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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립니다. 유치원을 1년 다니고 미술학원을 또 1년 다녔기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를 닮아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건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미술학원에서 세 번,1학년에 들어와서도 벌써 두 번이나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원이가 그리는 그림은 여러 가지입니다. 집도
그리고, 자동차나 탱크도 그리고, 운동화 한 짝을 그리기도 하고, 바퀴
빠진 자전거도 그립니다. 엄마한테 혼났을 때는 엄마 얼굴을 밉게 그리기도
합니다. "내일은 그리기 대회가 있어요. 이번 주간은
불조심 주간이에요. 그래서 내일 우리 학교 운 동장에 불자동차가 올
거예요. 소방관 아저씨도 오시고 고가사다리 차도 와서 불 끄는 시범
을 보일 거예요. 내일은 모두 운동장에 나가서 그림을 그릴 거예요.
잘 그린 어린이에게는 소방서에서 아주 푸짐한 상을 주신대요."
아이들은 모두 신이 났습니다. 대개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합니다.
더구나 내일은 소방차가 직접 불을 끄는 시범을 보인다니 더욱 신나는
일입니다. 원이도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림을 잘 그려서 소방서에서
주는 상을 받게 된다면 아주 근사할 것입니다. 소방서 구경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집에 갈 때 선생님께서 편지를 주셨습니다. "엄마께
드려라." 엄마는 편지를 읽었습니다. `내일 소방차 그리기
대회가 있습니다. 그림 연습을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원이의 엄마는
소문난 열심 엄마입니다. 원이가 외아들이기도 하지만 아빠가 외국에
가 계시기 때문에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아빠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만
빼고는 몽땅 원이를 위해서 무엇인가 하십니다. 원이의 숙제나
예습 복습은 물론이고 원이가 글씨를 반듯반듯하게 쓰나 옆에 지켜 앉아서
검사를 하고, 일일공부ㆍ공문수학ㆍ성문문제집 등 뭐든지 다 시킵니다.
수영도 시키고, 태권 도장에도 보내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도 시킵니다.
원이는 매일 엄마가 정해 놓은 일과표대로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원이는
건강하고 시키는 대로 무엇이나 잘 했습니다. 1학년 입학할 때부터
원이를 따라 학교에 온 엄마는 2학기가 되었는데 아직도 학교를 따라
다닙니다. "원아, 불자동차 잘 그릴 수 있겠지? 이번에
꼭 큰 상 타서 아빠에게 편지하자." 교문 안으로 들어서며
엄마가 말했습니다. 10시쯤 되자 불자동차 3대가 왔습니다. 정말로 고가사다리차도
왔고, 물탱크차도 기다란 호스를 싣고 왔습니다. 소방관 아저씨도 헬멧을
쓰고 여러명 왔습니다. 도장이 찍힌 도화지를 나누어 주자 아이들은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구경 온 학부형들이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봅니다. 원이도 도화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원이는 그림을 그릴 생각을 안 합니다. 선생님은 원이가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원이 엄마도 다른
아이들이 그리는 것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한 소방관 아저씨가
고가사다리차 끝에 달린 바구니에 타고서 학교 옥상에까지 올라가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또 물탱크차에서는 하늘 높이 하얀 물줄기를
뿜어 올렸는데 높이 분수처럼 올라갔다 떨어져 내려오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무지개를 만들었습니다. "원이야, 그만 생각하고 어서
그려. 시간이 너무 지났어."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저는
오늘 그림 안 그릴거예요." 원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습니다.
"그림을 안 그린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선생님이 깜짝
놀라 물어 보십니다. "소방차라면 지긋지긋해요. 어제 집에
가서 스무 장이나 그렸단 말예요." "............."
원이는 물줄기를 따라 생겼다 사라지는 무지개만 정신없이 보고
있습니다. |
제일제당 사외보 [작은이야기] 1889년 5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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