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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하14:1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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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11.26 http://www.john316.or.kr |
열왕기하(33) 성경적인 성공을 추구하십시오
(왕하14:17-29)
< 아사랴와 여로보아 2세의 사적 >
남북 벧세메스 전쟁이 북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후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곧 죽습니다. 반면에 남 유다의 아마샤 왕은 15년을 더 살다가 신하들의 반역으로 라기스로 도망했다가 반역한 무리가 보낸 자객에 의해 죽고 예루살렘에 장사되었습니다(17-20절). 반역의 이유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후 실권을 잃고 지내다가 16세 때부터 공동 왕으로 있었던 아들 아사랴를 따르는 신하들에 의해 내몰려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사랴의 다른 이름은 웃시야입니다. 성경에는 두 이름이 혼용해 사용되는데 자세히 보면 아사랴는 웃시야에 히브리어 자음인 ‘레시(영어의 r)’란 자음 하나만 더 들어간 것으로 두 단어는 어원이 같고 뜻도 유사합니다. 성경에 9번 나온 본명인 아사랴는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다’란 뜻이고 22번 나온 왕명인 웃시야는 ‘여호와는 나의 능력이시다’란 뜻입니다. 아사랴는 단독 왕이 된 후 아카바만에 위치한 중심 항구도시인 엘랏을 정복해 왕권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22절).
한편 북 이스라엘에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가 제 13대 왕이 되어 41년을 다스렸습니다(23절). 여로보암 2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해 여로보암의 모든 죄, 즉 우상숭배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24절). 그렇게 신앙적으로는 잘못된 길로 갔지만 국력을 크게 신장시켜 북 이스라엘의 영토를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했습니다(25절). 심지어는 동북쪽으로 크게 세력을 뻗쳐 다메섹까지 회복했습니다(28절). 쉽게 말하면 여로보암 2세는 북 이스라엘의 광개토대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의 사적을 보면 참된 성공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성경 열왕기는 성공적인 왕의 기준을 “얼마나 영토를 넓혔느냐? 얼마나 성공했느냐?”에 두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어땠느냐?”에 둡니다. 그래서 여로보암 2세는 국토를 넓혔고 국력을 신장시켰으며 경제적으로도 제일 흥왕하게 했지만 성경은 그를 훌륭한 왕으로 여기지 않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라고 기록합니다(24절).
사람이 보기에는 성공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성공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인생을 평가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성공한 인생이 되고 죽은 후까지도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부자이고 성공했어도 죽을 때 사람들로부터 “그 사람 잘 죽었다!”란 소리를 듣는다면 비참한 인생입니다. 가장 성공적인 인생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삶을 사는 인생입니다.
< 성경적인 성공을 추구하십시오 >
언뜻 보면 성공이란 말은 세상적인 냄새가 나서 성공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의구심도 생깁니다. 성공은 성경적일까요? 사람에 따라 성공이 성경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비성경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적인 성공의 판별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성공에 하나님이 있는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공이 인간적인 뜻만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비성경적이지만 성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뤄간다면 성경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안에서의 성공이 기록된 생명책입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가난과 실패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참된 성공을 위해 때로 가난과 실패란 환경을 허락하기도 하지만 가난과 실패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부요함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신만의 부요는 교만으로 흐르지만 하나님 안에서의 부요는 겸손으로 흐릅니다.
사람의 부요함이 감사와 은혜를 잊는 태도로 발전할 때가 많아서 부요함이 잘못된 것이란 편견도 생기지만 하나님은 부요함 자체를 잘못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자식이 잘되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잘될 때 하나님을 잊지 않고 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이 주신 열매로 이웃을 위해 쓰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부요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만 좋아하실까요? 하나님이 부자만 좋아하신다면 불의한 일이 되듯이 가난한 사람만 좋아하신다면 그것도 역시 불의한 일이 됩니다. 하나님은 부자이든 가난하든 “저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라고 생각하는 겸허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결국 이런 역설도 가능합니다. 즉 성공했으면서도 겸허함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변함없이 찾는다면 하나님이 특별히 더 좋아하실 것이란 역설입니다.
크게 성공하고서 더 겸손해지는 역설적인 삶의 꾸준히 실천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는 성공을 성경적으로 만들어 가는 모델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살면서 성공을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성공했어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그 성공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일에 활용함으로 성공을 참된 성경적인 성공으로 만들어 가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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