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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신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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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 참고 : |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목적
본문: 신명기 8:1~ 3 * 찬송 445장 (통 502장)
요셉, 다니엘, 여호수아 등은 눈에 띄는 허물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허물없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성경은 그들의 허물에 대해서 침묵합니다. 이들에게서 큰 허물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두 광야의 연단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노예와 감옥이라는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다니엘은 풀무불과 사자굴의 위협을 통과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오랜 기다림의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광야는 지나기에는 힘든 곳이지만, 인생의 유혹과 시험에 대한 백신 역할을 감당합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둘 다 시작할 때의 배경은 비슷합니다. 둘 다 겸손했고, 둘 다 출중한 외모가 있었고, 둘 다 리더십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무너졌고, 다윗은 세워졌습니다. 다윗에게는 광야가 있었고, 사울에게는 광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연단이 없는 인생은 약합니다. 광야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힘이 없습니다. 광야가 없으면, 광야의 시간 이상으로 그의 삶에서 대가를 치루게 됩니다.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팔 수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실제로 에스키모에게는 냉장고가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문화인은 냉장고 정도는 있어야 됩니다, 선진국 시민은 냉장고는 필수라고 계속해서 광고하면 됩니다. 그들의 남보다 앞서고자 하는 욕망을 계속 자극하면 에스키모도 냉장고를 삽니다.
필리핀의 이멜다는 구두가 3,000켤레였다고 합니다. 인간에게는 그만큼의 구두가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욕망으로 살면 이멜다 같은 행동이 가능합니다. 이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요가 아닌 욕망에 이끌려 삽니다. 그래서 쓸데없는데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초점 없는 인생을 삽니다.
왜 광야의 사람이 강합니까? 광야는 우리에게 필요에 의해 사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필요로 살면, 많은 것이 없어도 됩니다. 진짜 중요한 일에 집중해서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도원에 방문했습니다.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무엇을 요청할까 한참 기대했습니다.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그것 없이도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필요는 크지 않습니다. 욕망이 큽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영국의 최고 전성기를 이룬 왕이 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1644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력화시키기고 대서야 제해권을 장악합니다. 엘리자베스의 강점은 그의 광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생후 3달 만에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3살 때 아버지 헨리 8세가 어머니 앤볼린을 참수시킵니다. 그러고 어머니의 시녀인 제인 시무어와 결혼합니다. 얼마나 한이 맺힌 인생이었겠습니까. 이후 피의 메리라 불린 언니 메리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메리는 엘레자베스 1세를 런던 탑에 가두었습니다. 자신도 어머니처럼 언제 참수형을 당할 지 알 수 없는 위기의 순간들이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영국의 왕이 되었다고 통보받습니다. 말 그대로 ‘감옥에서 왕좌로’ 옮겨진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감옥에서 왕좌로 옮기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의 평생 그 광야의 연단을 잊지 않습니다. 모든 정책에 있어서 욕망의 결정이 아닌 필요의 결정을 합니다. 광야가 영국 최고의 왕을 만든 것입니다. 언제나 인물은 광야에서 나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최고의 학교입니다. 광야는 욕망을 죽이는 곳입니다. 필요에 집중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겉멋을 죽이는 곳입니다. 광야의 연단을 기뻐하십시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 67)
광야에서 우리들은 메마름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는데, 광야는 메마른 곳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메마름을 극복하고 사는 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그가 요단강에서 외칠 때 그의 말을 듣게 될 사람들의 영적 고갈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사람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히브리인들이 수세기 전에 깨달았던 것처럼 광야에서는 긍휼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와 같은 고초를 겪어 본 사람만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데, 광야에는 달리 의지할 것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의 40년은 낙심과 고통, 눈물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의 여정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이 숨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광야길을 걷게 하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겸손하게 하시려고 광야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노예생활로 인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오면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셔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게 하시려고 광야의 길을 걷게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히 순종하는지 보시려고 광야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행동입니다. 또 온전한 순종이 하나님의 온전한 복을 받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의지적인 믿음으로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누리기 바랍니다.
셋째,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분문 신명기 8장 3절을 읽겠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도 마귀의 시험을 같은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시지 않는다면 다 죽습니다. 그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진정한 양식입니다. 고난을 통해 겸손과 순종을 배우고 생명력있는 말씀의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은 지금도 원하고 계십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십니다.(잠17:3) 무릇 광야의 길(징계)이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히12:11).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요23:10)
아비 독수리는 높은 곳에 만들어진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때가 되면 새끼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합니다. 독수리는 먼저 가시를 물어와 보금자리에 넣고 그 위에서 날개를 너풀거립니다. 가시에 찔린 새끼 독수리들은 자리를 어지럽히고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아비 독수리를 따라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봅니다. 그러나 날개에 힘이 없기 때문에 여지없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러면 아비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 날개 위에 얹습니다.
모세는 80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살면서 그 기간을 독수리 훈련기간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독수리가 어디에 집을 짓는지, 어떻게 새끼를 기르고 훈련하는지를 너무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32:11-12).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는 시가 있습니다. 자식을 품 안에 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때로는 광야로 내보내 찬이슬 길도 걷게 해야 합니다. 젊은 시절의 시련과 도전은 인생의 좋은 보약입니다. 지금은 울어도 훗날에는 웃습니다.(시편 126:5)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5:13)
광야의 길은 우리를 겸손케 하며(대하33:12),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합니다.(신4:30) 광야의 길 뒤에는 상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벧전1:7) 그러므로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완성의 계기임을 알아야 합니다.(롬5:3-4, 벧전4: 12- 13)
* 기도: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고난도 하나님의 역사의 방법임을 알게 하소서. 광야길을 걸어갈 때,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임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소서. 우리가 고난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게 하시고, 고난이나 어려움 중에도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철저하게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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