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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 마"하고 가만히 외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어젯밤에 연습하고 연습한 대로"감 ·사 ·합 ·니 ·다"라고
해보았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현주누나가 석이를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너 지금 누구한테 감사합니다 하니?"
"엄마한테 할 거다 왜?" "우리 엄마한테는 마음
속으로 해야 하는 거야, 바보야." "마음 속으로는 여러
번 해보았다. 바보하고도 또 바보야." 석이는 현주누나가
때릴까봐 얼른 일어나 세면장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현주누나는
갑자기 마음이 넓어졌는지 쫓아오지 않았습니다. 석이는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윗니, 아랫니 싹싹 닦고, 손바닥에 힘주어 얼굴을 씻었습니다.
코도 다른 날과 다르게 히잉, 힝 세게 풀었습니다. 현주누나가
간혹 찍어 바르는 크림도 살짝 찍어서 양쪽 뺨에 문질렀습니다.
아침밥을 먹고난 석이는 아빠보다도 먼저 서둘렀습니다. 양말을 신고
유치원복을 입었습니다.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메었습니다. 아무도 안보이는
문 뒤로 가서는 가방을 살며시 열어 보았습니다. 가방 속에서는 카네이숀
한 송이가 빨갛게 웃고 있었습니다. 석이한테는 엄마가 없습니다.
언젠가 병원에 간 뒤로는 다신 석이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석이는 아빠를 졸랐습니다. "아빠, 내일 우리엄마한테 데려다
줘." "왜 갑자기 엄마한테 가자고 하니?"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셨어. 엄마한테 감사해야 한대." 아빠는 한참
담배를 태우시다가 코먹은 소리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래,
네 엄마한테 가보자. 언젠가는 알아야 될 일이니까." 그러나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오솔길을 한참 걸어
올라갔습니다. 산새들이 반갑다는 듯이 나무 저 나무에서 쪽쪼구르,
쪽쪼구르, 쪽쪼구르 하면서 맞아 주었습니다. 마침내 잔디가
이제 막 나고 있는 붉은 무덤 앞에서 아빠는 발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허리를 구부려서 석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하였습니다. "석이야,
네 엄마는 아픔 끝에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되었단다." "아빠,
어떻게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되어요?" "엄마의 몸은
이 무덤 속에 있지. 그리고 마음은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 있단다"
"이불도 없이 여기에 누워 있어?" "그래. 이불도
없지.......그러나 지금 우리 석이가 온 것을 알고 계실거야."
석이는 입가에 손을 모으고 불렀습니다. "엄마아"
"엄마아" 메아리가 대답하였습니다. "엄마는
바보, 또 바보다아" "엄마아는 바아보 또 바아보다아"
"약 오르지? 엄마, 얼른 나와, 엄마가 보고 싶다아" "약
오르지이 엄마아 얼른 나와아 엄마아" 아빠가 가만히 석이의
어깨를 끌어 안으며 달래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보려무나. 얼른 나와서 너와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러지는 못하고 네
말을 되집어 보내는 엄마의 슬픔은 얼마나 크겠니?" "아빠,
그럼 내가 이번에는 엄마 말도 할까?" "어떻게?"
석이는 카네이숀 꽃을 무덤 앞에 놓고 다시 소리를 질렀습니다.
"석아아" "석아아아" "차 조심해서
길 건너라 이잉" "차 조심해서 길 건너라 이잉"
"음식은 꼭꼭 씹어 먹어라 이잉" "음식은 꼭꼭
씹어 먹어라 이잉" 구름이 산봉우리를 넘어오자 산그리메가
조용히 일었습니다. 솔바람이 가만가만히 전나무의 높은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
제일제당 사외보 [생활속의이야기] 1988년 3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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