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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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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4.1.7 http://www.john316.or.kr |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마태복음 5장 1-3절)
심령이 가난하면 더 이상 자신을 가장하려고 하지 않기에 평안과 안식을 얻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행복하려면 완벽하게 살라!”고 하지 않는다. 완벽한 존재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완벽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심령이 가난하면 모든 것이 잘 되어야 행복을 느끼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 결국 심령의 가난은 천국 평안을 소유하는 열쇠이다.
한 목회자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민족주의자였다. 특히 일본 얘기만 나오면 이를 갈고 미워했다. 옛날에 운동회를 하면 만국기를 걸어놓는다. 그때 만국기의 일장기를 보면 “저 일장기를 뜯지 않으면 운동회를 못한다.”고 하며 교장 선생님과 싸웠다. 또한 매년 1월 1일이면 경주 토함산에 올라가서 일본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짐했다. “내가 반드시 저 일본을 삼키리라.”
어느 날, 그가 주님을 만나면서 신기한 일이 생겼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 마음 위에 일본을 사랑하는 마음도 생겼다. 그때 일본을 극도로 미워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고 회개한 후 천국 평안을 얻었다. 민족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 ‘심령이 가난한 마음’은 ‘선교하는 마음’이고 그런 ‘선교하는 마음’이 있을 때 어떤 환경도 이겨낼 수 있는 평안이 주어진다.
2. 인간관계가 깊어진다
사람은 대개 거만한 사람들을 싫어한다. 거만한 사람과 식사약속을 하고 그 식사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대개 겸손한 심령을 좋아한다. 겸손한 태도와 언어로 옆 사람에게 희망과 격려를 주면 공동체가 얼마나 큰 힘을 얻는가? 그처럼 겸손하기만 해도 환영받는데 심령이 가난한 것은 겸손 이상의 것이기에 얼마나 환영을 받겠는가?
사람들은 가끔 고민한다. “왜 내게 축복이 적을까? 왜 인간관계도 이렇게 힘들까?” 그런 고민이 있다면 “더욱 겸손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라. 심령이 가난하면 대화가 통한다. 반면 심령이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면 대화도 막히고 사소한 일에도 시험에 든다. 옛날 사오정 시리즈에서 왜 사오정과 대화가 안 되는가?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오정은 자기만 생각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묘사한다.
어느 날, 사오정 집에 강도가 침입해 위협했다. “돈 어디 있어? 내놔!” 그때 사오정이 말했다. “네? 저는 사오정이예요.” 그런 엉뚱한 대답에 강도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사오정에게는 “나는 사오정이다!”란 자기 생각밖에 없어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처럼 자기 생각만 하지 말고 남을 조금 더 생각하고 이해해줄 때 인생이 넉넉해지고 행복이 찾아오고 인간관계도 깊어진다.
3. 풍성한 축복을 받는다
성경에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의 축복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주님이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말씀할 때 기드온이 대답했다(삿 6:14-15). “주님! 제가 무슨 힘이 있어 이스라엘을 구원합니까? 제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저도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게 힘과 능력을 주겠다!”고 하시고 기드온을 멋지게 쓰셨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렘 1:5).” 그때 예레미야가 말했다. “주님! 저는 말할 줄 모릅니다. 어린이 같은 제가 어떻게 그 사명을 이행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내가 네게 말할 것을 주고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후 예레미야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사용하셨다.
축복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주님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주어진다. 결국 행복의 원천은 자신 밖에 있지 않고 자신 안에 있다. 즉 ‘우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축복의 가능성은 가난한 심령이 될 때 커진다. 축복은 ‘능력이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리고 나누고 베풀려는 선교하는 마음은 축복의 최대 원천이다.
주변을 보면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드리고 나누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은 받을 때보다 드릴 때 더 행복을 느끼고 더 축복받는다. 결국 가장 수지맞는 투자는 ‘사랑의 헌신’이다. 남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거룩한 일을 위해 자기 것을 드리는 것은 최고로 복 받는 태도이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하나님이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는가?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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