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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죽으리이다

다니엘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499 추천 수 0 2014.01.01 23: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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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단3:13-18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13.11.17 주일 여의도순복음교회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중략)…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장 13∼18절

 

우리 위해 아들까지 내어주며 희생 하신 하나님
절대 희생과 절대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주셔
‘죽으면 죽으리다’ 신앙으로 살면 기적 일어나


 하나님을 적당히 믿으면서 여전히 인본주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자기에게 유익하고 득이 되는 일이면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출석하는 일을 통해 조금이라도 어떤 손해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단호히 등을 돌리는 삶의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삶의 중대한 위기를 겪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절대 신앙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일단 믿었으면 절대적인 사랑으로 하나님 이외에 더 사랑하는 것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과 교제하시기 위해 사람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만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독생자라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깊습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몸 찢기고 피 흘려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 저주와 절망을 우리를 대신하여 청산해 버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하면 그 은혜와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줄 때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의 희생이 대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손바닥에 있는 손금처럼 잘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이 자리에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이 세상에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시므로 우리에게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나는 너를 위해 내 아들을 죽음에 내주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너를 대신하여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 이상의 사랑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시험해 보신 이가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서야 기도의 응답으로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아들이 귀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이 “제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자 “네 사랑하는 독자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가서 내가 지시하는 땅에서 내게 번제로 드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번제는 짐승을 잡아 날카로운 칼로 각을 떠서 장작불에 올려놓고 전부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짐승들이나 그렇게 드리는 거지 사람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듣고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며 울면서 “하나님! 저는 못하겠습니다”하고 발버둥칠만 합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될 것은 지금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시험 즉, 테스트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브라함아!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질문하시고 시험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은 증명돼야 합니다. 증명되지 않은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튿날 이삭과 함께 사흘 길을 걸어 이제 모리아산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이삭이 말합니다. “아버지, 여기에 장작도 내가 걸머지고 있고 불씨도 내가 갖고 있고 칼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제사드릴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그 말에 아브라함의 심장이 칼로 찔린 것처럼 아팠습니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들의 등을 두들기면서 “아들아, 제물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다고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는 “너희들은 여기에 있어라. 아들과 나는 산 위에 올라가서 제사 지내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드려도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잿더미 가운데서 아들을 도로 살려 줄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 아이와 같이 제사드리고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죽으면 함께 돌아오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함께 돌아오리라’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아마도 아브라함은 부활의 신앙을 이미 믿은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 아들 이삭도 위대합니다. 이미 17∼18살을 먹은 아들이 씨름을 하면 100살이 넘는 아버지를 쉽게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두말하지 않고 아버지께 팔과 다리를 내놓고 묶게 하고 장작 위에 드러누웠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양을 잡아 목을 관통하는 경동맥을 칼로 찌릅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목에 칼을 대어 경동맥을 따려고 할 때 다급한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칼을 대지 말라”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을 받으셨던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네가 평소에 나를 사랑한다고 늘 말하더니 참말이구나”하며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세상을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사랑하되 어떻게 사랑했습니까?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내어 놓을 만큼 사랑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증명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큰 사랑을 갖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과 사랑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물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믿게 되고 믿게 되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믿어야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으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교사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은 아프리카 밀림 속으로 들어가 30년 동안 문명을 등지고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의 소식이 끊어졌기 때문에 스탠리가 이끄는 탐험대가 중앙아프리카의 마을을 샅샅이 뒤지며 다니다가 리빙스턴 선교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미 여러 번이나 열병에 걸려서 죽을 고비를 겪었고, 그날도 열병에 걸려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죽겠습니다. 그래서 스탠리가 그에게 영국으로 귀국하자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그 고통 중에도 “나는 아프리카를 위해 이 몸을 내놓았다. 나는 아프리카를 사랑한다. 죽어도 아프리카에서 죽지 영국에 가서 죽지 않겠다”고 말하며 한사코 영국으로 돌아가기를 거절했습니다. 1873년 3월 19일자 그의 마지막 일기에는 “오늘은 나의 생일입니다. 나의 예수여, 나의 왕이여, 나의 생명이여, 나의 모든 것이여, 오늘을 기하여 다시 나를 바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나를 받아주소서. 독생자를 나에게 주셨는데 이 못난 것, 아무 것도 아니지만 전부 바치오니 사용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록되었으며, 이렇게 기도하고 난 후에 무릎을 꿇은 모습 그대로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조사가 필요 없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다 살고 응답하다 죽었다는 증거를 볼 수 있다”

 리빙스턴은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목숨을 내놓은 것입니다. 세상 무엇보다 귀한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시험해보고 알 정도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기도에도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는 “너가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죽으면 죽으리이다

 성경에는 ‘죽으면 죽으리다’하는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돼 잡혀갔었을 때 많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느부갓네살왕에게 잡혀 갔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꽃다운 젊은 청년 세사람도 느부갓네살왕에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그들의 머리가 굉장히 좋아서 이방인이요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의 각 도의 지사로서 등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느부갓네살왕이 자기의 명성을 높이고 자기를 신으로 존경하게 하기 위해 자기 모습을 닮은 금신상을 두라 평야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할 때마다 모든 사람이 신상에 절을 하면 그 사람은 살고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세상 사람들은 신상을 향해 아직 악기 연주를 하지도 않았는데 엉덩이가 하늘을 쳐다보도록 땅에 머리를 숙이고 조아렸습니다. 어느 왕의 명령이라고 타협을 하겠습니까? 정말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악기를 연주하니 전부 다 그 우상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죽음을 두고서 저항을 했습니다. 그들은 그 우상 앞에 나가서 절대로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깊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뿐 아니라 죽음까지 각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발로 그들은 느부갓네살왕의 앞에 섰고, 결국에는 불구덩이에 떨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불구덩이에서 건져낼 수 있는 하나님이요, 만일 건져내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에 절하지 않습니다”라고 왕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바로 ‘ 죽으면 죽으리다’의 신앙인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을 보면 마음이 떨립니다. 결국 칠배나 더 뜨겁게 달궈진 풀무불에 그들은 빠졌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머리털부터 시작해서 옷이 바싹하고 탈 것인데 타지도 아니하고 그 세 사람을 묶었던 밧줄이 다 불에 타고 사지백체가 자유롭게 되어 구덩이 속에서 춤을 추면서 빙글빙글 강강수월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세사람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네 번째 사람이 함께 와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데 느부갓네살이 보니 네 번째 사람은 ‘인자’의 형상 즉, ‘신의 아들’ 같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시기 전에 영으로 계셨을 때, 그들이 있던 풀무불 속에 함께 계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지킨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위해 그가 뛰어 들어오자 불에 타지 아니하고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은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그들을 다시 끌어내어 머리를 만져보고 옷 냄새를 맡아 보고 끌어안아보니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단 말입니다. 결국 그는 무릎을 ‘탁’ 치면서 “이런 신을 우리나라에서 본 적도, 역사적으로 그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이제부터 우리 나라에서 누구든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인 하나님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비하해서 말하고 조롱하면 그놈은 잡아서 죽이고 집은 거름무더기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하고 싶은 말은 다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더 지위가 높아지고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바로 ‘감사’입니다. 성경에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내 서원을 갚으며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감사는 원망, 불평, 탄식 이 모든 것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요사이 독감 백신을 많이 맞잖아요. 감사는 마치 독감 백신주사를 맞으면 독감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백신주사입니다. 범사에 쉬지않고 매일매일 감사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저그저 무슨 일에든지 감사하면 원망, 불평, 탄식이 싹 사라지고, 미움을 이길 수 있는 것도 결국 감사입니다. 감사를 통해 우리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늘 넘치는 말로 감사하고 감사할 수 없는 형편에도 감사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더 많은 감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제가 살던 시골 동네 공동우물에 가면 물을 퍼 올리는 펌프가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물이 차 있어서 핸들을 움직이면 물이 퍽퍽 나오는데 어떤 때는 ‘덜커덩’ 거리기만 하고 물이 한방울도 안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시골의 아낙네들이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 몇 바가지를 가지고 와서 그 속에 부어 놓습니다. 물을 부어 놓고 난 다음 핸들을 움직이면 다시 ‘퍽, 퍽, 퍽’ 소리를 내며 물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과 생활이 다 메마르고 아무리 감사하려고해도 목에 딱 걸쳐서 도저히 감사할 수 없을 때, 마치 막힌 펌프에 몇 바가지 물을 붓듯이 감사를 부어야 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감사가 넘쳐 나오기 시작하고 감사할 일도 함께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 마음속에 계셔야 행복하지 인간적인 행복은 조금 있다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없어져버립니다. 우리 모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을 더 믿게 되고, 하나님을 더 믿게 되면 사랑이 넘쳐나고, 사랑이 넘쳐나면 믿음이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믿을 때는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사랑이며, 그 이상의 사랑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정말 목숨을 내놓고 절대적인 믿음의 모습으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상처를 입거나 죽을 까봐 두려워서 완전히 내어 맡기지를 못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허우적거리고 발버둥을 치면 그럴수록 물에 점점 더 가라앉게 됩니다. 그러나 죽든지 살든지 물에다 몸을 맡겨 버리면 물에 뜨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인 믿음으로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모두 주님께 내어 맡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과 절망 위로 떠오르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 점점 더 고통 가운데로 가라앉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증거해 주십니다.

 시편 118편 6절에 “야훼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라고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 누구도 우리를 해칠 수 없으며, 세상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어떤 순간에도 담대해집니다. 신학자 뱅겔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외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방패가 돼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뮬러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독일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만명의 고아들을 수용하는 고아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이런 고아원을 만든 이유에 대해 자신의 자서전에 고백하기를 “아무 것도 없는 내가 기도와 믿음만으로 고아원을 세우고 운영할 수 있다면,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고아원을 세운 핵심 이유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고아원을 세워 만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킨 위대한 일을 하는데 그는 사람들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늘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서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다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은 자그마치 5만번이나 응답을 받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여기에서 꿇어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잊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합니까? 그러니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에 항상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시며 이미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더 많은 기적을 체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위한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세상을 위해 보내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하신 것 또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죽으면 죽으리다’의 신앙으로 절대 감사와 절대 사랑을 날마다 고백하며 실천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늘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고 성령을 통해 깨달음과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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