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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1: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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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주일설교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성숙해진 믿음
히11:20-22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믿음이 부족하고 약합니다. 도대체 우리의 이 믿음은 어느 때에나 좀 성숙해질까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이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한 믿음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진실된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침내 성숙한 믿음의 분량에 도달하게 하실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서 우리는 이러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야곱은 믿음으로 승리한 위대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처음부터 믿음 좋았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이었으나, 교활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점점 성숙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의 생애 말기에 매우 성숙되고 성화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그의 믿음이 성숙해져 가는 과정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이 성숙해가도록 도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욕의 사람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남에게 질 수 없다는 자세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항상 장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그는 결국 형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아버지를 속이고 그 축복을 가로채 버렸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축복을 받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원한다고 다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축복을 받기 위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은 결국 분노한 형을 피하여 멀리 도망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잠시 아들과 떨어져 있으면 되려니 생각하면서 야곱으로 친정으로 보냈던 리브가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사랑하는 아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야곱을 택하시고 그를 축복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굳이 야곱이 그렇게 인간적인 술수와 약삭빠른 수단을 쓰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축복하실 작정이셨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노력들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죄악이 될 뿐이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축복하려던 아버지를 속이고 그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러자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리브가는 야곱을 친정 오빠 라반에게로 보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지 않고 친정에 가서 신부감을 얻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도피시킨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졸지에 외가가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매우 두렵고 비참한 심정으로 밧담아람을 향해 도망치다가 밤이 되어 빈들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밤에 야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이 루스에 이르러 거기서 돌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꿈에 그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야곱이 꿈에 보니 하늘까지 연결된 사닥다리가 보였고, 그 사닥다리를 통하여 오르락내리락 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닥다리 위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게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3-15)
사실 야곱은 그 때까지 아버지의 집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야곱은 아버지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이 빈들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더욱 분명하게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직접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야곱의 생애에서 큰 전환점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욕이 꺾이다.
야곱은 밧단아람의 삼촌 집에서 양떼를 치면서 20년을 지냈습니다. 그 20년 동안 야곱은 삼촌 라반에게 수없이 사기와 착취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네 명의 아내와 11명의 아들, 그리고 막대한 재산을 얻었습니다. 그 20년은 하나님께서 라반을 통해 야곱을 다듬으신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의 재산이 크게 불어나자,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을 시기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고향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야곱은 삼촌과 그의 가족들이 양털을 깎으러 간 사이에 온 가족과 가축 떼를 이끌고 삼촌의 집에서 몰래 도망쳤습니다. 라반은 사흘 후에야 야곱이 도망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칠일 동안 추격한 끝에 야곱을 따라잡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을 해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창31:24)
하나님의 강권적인 간섭과 보호하심으로 삼촌 라반과의 문제는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더 큰 시련과 두려운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기 형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를 향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과거에 에서는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것 때문에 야곱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야곱이 보기에 바로 그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것은 틀림없이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피할 길이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홀로 얍복강 가에 남아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 오셨습니다. 야곱은 결사적으로 하나님의 사자를 붙들며 자신에게 축복해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야곱을 축복해 주시면서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심으로 야곱이 절름발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야곱의 정욕이 꺾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이삭에게 물려주셨던 축복을 야곱이 누리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정욕을 꺾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며, 그 표시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사람은 먼저 정욕을 버려야만 합니다.
자기를 포기함
야곱은 욕심이 많았으며 한 번 붙잡은 것은 절대로 놓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자기를 포기하게 되는 계기를 만나게 됩니다. 어느 날 야곱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들짐승에게 찢겨 죽었다는 비통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정말 요셉이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가운데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엄청난 7년의 풍년 동안에 다가올 극심한 7년의 흉년을 대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계시하신 대로, 7년의 풍년이 끝나자 극심한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온 세상에 가뭄이 심하여 먹을 양식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 덕분에 애굽에는 여전히 곡식이 충분했습니다. 흉년이 심하여 양식을 얻을 수 없게 되자, 야곱은 베냐민을 제외한 열 명의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어 양식을 사오게 했습니다.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간첩으로 몰면서 추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막내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들들이 돌아와 이 사실을 전하자, 야곱은 절대로 베냐민을 보낼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요셉을 잃어버린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야곱은 베냐민까지 잃어버릴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온 양식이 다 떨어졌고, 다시 양식을 사기 위해 애굽으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베냐민을 다른 아들들과 함께 애굽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면서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43:13-14) 야곱이 처음으로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포자기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보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형제’는 요셉이 애굽에 잡아둔 시몬을 가리킵니다.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설령 하나님께서 나의 사랑하는 아들을 빼앗아 가신다면 빼앗기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죽어도 내놓을 수 없다던 아들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는 야곱의 새로운 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축복하는 사람으로
허벅지 관절이 꺾이는 고통과 함께 자신의 의지를 꺾어버렸던 야곱은 이제 하나님의 전능하신 섭리와 인도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이전의 야곱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야곱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21절)
야곱은 자아와 정욕을 다 버리고 이제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한 것은 창세기 48장에 나옵니다.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들과 함께 아버지 야곱을 찾아왔습니다. 요셉이 찾아오자 야곱은 병석에서 일어나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성경은 이 때 야곱이 나이가 많아 보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더라”(창48:10)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면서, 장자 므낫세가 아니라 차자 에브라임에 오른손을 얹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차자를 장자로 여기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창48:14)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차자 에브라임을 앞세웠던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눈이 보이지 않아서 실수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장자인 므낫세에게 오른손을 얹어 축복해주시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지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창48:17-18)
그러나 야곱은 실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야곱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밝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여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더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그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창48:19-20)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49장에는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 두 아들들의 장래를 말하고, 그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깨닫고, 믿음에 굳게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 권세 있는 선지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비록 육신적으로는 나이 많아 늙었고 그의 눈은 더 이상 볼 수 없었으나, 임종시에 영적인 눈을 밝히 떠서 미래를 바라보며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며 인생을 마침
본문은 야곱이 지팡이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7장에 야곱의 이 모습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창47:29-31) 히브리서 기자는 이 장면을 가리켜 “야곱이 죽기 전에 마지막 기력을 다하여 지팡이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아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격적인 장면입니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죽기를 원하십니까? 야곱처럼 하나님을 경배하며 죽는 것이 가장 복된 죽음일 것입니다. 그것은 영광스럽기까지 한 승리의 죽음입니다. 어떤 신학교 교수 한 분이 죽음을 앞두고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그 옆에서 간호하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뛰어 나와서 “우리 목사님이 방언을 하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서 보니 그 분은 무의식의 상태에서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계속해서 암송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김진택 목사님은 매일 성경을 50장씩 정독했는데, 평생 성경을 500번 정독했다고 합니다. 임종 전날도 50장을 정독했는데, 임종하시던 날은 50장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임종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항상 하나님을 경배하며, 오직 그 분만을 사모하며 살던 사람이라야 이러한 임종이 가능합니다. 임종은 우리 삶의 연장이며 결론인 것인 것입니다. 우리도 찬송으로, 기도로,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임종을 맞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악착같은 자세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야곱의 욕심과 의지를 꺾으시고, 야곱을 성화시켜 나가셨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자아를 완전히 꺾어버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으나, 하나님의 손에서 아름답게 다듬어지고 성화되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믿음으로 승리했으며,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그의 인생을 마쳤습니다. 오늘 당신도 하나님의 손에서 이렇게 다듬어지고 성화되며, 끝까지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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