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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하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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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www.john316.or.kr |
문제해결에 필요한 4가지 (왕하6:1-7)
1990년대 서울의 초대형 교회인 A목사님에게 세계선교의 안내자 역할을 했던 분이 김사무엘 선교사님입니다. 김 선교사님은 인격적인 신사 목회자이고 푸근한 미소와 잘생긴 외모를 가졌으며 당시 50대의 한인 1세 목사님이었지만 매력적인 목소리와 완벽한 영어발음을 가지고 영어를 완벽히 구사했습니다. 게다가 선교사역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었고 특히 A목사님과 의기투합을 해서 A목사님이 세계선교로 시선을 돌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문제는 A목사님이 ‘세계선교의 비전’을 내세웠다가 점점 ‘세계선교’보다는 세계 각 지역에 ‘그 교회의 프랜차이즈 한인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로 인해 성도들을 빼앗긴 주변 목회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프랜차이즈 교회가 생기면 주변에 온통 난리가 벌어진다고 해서 목회자들 사이에 ‘온난리 교회’란 오명까지 얻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김 선교사님이 이라크 선교정탐을 갔다 온 후 급성 백혈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서울 강남에서 두 부부가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하면서 김 선교사님께 조심스럽게 A목사님 얘기를 꺼내자 선교사님이 부담을 느끼시며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 그런 얘기는 그만 하고 좋은 영화나 한 편 봅시다.” 그때 아내가 급히 볼 영화를 찾아서 선택한 영화가 강남에서 단관 개봉한 '스트레이트 스토리‘란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는 73세의 앨빈 스트레이트 할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스트레이트 할아버지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고 4자녀를 나라에 뺏긴 딸과 함께 사는데 어느 날, 오래 전 말다툼으로 만나지 않던 형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그래서 시속 8킬로로 42일 동안 잔디 깎는 기계를 몰고 몇 천 킬로 떨어진 형을 찾아갑니다. 그렇게 가면서 생기는 일을 통해 삶의 교훈을 얻고 결국 형을 만나는 작은 성취를 통해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그때까지 그렇게 재미없는 영화는 평생 처음 봤습니다. 얼마나 영화가 지루한지 영화 도중에 전체 11 커플 중 4커플이 나가버렸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졸였습니다. “선교사님 부부의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게 해서 어떡하지?” 그런데 영화가 끝난 후, 김 선교사님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네요.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사모님의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탁월하네요.”
그 영화는 재미는 없었지만 의미는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는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는 힘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 영화에서 스트레이트 할아버지가 형에게 갈 때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잔디 깎는 기계로 느리고 고통스런 여행을 한 것은 오랫동안 형을 용서하지 못한 것을 사죄하는 의미로 택한 결정이었고 힘없는 노인이지만 희망만은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였습니다. 그처럼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도 희망만은 잃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삶은 없습니다. 문제는 나쁜 것만이 아닙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결재를 받고 주어진 것에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나쁜 것’이 아니고 ‘나 쓴 것’일 뿐입니다. 살면서 내게 쓴 것도 있어야 쓰임 받은 인생이 됩니다. 문제는 인생의 보약입니다. 문제가 없으면 좋겠지만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없는 것이 오히려 문제입니다. 때로는 문제도 있어야 더 성숙해지고 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본문은 갑자기 문제가 생겨 희망을 잃었다가 다시 희망을 찾은 얘기를 잘 그리고 있습니다.
< 도끼날을 잃어버린 이유 >
주전 800년경, 엘리사가 운영하는 선지학교가 크게 성장하자 선지학교 신학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요단강에서 나무를 취해 기숙사를 넓히자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그때 한 생도가 “선생님도 함께 갑시다!”라고 해서 엘리사도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도끼로 나무를 베는데 그때 한 생도의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졌습니다. 중요한 건축 도구가 없어진 것입니다. 왜 그런 문제가 생겼을까요?
첫째, 위험한 곳에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물에서 조금 떨어져서 작업했다면 그런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물가에 있는 나무가 더 재질이 좋아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처럼 마귀는 늘 좋게 보이는 장소에 덫을 놓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대단하게 보여도 잘 분별해서 기복주의와 외형주의와 신비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특히 축복과 치유와 성령 충만을 준다고 과대 선전하는 곳에는 절대 가지 마십시오. 영혼 망가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둘째, 그 도끼가 빌린 도끼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손에 익지 않으니까 자연히 사고 가능성이 커집니다. 살면서 가급적이면 빌리는 인생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자기 것으로 최선을 다하십시오. 남이 어떤 방법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세미나에서 배워 무조건 따라 하면 그것은 실패자로 사는 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사울 왕의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나가지 않고 자기 물맷돌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셋째, 부주의했기 때문입니다. 빌려온 도끼라도 미리 도끼 자루도 확인해보고 도끼날도 살펴보고 잘 점검했다면 도끼날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믿음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땀을 흘리며 준비해야 합니다. 믿음은 ‘열심과 준비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열심과 준비를 강화시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 문제해결에 필요한 4가지 >
고대에 건축할 때 도끼를 잃어버린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 문제가 어떻게 풀렸습니까? 본문에서 도끼날을 다시 찾는 장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것 4가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회개의 기도
이 학생은 도끼날이 물에 떨어지자 엘리사에게 와서 “아아, 내 주여!”라고 외쳤습니다(5절) 이 구절에서 “외쳤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는 “애통하며 회개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세입니다. 성경을 보면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 애통하며 회개한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애통하고 회개한 후에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고 다윗도 애통하고 회개한 후에 위대한 성군이 되었습니다.
죄를 자꾸 덮거나 변명하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제가 주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만큼 더 은혜를 얻고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만큼 더 지혜를 얻습니다. 그렇지만 회개한다고 너무 자학적인 언사를 쓰지는 마십시오. “주님! 저는 벌레 같은 죄인입니다! 지렁이 같은 종자입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참된 겸손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어떻게 보십니까? ‘사랑 받는 자녀’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면서도 항상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은 그래도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믿음을 잃지 말고 겸손히 기도하십시오. 그때 도끼날을 잃은 신학생이 “아아! 내 주여!”라고 외친 것은 엘리사에게 한 말이지만 엘리사의 하나님께 한 기도의 탄식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사방이 막혔을 때 하늘 문을 여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는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본문 5절에서 도끼를 잃은 신학생이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입니다.”라고 할 때 얼마나 간절함이 느껴집니까? 이 구절에서 ‘빌려온’은 히브리어 원어로는 “애걸하며 빌려온‘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신학생은 너무 가난해 도끼를 살 수 없어 이웃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도끼를 빌려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도끼를 배상해야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간절했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2. 믿음의 동료
본문에서 신학생들이 엘리사와 함께 가자고 한 것은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건축 현장을 보여주며 엘리사를 기쁘게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이 문제 해결의 씨앗이 되었고 결국 엘리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믿음의 동료 및 영적인 리더가 함께 있다는 것은 평소에는 그 중요성을 몰라도 문제를 만나면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비전 동지 및 영적인 리더와 좋은 일에 함께 하고 좋은 것을 나누려고 늘 힘쓰십시오.
특히 엘리사처럼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려고 하십시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기도제목 중의 하나가 이런 기도제목입니다. “하나님! 제가 따르는 리더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하소서!” 리더가 리더의 특성대로 어떤 길을 가면 자기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도 기쁘게 순종할 수 있지만 누가 봐도 분명히 잘못된 길로 가면 어떻게 기쁘게 순종합니까? 그래서 리더가 바른 길로 가도록 기도하는 것은 어떤 기도제목보다 중요한 기도제목입니다.
그처럼 리더가 바른 길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기본 전제 하에서 리더를 잘 섬기고 윗사람을 잘 섬기면 하나님이 크게 축복하십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면 하나님이 크게 축복하시는 체험을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모님께 안부 전화만 드려도 어디선가 좋은 일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저도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고 최상의 지혜가 떠오르고 얽힌 문제가 갑자기 풀리는 은혜를 체험할 때가 많았습니다.
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갔다 오면 꼭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의 연로하신 권사님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갔다 와도 꼭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어버이와 어르신을 섬기는 것을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에 재미를 추구할 또래가 많은 것보다 섬길 어르신이 많은 것이 더 복된 일입니다. 그처럼 바른 길로 가는 영적인 리더를 존중해주고 비전 동지들이 서로 칭찬해주고 섬겨주면 그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문제해결도 속히 이뤄질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자기 설교의 약점을 고치려고 사모님께 설교할 때 자기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은 설교할 때마다 지적할 것을 메모하며 지적했습니다. “사투리를 쓰지 말라! 표정을 밝게 하라!” 그 지적을 듣고 목사님은 하나씩 고쳤지만 이상하게도 강단에 올라서서 사모님만 보면 기가 팍 죽어서 더 설교를 못했습니다.
점점 목사님의 설교가 후퇴하자 사모님이 답답해서 그 문제로 기도하다가 기도 중에 어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목사님이 설교할 때 더 이상 메모하지 않고 “아멘! 아멘!” 하면서 목사님의 설교를 그냥 받아들이면서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자는 초대형 교회 설교자나 탁월한 방송 설교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아내를 은혜 받게 하는 설교자입니다. 그처럼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가장 은혜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사람이 은혜를 받자 목사님은 점점 더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가족 및 동지 관계에서는 지적보다 칭찬이 훨씬 더 큰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서로 격려하는 믿음의 동지가 되십시오. 자기만 생각하면 공동체도 죽고 결국은 자기도 죽습니다. 이제 자기 부서만 생각하지 마시고 다른 부서도 생각해주고 자기 가정만 생각하지 말고 큰 가정인 교회도 생각해주십시오. 그처럼 서로 섬겨주고 이해하고 도와주면 공동체도 살아나고 점차 얽힌 문제도 풀리게 될 것입니다.
3. 주님과 동행
신앙생활에서 영적인 리더 및 비전 동지가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오직 예수!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마음으로 살면 어떤 문제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지만 예수님이 함께 하니까 곧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면 어떤 문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미국의 한 안경 광고에서 안경점 주인이 나와 이렇게 어눌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아는 것이라곤 안경밖에 없습니다.” 그 단순한 말에 사람들이 더 신뢰하면서 그 안경점을 더 많이 찾았다고 합니다. 그처럼 “제가 아는 것은 주님밖에 없습니다.”란 단순한 믿음으로 살면 복잡하게 얽힌 문제도 조만간 신비하게 다 풀리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토마스 아퀴나스가 수도원에서 기도할 때 예수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물었습니다. “아들아! 무엇을 원하느냐?” 아퀴나스는 대답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원하고 달리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바로 그때 그에게 놀라운 지혜들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내렸다고 합니다. 그처럼 “주님밖에 없습니다!”란 고백을 가지고 살면 가장 깊은 차원에서 예수님과 만나면서 풍랑이 잠잠해지고 기쁨이 회복되고 어떤 문제에서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4. 헌신적인 삶
그때 잃은 도끼를 어떻게 찾았습니까?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위에 던지자 도끼가 기적적으로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6절). 이 장면에서 물에 던진 나뭇가지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그처럼 문제를 해결 받고 축복을 받으려면 먼저 십자가를 질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문제 해결과 축복만 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복만 찾으면 진짜 복은 주어지지 않지만 헌신하면 진짜 복이 주어집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서 재정부와 교육부와 총무부와 성가대 등의 자기 맡은 직분을 소리 없이 꾸준히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그 헌신을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 필요와 자기 가정의 필요만 생각하지 않고 교회와 선교사님과 이웃의 필요도 생각하면서 자기 호주머니를 힘써 비웁니다. 하나님이 그 헌신도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그런 흔히 생각하는 헌신들 외에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헌신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주일성수를 합니다. 그것도 헌신입니다. 어떤 분은 “작은 교회에서 내가 자리를 비우면 얼마나 빈자리가 커 보일까?”하고 열심히 주일성수를 합니다. 그것도 헌신입니다. 어떤 분은 힘들고 어려운 일로 마음이 불편해도 교회에서는 늘 활짝 웃습니다. 그것도 헌신입니다. 어떤 분은 남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사려 깊게 말합니다. 그것도 헌신입니다.
어떤 분은 멀리 이사 갔지만 그럴수록 교회 사랑이 더 애틋하게 깊어져서 주일에 교회 오는 드라 이브를 최고의 드라이 브로 여기며 즐겁게 옵니다. 그것도 헌신입니다. 어떤 분은 매주 소리 없이 설거지를 하고 청소합니다. 그것도 헌신입니다. 어떤 분은 매주 티내지 않고 간식을 챙겨옵니다. 그것도 헌신입니다. 어떤 분은 성경공부를 할 때마다 분위기를 즐겁게 해줍니다. 그것도 헌신입니다. 그처럼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면 이미 마음의 천국을 이룬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반드시 에덴의 축복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괴나리봇짐을 들고 지하 개척교회로 들어와 펑펑 울었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 할머니는 월남해서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살았는데 다행히 아들이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에 취직했고 명문대 출신 며느리까지 얻었습니다. 그래서 고생이 다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며느리와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들이 출근하면 똑똑한 며느리는 무식하고 힘없는 시어머니를 심하게 구박했습니다. 그 구박을 못 이겨서 괴나리봇짐 하나를 들고 가출해서 갈 곳이 없어 지하 개척교회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아들이 그 사실을 압니까?” 할머니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에게는 그 사실을 도저히 말할 수 없어요.” 그 말을 하면 아들 부부 사이에 어려움이 생길 것 같아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이 한 마디 속상한 말을 안 함으로 누군가의 행복을 지켜주려는 삶도 바로 헌신하는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헌신들을 기억해주시고 반드시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 희망을 구체화시키는 헌신 >
결론적으로 본문의 신학생이 잃어버린 도끼날은 오늘날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성도가 잃어버린 꿈과 비전’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꿈과 비전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에서 편안하게 안주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단기목표와 장기목표를 지나 천국까지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뒤를 돌아보거나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나가십시오.
믿음이란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기쁨과 감격과 감동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믿음 안에서 미래지향적인 삶과 마음과 생각이 습관적으로 나오게 하십시오. 꿈과 비전은 시계의 배터리와 같습니다. 그 배터리로 시계가 갑니다. 꿈과 비전은 저수지의 물과 같습니다. 물이 없으면 밭이 다 마르지만 아무리 마른 밭이라도 물만 들어가면 들판이 다 살아납니다. 그처럼 꿈과 비전은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어떤 리더는 무작정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무도 안 따라갑니다. 사람은 리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꿈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저 꿈을 따라가면 내 영혼이 보람과 만족을 얻겠구나! 내 꿈도 이뤄지겠구나!”라고 하면서 꿈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목회자 자신을 따라가면 곧 실망합니다. 목회자 안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을 따라가야 합니다. 지금 현대인들이 얼마나 사람에 의해 많이 치였습니까? 그래서 자꾸 약아집니다. 그런 현실에서 찬란한 꿈과 비전도 없이 따라오라면 하면 누가 따라오겠습니까?
사람이 쉽게 동참하거나 희생하지 않습니다. 쉽게 희생해주면 누가 목회를 못하고 누가 사업을 못하겠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희생은 리더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꿈을 공유하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더의 꿈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의한 꿈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찬란한 꿈이어야 합니다.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가면 어떤 어려운 문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잃어버린 꿈의 도끼날을 찾아야 합니다.
작년 여름에 꿈속에서 구두를 잃고 열심히 구두를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니까 바로 구두가 옆에 있었습니다. 그때 진짜로 구두를 잃었다가 찾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런데 곧 이어서 꿈과 유사한 현실이 펼쳐졌습니다. 둘째 딸이 구두를 잃어버렸다고 한참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방금 전의 꿈을 생각하고 둘째 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나야! 혹시 구두는 잃어버려도 나눔의 꿈을 잃어버리면 안 돼!”
선교가 무엇입니까? 꿈과 비전과 희망을 감염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일은 희망을 전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죄는 희망을 빼앗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 수 있지만 희망이 없으면 아무리 애써도 인생은 황무지가 됩니다. 이제 세상에 짓눌려 희망을 잃고 마음까지 좁아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십시오. 돈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가 희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희망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전합니까? 나뭇가지를 던져 도끼를 떠오르게 했듯이 십자가의 헌신을 통해 꿈과 비전을 새롭게 일으켜야 합니다. 이 세상에 헌신이 없는 축복은 없습니다. 축복은 요술이나 마술에서 오지 않고 헌신의 예술에서 옵니다. 그처럼 말씀과 물질을 나누는 한국 교회의 모델이 되겠다는 선교 비전을 가지고 헌신하면 우리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고 당대와 후대에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우리 중에 조만간 속히 나타날 것입니다.
문제가 계속 잘 풀리지 않아도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나고 보면 좋지 못한 결과를 주는 문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문제가 있었기에 회개하게 되었고, 더 겸손하게 되었고, 더 동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더 예수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문제 해결과정에서 문제 극복 능력도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믿음의 동지와 함께 꿈과 비전을 위해 더욱 헌신함으로 문제를 극복하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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