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 속에는 우산과
양산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우산은 검정색 천에 몇 가닥 줄무늬만 있을
뿐 후줄근한 모양새이지만, 양산은 색색의 꽃무늬가 그려져 있어 척
보기에도 멋쟁이 아주머니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야,
우산. 냄새난다. 가까이 오지 마. 너와 내가 비슷하게 생겼다고 남들이
친척이나 친구로 오해할까 걱정이야. 난 이래봬도 주인 아주머니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고." 양산의 거만스러운 말에 우산은 고개를
숙일 뿐이었습니다. 눈 아래로 아무렇게나 구부려서 만든 것 같은 밤색
손잡이가 보였습니다. 양산의 손잡이는 모양을 내느라고 정성스럽게
다듬어서 반짝이는 구슬까지 달았습니다. 우산은 더 슬퍼졌습니다.
양산은 또 입을 열었습니다. "우산 너는 모를 거야. 해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말이야. 부드러운 햇살이 내 몸을 어루만지면
마치 녹아 내릴 것처럼 기분이 좋단다. 넌 햇살을 쪼기는커녕 본 적도
없지? 불쌍도 해라. 쯧쯧." 우산이 양산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양산의 생김새가 예뻐서만은 아닙니다. 양산은 곱게 단장한 아주머니와
함께 밖에 나갔다 온 날이면 어김없이 바깥 풍경을 늘어놓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산은 양산이 늘 자랑하는 해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해님은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춰 주셔. 모든 나무와 꽃들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빛을 주신단다. 해님을 향해 손을 벌린 아카시아 나무를
보았니? 해님을 따라 원을 그리는 해바라기를 본 적 있어?"
양산은 생각만 해도 황홀한 듯 눈까지 지그시 감고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우산을 펴 들고 나가는 날에는 첫마디부터가 달랐습니다.
"웬 비가 이리 세게 쏟아질까?" 그러면서 몇 번이고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는 게 나가기를 망설이는 눈치입니다. 우산이 보는
바깥 풍경은 양산의 말과 사뭇 달랐습니다. 길 가의 나무들은 비에 맞아
덜덜 떨거나 꽃잎도 얼굴을 다치지 않으려고 움츠렸습니다. 게다가
자동차가 지나가면 우산은 졸지에 흙탕물을 뒤집어씁니다. 바람에 센
날에는 우산살이 꺾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습니다.
우산은 아무리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해님이 없어서 슬펐습니다. 하늘에는
시커먼 비구름만 가득할 뿐입니다. `해님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고루 비춰 주신다지만 그건 거짓말이야. 해님은 날 사랑하지 않아.
흑흑...' 우산은 속으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얘야,
무얼 그리 슬퍼하니?" 신발장 위쪽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이가 제일 많은 흰 고무신 할아버지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슬퍼하는지는 모르지만 눈물을 닦아라. 곧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참고 기다리면 다 때가 오는 법이란다." 고무신 할아버지는
다 아시다는 듯이 위로해 주셨습니다. 우산은 눈물을 닦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신발장 문이 열리면서 아주머니의
손이 우산 허리를 거머쥐었습니다. 밖에는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여리고 작은 빗방울이 우산의 얼굴을 간지럽힙니다.
아주머니는 모처럼 내리는 가랑비에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며
사부작사부작 걸었습니다. 우산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길모퉁이를 돌았을 때였습니다. "어머!" 하는 감탄 소리와
함께 아주머니는 우산을 젖혔습니다. 아, 방금 그치기
시작한 가랑비 사이로 엷은 햇살이 스며들고, 건너편 다리위에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솟아 있었습니다. 우산은 꿈 속에 젖은 듯이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벅찬 기쁨에 두 눈을 잠시 감았다 뜬 우산은 더 크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제 막 솟았던 무지개 위를 미끄러져 내려오던
해님의 미소를 보았던 것입니다. 우산은 너무나 기뻐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가랑비는 완전히 그치고 아주머니는 우산을 접었습니다.
우산살 사이사이로 솜털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햇살이 스며듭니다.
그날 밤, 우산은 온몸에 햇살을 받으며 무지개를 건너는 꿈을 꾸었습니다.
글쓴이:
1967년에 났다. 갓 백일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새내기 주부다. 결혼
전 사보 만드는 일을 했다. 엄마 이름으로 낸 동화책을 아이에게 선물하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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