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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함께읽는동화] 양말장수와 개

엄마동화 강추애............... 조회 수 3156 추천 수 0 2002.09.04 11:10:32
.........

글/강추애(아동문학가) 그림/강낙규 

모두 여자를 비웃었지요.

"저 꼴에 개라니!"

그럴 만했습니다. 여자는 양말 장수였는데, 머리에 어깨에 그리고 양말과 허리께 까지 양말보따리를 주렁주렁 열매처럼 달고서 여위고 털이 드문드문 빠진 이상한 개까지 데리고 다녔으니까요.

"이쪽으로 와. 차가 오잖니."

여자가 개에게 말하는 모습은 엄마가 아기에게 타이르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밥 먹을 때 됐네. 빵 먹을래? 우유는 어때?"

이처럼 여자의 말투는 다정했고, 어제와 오늘, 아침과 저녁, 아까와 지금이 한결같았습니다. 그래서 여자를 향한 사람들의 조롱은 끝이 없었지요.

"저 개는 여자의 아기란다."
"아기처럼 업어 준단다."
"팔베개해서 보듬고 재운단다."
"밥도 떠 먹인다지."
호호호호. 가르르르.

여자와 개의 얘기는 정말 재미있고 신나고 즐거웠으므로 사람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말까지 마구 지어내어 소문을 만들고 퍼뜨렸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소문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자 몰래만 수군거렸으니까요.
여자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장 어귀에 양말 보따리를 펴놓고 손님을 기다리다가 개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양말이 좀체 안 팔린다. 그지?"

개는 여자의 말끝에 꼬리만 두어 번 흔들었습니다.
양말이 안 팔린다. 네, 그랬지요. 양말이 좀체 팔리질 않았지요.
어디 오늘뿐이겠어요.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그랬는걸요. 곰곰 생각해 보면 더 더욱 오래 전이에요.
그렇지요. 여자가 개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부터였지요. 사람들은 개를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막았지요. 눈꼽, 부스럼, 드문드문 빠진 털, 흐르는 침, 앙상히 돋은 어깨, 개의 모습은 흉하고 더러웠거든요.
그날로부터 여자의 양말은 주인을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럴 수 밖예요. 사람들은 쉿쉿, 키득키득 쑥덕거렸지요.

"여자의 양말속에 벌레가 살고 있어. 벼룩, 빈대 따위 말이지."
"양말을 신으면 근질근질할거야."
"냄새도 나구, 병도 옮을 거야."

이러니까 양말이 팔릴 리 없었지요. 그랬지만 여자는 그 자리, 그 어귀에서 양말을 풀어놓고 개와 함께 손님을 기다렸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때 그 양말을 크기와 색깔대로 챙긴 다음 불끈 둥글게 뭉쳐진 보따리를 머리에 얹고, 양어깨에 메고, 허리께에 달고, 두손에 나누어 쥐고선 까만 어둠 속으로 개와 더불어 걸어갔었지요.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빨갛고 노란 물이 들었던 잎사귀는 다투어 떨어졌습니다.
더울 때도 시원할 때도 주인을 만나지 못한 양말은 햇볕에 바랬고, 먼지가 많아 돈과 바꾸지 못할 만큼 상해 버렸지요.
하지만 여자는 안타깝거나 속상하거나 슬프지 않았지요. 맑고 따스한 날을 택한 여자는 더럽혀진 양말을 깨끗이 빨아 말려 추운 날 양말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렇듯 여자는 오랫동안 돈을 벌지 못했지만 개에게는 많은 것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여윈 어깨엔 오동통 살이 붙었고, 빠진 털 자리엔 새 털이 돋아났으며 부스럼과 눈꼽이 떨어진 말끔한 개는 누가 보든지 튼튼하고 영리해 보였습니다.
그 개를 보고 여러 사람이 졸랐습니다.

"파세요. 돈은 넉넉히 드릴께요."
"그러세요, 어머니."

여자는 개와 헤어지며 글썽 눈시울을 적셨고 여자의 말을 잘 듣는 개는 줄을 매달지 않아도 어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가 버렸지요.
몇 달 후의 아침. 여자는 일찌감치 서둘렀습니다. 어머니의 생일을 위하여 꿀과 따뜻한 내의를 갖춰가고 개가 잘 먹던 비스킷도 준비했습니다. 언덕 밑 긴 길을 따라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향하고 있을 때 저기 멀리서 뛰어오는 솜 뭉치를 보고 소스라치며 마주 달렸습니다.


참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개와 여자는.
누굴 만나 이토록 반가울 수 있을까요. 주르르 흐르는 여자의 눈물. 바닥을 쓸고 있는 개의 꼬리.

따뜻한 마음은 강물처럼 흐르고 통합니다.

제일제당 사외보 [작은이야기] 1990년 11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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