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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지은 게 아니라 궁궐을 지었구나.

에스라 궁극이............... 조회 수 1333 추천 수 0 2014.01.31 12: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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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스4:1-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4장 1절-6절.

 

1절-6절: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니라.

 

성전 건축을 하는데 방해자들이 막 나타나지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활동을 여러 방편으로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렇게, 저런 사람은 저렇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의 말이 또 옳은 것 같고. 이런 잡다한 세상이기 때문에 정말 구별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구별해가지고 참을 찾아서 살아야 한다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우리 기독자들은 옳은 것을 잡았으면, 찾았으면 옳게 살아야 한다 그 말이지요. 옳은 것을 자기에게 먼저 써먹고, 자기가 또 옳은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이렇게 만들어지지 못하면 자기에게는 복음의 길이 막혀버립니다. 사람이 안 만들어지면 하나님의 사랑이 떠나버려요. 성령이 떠나버려요. 하나님의 역사가 안 돼 버려요. 그렇게 돼요. 자기는 또 잘한다고 하지만 큰 방해노릇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이걸 볼 수가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믿고 말씀을 들을 때에 먼저 자기가 만들어져야 만이 자기가 온전으로 자라게 된다 그 말이요.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믿는 효력인 온전이 돼 가야지요. 자기에게 그게 돼 가야지 그게 없다면 뭐하려고 예수를 믿겠느냐 그 말이요. 성경에 보면 온전하게 되는 효력이 있다 그 말이요.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는 성질적으로 구석구석이 병적인 성질이 있거든요. 그게 또 고쳐진다 그 말이요. 사람이 인격적인 면에서 올라간단 말이요. 고상해진단 말이요. 고상해지면 자기 마음속에 귀신이 함부로 들어와서 장난질을 못해요. 그러나 성질과 성격적으로 고치지 못하고 있으면 귀신이 들어와서 장난을 해버려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그 속에 든 대로 하게 되니 미쳐버린 듯한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사람이 그렇게 돼버려요.

 

그렇게 되면 사람 앞에서 사람이 추해져 버리고, 그렇게 되면 예수 믿으면서도 안 믿는 사람들로부터 설교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이게 무슨 꼴이냐 그 말이지요. 우리는 온전하게 돼야 된다. 인격의 온전성. 옳은 것을 찾았으면 잡고 그렇게만 살면 자기는 하나님 앞에 옳은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그 말이요.

 

옳은 사람으로 만들어진다는 여기에는 지혜 면이라든지 지식 면이라든지 이해타산이나 평가하고 따지는 면이 옛날 같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해타산 평가를 하듯이 그렇게 높은 수준에서 판단을 내릴 줄 알게 된다. 그 말이요.

 

이게 예수 믿는 건데, 여러분들도 다 알다시피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걸 볼 수 있겠느냐 그 말이요. 참 보기 힘들다 그 말이요. 그러면 어떻게 예수를 믿느냐? 하나의 불교를 믿는 사람이나 미신을 믿는 사람이나 똑같이 살고 있으니 그게 무슨 꼴입니까? 교회 가는 게 맨날 세상 복이나 달라는 식으로 믿고 있으니 그게 뭡니까? 기독교는 그게 아닌데.

 

자기가 하나님의 온전으로 만들어지면 모든 면에서 정리가 되고 정돈이 되고 정립이 돼요. 사람이 그렇게 바로 돼 나가요. 그 전에는 제 멋대로 살았지만 인간관계에서도 바르게 돼 나가고, 어떤 일을 하는 면에 있어서도 바로 돼 나가고.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보면 사람이 교양이 있게 돼 나가지요. 모든 면에 교양이 있단 말이요.

 

그냥 ‘열심히 교회 다닌다’ 그게 아니고 사람이 진리지식으로서 알곡이 되듯이 사람 속이 알차단 말이요. 이게 온전이라. 온전이라는 속에는 그런 게 다 들어있다 그 말이지요. 이렇게 사람이 바로 되니까 생활하는 모든 면에서도 지혜롭게 되고, 살림살이도 지혜롭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잘못돼 놓으면 집이 쓰레기통이 돼가지고 구석이나 찾아가고, 기도원이나 맨날 찾아가고. 이건 일종의 무당이지. 귀신들린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렇게 돼서는 안 되지요.

 

그리고 문제는 또 우리가 옳게 살 때에 ‘내가 이렇게 옳게 나갑니다. 나는 옳은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들으려고 하는,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그런 생각을 버려라 그 말이요. 칭찬은 자기들이 하든지 말든지 그건 자기들이 할 일이고 나는 옳으면 옳은 대로 살면 되는 거요. 자꾸 칭찬을 받고 싶어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요. 오직 ‘하나님 앞에 옳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데만 마음을 써라.

 

온 세상이 옳다고 인정을 하지만, ‘유명하다. 옳다. 능력 있다’고 인정을 하지만 그 사람의 속이 하나님 당신의 성품을 닮지 않은 꼴을 보고서 하나님이 인정을 안 해 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말이요.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그래도 영의 눈이 열리고, 다 분별이 되고, 내가 옛날 같지 않고, 모든 면에서 차원이 올라가고 그러면 최고의 높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옳다고 인정을 받는 건데, 이렇게 인정이 되면 되는 거지 누구한테 또 옳다고 인정을 받아야만 되겠느냐 그 말이요. 하나님이 인정을 해 주시면 되는 거지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말이요.

 

세상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그 수준은 아담 하와가 선악과 따먹고 영이 죽었고 타락된 수준에서의 옳음이라. 그러니 우리는 그런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를 말아라 그 말이요. 우리의 신앙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 그러면서 모든 생활면에서도 지혜롭게 바르게 반듯하게 해 나가게 되는데 뭐가 부끄럽느냐 그 말이요.

 

그럼에도 믿는 사람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니 자꾸 사람에게 끌려가게 되고, 안 믿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주장성이 자기 속에 은근히 들어있어 가지고 그만 성경과 대치되는 길을 간단 말이요. 예수를 안 믿는다가 아니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신앙생활 비슷하게 이질적으로 신앙을 해 나간단 말이요.

 

그렇게 되면 신앙이 자라지를 못하지요. 하나님의 의사와 다른데 어떻게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있으며, 주님의 의사와 다른데 어떻게 주님이 같이 할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요. 이렇게 되어나가면 고통은 누가 고통이냐? 인간 자기가 고통이요. 내적 고통이 오고 외부적 고통이 오지요.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신앙으로 나가면 사람이 첫째는 평안해져요. 외부의 것을 내가 신경을 쓰지 않으니 자기 속에서 심령 평안이 와요. 그렇다고 해서 세상일을 안 한다는 게 아니고 오늘이면 오늘, 내일이면 내일 그 때 그 때마다 사건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일만 해 나가려는 그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그 사건을 걷어치우려면 걷어치우시고, 그리고 나는 그 사건에 빠지지 않으니 마음은 평안하고 지혜는 있고. 그러니 이게 얼마나 사람이 자유롭느냐 그 말이요.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날마다 세상일에 신경을 쓰느라고 인상이 쭈그러지지, 마음에 고통이 오지. 그러니 남 잡고 싸우고 싶지, ‘너 때문에 이랬다느니, 세상이 왜 이러냐느니’ 하지, 저 멀리 있는 부잣집이나 돈 많은 사람과 자기와 비교를 해서 ‘내 팔자는 왜 이러냐’ 하지. 그러니 사람이 무슨 평안이 있을 수 있느냐 그 말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오만 잡병은 다 들 수밖에. 귀신이 자기 속을 차지할 수밖에. 귀신이 어디 평안을 줍니까? 아니지요. 고통 주지, 병 주지, 그러니 돈 나가지.

 

일차적으로 사건을 당하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바로 믿어나가면, 바른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 돈 빠질 구석이 없어. 돈은 없지만 살림살이를 하는데 헛돈 빠지는 구석이 없어. 그러니까 가정 평안이지, 가정 천국이지. 그 얼마나 좋으냐 그 말이요. 그런 맛을 다 본다 그 말이요.

 

그런데 교회들을 보면 그러지는 않고 일만 크게 벌려놓고 사람 긁어모으기 운동만 하고 있으니 사람이 안 돼 놓으니까 교회 안에서 맨 파가 돼가지고 분쟁이 되고 헐뜯고. 얼마나 많이 볼 수 있느냐 그 말이요. 이러면 교회가 지옥이지. 교회가 맨 마귀장난밖에 더 있느냐 그 말이요.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 신앙의 근원입니다. 사람 바로 만들어지는 것. 우리 모두 각자 교회가 사람이 바로 만들어지면 모든 것은 저절로 잘 돼 나갑니다. ‘이거 내가 할 일이구나,’, 믿음이 약한 형제를 보고 ‘아, 이거 내가 도와야 되겠구나.’, ‘이거는 내가 안 해야 되겠구나. 죽는다고 해도 이건 내가 안 해야 되겠구나.’, ‘아, 이 사람은 이런 훈련이 필요하구나. 이 사람은 이런 훈련이 필요하구나. 이 사람은 내가 가서 봐줘야 되겠다’ 이런 모든 지혜가 적시적소에 돼 나간단 말이요.

 

무조건 사랑이 아니란 말이요 진리가 들어가야, 지혜가 들어가야 그게 사랑이야. 무조건 사랑은 무불충이 사랑이요 이용당하는 사랑이야. 쓸개가 없단 말이요. 사람이 중심이 없어. 그러면 이용을 당해. 나는 사랑이라고 하는데 저 자는 그걸 갖다가 이용을 해. 이용을 슬슬 해버려.

 

우리가 심판을 세 가지로 생각을 해 보면 첫째는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아는 공심판이 있는데, 믿는 우리는 이 공심판은 받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형벌을 다 받아주셨다.

 

그런데 어느 교파는 지옥 갈까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건 잘못 됐지요. 우리는 지옥 갈까봐 예수 믿는 게 아니지요.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니 나는 이제 예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것이니 지옥은 못 가는 거지요. 내가 지옥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거.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 그 말이요. 이걸 모르니까 지옥 갈까봐 싶어서 벌벌 떨면서 예수를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옥 안 가려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런 신앙을 가지게 되면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거짓 종들에게 많이 속을 수가 있는 거지요. ‘너 그렇게 했다가는 천당 가겠느냐? 그러니 구제해라. 헌금을 어떻게 해라. 충성봉사를 어떻게 해라. 그래야 만이 지옥에 안 가고 천당에 간다’ 하는 거니까요.

 

하여튼 목사님들끼리 모이면 별별 얘기가 다 나와요. 어떤 사람은 자기는 교회에 안 나가고 헌금을 맨날 자기 이름으로 하기도 하고, 또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는 교회에 안 나오는데 자식이 자기 부모 이름으로 십일조를 하기도 하고. 이건 천주교 식이지요. 이게 다 성경을 모른데서 나온 이방신관이지요.

 

이렇게 되니 ‘성경적이 아니다’ 하는 것은 빤한 거지만 문제는 그게 다 누구에게 속는 거냐 그 말이요. 교인은 뭐 압니까? 예수이름으로 물질투자 시간투자를 하는 거지만 그걸 누가 다 빨아먹겠느냐? 그게 하나님 앞에 받으신 바가 되겠느냐 그 말이요. 그러니까 실컷 이용당하는 거지요.

 

심판에는 또 임시적인 심판이 있지요? 이 임시적인 심판은 절대 정확성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임시적인 심판은 맛을 보여주는 거지요. 임시적인 심판이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다음에 이제 최종적 영원적 사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만 보면 어떤 사람은 공심판이 무서워서 지옥에 갈까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임시적인 심판이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임시적인 심판에 있어서는 ‘내가 이렇게 안 하면, 내가 충성봉사를 안 하면 하나님이 다 뺏어가지’ 해서 벌벌 떨면서 안 뺏기려고 하는 신앙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고, 또는 사심판을 알기 때문에 그 사심판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 그 말이요. 신앙하는 그 차원을 보면 그런 성질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또 보면 교회적으로 예수 믿는 것을 보면 히트 치기 위해 목회를 하는 교역자가 있지요. 뭘 어떻게 하면 히트를 팍 치지요. 그러면 다른 목사님들도 ‘나도 그렇게 하면 부흥이 되겠구나’ 하는 정신을 가집니다. ‘이 시대에는 어떤 방식을 사용하면 교회가 빨리 부흥이 되겠다. 유명해지겠다’ 하는 그런 거. 하지만 그런 짓은 사기꾼들이나 할 짓이지 그런 데에는 예수님의 정신이나 사도바울과 같은 그런 정신은 없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그런 사기꾼들을 못 봐요. 사기성, 거짓 종들을 못 본단 말이요.

 

우리는 세상이 어떻더라도 정신적으로 시온주의로, 아브라함이 신앙으로 사람이 바꿔져 나가는 것. 물론 어떤 행동 하나 둘 고치는 것도 좋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먼저 사람의 정신이 바꾸어져야 된다. 마음이 바꾸어져야 된다. 그러면 행동은 자동적으로 바꿔진다 그 말이요. 양심적으로 가책이 되는 거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해가지고 성공이 되느냐, 실패가 되느냐’ 그런 게 문제가 아니고 성경에서 바른 것을 찾아 살아가면서 옳게만 하자. 바르게만 하자.

 

바른 것을 찾아서 바르게 살다가 보면 바벨론에서 국무총리가 되는 사람도 있지요? 애굽에서 국무총리가 되는 사람도 있고. 또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됐지요? 또 궁중에서 떡 만드는 사람도 되고. 바로 하다 보니 그렇단 말이요. 그리고 때가 되니 예루살렘으로 미련 없이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아무리 직장이 좋지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 할 때는 미련 없이 그거 다 버리고 올라간단 말이요.

 

사람이 바로 되면 어느 처소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자유란 말이요. 진리 따르는 양심은 자유로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진리 따르는 양심은 자유로워요. 매인 데가 없어요. 매이지를 않는단 말이요. 자유에요.

 

그런데 사람이 잘못하면 자기가 애굽에서 자기의 피를 짜내서 피라밋을 지어놓고 가게 됩니다. 애굽의 피라밋 알지요? 모래사막에 크게 지어놓는 거. 그 피라밋을 지어놓고 가게 돼요. 이게 얼마나 원통한 삶인지 몰라요. 못 깨달으면 그런 식이 돼 버려. 못 깨달으면 세상에 노예가 되어서 자기의 피와 땀을 피라밋 쌓는데 흘리게 된단 말이요. 이용당한단 말이요. 애굽의 피라밋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있을 지은 거란 말이요.

 

‘어떻게 하면 내가 세상에서 잘 되느냐’ 하고 지상 저축주의로 살던 내가 천국 저축주의로 살아야 한다. 부요도 가난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니까 부요를 주던 가난을 주던 거기서 내가 어떻게 바로 사느냐 그 말이요. 가난한 자가 됐을 때에 ‘아이고, 내가 부자가 돼야 되겠다’ 하며 막 돈을 찾아가고, 돈 욕심을 내고 그게 아니라 가난을 주었던 부요를 주었던 그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바로 살다가 가느냐?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평생 가난해지라는 법이 있느냐? 또한 부요한 자는 평생 부요해지라는 법이 있느냐? 그건 아니거든요. 부자가 됐다가 하루아침에 가난한 자가 되기도 하고, 재산이 다 날아가기도 하고, 부자로 됐지만 그걸 못 누려보고 죽는 사람도 있더라 그 말이요. 문제는 그런데 신경 쓸 거 없고 어떻게 하면 내가 바로 살다 가느냐?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가는 것도 참 여러 가지 형용 각색으로 가는 사람을 볼 수가 있어요. 우리는 오직 좁은 길만 가니까, 넓은 길로 가지 않으니까 어떻게 보면 세상을 다 알지를 못해요. 넓은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 다 몰라도 돼. 그런데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신앙의 길에 별 희한하게 예수 믿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이요. 요지경이라. 그러나 옳은 성도는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믿음이 되면서 따라와요. 옳은 성도는 그렇다 그 말이요.

 

우리가 에스라서 3장 2장 1장에서 봤습니다만 바른 노선을 찾아야 만이 신앙이 바로 성장이 돼요. 이치가 그래요. 그래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드리고, 초막절을 지키고, 터를 닦고, 그 다음에 성전 건축을 하더라 그 말이지요.

 

이게 다 신앙의 이치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건데, 이 순서를 밟지 않으면 성전은 지어지지를 않고 궁궐이 돼버려요. 이 무슨 뜻이냐? 순서를 무시하고 아무리 잘 지어도 이거는 성전이 아니고 궁궐이에요. 자기는 성전을 지었다고 하지만 그거는 성전이 아니고 궁궐이야.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생활을 한 그걸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대백성들이 ‘아,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살았다네’ 하는 그걸 일부러 느끼기 위해서라도 광야로 나가서 초막을 짓고 산다 그 말이요.

 

그래서 사실 우리가 집회를 한다고 그러면 광야로 나가야 돼요. 그래야 만이 육신적으로 광야생활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거지요. 그런데 보통 보면 그래요? 집회한다고 그러면 잔치 같은 어떤 그런 맛을 보려고 그러지요. 그거 안 되지요.

 

궁궐을 짓는 사람과 성전을 짓는 사람은 똑같아요. 똑같은데 그러나 다른 점은 성전은 시은소, 즉 주는 곳. 성전은 하나님의 시은소. 즉 하나님의 것을 주는 곳. 이게 성전 지은 사람이요. 또 성전은 수은소 즉, 하나님의 것을 받는 곳. 성전에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을 주고받는 일이 이루어진다 그 말이요.

‘네가 물을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니라.’ 성전은 하나님이 것을 주는 곳, 그리고 받는 곳. 

 

우물가에서 죄하고 영생을 바꿨지요. 그러니까 성전은 뭐하는 곳이냐? 하나님의 것을 주는 곳, 또 하나님의 것을 받는 곳. 그 다음에 성전은 바꾸는 곳. 내가 죄를 갖고 가서 하나님의 영생을 받아오는 곳. 바꾸는 곳. 여자보고 ‘네 남편을 가져오라’ 한 것은 ‘네 죄를 가져오라’ 그 말이요. 성전은 바꾸는 곳, 행복을 주는 곳.

 

교회는 죄를 하나님께 드리는 곳. 옛날 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간단 말이요. 그러니까 죄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곳, 죄를 회개하는 곳. 그렇게 되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곳. 죄를 토해내야 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토해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못 받아.

 

교회에서 진리가 자기에게 주어질 때에 신앙 양심적으로 ‘이게 죄로구나. 이게 잘못 됐구나’ 하고 그걸 고치려고 애를 쓰고, ‘이걸 고쳐주십시오’ 하고 죄를 토하는 곳. 또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는 곳이요, 나는 그 은혜를 받는 곳. 그러니까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곳이지요. 너를 살려주겠다 그 말이요. ‘은혜를 베풀어 주겠다’ 그러는데 ‘나는 죄를 안 내놓고 죄 가지고 그냥 죽을 래요’ 이래서는 안 된다 그 말이요.

 

이런 순서를 거치지 아니하면 그거는 성전이 아니고 궁궐이 돼버립니다. 신앙 사상적으로 영적인 면에서 그렇다 그 말이요. 나는 성전을 지었다고 하는데 시은과 수은의 죄를 내놓지 않으면 그거는 성전이 아니라 그 말이요. 자기는 성전을 지었지만 뭐가 되느냐? 궁궐이 돼버려요. 인간 보기에는 성전인데 영의 눈으로 보면 그게 궁궐이 돼버려

 

솔로몬의 궁궐도 성전하고 같이 있어요. 그 솔로몬의 궁궐에는 여러 가지 우상이 있고, 산당이 지어져 있고, 별별 희한한 성질을 가진 총천연색의 여자들이 천 명이나 방마다 다 들어 있잖아요?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사람의 마음속에 그러한 현상들을 볼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게 뭐가 돼요? 성전이요? 궁궐이 되는 거지요. 궁궐이 뭐냐? 누리는 곳. 들어가서 누리게 돼버려요. 그러니까 성전이나 궁궐이나 말하자면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는 성전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궁궐이 돼버린단 말이요. 궁궐은 뭐냐? 누리는 곳이란 말이요.

 

오늘날 교회가 성전이 되어야 하는데 누리는 곳이 돼버렸단 말이요 세상 잡고 누리는 곳. 그러니 죄를 회개할 게 없어. 육적 본능으로 기울어진 향락의 장소라 그 말이요. 이게 뭐요? 솔로몬의 궁궐이란 말이요. ‘성전이냐, 궁궐이냐?’ 성전 같은데 궁궐이야. 누리는 궁궐이 돼버렸어요. 부귀 향락, 먹고 마시고 즐기고, 이따금씩 스바여왕이 쓱 와서 쉬고 가는 곳. 그 궁궐이란 말이요. 영적 면에서 믿는 자 속이 심적으로 궁궐과 같은 그런 곳이 얼마든지 있다 그 말이요.

 

솔로몬의 성전도 성전이고, 헤롯의 성전도 성전이지요.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유대인들 모두가 다 헤롯의 성전을 성전이라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강도의 굴혈이라고 그랬단 말이요. 강도의 소굴이다 그 말이요.

 

그러면 오늘날 교인들이 볼 때 유대인들의 말과 예수님이 말 중에 누구의 말이 옳으냐 그 말이요. 예수님의 말을 옳다고 들어야 할 텐데 오늘날 교회가 그렇게 들리지를 않는다 그 말이요.

 

그래, 인간은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면 그 때서야 압니다. 이런 자는 현재에서 현재 상태를 말해주어도 모릅니다. 이상하지요? 꼭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돼서 당해봐야 안다 그 말이요. 사람이 그렇게 미련해요.

 

‘저 사람이 저렇게 살다가는 분명히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리라’ 하고 선지자가 가르쳐 주는데, 현재를 가르쳐 주는데 모르고 있어. 꼭 전쟁이 일어나고, 포로로 잡혀가고, 형제가 죽고, 피비린내가 나고 꼭 당해봐야 안다 그 말이요. 성경으로 미리 다 가르쳐 줬는데도 모른다 그 말이요. 역사로써 다 가르쳐 줬는데도 모른다 그 말이요. 그러니 이건 망하려고 작정을 한 거지요.

만 명에 대한 죄보다도 내가 나에게 대한 죄가 더 큽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남이 죄 짓는 게 큰 게 아니라 내가 죄 짓는 게 나한테 제일 크다 그 말이요.

 

3장 8절에 보면 성전 기공식을 하지요? 이 때 노인들은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들입니다. 젊은이들은 솔로몬의 성전을 못 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큰 성전을 봤던 사람들은 작은 성전이 만들어지니 한탄이 돼서 웁니다. 또 한 편에서는 젊은이들이 성전 터 위에 성전을 지으니 감격을 해서 웁니다. 젊은이들은 솔로몬의 성전을 안 보았으니 성전이 지어졌다고 좋아서 춤을 춘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성경에 보니까 울고 춤추고 웃고 하는 것이 희비쌍곡이었더라. 늙은 노인들은 울고, 젊은이들은 ‘우리가 성전 지었다’고 하며 막 웃고 춤을 추고. 한 쪽에서는 울고, 한 쪽에서는 막 울고. 그러니 이게 웃는 거냐, 우는 거냐? 멀리서 이 소리를 들으니까 희비쌍곡이다.

 

감격의 울음, 기쁨의 울음, 이게 성전을 짓는 겁니다. 그 다음에 과거의 죄를 통회 자복하니 기뻐서 성전을 짓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합적으로 내 속에서 그것이 해명이 되는 거지요. 이게 성전을 짓는 거요. 성전은 이렇게 짓는 거라 그 말이요. 믿음의 성전, 영적 성전은 그렇게 짓는 거다 그 말이요.

 

기도 올립시다.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를 들어서 성전 짓는 그런 모든 순서를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여기서 바로 깨닫고 영적 면에서 성전을 어떻게 지어야 된다고 하는 이것도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다.

 

저희들이 부지런히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을 붙잡고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실제 생활에서 옳은 행동 활동이 나오고, 옳은 말이 나오고, 정신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고, 하나님의 것으로 몽땅 바꾸어지게 도와주시옵소서.

 

나 혼자만이 바꾸어지는 게 아니고 우리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바꾸어질 때에 하나님 앞에 정말 요한계시록에서 보는 그러한 성전이 우리교회에 다 이루어질 줄 압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성령님이 역사가 되지만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뜻을, 하나님의 뜻을 더 바로 깨달아서 큰 포부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옳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볼 때에 오늘날 지상교회가 다 땅에 붙어있고, 너무나도 저질적이고 귀신의 난장판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뭐라고 한다 할지라도 저희들은 오직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신앙으로만 나갈 수 있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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