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지지배야, 지지배야, 어디 가니?"
영복이는 등 뒤에서 동네 친구들이 놀리는 소리에 걸음을 뚝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돌멩이를 던질까? 아니면 못 들은 체하고 그냥 갈까?'
영복이는 화가 났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볼 때마다 비겁하게 뒤에서 지지배라고 놀리니 말입니다.
태권도를 배워서 놀리는 아이들을 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조른 적도 있으나 야단만 맞았답니다.
"영복아, 친구를 때려 주려고 태권도를 배우는 건 나쁜 일이야. 그건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야."
그래서 영복이는 태권도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복이는 피아노를 잘 칩니다. 영복이는 엄마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
아해서 피아노를 배우는 거랍니다. 아이들은 영복이가 태권도는 못하고 피아노는 잘 친다고 놀렸습니다.
오늘도 개구쟁이들은 영복이가 피아노 학원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자 놀렸습니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 태권도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허리에는 저마다 노란 띠, 빨간띠, 하얀띠, 파란띠를 둘렀습니다.
"얼레꼴레∼, 영복이는 고추가 없대요 얼레꼴레∼, 영복이는 고추를 고추밭에 두고 왔대요…."
영복이는 바지를 벗어 내리고 자기 고추를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아냐! 내 고추 여기 있어! 난 지지배가 아냐! 난 남자야! 난 싸나이야!"
그리고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자아이들도 있어서 차마 바지를 벗을 수는 없었습니다. 영복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다시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영복이가 겁쟁이 라서가 아닙니다. 엄마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영복아. 아이들이 놀린다고 화를 내고 같이 싸우는 건 남자답지 않은 일이야. 아니 그런 여자 애라도 마찬가지지."
요즘 영복이가 사는 아파트에는 기분 좋은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모이기만 하면 영복이 칭찬을 한답니다.
"글쎄, 그 어린 영복이가 토요일이랑 일요일마다, 고아원이랑 양로원에 번갈아 가면서 피아노를 연주한대요. 찬송가, 동요, 할머니, 할아버
지들이 좋아하는 옛날 노래들을 연주해 준대요.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그런 일을 한 지 벌써 몇 달째래요. 비가 오는 날도 빠지지 않고
하니 얼마나 기특해요?"
"맞아요. 요즘 애들은 학원에서 뭘 배우면 그저 저 하나 잘되고 이름 날리려고 하는데 말이에요. 영복이 엄마가 힘드니까 그만두라고 해도
영복이는 계속한대요. 정말 요즘에 보기 드문 아이죠."
이런 소문은 영복이가 사는 동네뿐 아니라 다른 아파트촌에도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동네 아이들도 영복이를 더 이상 놀릴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해 봐도 영복이는 착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기들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니까 그렇죠.
지금은 영복이가 피아노 학원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면 아이들은 달려와 서로 영복이 손을 잡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런 발도 하기 시작했
습니다.
"영복아, 다음부터는 우리도 양로원이랑 고아원에 갈께. 우리가 선물도 준비하고 네가 피아노를 치면 노래도 하고 율동도 할께."
그래서 다음 주 토요일부터는 아이들도 함께 갈 겁니다. 승합차가 있는 아빠들이 차로 태워다 준다고 했습니다. 엄마들은 선물도 준비하
고 같이 가서 빨래도 해 주고 청소도 해 주기로 약속했답니다.
이제 영복이는 지지배 소리도 안 듣고 피아노 치는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논답니다.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도 할
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시범도 해 보이고, 고아원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알게 도니 다른 동네의 아이들은 나는 내가 잘 하는 것으로 무슨 좋은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착한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