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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스2:3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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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2장 36절-42절.
36절-42절: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 칠십 삼명이요 임멜 자손이 일천 오십 이명이요 바스훌 자손이 일천 이백 사십 칠명이요 하림 자손이 일천 십 칠명이었더라 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 사명이요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일백 이십 팔명이요 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일백 삼십 구명이었더라.
우리가 성경을 보면 같은 내용이 중복이 된 것이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중복이 되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은 역사를 더 정확하게 알릴 목적으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하니 계시목적성이 다르기 때문에 중복적으로 이곳저곳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같은 내용이구나’ 그러면서 ‘중복된 내용이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하고 연구를 하는 걸 봅니다. 요즘 성경 뒤쪽에 보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렇게 사복음서에 예수님께서 하신 행적을 대조해서 ‘어디에서 어떻게 같고, 어디에서 어떻게 다르고’ 하는 것을 각 권별로 구분에서 써놓은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우리는 그런 차이점으로 보지 말고 여기에서 계시의 핵심이 무엇인가? 뭘 말하려고 이렇게 하셨을까? 왜 이 사건을 기록했을까 그 말이요.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족보를 보면 마태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 있지요? 누가복음의 족보를 보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즉, 예수님으로부터 올라가면서 하나님까지로 올라가 있다 그 말이요. 그리고 역대상의 족보에는 아담부터 이렇게 돼 있단 말이요.
이게 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경은 어디를 봐도 다 같은 구원도리를 가르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구원도리를 가르치는 방편이 다르고, 강조하는 목적이 다르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 그 말이요.
우리가 에스라서도 보면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 올라간 백성들의 수를 말했단 말이요. 또 다음에는 제사장의 수,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수 누구 누구 자손, 누구 자손’ 하며 그들의 종족수를 말했고, 심지어는 짐승들의 수까지 말해놓은 데가 있다 그 말이요. 짐승들의 수가 어디 있지요? 66절서부터 보면 ‘말이 736이요 노새가 245요’ 뭐 이렇게 돼 있단 말이요.
‘누구 자손, 누구 자손’ 하며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이름 속에는 뜻이 다 들어 있어요. 야곱을 ‘이스라엘’ 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하는 것처럼 이름에는 뜻이 다 들어있단 말이요. ‘만민의 아버지, 만민의 어머니’ 뭐 이런 거라든지.
사람의 이름에 뜻이 들어있다고 하는 것은 뭘 말하는가 하니 인격이라 그 말이요. 인격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누구 자손’ 하는 건 계시적으로 보면 ‘인간이 무엇이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지요?
그래서 이런 인간은 인격성자요 다양한 인간이요 복잡한 인간입니다. 한 사람을 놓고 볼 때 복잡하지요? 그런데 같은 인간이지만 수많은 인간을 보면 더 복잡하지요? 아주 복잡한 인간입니다. 또 다양한 인간이다. 그러면서 인격성을 가진 인간이다.
우리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무엇이든지 주먹만 하게 보이기 시작하지요? 더 올라가면 한 점으로 보지이요? 더 올라가서 보면 그마나 그것도 안 보이고 바다와 육지만 보입니다. 더 높이 올라가면 바다와 육지도 지구의 하나로서 점 하나로 찍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요. 반대로 내려올수록 산과 바다 강 이것이 자세하게 보이고, 더 가까이 내려오면 인간들이 보이고, 더 가까이 내려오면 사람의 얼굴이 뚜렷이 보이고, 멀리서 보면 사람만 막대기처럼 보이다가 점점 가까이 와서 보면 얼굴도 눈도 코도 보이면서 사람을 잘 알아볼 수가 있다 그 말이요.
멀리 가서 보면 눈도 코도 안 보이지요. 그리고 멀리서 보면 얼굴 윤곽만 단순하게 보이고, 점점 가까이 와서 보면 얼굴이 아주 복잡하게 보인단 말이요. 그렇지요? 단순하지 않다. 그 또 사람과 얘기를 해보면 더 복잡하단 말이요. 마음이 복잡해지고, 생각이 복잡해지고, 이렇게 복잡한 것이 인간이구나.
그래서 우리가 또 보면 어떤 가정을 쳐다보면 굉장히 엄청나게 복잡한 가정도 있지요. 그렇지 않나요? 내용적으로 들어가 보면 인간이 그렇게 복잡하단 말이요. 복잡한 가정.
우리가 낮에 하늘을 보면 단순합니다. 그냥 새파래요. 그러나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하늘이 복잡해지기 시작하지요? 또 그 하늘을 그냥 쳐다보면 가만있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으나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늘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별들이 얼마나 복잡하게 움직이는지?
그렇게 복잡하게 움직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섭리, 하나님이 정해준 자연법칙을 가지고 보면 그 법칙을 이탈하지를 않고 잘 돌고 있다 그 말이요.
만약이 이것들이 하나님이 정해준 자연법칙을 어기고 돈다면 이게 어떻게 될까? 아마 우주는 대 폭발이 일어나고 말 거라 그 말이요.
하늘이 저렇게 복잡해도 수많은 별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대 통일통치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 그 말이요.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인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주를 보는 것 같고, 인간을 들여다보면 지구를 보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구를 보려면 인간을 보면 되고, 인간을 확대해서 보면 우주가 보이고, 우주를 확대해서 보면 신령천국도 보이고. 그래서 내 자체가 작은 지구다 그 말이요.
자기 자신을 보면 지구가 생각이 나고, 지구가 망가지면 자기도 죽습니다. 이렇게 연결이 돼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말이요.
그러면 이런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그 말이요. 말하자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냐? 일반적으로도 자기 좋도록만 생각을 하고 살면 되겠느냐 그 말이요.
우리가 뉴스로도 볼 수 있잖아요? 뭐 희귀한 짐승이 나타나면 그만 때려잡는단 말이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 말이요. 산을 다 헤쳐 놓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 말이요. 다른 사람에게 아무 해가 없겠느냐 그 말이요. 지구가 망가지는데 다른 사람에게 해가 없겠느냐? 그러면 자기에게는 해가 없겠느냐 그 말이요. 이런 이치가 거기 다 들어있다 그 말이요. 자기 좋도록만 생각을 말고 남도 생각을 해 봐야 된다 그 말이지요.
기도하는 사람도 제 마음대로 해 달라는 이런 기도를 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이요. 할 수 없어요. 안 되는 거지요. 이를테면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자식이 대학교 시험 칠 때 자식이 평소에 공부를 안 해 놓고 대학교 시험에 붙게 해 달라고 그러면 그게 되겠느냐 그 말이요. 그 이기주의적인 기도요.
공부 못하는 자기 아들을 턱 붙게 하면 누군가가 공부 잘하는 아이는 떨어지게 될 거란 말이요. 그렇게 다 연관이 돼 있단 말이요. 평소에 공부 못했으면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 그렇다고 떨어지라고 기도할 필요도 없고, 또한 붙여달라고 기도할 필요도 없지요. 법칙대로 되는 거지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지요. 우리 교인들이 그런 면을 생각을 못하고 있어. 그 되겠느냐 그 말이요.
또 교인들끼리 서로 싸우고 서로 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누가 마음이 아프겠느냐? 자식들끼리 서로 싸운다면 누구의 마음이 아프겠느냐 그 말이지요.
우리가 세상을 보면 세상에서는 각자 대립이 많습니다. 자기 혼자 있어도 자기 혼자 속에서도 대립을 일으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교회도 보면 서로 대립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 성질에 맞는 교회로 찾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뛰는 교회로 찾아가고, 춤추는 교회로 찾아가고, 방언하는 교회로 찾아가고, 잘 두들기는 교회로 찾아가고. 그 참 교회도 여러 가지인 모양이요.
이런 교회들이 천국에 들어가면 얼마나 복잡하겠느냐? 하나님은 시끄럽다고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은 걸러버립니다. 뭘 가지고 걸러버리느냐? 부활을 가지고 걸러버린단 말이요.
바벨론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귀국령이 내려졌을 때에 유대인이라고 하는 유대인은 다 자기 고향을 찾아 갔겠느냐, 아니면 몇 명은 남았겠느냐? 어떤 사람들만 고향을 찾아 갔겠느냐? 시온주의자들만 다 갔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고향 예루살렘을 찾아 갔다 그 말이요. 같은 유대인의 혈통이라도 바벨론에 감염되고 정을 두고 있는 자는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게 뭘 말하는 거냐? ‘예수 믿고 중생을 했으나, 즉 기본구원은 받았으나 세상에다 정을 두고 있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갔다’ 하는 그걸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또 ‘하나님의 택자로서의 예정 가운데 들어있지만 세상에다 정을 두고 있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간다’ 그게 아니고, ‘예수님을 아주 잘 믿는 사람은 1차 부활로 가고, 조금 덜 믿는 사람은 2차 부활로 가고, 아주 안 믿는 사람은 예정 가운데 들어있지만 사망적인 부활이다’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본구원은 단번에 주신 구원으로서 전체성이요 단회적이요 찰나적이요 동등적이요 공통적이요 일반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건 공통적입니다. 기본구원이 그렇다 그 말이요.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은 다 한 조상의 몸에서 나온 동족들이니까 계시적으로 크게 볼 때 기본구원을 얻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갈 때는 ‘잘나고 못나고 간에 정확하게 얼마나 만들어지고 이루어졌느냐’ 하는 그 면에서 만들어진 것만 들어가는 겁니다.
인간들 중에 헌금으로 차별대우 하고 신앙의 경중을 따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로 따지는 겁니다. 과부의 엽전과 부자의 헌금을 %로 따진단 말이요.
예수님의 수학적 지식은 고등수학 지식입니다. 세상에서는 헌금을 많이 해서 칭찬을 하기도 하고 칭찬을 받기도 하고 영광을 받기도 하지만 천국에 들어갈 때는 %로 따지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수갑을 찰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 십일조 떼먹은 도둑이 많을 거라 그 말이요. 십일조 떼먹으면 도둑이라고 그랬으니까 십일조 떼먹은 도둑이 많을 거란 말이요.
천국에는 ‘네가 네 생애에 일을 얼마나 했느냐’ 그게 아니고 ‘투자된 것이 얼마나 많으냐, 어느 쪽에다 투자된 것이 얼마나 많으냐’ 하는 그 면을 가지고 따진다 그 말이요.
‘예루살렘에 올라가라’: 예루살렘에 올라간 수를 말하고 있지요? 명령이 떨어지면 실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수를 따집니다. ‘제사장이 몇 명이냐? 얼마냐? 노래하는 자가 몇 명이냐? 얼마냐? 왕궁을 다스릴 자가 몇 명이냐? 얼마냐?’
세상 복잡성과 충돌과 마찰성과 대립성을 보고 자기의 생각과 마음과 손발 모든 것이 따로 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단일의사 단일통치에 의해 움직일 수 있도록 씻고 볶고 신의 성품으로 충만히 입어놓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내 자체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을 것이요, 청감성적으로 미감성적으로 후감성적으로 시감성적으로 촉감성적으로 다양하게 데리고 들어갈 것이 많을 것이다.
네가 가지고 갈 것은 몇 가지나 되느냐? 아합의 아들이 70명이었지만 아무리 많이 낳아도 무슨 소용이 있었느냐? 다 죽임을 당했단 말이요. 바울은 자식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실질적으로 자식이 없었으나 자식이 많다 그 말이요. 그게 데리고 갈 자기 자식이지요. 그런 식으로 그 말이요.
무슨 학위 무슨 지식이 다 있어도 성령으로 세례 받지 못한 지식은 다 버리고 갈 겁니다. 성령으로 거듭났고 다시 난 거, 성장된 것 이것만 다 데리고 갈 것이라 그 말이요.
세상에서 돈 많은 사람이 많습니다. 돈 자랑을 많이 합니다. 세상에서 교인이 많다고 자랑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보자 그 말이요. ‘세상 바벨론에서 나는 이런 자였다’ 하고 아무리 떵떵거려도 하나도 못 데려갈 수도 있다 그 말이요.
그 때는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는 자녀를 성도를 시온주의로 길러 놔라 그 말이요. 시온주의가 올라간다 그 말이요. 시온주의로 바꾸어지고 성장되고 커지고 된 것만 들어갑니다. 내 속에서 된 것만 들어가고, 내가 연관을 지어서 된 것만 같이 따라 들어간다 그 말이요. 그러니 우리는 가견적인 가식적인 것에 성패를 두면 안 된다 그 말이요. 그 나라에 둬야 된다 그 말이요.
오늘날 교회는 기업체 운영입니다. 교회를 보고 오늘날 자기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자기를 시온주의 사상으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 말이요. 그러면 들어가는 거지요. 그렇게 된 양, 그렇게 된 그 수는 들어가는 겁니다.
기도 올립시다.
옛날 구약시대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하나님으로 닮으려고 세상성적인 것을 얼마나 뽑고 닮았는지? 그렇게 자기가 만들어지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와 같은 적용성이 얼마나 되어 나왔는지? 고레스 왕이 ‘무릇 유대인의 백성 된 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 했는데 그 때 얼마나 올라갔는지? 올라간 사람의 수를 여기다 써놓았습니다.
왜 몇 명, 몇 명이 올라갔다고 각 지파마다 종족마다 이렇게 써놓았는지?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우리들이 무엇을 깨달으라고 이렇게 기록을 하셨는지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단순히 그냥 사람의 수만 생각하지 말고 사람의 숫자 속에 어떤 성분이 올라갔는지를 우리의 성화구원으로 자세히 깨닫고 큰 깨달음을 받아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령천국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 그랬을 때에 시온성으로 닮은 그 자들은 다 올라갈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 ‘기본구원 받은 자는 올라간다’ 그렇게만 보지 말고 기본구원을 받고 성화구원으로 본질적인 면에서 숫자적으로 얼마나 나를 따라서 올라갈 런지? 나의 뒤를 따라서 올라갈 런지? 내가 얼마나 시온주의로 진리의 감화성으로 연관시켜서 나를 따라 올라갈 자가 또 얼마나 많을지?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올라가라’ 하는 그 명령이 분명히 올 터인데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이 시온주의 신앙사상을 가지고 부지런히 연관시켜서 내 것으로 삼아놨다가 명령이 날 때에 가져갈 수 있는, 같이 갈 수 있는 그러한 자들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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