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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이 열린 삶 4가지

열왕기하 이한규 목사............... 조회 수 3425 추천 수 0 2013.12.17 23:56:22
.........
성경본문 : 왕하6:8-23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3.10.28 http://www.john316.or.kr 

영안이 열린 삶 4가지

(열왕기하 6장 8-23절)

 

< 욕심은 미래를 망칩니다 >

 2006년 11월 용인에 70평과 80평의 대형평수로만 구성된 S아파트 345가구의 분양 보도가 각 일간지에 나왔습니다. 당시 평당 분양가는 1200만 원 정도로 예상되었지만 그때는 분양하면 다 성공하니까 막대한 수익을 내는 환상을 쫓아 회사가 평당 1800만원에 용인시에 분양 승인 신청을 했습니다. 주변 시세와 비교해 평당 600만원, 한 아파트 당 4억 원 이상을 날로 먹겠다는 지나친 욕심이었습니다.

 결국 용인시에 의해 평당 1485만원에 승인되었습니다. 용인시는 원래보다 200-300만 원을 낮췄다고 자화자찬을 했고 건설사는 “시의 강력한 요청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감수하고 분양가를 크게 낮췄다.”고 생색을 냈습니다. 그러나 그 승인된 분양가도 당시 주변 시세와 비교해 한 아파트 당 2억 이상 비쌌습니다.

 드디어 2006년 12월 성탄절 다음날 분당의 모델하우스 개관과 함께 화려하게 분양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345가구 모집에 128명만 신청하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뒤 계속된 일간지의 분양광고와 보도에도 분양은 더뎠습니다. H경제지는 ‘흙속의 진주 미분양 아파트 분양 중’이란 보도도 했고 F 경제지는 ‘제 7회 하우징 파워브랜드 대상 받은 S아파트 분양 중’이란 기사를 내보냈지만 소비자는 외면했습니다.

 그 후 돈 부족으로 공사는 지연되었고 부실공사 의혹도 생겼습니다. 한 차례 준공 연기 끝에 2009년 6월에 억지로 준공을 받으려는데 청약자 70명이 용인시로 몰려가 부실공사라고 준공을 막았습니다. 그때 6월 말까지 준공되지 않으면 회사는 계약자에게 10%의 보상금을 주든지 아니면 계약자는 위약금 없이 해약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계약자들은 준공지연 명목으로 다 해약했고 2010년 초 그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그 아파트 345세대가 통째로 경매로 나왔지만 7차례 동안 1채도 낙찰되지 않고 8차 경매 이후로 단 55가구만 낙찰되었습니다. 결국 2012년 2월에 분양가 11억 원이 넘던 아파트가 1억 원대로 경매로 나왔습니다. 그 기사가 수많은 언론에 뜨면서 그 2월 경매 때 93가구가 낙찰되었지만 그 낙찰자들도 손해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채권자들이 대지가 아닌 아파트 건물만 경매에 붙여서 결국 대지권이 없는 아파트 건물만 낙찰 받은 것입니다.

 당시 대지권을 담보로 가졌던 대한주택보증은 남은 비낙찰 가구들을 통째로 싸게 사들여 공매에 붙였고 기존 아파트를 낙찰자들에게는 4억 이상의 땅 값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1억 원 대에 낙찰 받은 사람들도 총 6억 정도가 들면서 오히려 주변 시세보다 조금 더 비싸게 아파트를 구입한 셈이 된 것입니다. 그 후 1년 이상의 진통 끝에 모든 법적인 문제가 정리되고 최근에 최초 분양가보다 6억 원 이상 빠진 4-5억 원 대의 가격으로 재분양되고 있습니다.

 최초 분양가를 당시 시세인 1200만 원 이하로만 정했어도 상당히 이익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환상에 젖어 아파트 한 단지 사업으로 천 억 이상 떼돈을 벌려고 상떼를 부려 결국 꽤 잘 나가던 건설회시가 망한 것입니다. 욕심은 눈을 멀게 하고 미래를 망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제일 기도제목 중의 하나가 이것입니다. “하나님! 욕심으로 눈이 가려지지 않게 하시고 찬란한 내일의 거룩한 비전을 보며 열심히 살게 하소서!”

< 영안이 열린 삶의 의미 >

 요새 “영안이 있다! 영안이 열렸다!”는 표현을 종종 씁니다. 그런 표현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영안이 열렸다는 말을 오해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안이 열렸다는 말은 무엇을 말할까요?

1.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삶

 이스라엘과 아람이 전쟁할 때 아람 왕 벤하닷이 밀실에서 작전을 짰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영적인 능력으로 그 작전 짜는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왕이 어디로 가서 어디를 방비해야 할지 철저히 대비시키니까 아람이 당할 수 없었습니다(8-10절). 결국 아람 왕이 내부 스파이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하자 한 신하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쪽에 엘리사란 선지자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도 다 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는 것입니다(12절).” 그러자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으려고 병사를 보내 엘리사가 있는 도단성을 포위했습니다(14절).

 사환이 아침에 나가보니 무수한 아람군대가 성을 둘러싼 것을 보고 놀라서 그 보고를 하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다(16절).” 그때 엘리사는 영안으로 아람 군대보다 더 많은 하늘 군대가 자신과 함께 함을 보았습니다. 그처럼 눈앞에 아무리 큰 문제가 있어도 우리 뒤에는 천사가 호위해 지키고 있고(마 18:10), 더 크게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가진 것이 바로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의 애굽 군사들과 앞의 홍해를 보고 원망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매장하려고 여기로 끌고 왔느냐?” 그때 모세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그처럼 영안이 열리면 어떤 큰 문제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물론 믿음이 있다고 해서 전혀 근심이 없는 강철영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살면서 위험한 것을 조심하게 만드는 근심과 두려움은 필요합니다. 과속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안전운전을 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힘들어도 자살하지 않습니다. 두려운 감정도 하나님이 생존 본능으로 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불신앙적인 두려움입니다. 확신이 있어도 일이 잘 이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불신과 두려움을 가지면 일을 더 못하게 됩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고 너무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불말과 불병거로 지켜주고 있다고 믿으십시오. 눈앞에 펼쳐진 환경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죽으면 죽으리라! 그래도 예배하고 감사하리라!”라고 나가십시오. 그러면 없던 길이 생기고 사는 길도 열릴 것입니다. 문제는 불행의 표시가 아닙니다. 문제가 있기에 더 절제하고, 더 겸손해지고,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어떤 문제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느끼면서 위기를 기회를 만들어 가십시오.

2. 영적인 자원을 사용하는 삶

 엘리사가 사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그 기도대로 하나님이 사환의 눈을 열어 주시자 사환의 눈에 불말과 불병거가 보였습니다. 조금 후 아람 군사들이 공격해올 때 엘리사가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들의 눈을 어둡게 하소서(18절).” 그 기도대로 그들의 눈이 멀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눈먼 병사들을 이끌고 사마리아로 갔습니다(19절). 그리고 사마리아에 들어서서 엘리사가 또 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무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그 기도대로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열자 아람 군사들은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20절). 마치 독 안에 든 쥐처럼 된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이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엘리사에게 묻자 엘리사는 아람 군사들을 죽이지 말고 편히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21-22절). 그들을 사마리아로 데려온 것은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게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호람 왕이 엘리사의 말대로 아람 포로들을 잘 대접한 후에 놓아주자 그들이 돌아갔고 그 후부터 아람 군대는 한 동안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23절).

 이 장면에서 엘리사는 사환의 눈을 뜨게 할 때도 먼저 기도했고 아람 군대의 눈을 닫게 할 때도 먼저 기도했습니다. 그처럼 영안이 열린 삶은 영적인 자원을 사용할 줄 아는 삶입니다. 성도의 영적인 자원 중에 최고의 자원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성도의 가장 큰 축복이고 기도를 잃어버린 것은 성도의 가장 큰 불행입니다.

 진실한 기도는 어느 한 시간도 헛되지 않습니다. 내일이든, 내달이든, 내년이든, 10년 후든, 심지어는 자녀와 손자에게든 그 열매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진실하게 기도하면 응답은 오직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모든 진실한 기도는 영적인 통 장에 저축되어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 쓰게 되면서 그때 문제도 풀리고, 길도 열리고, 풍성한 열매도 맺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기도라는 영적인 자원을 잘 활용해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삶이 영안이 열린 삶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삶

 가끔 보면 영안을 신기한 것을 보는 눈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비주의 이단이 생기는 것입니다. 영안이란 ‘신기한 것을 보는 눈’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보는 눈’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과 손길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려는 것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 핵심은 바로 십자가와 나눔입니다. 결국 천국과 지옥을 보는 삶이 영안이 열린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나누려는 삶이 영안이 열린 삶입니다.

 어느 날, 부목사로 5년 지내던 A목사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저도 담임 목사가 되게 하소서!” 그때 몸에 이상한 부스럼이 생겨 병원에 가보니까 피부암이었습니다. 점점 암세포가 퍼져 얼굴도 이상해졌습니다. 그 즈음에 한 신학교 동기가 유학가면서 교인들에게 “A목사님 설교를 한번 들어보라!”고 해서 그 교회가 A목사님을 초청해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배 후 청빙위원회가 열렸습니다. 대부분의 성도가 설교는 좋은데 암 투병으로 머리가 다 빠지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분을 담임 목사로 모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한 집사님이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분을 담임 목사님으로 모십시다.” 모두가 미쳤다는 듯이 쳐다보자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모시면 진실한 설교를 들을 것 같습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에 가장 진실하게 설교하지 않겠습니까? 단 한번 설교하고 돌아가셔도 그런 설교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건강해도 내일 죽을 수 있고 아파도 기적적으로 나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저렇게 암 투병하는 목사님을 모시면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회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어 결국 A목사님을 청빙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교인들이 고마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병 치유나 목회 성공을 위한 기도가 아닌 이런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저 같은 암 환자를 초빙해준 이 아름다운 교회에 좋은 후임 목사님을 보내주셔서 모두 복 받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하다가 자기 병이 그만 나아버렸고 그 후 목회를 잘하다가 은퇴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얘기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처럼 십자가의 길을 택하고 부활의 기쁨을 맛보는 삶이 영안이 열린 삶입니다.

4.. 미래의 비전을 보는 것

 성도는 세상과 다르게 보고 세상을 달리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자신이 영안이 열렸다고 교만하게 늘 튀는 언행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 뜻만 하나님의 뜻처럼 우기라는 말도 아닙니다. 사실 그런 행동들은 더 나쁜 행동들입니다. 세상을 달리 보라는 말은 눈에 보기에 화려하고 좋고 신나는 길만 따라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크고 프로그램이 많은 교회를 찾지만 그것이 인생의 미래에 큰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큰 곳에 몸담는 것보다 좋은 비전의 성취를 위해 자기 힘을 보탤 곳에 몸담는 것이 더욱 복되고 보람된 일입니다. 또한 외형이 큰 교회가 되는 비전보다 영향력이 큰 교회가 되는 비전을 추구해야 부속품 인생이 아닌 창조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현재의 모습보다 미래의 찬란한 비전을 보는 영안을 구하십시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린 창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과거나 현재의 모습만 보지 않고 귀신이 나가고 새로워지면 누구보다 귀한 헌신자가 될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실제로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12제자는 다 도망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켰고 예수님의 무덤도 제일 먼저 찾아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미래의 모습을 보시고 그녀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처럼 사람을 현재의 외모로 보고 판단하지 말고 내일의 가능성을 보고 세워주십시오.

 사람들은 다 삭개오를 세리라고 욕하고 난쟁이라고 깔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뽕나무 위에 올라가 주님을 간절히 추구했던 삭개오에게서 내일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에서 하루를 지내셨습니다. 그때 삭개오는 왠지 모르는 감동에 휩싸여 나눔을 결단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구원과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그처럼 영혼의 현재 모습보다는 내일의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볼 때도 그런 내일의 가능성을 가지고 보십시오. 지난 세월 끊임없이 “예수 믿고 인물이 되라!”고 했던 믿음의 선포를 하나님이 다 듣고 그 믿음을 받아주시고 우리와 우리 후대 가운데 인물이 나오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인들을 보고 우리 자녀를 보고 우리 목회자를 볼 때마다 “보통 인물이 아니네. 이런 인물을 어디서 만나겠어? 하나님! 이렇게 멋진 자녀가 내 자녀입니까?”라고 기뻐하고 기대하고 기도하고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그 믿음을 결코 헛되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볼 때도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보십시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려고 하는 자신을 대견하게 보십시오. 월드컵 4강 경기가 있어도 주일을 지키러 꾸역꾸역 나오는 모습을 보면 사탄이 기가 질려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반드시 그 마음과 정성을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지금 현실이 어려워도 지금의 현실을 비관하지 말고 문제에 당황하지도 말고 너무 외로워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믿고 내일의 찬란한 비전을 가지고 믿음으로 전진하십시오.

 1918년 11월 소아마비였던 루스벨트는 대통령 선거유세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투표장에 나왔습니다. 그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발이 퉁퉁 부어 많이 아프다고 하던데 괜찮나요?” 그때 루스벨트가 대답했습니다. “내 발은 늘 아파도 머리는 늘 건강합니다.” 영안이 열리면 그런 긍정적인 언행이 버릇처럼 나옵니다. 그처럼 하나님 안에서 내일을 낙관하며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시며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런 은혜의 때를 준비하며 사는 삶이 바로 영안이 열린 삶입니다.

< 인물 되는 길을 준비하십시오 >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영안’이란 말을 잘못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폐해가 많습니다. 어떤 신비주의자는 말합니다. “천국을 봤다! 지옥을 봤다!” 심지어 어떤 사악한 신비주의자는 자기 멋대로 믿음의 원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무서운 정죄적인 말을 합니다. “돌아가신 초대형 교회 아무개 목사님이 지옥에서 울부짖는 환상을 봤어요!” 그것이 영안이 열린 것일까요? 미국에서는 그런 사자 명예훼손을 하면 무섭게 처벌을 받습니다. 그런 주장은 증거를 댈 수 없기에 가족이 소송을 걸어오면 백전백패합니다.

 한국 전체 교회를 위해 필요하다면 정당한 비판을 주의 깊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자기가 하나님처럼 누가 지옥 갔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환상 얘기를 하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도 모르는 무속적인 태도입니다. 그런 무속신앙으로 자기가 영안이 열렸다고 착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런 언행을 용납하고 더 나아가 믿고 전파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헛된 신비주의자가 자기 환상에 사로잡히면 무엇인들 못 보겠으며 꿈에서는 무엇인들 못 보겠습니까?

 어느 날, 한 목사가 꿈속에서 너무 생생하게 전 인류를 출애굽처럼 출지구시켜 우주의 신세계로 이끄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꿈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가볍게 피식 웃으면서 그저 내일의 비전을 위해 현재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꿈을 한번 꿨다고 “내가 메시아다!”라고 주장하는 목사가 있다면 정신이 제대로 박힌 목사입니까?

 하나님이 전자와 후자 중 어느 목사를 기뻐하실까요? 그렇게 물으면 어떤 분은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뻔한 질문을 왜 하세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문제는 한국 교계에서 그런 질문이 뻔한 질문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가끔 보면 정신 줄 다 놓고 후자 목사에게 이끌려 영혼 망가지고, 가정 파괴되고, 인성 무너지고, 재물 빼앗기고, 심지어는 불신자로부터까지 조롱받는 불행한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후자와 같은 목사를 영안이 열린 이 시대의 메시아로 추종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우상숭배의 죄입니까?

 어떤 목사가 몇 달 동안 아침마다 1시간 이상 깊은 환상에 빠졌습니다. 우주를 자유자재로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고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몸이 생각하는 대로 거기 가 있고 어디를 가보고 싶다고 하면 그 장소가 클로즈업 되어 다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환상 모드로 들어가자고 맘만 먹으면 바로 그 환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환상이 2개월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영적인 우월감과 신비감과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환상이 실상처럼 느낌도 너무 생생했습니다. 마치 우주 전체가 자기 손 안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뭐하고 있지? 목회자로서 이런 환상 놀음에 빠지다니...” 그 뒤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무런 열매 없는 그런 환상에 더 이상 젖지 않게 하소서!” 그로부터 그 환상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 가끔 그때의 극치의 환상적인 쾌감이 언뜻 생각나기도 했지만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열매 없는 환상은 병든 심령의 착각이나 마약 중독자의 혼돈과 결과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후 그 목회자는 자기 일상에 충실하고 나눔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내일의 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욕심을 가지고 환상을 젖으면 거의 예외 없이 보람이 없는 낭비 인생이 펼쳐집니다. 또한 영적인 욕심을 가지고 환상에 젖으면 거의 예외 없이 열매 없는 신비주의자가 되고 또한 거짓에 미혹되어 자기도 망하고 가족도 망치고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해충 인생이 됩니다. 영안이 열린 삶이란 그런 영적인 헛된 욕심을 쫓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찬란한 나눔의 비전을 가지고 내일의 가능성을 보는 삶입니다.

 또한 영안이 열린 삶이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보고 땀 흘림을 앞세우면서 당대와 후대의 인물 되는 길을 준비하는 삶을 뜻합니다. 결국 영안이 열린 삶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믿음, 십자가, 나눔, 감사, 기도, 그리고 희망입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가는 곳마다 희망을 전파하는 희망 발전소가 되게 하소서! 이번 한 주간도 세상에 나가 삶으로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희망을 전하는 희망 전도사가 되게 하소서!”

 어느 날, 전쟁에서 한 사병이 중상을 입고 야전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소생 가능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 군의관이 무심코 말했습니다. “이 친구 내일까지 살 수 있으면 희망이 있네.” 그 말을 무의식중에 듣고 이 사병이 희망을 가지고 “하루만 더 살겠다.”고 해서 하루를 넘기자 점차 병세가 호전되어 살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의 믿음의 말과 작은 희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 믿음과 비전과 희망을 가진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지금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정말 목사님 말대로 인물이 될 수 있을까?” 의심하지 마십시오. 보잘 것 없는 사람이 큰 인물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에서 큰 인물이 나올 수 있다고 믿으십시오. 그런 비전을 가지고 준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야곱처럼 하나님을 꼭 붙잡고 축복받은 후에 더 잘 나누고 섬기며 살겠다는 꿈과 비전을 희망을 가지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며 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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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5 갈라디아 행복의 항아리 갈4:1-16  최장환 목사  2013-12-18 1985
10144 창세기 웃으며 항상 기쁘게 삽시다. 창21:1-7  한태완 목사  2013-12-18 1770
10143 열왕기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왕하8:1-6  이한규 목사  2013-12-17 2314
» 열왕기하 영안이 열린 삶 4가지 왕하6:8-23  이한규 목사  2013-12-17 3425
10141 열왕기하 조심하되 소심하지 마십시오 왕하7:11-20  이한규 목사  2013-12-17 1374
10140 누가복음 믿는 자에게 주실 평화를 위한 성탄 눅2:8-14  강종수 목사  2013-12-15 2535
10139 마태복음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라 마5:43-48  한태완 목사  2013-12-14 3523
10138 로마서 생각하기에 따라서 롬8:6-7  한태완 목사  2013-12-14 1811
10137 마태복음 내 삶의 우선순위는? 마6:33  한태완 목사  2013-12-13 3016
10136 열왕기하 좋은 소식을 전해주십시오 왕하7:1-10  이한규 목사  2013-12-13 1987
10135 열왕기하 껍질을 벗어 던지십시오 왕하6:24-33  이한규 목사  2013-12-13 1744
10134 스가랴 교회를 아끼는 삶의 축복 슥6:9-13  이한규 목사  2013-12-13 1691
10133 열왕기하 문제해결에 필요한 4가지 왕하6:1-7  이한규 목사  2013-12-13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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