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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나누는 것이 힘입니다

열왕기하 이한규 목사............... 조회 수 1537 추천 수 0 2013.12.24 20: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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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하12:1-15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3.11.4 http://www.john316.or.kr 

힘을 나누는 것이 힘입니다

(사무엘하 12장 1-15절)

 

< 남의 것을 빼앗지 마십시오 >

 일본은 섬나라이기에 사방에 해양영토가 있고 특히 동쪽 끝에 있기에 일본 동해에는 너른 대양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주변의 남쪽 해양영토를 포함하면 일본은 광활한 해양영토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래도 독도를 탐내는 침략근성을 보면 불행한 백성이란 생각이 듭니다. 있는 자가 없는 자의 것을 강제로 빼앗는 것은 가장 저주 받을 행동입니다. 일본 땅에 가끔 표출되는 하나님의 분노에도 깨닫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정말 무서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독도 문제를 처리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면 밉거나 얄밉다는 생각보다는 이제는 불쌍하게 보입니다. 광활한 해양영토가 있으면서도 더 욕심과 억지를 부리며 이웃 국가의 인심을 잃는 모습은 곧 다가올 불행의 예고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사람의 것을 강탈해서 힘없는 사람의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일입니다. 언젠가 그 힘없는 자의 눈물은 힘 있는 자의 피눈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도시에 한 결손 가정 아이가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목사님 가정의 냉장고를 그 아이가 목사님 자녀보다 더 많이 열어볼 정도였습니다. 그 아이가 커서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자 청년들이 많은 한 교회가 그 청년을 유혹해서 그 교회로 끌어갔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정성스럽게 키운 아들 같은 그 청년을 그 교회에 빼앗기고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청년을 빼앗아간 그 교회는 복된 교회일까요? 인간적으로도 제일 피해야 할 일을 하고 복을 받기는 힘듭니다. 작은 교회의 성도를 빼앗아가면서 자기 교회를 키우는 외형적인 성장주의는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커진들 하나님께 야단맞을 행동을 한다면 그게 어떻게 복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목사님! 작은 교회에서 같은 또래도 없고 정체된 상태에서 무슨 재미로 교회생활을 합니까?” 그러나 교회생활은 ‘재미’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따라 하는 것입니다. 또래의 만남은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까지 또래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또래가 함께 모이는 교회’보다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교회’가 진짜 교회입니다.

 요새 세대단절이 심각합니다. 세대단절은 인간사회의 무서운 저주입니다. 세대갈등은 희망이라도 있지만 세대단절은 희망조차 없습니다. 지금은 세대갈등이 세대단절로 넘어가는 초입입니다. 이 무서운 사회상의 저주를 누가 막습니까? 세대단절을 막는 최후의 2대 보루가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과 교회에서마저 세대의 소통이 끊기면 그 사회는 미래가 없게 됩니다. 고대에는 최대 저주가 대가 끊기는 것이었지만 현대에는 최대 저주가 세대단절입니다.

 요새 많은 청소년들의 입에 욕이 붙었습니다. 친구들끼리 ‘새끼’란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합니다. 어떻게 고칩니까? 욕이 입에 붙으면 “욕하지 말라!”고 아무리 잔소리해도 안 됩니다. 욕이 입에 붙기 전에 좋은 말을 통해 부정적인 말의 기운을 약화시키는 것이 최적입니다. 즉 ‘존댓말’이 입에 붙게 하면 욕이 입에 잘 붙지 않게 됩니다.

 존댓말을 어디서 배웁니까? 어른 앞에서 배웁니다. 어른 앞에서는 맞담배를 안 피듯이 어른 앞에서는 막된 인격체가 아니라면 대개 존댓말을 씁니다. 결국 존댓말을 배우려면 어른이 필요합니다. 어른이 없어서 존댓말을 못 배우면 그만큼 욕이 입에 붙기 쉽습니다. 결국 요즘 청소년들에게 ‘새끼’란 욕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그의 삶에 어른이 없었고 어른 알기를 우습게 알았다는 증거이자 세대단절의 중요한 표식입니다.

 그 세대단절을 어떻게 회복합니까? 가정과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환경이 중요합니다. 친구 중에 인격적이고 헌신적이고 사려 깊은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의 자녀는 보지도 않고 사위나 며느리로 삼고 싶습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어른의 존재를 알면서 잘 배웠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가정환경이 중요합니다.

 가정환경만큼 중요한 것이 교회환경입니다. 교회는 세대단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때로는 세대단절의 상처를 유발하는 진원지가 됩니다. 교회는 어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어른들의 기도와 기대와 바람과 흐뭇한 미소를 후대들이 먹고 영적인 성숙과 전인적인 성숙을 이루며 꿈과 비전을 이뤄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지나치게 대형화되면 또래끼리 예배를 드리면서 어른들을 섬기며 배울 기회가 없게 됩니다.

 교회는 전 세대가 함께 어울려야 하는 곳입니다. 또래만 있으면 잠깐의 재미는 있어도 꼭 배울 것을 배우지 못하고 결국은 서서히 신앙을 잃다가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결국 또래로 나눠서 예배드려야 될 정도로 교회가 대형화되는 것은 세대단절을 부추기고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듭니다. 선대로부터 삶을 배우기 전에 또래로부터 재미만 배우면 인물이 되기 힘듭니다. 결국 교회에서 어른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입니다. 청년부 찬양 예배에서 아름다운 몸짓으로 찬양할 때보다 예배 후에 어른들의 식탁에 식사를 날라줄 때 더 영성이 깊어집니다.

 일전에 친구 목회자들 사이에 자녀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두 종류의 청년은 가급적 사위나 며느리로 피하고 싶다는 솔직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첫째, 극심한 싸움을 겪었던 교회 출신의 청년입니다. 그 싸움을 보면서 생긴 트라우마로 교회에 대한 후천성 비판주의자나 냉소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리더가 무섭게 싸우면 후대를 위해서라도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십시오. 부부싸움이 극심한 가정의 자녀가 가진 상처만큼 리더싸움이 극심한 교회의 성도가 가진 상처도 큽니다. 물론 그 상처도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긴 합니다.

 둘째, 청년부 예배만 드리는 청년입니다. 교회에서 어른과 어울리거나 어른 섬기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전인적인 신앙인격 형성의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몸입니다. 몸이 건강해지려면 머리, 가슴, 배, 다리가 다 필요합니다. 세대가 단절된 상태에서 열정적인 청년의 가슴만 있으면 온전한 몸이 될 수 없습니다. 획일적인 수평적 사고만 있고 위아래를 살피는 안목과 체험이 없으면 결국 정신적인 불구가 됩니다. 그런 세대단절의 장벽을 깨는데 교회가 선봉에 서야 합니다. 또한 그 일을 위해 대형교회의 자발적인 분립은 필수적입니다.

 큰 교회가 할 일도 있기에 큰 교회가 필요하다는 말도 일리는 있지만 역설적으로 큰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발적인 분립으로 한 몸 교회를 재생산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외면하고 계속 교회의 공룡화를 추구하면 각종 교회 질병과 세대단절이 생기고 영적인 불구 성도들이 양산되며 잠깐 절대 권력을 누리다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왕 목사만 나옵니다. 그것은 교회나 교인을 위해서도 좋지 않고 그 왕 목사를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에서 전도를 가장한 교인 뺏기는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작은 교회가 큰 교회에 교인을 빼앗기는 모습이 불쌍해서 동정심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 뺏기는 아무리 봐도 하나님의 축복은 없고 하나님의 심판만 부르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독도를 노리는 방식의 교회 성장주의는 교회가 가장 피해야 할 일입니다.  

 저의 둘째 딸이 함께 지내는 언니가 있습니다. 그 언니는 10명도 안 되는 작은 가정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가정교회에 그 언니는 얼마나 소중한 작은 암양이겠습니까? 그래서 딸에게 그 언니를 전도한다는 명목으로 딸이 다니는 교회로 인도하지 말고 심지어는 교회 행사에도 초청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딸이 다니는 교회는 저와 아주 가까운 목사님이 담임하는 좋은 교회입니다. 그래도 그런 당부를 한 것은 잘못된 바람이 들어가 그 언니가 큰 교회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그 언니가 교회를 옮긴다면 그것은 가난한 목회자의 작은 암양을 빼앗는 셈이 되는데 그것이 어떻게 복된 모습이 되겠습니까? 저는 제 딸이 하나님의 복과 사랑을 받는 딸이 되길 원하기에 그런 불행의 씨앗을 뿌리지 않도록 신신당부한 것입니다.

 교회와 교인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작은 교회의 성도 빼가기>입니다. 거꾸로 교회와 교인이 가장 해야 할 일은 <작은 교회로 성도 보내기>입니다. 문제는 후자의 축복을 추구하는 교회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왜 그 일을 못합니까? 교인을 ‘제자’로 여기지 않고 ‘재산’으로 여기면 못합니다. 마음을 비우지 않고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인력과 금력을 잃게 되는 그 일의 실천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힘써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분당에 있다가 용인으로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사 간 두 교회가 있습니다. 분당 초창기부터 전도한다면서 양떼를 강제로 빼가기로 쌍벽을 이뤘던 유명한 교회들입니다. 목회윤리의 문제점을 따지기 전에 얼마나 불행한 모습입니까? 그래도 교회가 크다고 그 목회자들은 각종 교회성장 세미나와 집회의 강사가 되지만 그것이 복일까요?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교회가 커지면 힘써 분립을 시도해야 합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사명을 따라 평안과 화평 중에 이뤄지는 교인들의 수평이동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서 필요하지만 전도를 가장한 교인 뺏기는 교회가 가장 피해야 할 일입니다. 본문은 ‘양 뺏기’가 얼마나 저주스런 일인지를 잘 보여주는 생생한 성경 본문입니다.

< 복된 삶을 위한 덕목 >

 다윗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사이에서 불륜의 자식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 이런 비유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성읍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었습니다. 부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았지만 가난한 자는 함께 먹고 마시고 품에 안으면서 자기 딸처럼 사랑하며 키우던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2-3절). 그런데 한 행인이 그 부자를 방문하자 부자는 그 행인을 대접한다고 하면서 자기 양과 소를 잡지 않고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를 빼앗아 대접했습니다(4절).

 그 얘기를 듣고 다윗이 크게 분노하며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는 죽어야 마땅하다(5절).” 자기 얘기인 줄도 모르고 분노하는 그 모습을 보십시오. 그처럼 사람은 자신에게는 항상 관대하고 남에게는 항상 엄격합니다. 또한 그때 다윗은 율법에 명한 대로(출 22:1) 그 양 새끼에 대해 네 배로 갚아야 한다고 했지만(6절) 사실상 부자의 악행은 4배의 보상으로도 갚지 못할 악행이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분노하는 모습을 보던 나단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왕이 바로 그 부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으려고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과 전 백성을 맡겼다. 그래도 부족했다면 필요한 것을 더 주었을 텐데 왜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했느냐? 네가 우리아를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그렇게 나를 업신여겼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7-10절).”

 그 말과 함께 다윗의 집에 재앙을 선포했습니다(11-12절). 그때 다윗이 말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아무런 변명 없이 깨끗하게 회개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단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왕의 죄를 사해서 왕은 죽지 않겠지만 이 일로 원수의 비방거리가 되었으니 왕이 낳은 아이는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13-14).” 결국 그 말대로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심히 앓다가 결국 죽었습니다(15절). 이 장면은 복된 삶을 위해 필요한 3가지 덕목을 교훈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용기

 나단은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 있게 다윗 왕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충고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요새는 부모나 스승이나 어른의 충고도 거부합니다. 그런 세태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충고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견해나 스타일이 다른 것은 이해하려고 하되 잘못이 명백하면 윗사람에게도 용기 있게 충고해야 합니다. 그 일이 때로는 큰 상처와 고난을 동반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해야 합니다.

 물론 충고하는 것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어떤 때는 충고가 독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약이 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는 나단의 간언이 다윗에게 약이 되었습니다. 살면서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도 잘해야 합니다. 사랑과 사려를 품은 침묵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인데 아무도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용기 있게 그 잘못을 지적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2. 지혜

 나단은 용기 있게 다윗 왕을 질책하면서도 아주 지혜로운 방법을 썼습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권위와 사명만 내세워 바로 가서 왕에게 “왕이여! 그러면 됩니까?”라고 하면서 왕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먼저 가난한 자의 암양을 빼앗긴 비유부터 해서 다윗에게 의로운 마음을 불러일으킨 후에 질책했습니다.

 질책의 최종 목적이 ‘선한 변화’에 있기에 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먼저 비유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처럼 비판할 때는 잘 비판하는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비판할 때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상대를 더 완고하게 만드는 것은 ‘생산적인 비판’이 아닌 ‘비생산적인 비난’입니다. 감정을 상하게 하며 충고하는 것은 충고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비둘기의 순결함과 호랑이의 용기도 있어야 하지만 뱀 같은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충고할 때 너무 쉽게 함부로 충고하지 마십시오. 충고할 일이 있으면 그 전에 충분한 기도를 통해 먼저 하나님 지혜를 구하십시오. 야고보서 1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충고하기 전에 기도로 길을 닦으면 성령님이 잘 충고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시고, 충고가 잘 먹혀들 최적의 기회와 분위기도 마련해주시고, 충고 받을 사람의 마음도 열어주실 것입니다.

3. 회개  

 나단의 질책을 듣고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했다.”고 회개합니다(13절). 나단이 담대하게 질책한 것도 용기지만 다윗이 그 질책을 듣고 즉시 회개한 것도 용기입니다. 위대한 인물들의 제일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회개할 줄 아는 삶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회개에 탁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그 잘못을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려고 하면 큰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왜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다윗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습니까? 가장 큰 차이는 회개의 차이였습니다. 사울은 회개를 권고하는 사무엘의 말을 외면했지만 다윗은 회개를 권고하는 나단의 말을 들었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듣는 귀’와 ‘회개’의 차이였습니다. 그 차이가 사람의 미래를 그렇게 다르게 만든 것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신했고 유다도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 받는 수제자가 되었고 가룟 유다는 영원한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까? 베드로는 진심으로 회개했고 가룟 유다는 회개 없이 자살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회개 하나가 사람을 그렇게 다르게 만든 것입니다. 회개에 빠르고 탁월한 자가 되면 축복의 역사도 그만큼 빠르고 새롭게 펼쳐질 것입니다.

< 힘을 나누는 것이 힘입니다 >

 살다 보면 자신에게 실망할 때도 많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잘해서 신앙양심이 살아날수록 자신의 죄와 허물이 더 크게 보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모습으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는 인물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진실하게 회개하면 누구에게나 인물의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다윗은 힘을 과시해서 충성스런 부하의 아내를 빼앗고 심지어는 간접 살인까지 했지만 진심으로 회개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군이 되었습니다.

 결국 진실한 회개를 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 세상에 희망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 희망의 주체가 되십시오. 힘 있는 사람도 무조건 배타하지 말고 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힘 있는 사람이 회개하면 누구보다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된 길로 나서면 그때부터 희망은 시작되고 인물 되는 길이 펼쳐지고 후대가 복 받는 역사도 나타날 것입니다. 또한 역사는 그와 그의 가문을 오래 기억해주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면서 하늘나라의 상급도 클 것입니다.

 하나님은 힘 있는 사람 편도 아니고 힘없는 사람 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자비한 사람 편입니다. 힘을 가지고 불의하고 무자비하게 사용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무섭게 종아리를 맞습니다. 반면에 힘을 가지고 의롭고 자비하게 사용하면 하나님의 큰 칭찬과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힘을 가진 사람의 불의한 땅 뺏기에 상처를 받아 힘 자체를 나쁜 것으로 여기면서 힘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힘 문제로 상처를 받았으면 더욱 선한 목적을 가지고 힘을 얻도록 기도하며 애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그때 힘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 말고 더욱 큰 세계로 시선을 돌리는 훈련을 미리 잘해야 합니다. 한 기업가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습니다. 말은 맞게 했지만 그는 아직도 21조의 추징금을 안 내고 있습니다. 그처럼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할 일만 많이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그 힘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면서 할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요새 우리나라 경제를 보면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폐허 위에서 지금까지 이뤄온 경제적 성공은 생각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경제적 상황만 보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 못 살았다면 절망감은 적겠지만 전체 한국 경제가 후퇴하고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개인의 경제력도 후퇴하니까 절망감이 큰 것입니다. 그처럼 희망이 없어 보이면 다 죽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나 하나라도 희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자신만이라도 깨끗이 회개하고 인물의 길을 다짐하고 다시 시작하면 폐허의 터전에서 얼마든지 새 집을 지어갈 수 있습니다.

 교회를 볼 때도 겉모습이나 숫자만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블레셋 사람 천 명이 나귀 새 턱뼈를 가진 삼손 한 명에 의해 몰살당했습니다.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엘리야 선지자 한 명을 못 당했습니다. 한 명의 힘은 적은 힘이 아닙니다. 우리와 우리 후대 중에 거룩한 영적인 삼손과 영적인 엘리야가 나오면 됩니다. 또한 잘 나눌 줄 아는 힘 있는 인물이 나오면 됩니다. 나눌 줄 모르는 힘은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나눌 줄 아는 힘은 엄청난 역사를 일으킵니다. 힘을 나누는 것이 힘입니다.

 이제 나눌 줄 아는 인물의 꿈을 품고 우리 교회의 최대 무기인 연로하신 권사님들의 기대와 기도를 한 몸에 받아 지혜와 창조성을 발휘해 마침내 큰 인물이 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땅 뺏기에 몰두하는 일제의 침략근성에 매몰되지 않게 미리 마음의 준비를 굳게 하십시오. 또한 교회에 힘이 생기면 공룡조직을 유지시키려는 또 하나의 교묘한 현대식 방편으로 오해되고 오용될 수 있는 수많은 셀 시스템을 운용하기보다는 인사와 재정 문제에서 완전히 독립된 수많은 분립교회를 세우는 멋진 일을 꿈꾸십시오.

 힘이 생길 때마다 분립교회를 세우는 나눔의 꿈! 얼마나 멋지고 복된 꿈입니까? 그런 나눔의 모델 교회가 되는 꿈을 품으십시오. 그리고 그 꿈이 허황된 꿈이 되지 않고 현실화되는 기반 성도가 되도록 나단 선지자처럼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고 다윗처럼 깨끗하게 회개하면서 내일을 준비하십시오. 그래서 그 나눔의 꿈을 한국 교계와 선교지에서 이뤄내고 점점 사회 전체로까지 확산시켜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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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7 열왕기하 자리를 이탈하지 마십시오 왕하9:14-26  이한규 목사  2013-12-24 1324
» 열왕기하 힘을 나누는 것이 힘입니다 삼하12:1-15  이한규 목사  2013-12-24 1537
10175 열왕기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왕하9:1-13  이한규 목사  2013-12-24 2123
10174 열왕기하 좋은 인맥을 만드십시오 왕하8:16-29  이한규 목사  2013-12-24 1302
10173 열왕기하 사람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왕하8:7-15  이한규 목사  2013-12-24 1984
10172 사사기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 삿7:3-7  한태완 목사  2013-12-24 1956
10171 시편 정직하고 진실하게 삽시다. 시51:10  한태완 목사  2013-12-23 1707
10170 누가복음 믿음으로 맞이할 성탄 [1] 눅2:25-33  강종수 목사  2013-12-22 2461
10169 히브리서 시험을 통과하는 믿음 히11:17~19  이정원 목사  2013-12-21 1861
10168 히브리서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는 믿음 히11:13~16  이정원 목사  2013-12-21 2112
10167 히브리서 사라의 믿음 히11:11~12  이정원 목사  2013-12-21 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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