 가에 선 것을 보았습니다(7절). 그때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을 지팡이처럼 말아 물을 치자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면서 둘이 마른 땅 위로 건넜습니다(8절). 얼마나 장엄한 후계 위임 장면입니까?

 요단강을 건넌 후 엘리야는 끈질기게 따르는 엘리사에게 물었습니다(9절).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그때 엘리사가 구했습니다.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어떻게 보면 스승보다 잘나기를 원하는 교만한 태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 전심으로 스승을 따르는 모습을 보면 엘리사는 교만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부족함을 인식해서 갑절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엘리사의 말을 듣고 엘리야가 말했습니다(10절).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구나.” 너무 큰 것을 구하는 모습이 괘씸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엘리야 자신도 성령의 역사를 많이 주고 적게 주고 할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워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하늘로 데려가시는 것을 보면 그 소원대로 된다고 했습니다. 하늘의 능력과 은혜는 결국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로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왜 엘리사는 갑절의 은혜를 구했을까요? 갑절의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아합과 이세벨이 남긴 악영향으로 정치적인 암흑기였고 종교적으로도 우상숭배가 만연했습니다. 또한 신학교도 많이 세속화되어서 벧엘과 여리고의 선지학교에도 쓸 만한 인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승천 사실을 온전히 믿지 않고 용사 50명을 보내서 엘리야가 승천하다가 어딘가 떨어졌을 것으로 여기고 시신을 찾겠다고 사흘을 헤맸습니다(왕하 2:16-18). 그처럼 엘리사 시대는 믿음이 무너진 시대였습니다.

 지금도 믿음이 많이 무너지고 왜곡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외형주의와 기복주의입니다. 욕심을 채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믿음인 줄 아는 기복주의 신앙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놀라운 복을 전파하려고 나눔과 섬김의 길을 다짐하는 신령한 세계를 외면하고 미신적인 복과 영성만 추구하면 감격과 감사와 기쁨과 보람을 다 잃고 오히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또한 당시는 윤리도 땅에 떨어진 시대였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가 된 후 벧엘로 올라갈 때 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하는 장면(왕하 2:23)은 어른과 영적인 리더를 무시하는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합니다. 그처럼 정치, 경제, 교육, 종교 등 어느 한 분야도 성한 부분이 없었기에 엘리사는 갑절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영적인 초비상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건축 문제, 세습 문제, 초대형교회 문제, 기복주의 문제, 이단 문제 등으로 교회 성장이 중단되고 큰 위기에 빠진 상태입니다. 내일의 희망인 기독 청년들은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고 시대는 점점 악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갑절의 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희에게 갑절의 은혜를 주시고 나눔을 선도하게 하소서!”

< 갑절의 은혜를 추구하십시오 >

 엘리사는 대단한 인물도 아니었고 대머리로 놀림 받을 정도로 외모도 변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엘리사를 하나님이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을 택해 갑절의 은혜를 주시고 비범한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니이체는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걸레 같은 인생들만 선택했다.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걸레 같은 약자들을 선택해서 강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택해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소수의 인물을 택해 다수의 대중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엘리사가 갑절의 은혜를 구한 것은 스승보다 나아지려는 인간적인 교만과 욕심의 발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엘리야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겸손한 자각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패역해진 사회 상황에서 엘리야가 ‘심판의 선지자’로 부름 받았다면 엘리사는 ‘위로의 선지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부수는 일보다 세우는 일이 어렵듯이 심판하는 일보다 위로하는 일이 어렵기에 갑절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그처럼 모든 훈련 코스를 통과했을 때 어떤 결과가 생겼습니까? 엘리야와 엘리사가 길을 가며 말할 때 불수레와 불말들이 그 둘을 갈라놓았고 그때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11절). 그 장면을 엘리사가 보고 소리쳤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엘리사는 엘리야를 자신의 영적인 아버지로 여겨 ‘내 아버지’라고 호칭했고 또한 엘리야가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대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켰기에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라고 호칭했습니다.

 그렇게 외칠 때 엘리야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아서 엘리사가 극도로 슬퍼하며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었습니다(12절). 이 장면은 갑절의 은혜를 입으려면 죽음의 요단강에서 자기 옷을 찢을 줄 알아야 함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그처럼 자신이 걸친 세상적인 지위, 명예, 자존심, 물질 등을 다 찢어 버려야 그때부터 갑절의 은혜를 받아 인물이 되고 인물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자기 옷을 둘로 찢은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섰습니다(13절). 엘리야의 떨어진 겉옷을 엘리사가 취한 것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음을 확증하는 외적인 증표입니다. 그 엘리야의 겉옷으로 엘리사가 물을 치며 외쳤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십니까?” 이 외침은 엘리야의 능력을 자신에게도 달라는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그렇게 외치면서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치자 엘리야가 했을 때처럼 물이 이리 저리 갈라졌고 그 갈라진 물 사이로 엘리사가 건넜습니다.

 이 장면은 엘리사가 그의 소원대로 갑절의 능력과 은혜를 받았음을 나타냅니다. 그 후 엘리사를 통해 많은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나면서 그가 살아있을 때 행한 기적이 성경에만 1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13장을 보면 엘리사 사후 어떤 사람의 시체를 장사할 때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왕하 13:21). 그래서 성경에는 엘리야의 기적이 7번 기록된 반면에 엘리사의 기적은 14번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그 기록도 엘리사가 갑절의 은혜를 받았음을 암시합니다.

 지금도 엘리사 때처럼 갑절의 믿음과 갑절의 은혜와 갑절의 축복이 필요한 때입니다. 삶의 외형은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죄는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임을 알고 사탄의 역사도 갑절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으로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또한 헌신과 사랑도 갑절로 높아지지 않으면 어두워져가는 세상에 빛을 비칠 수 없습니다.

 지금 사람들의 영적인 무관심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력하게 느껴지고 교회는  영향력을 많이 잃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사랑으로 정복하기는커녕 많은 교인들이 교회 내에서조차 찬란한 비전을 잃고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때 무엇보다 갑절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감사를 체질화시키는 길갈 코스, 예배와 교회 사랑의 벧엘 코스, 고난 극복의 여리고 코스, 그리고 자기를 죽이는 요단강 코스를 잘 통과해서 갑절의 은혜와 축복을 얻고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는 자가 되십시오.

 야곱은 하나님을 붙들고 허벅지 관절이 부러지기까지 씨름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축복하시기 전까지는 절대로 하나님을 못 놓습니다! 저를 축복하소서.” 그처럼 갑절의 은혜를 위해 갑절로 몸부림하며 기도하십시오. 또한 갑절의 열심과 헌신과 충성을 보여주십시오. 지금 문제는 세상이 살기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갑절의 은혜가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갑절의 은혜가 있다면 자본이 부족하고 숫자가 부족하고 건강이 부족하고 인맥이 부족해도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를 반드시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뉴욕거리를 자기 신세를 비관하던 한 흑인 소녀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길에서 풍선 장수를 만났습니다. 여러 색깔의 풍선 중에 까만 풍선이 자기 신세처럼 보여서 가까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아저씨! 이 까만 풍선도 높이 날아오를 수 있나요?” 그때 “그럼!” 하면서 그 아저씨가 풍선에 수소를 넣자 풍선은 곧 하늘로 높이 떠올랐습니다.

 외형과 자본과 학력과 연줄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갑절의 은혜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심령 속에 불어넣어지면 풍성한 축복의 세계로 높이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그 은혜가 있으면 가정은 복된 가정이 될 수 있고 누구든지 나눔의 꿈과 비전을 멋지게 이뤄낼 수 있습니다. 이제 더욱 범사에 감사하고, 진실한 예배에 힘쓰고,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을 잘 부인함으로 갑절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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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9 출애굽기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출20:7  강화구 목사  2013-11-20 1730
10078 민수기 하나님의 평가 민12:1-16  최장환 목사  2013-11-20 1969
10077 여호수아 감사를 잊지 말자 수14:1-15  최장환 목사  2013-11-20 2747
10076 신명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신6:4-5  한태완 목사  2013-11-20 2347
10075 갈라디아 초지일관의 신앙과 사랑 갈3:3  한태완 목사  2013-11-19 1803
10074 잠언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라 잠30:7-9  김동성 목사  2013-11-17 2048
10073 베드로전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벧전2:9-10  한태완 목사  2013-11-15 2394
10072 여호수아 하나님의 임재 수5:13-15  이동석 목사  2013-11-13 2333
10071 창세기 주님과 동행하기 창5:21-24  한태완 목사  2013-11-13 2914
10070 예레미야 주신 환경에서 배우자 렘19:1-15  최장환 목사  2013-11-13 2362
10069 이사야 하나님의 사랑 사27:1-13  최장환 목사  2013-11-13 2416
10068 사무엘상 오해, 착각하지 마세요 삼상1:13-15  한태완 목사  2013-11-12 2619
10067 마태복음 주님께서 찾으실 때에 마21:18-22  이영화 목사  2013-11-11 2014
10066 마태복음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 마24:23-31  이영화 목사  2013-11-11 2218
10065 디모데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딤후2:1-7  이영화 목사  2013-11-11 2474
10064 로마서 로마서 8:1을 넘어서라 롬8:1-2  강종수 목사  2013-11-10 2187
10063 에스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스5:1-17  한태완 목사  2013-11-09 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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