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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하18:2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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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12.13 http://www.john316.or.kr |
열왕기하(43) 기다림은 희망을 내포합니다
(왕하18:26-37)
유다 말에 능통했던 랍사게가 유다의 사기를 꺾으려고 유다 말로 조롱하자 유다 말이 아닌 아람 말로 말하라고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요청했습니다(26절). 그 요청을 듣고 랍사게는 자신이 온 것은 히스기아 왕과 신하들에게만 경고의 말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성 위에 앉은 백성들에게도 경고의 말을 하러 왔기에 그렇게 못한다고 하면서 항복하지 않으면 자기 대변과 소변을 먹고 마셔야 하는 비참한 처지가 되니까 빨리 항복하라고 했습니다(27절).
그 말을 한 후에 랍사게가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유다가 구원을 받는다는 히스기야의 말에 속지 말고 항복해서 풍요로운 삶의 상징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각각 자기의 우물을 마시라고 했습니다(30-31절). 또한 앗수르의 피정복민 이주 정책을 미화시켜 유다 백성들의 항복을 유도했습니다(32절). 더 나아가 랍사게는 여호와에 대한 유다 백성의 신앙을 흔들려고 여호와도 너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33-35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게 말하는 랍사게의 조롱을 듣고 얼마나 참기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왕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기에 백성들이 잠잠히 있으면서 한 마디도 랍사게에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36절). 만약 그 조롱을 듣고 흥분하면 더 침착함을 잃게 되고 백성들 사이에 좌절감과 원망감이 들면서 상황은 더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대적이 조롱하는 말을 퍼부어도 조용히 듣고만 있어야 합니다.
그처럼 랍사게 앞에서는 약하게 보이지 않고 침착함과 여유를 잃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분노가 치밀었겠습니까? 결국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는 랍사게와의 만남을 끝낸 후에 분노와 비탄 가운데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했습니다(37절). 그처럼 잠시 극도의 분노를 참았기에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고 반전의 역사를 꾀할 수 있었습니다.
< 기다림은 희망을 내포합니다 >
때로 살면서 도저히 참기 힘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조롱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가장 필요한 자세 중에 하나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때 감정을 따라 행동하지 말고 믿음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감정을 따라 행동하면 반드시 부작용을 낳고 문제가 더 얽힐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믿음을 따라 행동하면 반드시 문제 해결의 길이 어디선가 보이게 될 것입니다.
성도의 진짜 대적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신의 교만과 불신앙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누구도 성도를 해치지 못합니다. 사방이 막힌 현실로 인해 너무 겁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죄악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갈 길 다 가도록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보고 조금 더 믿음으로 기다리십시오.
언뜻 보면 기다림은 고통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는 기다림은 이미 희망을 내포하기에 오히려 은혜와 기쁨과 흥분의 통로입니다. 낚시에 빠진 사람이 왜 낚시를 끊지 못합니까? 고기가 걸릴 때까지의 그 기다림이 기대와 흥분을 주면서 삶의 희망지수가 높아지는 체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3년 동안 인터넷 말씀사역을 통해 문서선교의 비전을 지속시킬 수 있었던 것은 비전 동역자를 얻게 될 때까지의 오랜 기다림의 시간들이 절망지수를 높이기보다는 희망지수를 높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인생을 활기차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소입니다. 행복은 기다림의 산물이고 승리는 지구력의 결과입니다. 핸드폰 문자를 하고 좋은 답장 문자를 기다리는 시간은 얼마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시간입니까? 성도는 최종적으로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고 기다림 자체가 인생을 지탱시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됩니다.
믿음이란 기다리기 힘든 상황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이 계속되어도 절망하지 않으면 오히려 절망이 지쳐서 물러가고 그때부터 희망이 시작됩니다. 성숙한 믿음이란 기다림의 길이이며 가장 깊은 영성은 기다림의 영성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기다림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결국 실패는 기다림의 실패입니다.
너무 조급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당장 이루라!”고 충동하지만 하나님은 “기다림을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언약함과 부족함과 미숙함을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이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이고 하나님이 앞으로도 기다려주실 것이기에 앞으로도 희망은 넘치게 될 것입니다. 때로 고난의 밤이 찾아와도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다림으로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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