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스2:1-20 |
|---|---|
| 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2장 1절-20절.
참고: 2장 전체.
1절-20절: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바로스 자손이 이천 일백 칠십 이명이요 스바댜 자손이 삼백 칠십 이명이요 아라 자손이 칠백 칠십 오명이요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 팔백 십 이명이요 엘람 자손이 일천 이백 오십 사명이요 삿두 자손이 구백 사십 오명이요 삭개 자손이 칠백 육십명이요 바니 자손이 육백 사십 이명이요 브배 자손이 육백 이십 삼명이요 아스갓 자손이 일천 이백 이십 이명이요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 육십 륙명이요 비그왜 자손이 이천 오십 륙명이요 아딘 자손이 사백 오십 사명이요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 팔명이요 베새 자손이 삼백 이십 삼명이요 요라 자손이 일백 십 이명이요 하숨 자손이 이백 이십 삼명이요 깁발 자손이 구십 오명이요.
그 뒤로 집에 돌아가셔서 계속 읽어보시고.
우리 인간들이 볼 때에는 모든 인간이 다 똑같은 인간으로 보여집니다. 택자나 불택자나 다 똑같은 하나의 인간 같으나 하나님의 주권섭리나 목적 면에서는 택자와 불택자는 엄연히 다릅니다. 물론 신학적 용어로 볼 때에 택자에게는 구원건설이 있지요.
우리가 일반 신학적으로 볼 때에 만인 득구설이 있습니다. 이 만인 득구설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도 자손들의 선행이나 제사나 헌물에 의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신인 합동설이 있지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아니고 인간의 힘도 절반, 하나님의 힘도 절반, 이렇게 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그런 학설도 있다 그 말이요.
그리고 또 예지 미정으로 되어 있는 그런 학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설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그 이전에는 모르고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 예수님께서 ‘누구 누구’ 하고 택하는 자는 죗값이 지불이 되어 구원이 확정이 된다고 하는 그런 설도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릴 때에 죗값을 지불했다고 하는 것.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칼빈주의에서 주장하는 게 있는데, 장로교에서 많이 주장을 하지요? 후택설이 있고 전택설이 있습니다. 전택설은 뭔가 하니 인간이 나기 전에 ‘누구 누구 누구는 구원이 된다’ 하고 미리 정해놨다는 거고, 후택설은 인간이 태어난 후에 ‘누구 누구 누구’ 하고 선택한다는 것.
그러니까 후택설은 뭔가 하니 인간이 타락함으로서 영벌을 받아 지옥을 가게 생겼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전부 다는 지옥을 보낼 수가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몇 몇 사람은 구원해 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거지요. 타락한 인간을 전부 다 지옥에 보내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면이 없어지는 것 같다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사랑이 있기 때문에 몇 몇 사람은 구원해 냈다고 하는 것.
그러면 왜 몇 사람만 구원해 냈느냐? 그거는 하나님의 본질은 진리요 공의이시기 때문에 그 지공성에 의해서 몇 사람은 구원해 냈다고 하는 거고, 그러면 ‘왜 몇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는 거냐?’ 이렇게 묻는다면 하나님 왈 ‘그건 내 마음이지. 천국에 보내는 것도 내 마음이고, 지옥에 보내는 것도 내 마음이다.’ 그러니까 성경구절에 토기장이 비유가 있지요? ‘토기장이가 귀히 쓸 것도 만들어 놓고 천하게 쓸 것도 만들어 놨다. 내 마음대로 보석을 담을 그릇도 만들 수 있고 꿀을 담을 그릇도 만들 수 있고 오줌통이나 요강단지 같은 그런 그릇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네가 무슨 잔소리냐?’ 뭐 이런 식이라 그 말이요.
이거는 어딘지 모르게 찜찜하게 들리지요? 이런 주장은 우리 인간이 말도 못하고 인격이 전혀 없는 그릇과 같은 존재라면 그럴 수도 있는데 인간은 자유성이 있단 말이요.
이렇게 얘기하는 데가 주로 장로교 계통인데, 전택설은 뭔가 하니 인간 타락 전, 만세 전에 구원을 받을 인간과 지옥에 갈 인간을 이미 구분을 시켜놨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맨 마지막 사람까지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을 미리 예정을 하셨다는 설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런 말들을 새겨보면 하나님께서는 선택을 한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인데 그런 주장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그 선택목적의 가치성이 그만 없어져 버려요. 잘 새겨들으세요.
이때까지 말한 후택설이니 전택설이니 만인 득구설 등에서는 선택목적의 가치성이 없어진다. ‘이렇게 이렇게 선택을 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만들었느냐’ 하는 아주 가치 있는 것이 분명히 더 있을 텐데 그만 그 면이 싹 사그라져 버린다 그 말이요. ‘왜 선택을 했느냐’ 하는 그 면이 사그라진다.
원래는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독존자로 자존자로 계셨지요? 이 하나님은 자체적으로 완전자요 무한자입니다 또한 당신이 계시는 곳은 신령계요 완전계요 무한계요 영원계입니다. 그곳에 독존적으로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누리시는 그곳이 너무 너무나도 좋아서 당신의 애성의 속성상 그걸 당신 혼자 누리기를 원치 않는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후택설, 전택설, 예정’ 하는 그런 설에는 그 좋은 천국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은 들어있지 않다 그 말이요. 당신의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그런 의욕의 마음이 없다 그 말이요. 단지 앞의 여러 주장들에서는 왜 택했다고 하느냐? 그건 ‘하나님 내 마음데 드는 대로 택했다’ 하고 마는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그 천국이 그렇게 좋기 때문에 당신께서 홀로 그 천국을 누리시기에는 인간의 표현으로 너무나도 아깝다 그 말이요. 그래서 ‘이 세계를 누구랑 좀 같이 누려보자’ 해서 사람을 만들었는데 그 천국을 당신처럼 누릴 수 있게 하려니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서 천국을 주고 싶어서 택했다는 말과, 앞에서 말한 예정 면으로 숫자적으로 택해서 ‘이 자는 천국에 갈 자고, 이 자는 지옥에 갈 자이다’ 이렇게 택했다는 말과 어때요? 그 느낌이 어떻게 들립니까?천국을 주고 싶어서 택했다는 말에는 인간이 얼마나 존귀하다고 하는 그게 들어있지만 다른 여러 설들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존귀하고 귀중하다고 하는 그 애성과 인간을 행한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이 슬며시 약해져 버리지요.
‘천국을 주고 싶어서 택했다’고 하는 말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누리시는 그 세계를 주어서 당신과 함께 누리게 해 주고 싶은 그게 들어있다 그 말이요. 인간의 존귀성 가치성 사랑성 애정성 이게 들어있다 그 말이요. 우리가 그 면을 잘 새겨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14만 4천이 있지요? 이거는 천국국민의 숫자는 아닙니다. 상징수라 그 말이요. 여호와의 증인들은 14만 4천 명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걸로 얘기하지요? 그러니까 문자적 액면적으로 보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가장 성경적이에요. 가장 성경적인데 이단입니다. 이단이에요.
무생명체 즉, 돌 같은 이런 거는 동성 동질로 만들었어요. 동식물들은 같은 형, 같은 성질로 돼 있는 것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 그런데 인격의 세계에서는 인격적인 실력과 능력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동등으로는 가치가 없어요. 인격의 세계에서는 다 똑같다고 그러면 가치가 없어.
이를 테면 까치가 우는 건지 노래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소리는 똑같아. 그런데 인간의 세계에서는 도덕적인 세계 인격적인 세게이기 때문에 노래 부르는 게 똑같습니까? 각자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고. 사람이라고 하는 그 점은 똑같은데 인격적인 측면에서 모든 재간들이 다 달라. 이게 인격의 세계라 그 말이요. 똑같으면 가치가 없다.
또 예를 들면 잘난 사람은 못난 사람이 옆에 있어야 잘난 사람이 가치가 올라가지요. 그렇지요? 이런 것이 인격의 세계다 그 말이요. 이런 걸 따지고 볼 줄 아는 것이 인격의 세계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공평하신 분이신데 어떤 사람은 더 아름답게, 어떤 사람은 더 강하게 또는 약하게 이런 식으로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놨다면 이거는 공평하지를 않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차등적으로 영원히 무한하게 가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었다면 피조물인 인간이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항의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 사건 자체가 항의성을 가진 사건이 돼 버리는 겁니다.
그런고로 이 현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존귀 귀천 빈부 강약 고저 비추 대소 희비 안고 이런 것 등을 하나님께서 영원성으로 준 것이 아니고 자기 인격으로 만들라고 그 재료로 주신 거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적인 측면으로 가만 보면 부자라도 더 많은 부자가 있고 조금 가진 부자가 있는데 덜 가진 부자가 사람의 인격이 더 좋은 사람이 있고, 또 한 편 가난해도 사람이 인격적으로 부자보다도 더 좋은 사람이 있더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게 다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자기의 인격을 만들 수 있는 재료로 준 거라 그 말이요.
우리에게 주신 현실은 영원성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현실이던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현실이 가난이던 부요던 약하던 강하던 모두는 영원성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이 현실은 구원을 잘 이루라고 가장 적절하게 자기에게 준 환경이요 구원건설의 재료감입니다. 그러니 누구 탓 할 게 없어요. 하나님의 원 목적대로만 살면 됩니다.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요 영원불멸의 존재요, 천국도 영원적인 곳이요 지옥도 영원적인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궁세계를 이어받을 영적인 후사입니다.
인간은 중생하는 그 찰나는 미모나 능력이나 지능 면이나 감각 촉각 면이 모두 일정합니다. 영적 면에서 말이요. 중생, 거듭남의 그 찰나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말하자면 영점(0)에서 시작이 되는 겁니다. 어느 시대에 태어났던 중생하는 찰나 영점에서 시작이 되어서 올라가는 거라 그 말이요.
그런고로 영과 육이 결합되어 있는 동안에 내 이성과 몸이 영의 지배를 잘 받게 되면 즉, 중생된 영에게 이성과 몸이 지배를 받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진리와 영감으로 내 중생된 영에게 역사되고, 또 이 역사성이 이성과 몸에게 역사되어 가지고 외부활동으로 나간다 그 말이요.
이렇게 될 때에 그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간, 물론 일반적으로 도둑질을 하거나 이건 아니지요. 그러한 사람의 상태는 무엇을 하든지 간에 생명의 운동이요, 진리의 운동이요, 성령의 운동이요, 구원운동이요, 성령의 열매가 맺혀져 나가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내 마음을 또 잘 다스려 나가게 되고 이러면 나에게서 구원의 효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내 이성이 바벨론을 사랑하고, 바벨론을 쳐다보고, 목적하고 이렇게 되면, 바벨론은 세상이지요? 이렇게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사랑하고 쳐다보고 나가게 되면 내 자체적 구원은 중단이 된다 그 말이요. 자라지를 않는단 말이요. 믿음이 자라지를 않아. 신앙이 자라지를 않아. 성경이 깨달아지지를 않아.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진리적으로 단절이 되고 생명적으로 단절이 되고 구원중단이 다 돼버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가 깨달아져서 하나님 앞에 바른 관계성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입혀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하나님의 도덕성 하나님의 능력성이 새사람의 중생된 영을 통해서, 말하자면 내 이성과 몸을 통해서 활동되어 나가게 되면 그의 영모가 달라지고 심모가 달라지고, 이렇게 되니 나의 외모(표정)도 달라집니다. 그걸 아셔야 됩니다.
내 중생된 영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이성과 몸을 잡고 이렇게 활동이 돼 나가면 마음도 잘 다스려지고, 그렇게 되니 영적 미모성이 아름다워지고,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온유해지고, 이렇게 되니 내 육신의 얼굴도 달라진다 그 말이요. 항상 인상을 쓰고 쭈그러져 있으면 그 어디 좋겠어요? 그러나 새사람으로 주격이 돼서 살면 얼굴도 예뻐진단 말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 입장에서 ‘선택’이라 할 때는 우리로 하나님의 후사로 삼기 위해서, 하나님의 그 세계를 누리고 다스리게 할 목적으로 우리를 지었다는 그런 면에서 선택이라 그 말이요. 그런 면에서 예정이라 그 말이요. 이건 앞에서 말한 여러 예정설과는 조금 다르지요?
일반적으로 보통 장로교에서 ‘후택설 전택설’ 하는 것은 ‘몇 명은 천국 보내기로 한 거고, 몇 명은 지옥 보내기로 한 거다’ 하는 면에서 숫자적으로 예정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서 말씀드리는 것은 택자의 예정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신령천국을 누리고 다스리는 그 면에 강조를 두고 하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숫자가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숫자에다 붙여가지고 강조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된 택자는 신령천국을 그렇게 다스릴 거다’ 하는 그 면에다 강조를 두는 거지요. 다르다 그 말이요.
그런고로 우리는 후택설도 아니고 전택설도 아니고 뚜렷한 하나님의 선택과 목적과 가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택자로 하여금 천국을 맡기기 위해서 지으셨다 그 말이요.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전택설은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지 않아도 미리 다 아시니까 인간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 누구 누구 몇 명은 천국에, 누구 누구 몇 명은 지옥에 가도록 정했다는 것입니다. 또는 ‘모든 인간 중에 내가 이런 이런 사람은 선택을 해야지’ 했다는 겁니다. 인간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서 그렇게 했다는 거지요.
그 다음에 후택설은 인간을 다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 ‘너 너 너’ 하고 천국에 보내주기로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면 또 ‘너 너 너’ 이렇게 선택을 해서 천국에 보낸다고 하는 거지요.
우리는 뭐요? 그런 의미보다도 천국을 맡기기 위해서 인간을 지었다는 것. 그러니까 그 강조점이 다르지요. 숫자는 하나님의 숫자예정에 맡기고 우리로 천국을 맡기기 위해서 지으셨다 그 말이지요.
성경에 ‘천히 쓰는 그릇, 귀히 쓰는 그릇’을 말씀한 것은 우리는 기본구원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인간 네가 인격자니까 귀하게 쓰여질 좋은 그릇이 되고 싶으냐, 아니면 나쁘게 쓰여질 나쁜 그릇이 되고 싶으냐’ 하는 그 면에 가서 강조점이 붙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다 그 말이요. 성화구원에 관한 말이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자칫 잘못해서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 예수 안 믿고 있는 사람은 천하게 쓸 그릇이다’ 이렇게 몰아붙이면 큰일 난단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강조가 아니고 ‘당신도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여질 그릇인 줄 누가 아느냐’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설득력이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크게 천국을 보면서 다 같은 사람인데 ‘이 사람에게는 천국을 주고, 저 사람에게는 주지 말라’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그 말이요. 왜냐? 인간을 만드실 때 모든 인간을 당신의 모양과 형상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성경에 잡아먹히기 위한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사람이 또 있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있기는 있는데, 우리가 이 말을 들을 때에 인간은 가치 판단 평가성이 있기 때문에 제 1 목적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인간 중에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 받아가지고 누릴 자이니 믿는 자기가 잡아먹히기 위한 자로 되어서는 안 되지요. 그렇지 않아요?
에베소 2장 10절로 보면 인간을 지은 목적이 있지요. 미리 예비한 그곳에 가가지고 행하기 위해서, 선을 위해서 지었다 그 말이요. 신령계를 다스리고 지배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을 지었다 그 말입니다.
‘선을 위해서 지었다’ 할 때의 ‘선’이란 천국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그 실력을 배양키 위해서 활동을 하는 것이 선이요, 그 실력으로 만들어진 것도 선이요, 지금 만들어지려고 하는 것도 선이고, 그 생각 그 마음을 먹는 것도 선이고, 그 목적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도 하나님의 선이라 그 말이요. 이런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 1 선을 하기 위해서 제 2 선이 있는 겁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자의 선관은 일반적인 선관과 다르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도 올립시다.
감사합니다. 영원 전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즉, 다스리고 통치하고 지배하고 누림을 만끽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그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당신의 모양과 형상과 같은 자로 인격자로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를 예수 믿게 해서 그곳에 가서 충분하게 실력적으로 누릴 수 있는 그 실력을 무한히 이루고 오라고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측면으로 역사해 주시는 것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이것을 ‘예수 믿으니 천국 간다’ 그거 하나만 알지 말고 천국 가는 것뿐만이 아니고 ‘신령천국에서의 누림성에 있어서 얼마나 효력적으로 잘 누리느냐’ 하는 그 면을 두고 옳은 진리의 길을 갈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그러니 우리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짧디 짧은 이 한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구원의 실력을 원만히 만들어 가지고 갈 수 있는 지혜롭고 복되고 적극적으로 선의 목적을 두고 선으로 만들어지고, 또 타가 선으로 만들어지라고 협조도 하고 동참도 하며 구원운동을 잘 해 나가는 당신의 복된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을 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