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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재
선재는 낡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네 귀퉁이가 모두 닳고,군데군데 가는 주름이 나뭇잎맥처럼 퍼진 사진. 그것 한 장만 있어도 선재는 그저 행복하다. 가만가만 손으로 쓸어보고 해죽 웃고. 킁킁 코를 대어 냄새를 맡아보고 또 다시 해죽 웃는다. 따스한 엄마 살결 같고,향긋한 엄마 냄새 같아서…. 사진 속 엄마가 늘 선재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어서,선재도 자꾸만 자꾸만 웃음이 나는 것이다.
'야,잠 좀 자자. 불 꺼!'
느닷없이 방 안쪽에서 재철이가 고함을 내지른다. 또 뭐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걸까. 불을 끄긴 아직 이른 시간인데. 전등 스위치 아래 누웠던 아이가 부스스 일어나 불을 끄고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순식간에 캄캄해진 방안에 오글오글 누운 아이들의 숨소리만 밀물 썰물로 물결친다. 어둠을 아쉬워하다 이윽고 선재도 잠이 들었다. 낡은 사진을 보물처럼 가슴에 꼬옥 품고서.
오늘은 선재가 산사의 마당을 비질할 당번이다. 실바람만 불어도 파르르 날아내리는 단풍잎들이 꼭 붉고 노랑나비 떼 같다. 키보다 더 큰 싸리비를 든 선재를 보고,지나가는 스님들마다 농을 거신다.
'선재 네가 빗자루를 들었는지,빗자루가 널 들었는지 모르겠다?'
'헤헤! 그야 제가 빗자루를 들었지요.'
싸리비를 흔들어 보이며 선재가 배시시 웃는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이 우르르 긴 작대기를 들고 나서며 선재를 불렀다. 모두 선재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이다.
'우리 밤 따러 간다. 너도 가자.'
'마당 아직 덜 쓸었는걸.'
선재는 다시 한 번 빗자루를 흔들어 보이고 형들한테 물었다.
'바로 어제도 가봤잖아. 아직 덜 익었다며?'
'혹시 알아? 하룻밤이 얼마나 긴데!'
'오늘은 익었을 거야!'
까만 눈망울을 빛내며 자못 결연한 얼굴로 대꾸하는 아이들이다. 요즘 들어 산사의 아이들은 밤나무를 찾으러 다닌다고 바쁘다. '날마다 네 녀석들이 찾아가서 꿀떡꿀떡 침을 삼켜대는 통에 밤나무가 몸살을 앓겠다.' 스님들의 웃음 섞인 핀잔에도 끄떡없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선재도 꼴깍 침을 삼켰다. '많이 따왔으면 좋겠다.'
그때 갑자기 볼멘 소리가 경내를 쨍쨍 울린다.
'아야야! 이것 좀 놔요!'
그쪽을 바라본 선재의 눈이 둥그레졌다. 재철이가 원진 스님한테 귀를 잡혀 끌려오고 있는 것이다. 산사 아이들을 맡아서 돌봐주시는 원진 스님은 오늘 단단히 화가 나신 모양이다.
'이놈. 그 새를 못 참고 또 싸움질이야, 또? 학교에서고 동네에서고 싸움꾼이라고 소문이 파다하니!… 너 때문에 하도 손을 비벼대는 통에 내 별명이 파리가 되겠다,이놈아!'
그래도 재철이는 기가 죽기는커녕 되려 빽 고함을 지른다.
'걔네들이 먼저 고아라고 놀렸단 말이에요!'
고아. 선재의 발이 멈칫했다. 그것만큼 가슴 아린 말이 또 있을까. 울보 선재 같으면 너무 서러워서 온 산사가 떠나가도록 엉엉 울어젖혔을 것이다. 그러나 재철이는 절대 우는 법이 없다. 대신 재철이는 늘 뭔가에 화난 듯한 얼굴이다. 건드리기만 해도 뻥 터지는 폭탄처럼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재철이의 고함에 스님도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소리를 더 높이신다.
'이 녀석아. 그렇다고 애들을 그 지경으로 패는 법이 어디 있냐? 내 몇 번이나 이르디? 분해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타이르지 않았냐?'
분한 표정으로 씩씩거리던 재철이가 선재와 눈이 딱 마주쳤다.
'뭘 봐, 임마?'
억세게 생긴 얼굴이 더욱 험상궂게 일그러지며 주먹을 흔든다. 이크! 사천왕보다 더 무서운 얼굴이다. 찔끔해진 선재가 저만치 물러나는데,원진 스님이 재철이의 뒤통수를 꽁 쥐어박으신다.
'그래도 이놈이!'
'아야! 왜 때려요?'
선재는 자기보다 두 살 많은 형 재철이가 조금 무섭다. 재철이는 다른 형들처럼 같이 놀아주는 법도 없고,선재만 보면 못마땅한 얼굴로 눈을 부라리기 일쑤다. '칫,심술쟁이.' 재철이 뒤에서 선재가 베에 혀를 내밀었다. 물론 재철이 귀엔 안 들리게 모기 만한 소리로.
싸리비를 놓자마자 선재는 산문 밖으로 달음박질쳤다.
'아,있다!'
산문 밖 숲길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회색 토끼를 보고 선재가 뛸 듯이 좋아라 한다. 토끼도 깡충거리며 달려와,선재가 공양간에서 얻어온 배춧잎을 받아먹는다.
절 앞에서 어릿어릿 맴도는 회색 토끼를 처음 만난 건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처음엔 사람을 겁내는 눈치더니,먹이도 주고 말도 걸고 하는 새 토끼는 이제 선재를 곧잘 따르게 되었다. 토끼랑 친구가 되다니,선재는 너무 좋아서 밤에 자면서도 토끼 꿈을 꿀 지경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회색 토끼는 선재의 두 번째 보물이 되었다. 첫 번째 보물은 엄마 사진이니까,두 번째가 토끼의 자리다.
한참 토끼랑 놀다가 선재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토끼랑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이젠 절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뜻밖에도 토끼가 선재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것이다.
'넌 너희 집에 가야지. 엄마랑 식구들이 기다리잖아.'
선재가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토끼는 갈 생각이 없나 보다. 열 번 돌아보면 열 번 다 거기 있다.
'… 너도 엄마가 없니?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 가셨어. 네 엄마도 그러니?'
회색 토끼는 말똥히 선재 얼굴만 쳐다본다. 그렇다는 뜻일까?
'그럼 나랑 같이 살래?'
불쑥 내뱉은 말이지만,자기 귀로 듣고 보니 아주 그럴싸하다. 선재는 갑자기 신이 나서 힘차게 걷기 시작한다. 구름 위를 내딛는 기분이다. 그 뒤를 회색 토끼가 졸졸 따라간다.
2. 재철이
'아야야… ' 어제 싸우다 찢어진 입가가 또 당겨온다. 재철이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입가를 살살 만져본다. '짜식들 한 번만 더 걸리면 죽었어!' 재철이는 대웅전 뒤편 대숲으로 빠지는 돌계단에 앉아있다. 늦가을 바람이 쌀쌀한데 재철이 속은 되레 부글부글 끓기만 한다.
잘못은 먼저 한 놈들이 엄마 치맛자락을 끌고 와 억울하다고 징징대는 꼴이라니. 목청만 큰 아줌마들 앞에서,산사 아이들의 큰형이자 아버지나 다름없는 원진 스님이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며 잘못을 비는 꼴이라니. 주먹질은 다 같이 한 건데 자기 혼자서만 된통 욕을 얻어먹는 한심한 꼴이라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짜증난다. 온 산사가,온 동네가 깜짝 놀라 뒤집어지도록 고래고래 소리라도 질렀으면 좋겠다.
'후후,진짜 귀엽다!'
'나도! 나도 한 번 만져보자!'
아이들이 대웅전 앞으로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 한가운데 회색 토끼를 안은 선재가 있다. 자그마한 회색 토끼가 이 손 저 손으로 옮아 다닌다. 이름을 뭘로 지을까,궁리하는 아이들 소리가 재잘재잘 시끄럽다.
재철이 얼굴이 더욱 찡그려졌다.
'꼴 보기 싫은 놈.'
산사에 있는 모든 게 다 맘에 안 들지만,제일 맘에 안 드는 걸 꼽으라면 그건 바로 선재 녀석이다. 그저 선재 자식은 울면 다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사내자식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작년,선재가 산사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하루는 별스럽게도 선재 녀석이 대웅전 앞에 죽 늘어놓은 국화 화분들 앞에서 한참이나 훌쩍거리고 선 것이다. 당연히 놀란 스님들이 달래서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한참만에 선재 놈이 대답이랍시고 하는 말이 '철사 때문에 꼭 끼어 자라는 게 너무 불쌍해요!…'란다. 기가 막혀서. 그거야 원래 부처님께 공양하는 꽃이라 철사로 곧게 엮어놓은 건데,불쌍하긴 뭐가 불쌍하담? 그런데 북 치자 장구도 따라 치는 격으로 노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선재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구나. 곧든 비뚤든 부처님은 다 어여삐 보아주실 터. 잘하려고 하는 일이라도,무엇이든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도가 아니라 하였다. 허어,오늘 이 늙은 땡중이 고 어린놈한테 큰 가르침을 받는구나. 어여 철사를 다 걷어내어라.'
노스님은 아이들만 보면 입버릇처럼 '연꽃이 되어라. 연꽃이 되어라' 되뇌는 분이시다. 그 가락이 어떤 땐 불경을 외는 것 같고,어떤 땐 시를 읊는 것 같고,또 어떤 땐 잠꼬대도 같다.
'세상이 고해요,사람 마음이 곧 욕심과 더러움 가득한 진흙구렁이니라. 진흙구렁을 딛고 컴컴한 물길을 헤쳐 올라 연꽃을 피워라. 너흰 모두 연실이요 연뿌리니,너희 안에 이미 꽃이 있지 아니하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어쨌든 노상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시는 노스님은 선재랑 쿵짝이 딱 맞으셨다.
어디 그뿐인가? 저기 비루먹은 회색 토끼는 또 어떻고.
바로 어제 선재가 난데없이 토끼를 기르게 해달라고 조르자,스님들은 난처해서 고개를 저으셨다. '곤란하구나,선재야. 토끼는 산에서 사는 게 더 좋겠다.'
당연하다. 토끼를 경내에 들여놔 봐라. 공양간 살림은 무사하며,애써 가꾼 뜰은 무사하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아무 데나 냄새나는 똥오줌을 갈겨놓을 게 뻔하다. 그런데 또 선재 놈이 닭똥 같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떼를 쓰는 것이다.
'이 토낀 갈 데가 없나 봐요. 저처럼 엄마도 없고요. 그러니까 제가 키우게 해주세요, 스님! 우리 둘인 벌써 친구인 걸요. 말썽 안 피우게 제가 잘 돌볼게요, 예?'
하는 말마다 가관이다. 사내자식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걸핏하면 눈물바람에,뻑하면 '엄마가 없어요'를 들먹인다. 그게 무슨 무기라고.
그런데도 스님들은 그런 선재가 예뻐 죽겠는 모양이시다. 또 선재의 눈물에 넘어가 그러라고 허락하신 것이다. 재철이가 입만 열면 꽁꽁 뒤통수를 갈기기 바쁜 스님들이,선재의 허튼 소리에는 어째 그리 점잖고 자애로운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다 치자. 선재 녀석이 하루에 스무 번도 더 낡아빠진 사진을 꺼냈다 집어넣었다 하는 데에는 진짜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그놈의 사진에 꿀이라도 발라놨는지 하루도 안 거르고 스무 번을 다 채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지겹다. 제가 고아란 것도 잊었는지,사진 쪼가리를 붙들고 행복해죽겠다는 얼굴로 헤실대는 꼴이라니.
우는 것도 밉고,웃는 것도 밉다. 재철이도 자꾸만 사나워지는 자기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저 언젠간 그놈의 사진을 확 요절내버리고 싶은 기분 뿐이다. 그래야 다시는 그 꼴을 안 보지.
'꼴 보기 싫은 놈!'
재철이가 다시 한 번 으르렁대듯 중얼거렸다.
3. 연꽃을 피우는 아이들
그래서였나 보다. 절 아래 계곡가에 외따로 있는 선재의 토끼를 보자마자 발로 걷어차 버린 건. 끼이익! 괴상한 비명 소리에 오히려 재철이의 가슴이 화들짝 놀랐다. 놀란 게 분해 기어이 다시 한 번 토끼를 쫓아가 걷어차 준다.
그런데 토끼는 혼자가 아니었나 보다. '어!' 나무 뒤에서 선재가 달려 나와 덥석 토끼를 보듬어 안았다.
'왜 때려? 토끼가 형한테 뭘 잘못했다고?'
재철이를 무서워하던 것도 잊어버리고 선재가 바락 따지고 든다. 토끼가 맞은 게 자기가 얻어맞은 것보다 더 억울하고 분하다. 하지만 재철이는 그런 선재가 더 아니꼽다.
'쪼그만 게 누구한테 대들어?'
윽박지르는 재철이의 눈에 선재 손에 들린 사진이 확 들어온다. 그놈의 밉살맞은 사진. 마디가 굵고 억센 재철이의 손이 바람처럼 날쌔게 사진을 낚아챘다.
'넌 지겹지도 않냐? 사내자식이 맨날 엄마 타령이야!'
'어! 내 사진!'
선재가 펄쩍 뛰었다. 쩔쩔매는 선재를 보니 묘하게 속시원해져서 재철이가 약을 올렸다.
'어디 가져가 봐. 가져가 보라니까.'
'돌려줘! 내 사진이야! 우리 엄마 사진이야!'
울상이 된 선재가 재철이 팔에 매달려 발을 동동거리지만,훌쩍 키가 큰 재철이한테는 어림도 없다. 밀고 당기고 실랑이를 벌이는 아이들 머리 위로 쪽빛 하늘이 핑그르르 몇 바퀴나 맴을 돈다. 머리가 아찔하다. 행여 엄마 사진에 흠집이라도 날까,선재의 작은 심장이 높다랗게 널을 뛴다. 쿵쿵.
마침내 눈물콧물 범벅이 된 선재가 재철이 팔을 꽈악 물고 늘어졌다. '우악!' 발끈해 선재를 밀쳐버린 재철이 손이 공중으로 확 뿌려진다.
'…!'
순간 아이들은 정지화면처럼 동작을 멈추고 숨까지 멈췄다. 그리고 낡은 사진이 비탈 아래로 떨어져 계곡 물을 따라 흘러가는 광경을 얼빠진 얼굴로 바라봤다.
홧김에 일을 저질러버린 재철이 얼굴에 얼핏 당황한 표정이 스쳤다. 그러나 선재는 그런 것까지 눈치챌 겨를이 없다. 금방 선재의 하늘이 무너지고 땅도 무너져버린 것이다. 너무 놀라 입술만 달싹이던 선재가 우왕―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랬어? 왜 그랬어?'
'보기 싫어서 그랬다, 어쩔래? 사내자식이 맨날 엄마 사진 붙들고 난리치는 꼴이 보기 싫어 그랬다!'
이미 재철이 얼굴엔 눈곱만큼도 미안한 기색이 없다.
'어떡해, 우리 엄마 사진인데!… 물어내! 물어내!'
목놓아 울던 선재가 별안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구르듯이 비탈을 내려갔다. 계곡 물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평화롭던 산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선재가 사라진 것이다. 한 아이가 먼발치에서 선재와 재철이가 싸우는 걸 봤다고 주춤주춤 말을 꺼냈다. 냉큼 재철이가 스님들께 불려가 된통 혼이 나고,젊은 스님들이 손전등을 들고 계곡 아래로 선재를 찾아 나섰다.
깊은 밤이 더욱 깊어질 무렵,선재는 스님들을 따라 산사로 돌아왔다. 허리까지 흠뻑 젖고 흙투성이인데,어울리지 않게 큼지막한 웃음을 입가에 매달고 있다. 손에는 아까 잃어버렸던 사진을 소중하게 움켜쥐고서.
'대체 무슨 일이냐? 싸웠단 얘긴 들었는데,뭣 때문에 그런 건지 재철이가 입도 뻥긋 안 하는구나.'
뭐가 그리 좋은지 연방 벙글거리는 선재 얼굴에 어이없이 혀를 차면서 스님들이 물으셨다. 선재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노스님이 탄식하며 무릎을 치신다.
'허어! 그놈 참….'
영문을 몰라 눈을 깜박이는 선재한테 노스님이 말씀하셨다.
'재철이 그놈이 네가 질투 났나 보구나. 그놈이야 천애고아라 엄마 얼굴 한 번 못 보고,사진 한 장 없는 녀석 아니냐.'
선재의 가슴으로 휭하니 서늘한 바람이 분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릿하고 부끄러워진다. 이제야 그 동안 재철이가 왜 그랬나 알 것 같다. 그런 재철이 앞에서 날마다 엄마 사진을 갖고 오두방정을 떨어댔으니….
'뭐하러 왔어? 꺼져버려!'
잠시 후,꿇어앉아 두 팔을 들고 벌을 서던 재철이가 선재를 보자마자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스님들이 이제 벌 그만 서도 된대,형.'
선재가 그렇게 말해도 재철이는 고개만 팩 돌릴 뿐,팔을 내릴 생각을 안 했다. 팔이야 당장 떨어져나갈 것처럼 아프지만,어쩐지 선재 명령을 듣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사진,찾았어.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재철이가 멍하니 선재를 바라보다가 다시 인상을 쓴다.
'걱정은 누가? 난 코딱지만큼도 신경 안 써!'
그래도 선재는 갈 생각을 않고 재철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대뜸 묻는다.
'형. 사실은 형도 엄마 얼굴 보고 싶지?'
'뭐?'
재철이가 얼빠진 얼굴로 되묻는데,선재가 부스럭부스럭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든다.
'자,여기 있어. 이 사진 보고 우리 둘의 엄마라고 생각하자,응? 난 알 수 있어. 형 엄마도 꼭 이렇게 생기셨을 걸?! 꼭 이렇게 쌍꺼풀진 눈에,코끝도 꼭 이렇게 동그랗고… 웃는 얼굴도 꼭 이럴 거야…. 그러니까 이제부터 이건 형이랑 나,우리 둘의 엄마 사진이야!'
웃기지 마,누가? 재철이는 사납게 쏘아붙이려는데,눈도 코도 새빨개져서 열심히 말하는 선재의 꼬락서니에는 그만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다. 어유,저 콧물! 갑자기 매번 선재 녀석의 엉뚱한 생떼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스님들의 고충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자식,울면 다 되는 줄 아나?
'콧물이나 닦아,임마!'
통박을 준다.
그러나 선재도 할 말은 있다.
'형 얼굴은 어떻고?'
뭐? 재철이가 자기 얼굴을 더듬어 본다. 아차. 대체 어디에 이 많은 눈물이 숨어있었던 걸까? 강물과 바닷물처럼 쉼 없이 흘러넘치는 눈물이.
둘이서 나란히 이불을 쓰고 엎드려 사진을 들여다본다. 낡고 낡은 사진… . 선재와 재철이는 그저 신기하다. 이 낡은 사진 한 장을 나눠가졌더니,어머니도 함께 나눠 가지고,어느새 둘은 하늘 아래 단 둘 뿐인 형제가 돼버린 것이다. 괜히 멋쩍은 기분에 선재랑 재철이는 이불자락을 들썩이며 킬킬댄다. '이쁘다… ' '그치?' 사진 속 어머니의 웃음이 더욱 깊어진다.
옆에선 오글오글하니 방에 누운 아이들이 웬일인가 싶어 서로 옆구리를 찌르고 야단이다. 산사에서 제일 서먹하던 둘이서 며칠 새 제일 친한 형제가 돼버렸으니.
아이들 저마다의 비밀과 궁금증을 품고 산사의 밤이 깊어간다.
깊어진 어둠 속에서 아이들 숨소리가 맑은 물결처럼 파도친다. 사위가 고요한데 불현듯 아이들의 잠든 얼굴에 하얀 연꽃,분홍 연꽃이 피어난다. 하얀 연꽃,분홍 연꽃,자주 연꽃,푸른 연꽃…. 진흙구렁을 박차고 컴컴한 물길을 헤쳐 올라,맑은 향기를 흩뿌린다. 온통 아름다운 꽃밭이 된다. *
[2002부산일보신춘문예당선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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