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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문화일보] 이사 -윤수민

신춘문예 윤수민............... 조회 수 1960 추천 수 0 2002.01.14 0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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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jpg

이사 -윤수민


나는 거울 앞에 앉아 있다. 거울 유리에 내 모습이 보인다.
내 몸에는 황금색과 흰색의 부드러운 털이 덮여 있다. 특히 네 발과 주둥이, 배에는 명주솜처럼 희고 고운 털이 덮여 있다. 틈나는 대로 혀로 핥아 바람에 말린 덕에, 내 털들은 언제나 깨끗하고 아름답다. 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내 스스로 해낸다. 무서운 것도 별로 없다. 몸집은 사람에 비하면 작은 편이나, 주변의 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꽤 큰 편이다.
뿐인가. 나의 네 발에는 뾰족한 발톱이 있고 입안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있다. 몸이 유연하고 날렵하여 웬만한 담은 훌쩍 뛰어넘을 수 있고 꽤 좁아 보이는 틈 사이로도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다. 그렇게 어디든 마음대로 다니며 원하는 먹이를 잡아먹는다. 한번 발견한 먹이는 놓치는 일이 없다. 먹이는 어디에든 널려 있다. 먹이가 보이지 않으면 다른 곳을 찾으면 된다. 먹이를 찾아다니다 길에서 사람들을 마주치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야아, 예쁜 고양이구나”하고 감탄한다. 특히 아이들은 “저 예쁜 고양이 데려다 키울래”하고 조르기 일쑤이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말이다.
나는 이제까지 이 ‘나무 많은 집’에 살았다. 동네 사람들이 이 집을 그렇게 불렀다. 이 집에는 나무가 많아 몸을 숨기기에 좋다. 때문에 여러 짐승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이 집의 뒤 담은 산 끝자락과 연결되어 있어, 높이뛰기에 조금이라도 자신 있는 짐승이라면 얼마든지 이 집의 뜰 안에 드나들 수 있다. 그러나 주로 산에서만 사는 너구리나 다람쥐는 이곳에 와도 이 집의 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깨진 거울로 몸을 비추어 매무새를 고치는 즐거움도 몰랐다.
그들은 이 거울을 보면 오히려 여기 비친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 버렸다. 집 주인의 목소리를 들어도 놀라 도망갔다. 오직 나와 같은 종류의 짐승들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 집 뜰 안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며 여유를 즐길 줄 알았다. 이전의 나처럼.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얼마 전, 이 집의 지하실 구석에서 나는 새끼를 낳았다. 네 마리였다. 다른 곳에서 낳고 싶었지만 장마철이라 이 집 지하실만큼 물이 새지 않는 안전한 곳이 없었다. 거의 매일 궂은 날씨여서 낮에도 내가 고른 구석자리엔 빛이 들지 않았다. 그 정도면 어떤 사람도 나와 새끼들을 알아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거미줄과 먼지가 낀 그곳에는 거의 드나드는 이가 없어 그 점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런데 새끼를 낳은 지 며칠 뒤, 지하실 입구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들어 왔다. 하나는 우솔이 어머니이고 하나는 낯선 사람이었다. 우솔이란 이 집에 사는 여덟 살 먹은 아이이다. 나처럼 몸이 알맞게 통통하고 보통 체격인 아이인데 귀찮게도 장난을 좋아했다. 나나 내 동족들을 보면 쫓아와 잡으려고 했다. 마치 우리가 쥐를 보면 장난치려 하는 것처럼. 아마 우솔이는 커서 상당한 사냥꾼이 될 것이다. 처음 보는 그 낯선 사람을 우솔이의 어머니는 ‘엄마’라고 불렀다. 나는 어찌나 긴장했던지 온 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그 ‘엄마’란 사람은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그 사람의 허리는 구부정했고 온 얼굴이 주름투성이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온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말소리도 또박또박하지 않고 낮고 쉰 소리가 났다.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이 오래 살아 늙으면 그렇게 된다. 우리들은 늙으면 이 탐스런 털이 빠져 조금 볼품 없이 될 뿐이지만, 사람은 털이 부족하므로 늙으면 주름지고 거뭇거뭇해진 살갗이 그대로 다 드러나는 것이다.
“엄마, 그만 두세요. 엄마가 여기 청소하러 오셨어요?”
우솔이 어머니는 그 노인을 밖으로 잡아끌려 했다. 나는 우솔이 어머니를 응원했다. 하지만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사코 내가 있는 쪽으로 오려고 했다. 나는 앞이 캄캄해졌다. 우솔이 어머니는 노인을 잡고 더 달래는 것 같았다. 날이 맑으면 함께 하자는 둥, 어쩌고 등등. 노인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저런 노인이 무슨.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나갔다.
그러더니 다음날, 그 날도 비가 내렸는데 노인이 지하실에 또 나타났다. 이번엔 혼자였다. 우솔이 어머니를 어떻게 따돌렸을까? 노인은 구부정한 등을 흔들흔들하면서 알전구의 불을 켜고 지하실의 창을 열더니, 커다란 빗자루로 거미줄을 걷어 내었다. 나는 털을 곤두세우고, 발톱에 힘을 주었다…. 그날 나는 발톱이 빠지는 줄 알았다. 노인은 거의 한 나절이나 청소를 했다. 그동안 나는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늦게, 저녁식사 시간이 가까워서야 지하실을 나갔다. 노인의 힘이라, 다행히 그날의 지하실 청소는 반절 밖에 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노인의 부지런한 성품으로 보아, 다음 날에도 또 내려올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있는 구석 자리는 결코 안전한 보금자리가 될 수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다음날 새벽, 나는 새끼들을 한 마리씩 입으로 물어 날랐다. 옮길 장소는 이 집과 옆 집 사이의 굴뚝 뒤, 처마 밑이었다. 그 사이는 지하실보다 덜 어둡고 덜 으슥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만큼 좁았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째 옮기고 다시 지하실로 내려가려 할 때 우솔이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이런, 지하실 문이 열렸잖아?”
우솔이의 아버지는 빗물이 흘러들지 않게 지하실 문을 꼭 닫아버렸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 하고 혼자 애태울 따름이었다.
지하실 문이 열릴 때까지, 나는 계속 주변을 서성거렸다. 집안에서는 우솔이의 높은 음성이 새어나왔다. ‘싫어, 안 먹어.’ ‘싫어, 안 입어.’ 우솔이의 어머니가 달래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옷이 안 말랐는데 그럼 어떡하니. 네가 좋아하는 옷은 내일 입어.’ ‘착하지 이거 마저 먹어야 학교에 간다.’ 우솔이의 대답이 들렸다. ‘나 학교 안 가.’ 우솔이 아버지가 말했다.
‘어서 먹어. 다 먹음 아빠가 학교까지 태워다 줄게.’ 이 집에서는 가장 조그만 우솔이가 제일 힘이 센 모양이었다.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새낄 짐승 새끼로 키우지 않을라믄 엄하게 키워야 한다.’ 짐승의 새끼가 뭐 어떻다고? 나는 저런 적이 없었다. 내 새끼도 마찬가지다. 내가 입고 싶은 털만 입겠다고 떼 쓴 적 없고 내가 먹고 싶은 먹이만 먹겠다고 고집을 부린 적도 없다. 나는 당당하고 의젓한 짐승이다. 내 새끼도 나처럼 거칠 것 없는 짐승의 자손답게 씩씩하게 자라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는 자랑스런 짐승이 될 것이다.
모두들 나간 뒤, 노인은 혼자 남았다. 나는 집 둘레를 빙빙 돌며 기다렸다. 노인은 집 안에서 한참동안 덜그럭거리는 소리만 내었다. 오후가 되었다. 나는 기다리다 굴뚝 사이의 새끼들을 돌보러 한동안 자리를 떴다.
얼마 후 돌아와 보니 지하실 문이 열려 있었다. 혹시나? 가슴이 서늘하여 나도 모르게 후다닥 소리내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것이 실수였다.
노인과 눈이 딱 마주쳤다. 빗자루를 든 노인은 늙은 짐승처럼 나를 찬찬히 노려보았다. 나는 온 몸의 털을 부풀리고 꼬리를 세웠다. 내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여차하면 도망갈 수도 있지만, 구석에 남아 있는 새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노인이 청소하느라 열어 놓은 창으로 바람이 불어들어 먼지가 입안에 들어 왔다. 나도 모르게 캬륵 기침 소리를 냈다.
“이 눔의 괭이 시키가 어딜 으르렁거려? 너 여기다 무슨 짓을 해놨지?”
속이 뜨끔하였다. 역시 노인은 오래 산 짐승답게 아는 것이 많았다. 나는 털을 곤두세운 채 노인의 주위를 멀찌감치 돌아, 새끼 있는 쪽에서 노인을 멀리 떼어놓으려 했다. 노인이 빗자루를 탁탁 두드리며 다가왔다.
“이 눔, 어디서 발톱을 세우냐, 이 눔.”
노인이 물러서지 않아, 내 편에서 계단 위로 다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두수없이 다른 새끼들에게 돌아와 있는 동안 차례로 우솔이와 그 어머니가 돌아 왔다. 우솔이 어머니는 집안에서 몇 번 ‘엄마’를 부르더니 지하실로 내려갔다. 우솔이도 내려갔다. 저를 어쩌지? 초조해진 나는 다시 지하실 입구로 돌아갔다.
마침 지하실을 나오던 우솔이와 마주쳤다. 우솔이는 품 안에 귀여운 내 새끼를 안고 있었다. 뒤이어 올라온 그 어머니가 나를 보더니 아이에게 말했다.
“저봐라. 자기 새끼를 찾아 저렇게 왔잖니. 어미에게 새끼를 돌려줘라.”
아이는 싫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내가 찾았으니 내 거야. 누가 새끼를 두고 자리를 비우래?”
우솔이가 고집을 부렸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달래고 내가 화를 내어도 소용이 없었다. 우솔이 어머니는 아이에게 지고 말았다. 노인은 뒤에서 그저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이 집 안쪽을 늘 기웃거리는 치사한 짐승이 되고 말았다. 이 억울함을 아무리 높은 소리로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었다. 우솔이의 웃음소리가 창을 넘어오면 나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했다. 낮밤을 계속 울었다. 시간이 갈수록 잃어버린 새끼의 체취가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그것이 더욱 마음 아팠다. 우리 종족은 서로의 몸내음을 잊으면 아무리 좋은 어미와 새끼 사이라도 상대를 알아보지 못 하게 된다. 초조한 나는 온 세상이 다 듣도록 하늘을 향해 억울함을 외쳤다.
비가 그친 다음 날, 옆 구역에 사는 회색 얼룩무늬 친구가 나를 불렀다. 우리 종족은 서로 참견하지 않고 지내는 게 예의이지만, 내가 하도 슬프게 울어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골목 입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회색 얼룩무늬는 나에게 밤 모임에 나와 보라고 했다. 경험 많은 늙은 선배들이 좋은 방법을 가르쳐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귀가 솔깃하였다.
그 날 밤, 밤이 이슥하여 사방이 조용할 즈음 광장 모임에 나갔다. 다른 고양이들이 하나 둘 모였다. 우리 종족은 밤이면 그렇게 넓은 장소에서 회합을 가진다. 우리들은 서로 몸을 가까이하고 상대의 기운을 탐색했다. 상대에게서 친구라는 느낌을 읽을 수 있도록. 그런 뒤에 서로 뺨을 비벼 인사를 나누었다.
그중에 나이 많은 고양이가 내 사정을 읽더니 말했다.
“그럴 땐 우리 여럿이서 함께 가 노래를 해야해. 네 아기를 데려간 사람에게 아기를 내놓도록. 그 노래의 곡조는 가장 오래 산 내가 잘 알지. 여러분, 우리 함께 갑시다. 우리 나이 많은 고양이들이 먼저 노래를 할 터이니 젊은 고양이는 따라 하도록 해요.”
우리들은 조용조용 ‘나무 많은 집’으로 모여들었다. 깊은 밤이어서, 모든 창에 불이 꺼져 있었다. 저 방들 어느 곳에 내 새끼가 있을 것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눅눅한 어두움이 뜰 안에 가득 고여 있었다.
나이 많은 고양이가 노래를 했다.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그 노래가 너무도 구슬프고 절절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다른 고양이도 곧 그 기운에 젖어들었다.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우리들은 달도 없는 밤, 바람도 스산한 나무 그늘 속에서 우리의 핏속에 긴긴 세월 전해 내려온 노래를 불렀다. 아주 오래 오래.
다음 날 아침, 나는 집안을 살폈다. 우솔이가 떼를 쓰는 소리가 들렸다. ‘싫어, 싫어. 엄마 회사 가지마. 할머니는 싫어.’ 나는 우솔이가 새끼 고양이도 싫다고 하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아무리 기다려도 들리지 않았다. 열려 있는 현관문의 방충망 너머로 갸웃이 들여다보았지만 내 새끼는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식탁 주위의 사람들뿐이었다. 우솔이가 노인을 밀어내고 있었다. ‘할머니 싫어. 할머니 미워.’ 우솔이가 밀어내는 것이 노인이 아니라 내 새끼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훨씬 더 자연스럽고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 아닌가? 사람이란 참으로 이상한 짐승이다.
우솔이는 자기 어머니의 어머니가 내 새끼보다 미운 모양이었다. 하긴 어느 모로 보나 내 새끼보다는 그 노인이 밉긴 하였다. 찌그러진 얼굴, 검은 얼룩으로 온통 칙칙한 살결, 듬성듬성한 머리칼, 굼뜬 몸놀림, 구부정한 자세… 저런 노인을 어떻게 어여쁜 내 새끼와 비교할까? 그러니 우솔이가 할머니와 어울리지 않으려는 건 아주 이치에 맞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치에 맞는 일이면 왜 내가 그렇게 억울하고 고통스러웠을까? 나뿐이 아니라 노인도 괴로워 보였다. 식탁의 분위기는 그날의 날씨처럼 우울했다.
우솔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우솔이를 달래어 겨우 먹이를 먹게 했다. 나도 저 안에 갇힌 내 새끼에게 먹이를 주어야 하는데. 캬아, 라고 말해보았자 소용이 없었다. 몇 번을 되풀이하다 나머지 새끼에게나 젖을 주기 위해 두수없이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나는 호시탐탐 새끼를 구해낼 기회를 노렸다. 한 번 보기라도 했으면 싶어 안절부절못했다. 비가 그칠 때마다 현관문과 뒤 부엌문을 기웃거렸다. 창문엔 창살이 있어 아예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한 이틀 지난 뒤, 저녁 때 부엌 문 안에서 우솔이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렸다.
“엄마, 철없는 애가 그러는 걸 뭘 그리 서운해하세요. 애가 응석을 하는 거지요.”
“아니다. 자식 손주 몇을 키운 난데 그걸 모르겠니? 네가 형제중 막내이니 우솔이가 나에겐 맨 끝 손주가 된다. 수 십년 전 큰 손주들 키울 땐 내가 아직 덜 늙어 쓸모가 있더니, 이렇게 아주 늙고 마니까 아이에게도 홀대받는 신세가 되는구나.”
“홀대는 무슨…”
“아니야. 아무리 늙어 정신이 흐려져도 그건 안다. 세상도 많이 달라졌어. 세상에서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과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 사이에 너무 거리가 멀어졌다. 필요한 건 학원에서 다 배워오고. 함께 놀려 해도 내가 컴퓨터 게임을 할 줄 아니? 아이와 전자오락을 함께 할 수 있니? 내가 해주는 음식을 우솔이가 먹길 하니? 집 앞 슈퍼에만 가면 애들이 좋아하는 인스턴트 식품이 얼마든지 널려 있고… 우솔이가 하는 말이나 생각을 나는 알 수가 없다. 전에 키우던 손주들 때와도 달라. 어떤 땐 애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세월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게다가 이젠 내가 너무 늙었지 않냐. 애 보기에도 흉하지. 이 동네에 나 같은 늙은인 아예 보이지 않더라. 원래 아주 늙은 노인들은 밖으로 나다니기도 힘겨워하니 우솔이는 이런 늙은일 본 적이 없을 게다. 우솔이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싫어 한단다. 나를 아주 끔찍한 짐승 보듯 해. 며칠 있어보면 나아질까 했는데, 오히려 점점 더 하지 않니. 우솔이에게는 내가 필요 없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그만 두자. 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엄마, 며칠 계셔 보지도 않고…”
“더 있어 봤자 서로 피곤해질 뿐이야. 이미 짐은 싸 두었다. 낮에 가려다, 너 없을 때 그렇게 가버리면 네가 서운해 할까봐 얼굴이나 보고 가자고 기다렸다.”
두 사람은 무거운 분위기의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나 내 새끼의 울음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귀를 기울였지만 들리지 않았다. 나는 현관문 쪽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이 열렸다. 노인이 비틀비틀 걸어나왔다. 사냥에서 물러난 짐승의 쓸쓸한 슬픔이 노인의 볼품 없는 등에서 배어 나왔다. 뒤를 따라 우솔이 어머니가 나왔다. 그 사람에게서는 매우 지치고 어지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캬르릉 말을 걸어 보았다. 당신도 슬픔을 아는군요? 새끼를 잃은 슬픔과 비슷한 무엇을 아는군요? 나를 보아요. 내 새끼를 돌려 줘요. 그런 말을 했다. 대문을 향하던 노인이 나를 돌아보았다.
“새끼를 찾는 건 살아 있는 목숨의 업이지. 뭐하러 저리 새끼는 찾누? 암, 산 목숨의 업이고 말고.”
노인은 혀를 끌끌 찼다.
“사람인 나도 네 새끼보다 못한 신세가 되었는데.”
따라 나오던 우솔이 어머니가 엄마, 부르며 노인의 소매를 잡았다. 노인은 뿌리치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 후로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기다리던 내 새끼는 이 집 안에서 나오지 않고 사람이 하나 내보내졌을 뿐이 아닌가? 누가 누구의 가족인데? 겪어 보면 볼수록 사람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종족이었다.
그날 저녁 내내, 집안에선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간혹, 우솔이가 까르르 웃는 소리만이 창을 넘어 왔다. 현관문 방충망 사이로 들으니,
“야옹아, 애기야, 우유 먹어”
하는 소리도 들렸다. 우유를 먹다니. 어미가 이렇게 가까이서 멀쩡히 기다리고 있는데,내 새끼가 왜 우유를 먹나? 나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제 정신이니? 왜 내 새끼를 데려다 사람의 아기라고 부르고 억지로 우유를 먹여? 걔는 내 아기란 말이야
그날 밤, 우솔이가 부모에게 밤인사를 할 때, 아이의 부모가 말했다.
“우솔아, 새끼 고양이를 어미에게 돌려주자.”
아이는 어른들의 무거운 분위기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우솔이 아버지가 말했다.
“고양이도 새끼일 때는 저렇게 어미가 찾는거야. 저 어미 고양이가 벌써 며칠째냐? 우솔이가 아무리 잘 키워주어도 고양이 새끼에겐 제 어미가 낫단다.”
“그리고 우리 집에선 이렇게 어린 새끼 고양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넌 고양이를 동생이라고 예뻐하지만…”
우솔이 어머니가 말했다.
“고양이 목욕은 누가 시켜주지? 응가와 쉬는 누가 보아주지? 이젠 할머니도 가시고, 엄마는 바빠서 고양이까지 돌봐줄 틈이 없어. 너 하나 밥 먹이는 것도 얼마나 힘드는데.”
“이제 밥 잘 먹을 거예요.”
우솔이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밥도 잘 먹고, 고양이는 내가 돌볼 거예요.”
우솔이 어머니는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밥은 잘 먹어야지. 하지만 며칠 전 새끼 고양이를 처음 데려온 날도 넌 그렇게 약속했어. 이제부터 밥 잘 먹고, 숙제도 스스로 하고, 고양이도 잘 돌볼 거라고. 하지만 약속이 지켜졌니? 고양이만 예쁘다고 하루 종일 끌어안기만 하고. 새끼 고양인 그러면 힘들어해. 앞으로 우솔이가 밥 잘 먹고 숙제 잘 하는 건 잘 해낼 거라 믿어. 그렇지만 고양이는 다르다. 엄마도 고양이가 예쁘지만 우리가 양보하자. 제 어미에게 돌려줘.”
우솔이는 웬일인지 더 이상 떼를 쓰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하여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마침 현관에 있던 큼지막한 가죽신이 눈에 띄었다. 발톱으로 긁어보았다. 우솔이의 아버지가 발에 꿰고 다니던 물건인데 구수한 냄새가 풍겨 늘 탐이 나던 것이었다.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놀라 펄쩍 뛰어 달아났다. 우솔이가 나오고 뒤이어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도 나왔다. 우솔이의 품에는 나의 귀여운 새끼가 안겨 있었다.
“동생 고양아, 잘 가…”
우솔이가 내 새끼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목소리가 울먹울먹했다. 이게 웬 일일까? 꿈에도 바라던 일이? 나도 깨진 거울 옆에서 울먹울먹했다.
우솔이의 부모가 우솔이를 안아주었다. 우솔이 어머니도 울먹이는 거 같았다.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았다. 사람은 참으로 이상한 동물이다. 우솔이는 제 동생도 아닌 내 새끼를 두고 왜 운 것일까? 우솔이 어머니는 왜 운 것일까?
나는 사람들이 들어간 뒤 살금살금 새끼에게로 다가갔다. 냄새를 킁킁 맡았다. 새끼도 코를 들어 내 냄새를 맡았다. 우리는 한참을 서로 킁킁거렸다. 그런데… 이럴 수가 있나? 내 새끼의 냄새가 지워져 있었다. 새끼도 내 냄새를 잊었는지 벌벌 떨고 무서워했다. 휘휘한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우리는 너무 오래 헤어져 있었다. 걱정하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새끼의 냄새를 잊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를 썼는데…
나는 새끼의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집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저봐, 고양이가 새끼를 바로 데려가지 않네?”
“고양이는 정을 빨리 뗀다더니 역시 그렇군. 짐승은 어쩔 수 없어.”
짐승이라 어쩔 수 없다고? 짐승이 어떻단 말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내 목구멍을 타고 울음이 올라왔다. 새끼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울음을 삭이기 위해 새끼의 코와 뺨에 머리를 대고 비볐다. 비릿하고 연한 살 냄새. 수염 끝의 감각. 잘 알고 있던 그 느낌이 비로소 느껴졌다. 다른 새끼들에게서도 전해오던 느낌. 내 새끼의 느낌이었다. 기쁨이 밀려왔다. 나는 떨리는 몸짓으로 물어 보았다.
‘아가야, 내가 누군지 기억하겠니?’
‘잘… 기억이 안 나요. 전에는 알았던 것 같은데.’
‘아가야, 내 냄새를 떠올려 봐. 그걸 되살려야 우리는 함께 살 수 있어.’
새끼는 나를 닮아 하얗고 노란 작은 몸을 꼬아가며 내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어려운 모양이었다. 새끼는 미안해했다. 새끼의 불안이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오래오래 그렇게 새끼 주변을 맴돌아야 했다.
오늘은 날씨가 조금 갰다. 하늘은 여전히 찌푸렸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 이런 장마철에는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른다. 새끼들이 젖지 않도록 비 오기 전에 이사를 해야겠다. 새끼가 모두 네 마리이니 이사하는 시간도 꽤 걸릴 것이다.
이 집에서는 더 이상 새끼를 키울 수 없다. 지난 밤, 며칠만에 돌아온 새끼는 내 냄새를 찾지 못해 내내 불안에 떨었다. 떠는 새끼를 그냥 물고 자리로 돌아왔지만 새끼는 제 형제를 만나도 마냥 불안해할 뿐이었다. 형제들도 돌아온 새끼를 낯설어했다. 새끼들이 서로 해치지 않도록 나는 자리를 지켜야 했다. 먹이를 구하러 사냥을 나갈 수도 없었다. 생각해보았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이사를 가는 편이 낫겠다. 이사를 가면, 환경이 바뀌면 우리 새끼들도 나아질 것이다. 나도 먹이를 사냥하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디가 좋을까? 곰곰 생각했다. 이 근처에서 이 집만큼 숨을 데가 많은 곳은 드물다. 발톱갈기를 할 수 있는 나무도 여기에 가장 많다. 나무가 많으니 참새도 많이 온다. 참새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냥감이다. 여기만큼 살기 편리한 곳은 없다고 다들 부러워했다.
내 곁에 서 있는 깨진 거울을 바라본다. 전에는 수시로 저 거울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제는 저 물건을 버리고 가야 한다. 미련을 떨쳐야 한다. 내 힘으로 구할 수 있는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한다.
이사를 가야 한다. 거기에 나는 희망을 걸고 있다. 이사를 가야 한다.<끝>

<문화일보 2002 신년특집-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윤수민
▲1961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불문과, 동대학원 졸업 ▲제22회 중앙의상디자인 콘테스트 동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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