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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동아일보] 찬란한 믿음 -송재찬

신춘문예 송재찬............... 조회 수 1638 추천 수 0 2004.03.31 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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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동아일보 신춘문예] 찬란한 믿음 -송재찬

  소라 껍데기가 하나 풀숲에 버려졌습니다. 깊은 바다, 따뜻한 물 속에서 자란 소라 껍데기는 춘삼월 꽃바람이 몹시도 추웠습니다.
그리움을 노래하듯 남실거리는 물결소리 - 파도의 발목에 매달려 바다를 여행하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노라면 빈 가슴은 하늘처럼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빈 가슴.
껍데기만 남은 소라는 ´빈 가슴의 소라´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빈 가슴으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다른 것으로라도 채워 보렴.
그러면 고향을 조금은 잊을 수 있을 거야.
˝ 누구에게나 친절한 봄바람의 말입니다.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워진 가슴을 채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이 떨어 담아 준 꽃잎으로 채워 보기도 했고, 하얀 새 울음으로 채워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시들어 버렸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작지만 예쁜 꽃들이 들판을 장식하기 시작하자 나비와 벌레들이 소문처럼 몰려다녔습니다.
그러나 소라에게는 나비 한 마리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다는 것 - 그것은 고향을 잃은 것보다 더 슬픈 일이었습니다.
´나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소라 껍데기야.´
소라는 잠 안 오는 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꽃들이 낮에 사귄 나비와 벌을 생각하며 포근한 꿈에 젖어 있을 때, 소라는 별을 보았습니다.
모두 눈감아 버린 밤에 혼자 눈 뜬 별처럼 고귀한 게 또 있을까요? ´별처럼 아름다운 것으로 가슴을 채울 수만 있다면...´
이튿날 소라는 무겁게 채워진 가슴을 남의 몸처럼 느끼며 눈을 떴습니다. 머리가 무겁습니다.
소라의 가슴을 채운 것은 거름 냄새. 이웃 채소밭에서 날아온 지독한 냄새였습니다.
´아, 나는 별처럼 아름다운 것으로 가슴을 채우고 싶었는데, 내 가슴이 더러운 거름 냄새라니.´ 소라는 끙끙 앓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을 계속해서 사람들은 바쁘게 거름을 날랐습니다.
여름 소나기가 하늘을 씻었습니다.
소라의 가슴도 하늘처럼 깨끗해졌습니다.
소나기가 씻어 준 하늘에 무지개가 걸린 날, 소라는 생각했습니다.
´빈 가슴을 채우려는 내 꿈도 어쩜 저 잡을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게 아닐까? 허무한 꿈-´ 보리 익는 냄새가 미루나무 잔가지에 걸려 부서집니다. 저녁에 비가 내렸습니다.
풀잎들이 부퉁켜 안고 소리쳤습니다.
˝장마비야. 조심해야 해.˝ 그러나 소라는 즐거웠습니다.
빈 가슴을 음악처럼 간질이는 비의 감촉은 바다의 찰싹이는 물결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뿌지직-˝ 냇가에 몇 그루 있던 미루나무의 가지가 꺾어집니다. 비바람이 점점 더해 갑니다.
떼를 이룬 빗물이 소라를 끌고 가기 시작합니다.
자갈을 숨겨 안은 소라의 몸을 마구 때렸습니다.
소라는 빈 가슴 가득 빗물을 담고 더 깊은 골짜기에 살게 되었습니다.
´내 가슴은 이제 빗물이 되고 말았구나.
아무 향기도 없는 빗물.
´ 점처럼 별이 찍힌 하늘을 보며 소라는 울었습니다.
제 힘으로 가슴을 채울 수 없다는 절망감이 눈물로 쏟아집니다.
˝너무 슬퍼 말아요. 나처럼 보잘 거 없는 빗물도 때로는 큰일을 해낼 수 있답니다. 아름답다고 다 좋은 건 아니에요.˝
가슴에 고인 빗물의 이야기입니다.
소라 껍데기는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암만 그래 봐야 넌 향기도 없는 빗물이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은하수의 긴 물결 소리가 땅에까지 들릴 것 같은 고요한 밤이었습니다.
소라는 깜짝 놀랐습니다.
별 하나가 꽃잎 떨어지는 듯 소라의 가슴에 내린 것입니다.
너무나 기뻐 소라는 소리도 지를 수 없었습니다.
´아, 별님이 스스로 내 가슴에 내려와 주다니.´
꿈 같은 일이었습니다.
너무 향그러운 별님이기에 소라는 불안해졌습니다.
˝별님, 별님도 곧 떠나가겠지요?˝ 곧 떠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라는 슬프게 물었습니다.
˝아뇨. 이 빗물만 있음 난 언제나 소라님의 가슴에 내릴 수 있어요.˝
˝네? 빗물이 있어야 해요?˝
˝그럼요.˝ 소라는 부끄러웠습니다.
보잘 것 없는 빗물이라고, 이야기도 안 했는데...
˝세상엔 쓸모 없는 게 하나도 없어요. 보잘 것 없는 풀한 포기가 배고픈 양을 살릴 수도 있어요.˝ 별님의 말입니다.
소라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가뭄이 계속되었습니다.
소라의 가슴에 고인 빗물까지 해님은 모두 말려 버렸습니다.
별님은 빗물이 말라 버린 날부터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고향을 생각할 때보다 빤히 보이는 별을 생각하는게 더 안타까웠습니다.
날마다 비를 기다렸습니다.
˝소라야, 다시 별이 네 가슴에 내린다 해도 너는 영원히 별을 가질 수 없어. 물은 또 마를 테니까.˝
고추잠자리의 말입니다.
달빛이 묻은 버드나무 가지에서 납니다.
˝그럼 어떻게 하니, 고추잠자리야?˝
˝네가 별이 되렴.˝
˝내가?˝ 소라는 웃고 말았습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소라야. 게다가 이젠 껍데기뿐이란다.
빈 가슴만 지닌 내가 어떻게 별이 되겠니?˝
˝아니야, 나는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소라 껍데기를 알고 있어. 그렇지만 믿음이 잇어야 한단다. 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너도 별이 되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니?˝
˝아니, 나는 훌륭한 어머니가 되는 게 꿈이란다.˝
소라는 가만히 잠자리의 말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이제 잠은 저 먼 세상으로 가 버린 듯 소라의 정신은 더욱 초롱초롱해졌습니다.
´정말 나도 별이 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다시 바다에 갈 수도 있을 텐데. 별님이 그랬지. 물이 있는 데는 마음대로 내릴 수 있다고.
그래, 나도 별이 되자. 그래서 고향엘 가자.´
그 날부터 소라는 갑자기 벙어리가 된 듯했습니다.
눈에 익은 어린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듯 솟아오를 때까지 소라는 별이 되지 못했습니다.
세월은 소라의 몸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구멍이 몇 개 송송 뚫렸습니다.
별이 되리라던 믿음에도 어느 날 구멍이 생겼습니다.
´별이 될 수는 없을 거야.
그 고추잠자리는 내가 불쌍해서 불쑥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믿고 별이 되는 꿈만 꾸었어. 병신이야, 바보야. 멍텅구리야. ....나는.´
소라는 갑자기 더 외로워졌습니다.
소라의 슬픔처럼 눈이 옵니다.
어둠이 안개처럼 몰려오고 있습니다.
´소라야, 믿어야 돼. 너는 별이 될 거야.´ 어디선가 고추잠자리의 소리가 바람처럼 소라 껍데기를 스쳐 갔습니다.
´그래, 믿어 볼게. 믿을게.´ 소라는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몇 년 동안 쌓아 온 믿음이라 쉽사리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아얏!˝ 소라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습니다.
누가 허물어져 가는 제 몸을 꽉 누르는 게 아닙니까?
˝아이, 미안해. 눈이 쌓여 보여야지. 아니 근데 넌 소라 껍데기구나. 이 산골에까지 굴러 오다니, 불쌍하군.˝
날씬한 사슴은 조금 건방스럽게 말했습니다.
˝불쌍하긴요. 사슴님이야말로 이 추운 데 웬일이세요? 난 별이 될 거니깐 괜찮아요.˝
사슴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다 허물어져 가는 소라 껍데기가 그처럼 자신에 넘친 이야기를 하다니...... 웃어넘길 수 없는 믿음이 그 말속엔 숨어 있었습니다. 소라 자신도 말해 놓곤 놀랐습니다.
오랫동안 품어 온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말이 되어 나온 것입니다. ˝사슴님, 어디 가는 길이세요? 어두워지는데.˝ 소라가 다시 물었을 때, 사슴은 당당하던 자세를 잃고 슬픈 눈빛이 되고 말았습니다.
˝난 내 아기를 찾아다닌단다.
우리 집은 저 산너머 깊은 산 속이었어. 그런데 지난 여름 사람들은 내 고향의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며 그 산을 모두 차지해 버렸단다.
큰 관광호텔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산을 가르고.... 우리 사슴들은 사람에게 잡히기도 하고 나처럼 쫓기다가 가족을 잃기도 했단다.˝
˝사람들은 왜 사슴님을 잡으려 하나요?˝
˝이 뿔 때문이야. 이 뿔은 사람들의 귀한 약이 된단다.˝
˝어쩜! 남을 위해서 제 몸 한 쪽을 내줄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아요?˝
˝그렇지만 이젠 다 글렀어. 내 뿔은 이제 약이 안 될 거야.˝
˝아니, 왜요?˝
˝생각해 보렴. 사슴뿔이 약이 되는 것은 저 깊은 산 속 그윽한 산의 정기를 지닌 때문이었지.˝
˝그런데요?˝
˝나는 지금 숨어살고 있단다. 사람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어둠을 타고 다니는걸. 내 뿔을 키우는 건 이제 맑은 공기도 아니고, 천 년 묵은 산바람의 노래도 아니고, 거울 같은 샘물도 아니야. 그리움과 미움이란다. 고향과 아기에 대한 그리움, 사람에 대한 미움.˝ 사슴은 또 말했습니다.
˝소라야, 넌 별이 된다고 했지?˝
˝네.˝
˝별이 되면 우리 아기를 찾아봐 줘.˝
˝네, 찾아서 알려 드릴게요.˝ ˝고마워. 그 대신 너를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데려다 줄게.˝
˝정말요? 여긴 응달이라 너무 추워요.˝
˝그래, 너는 정말 별이 될 거야. 네 목소리엔 믿음이 서려 있단다.˝ 사슴의 이야기는 소라를 힘나게 합니다. ´고마워요. 사슴님. 믿음이 힘이라던 고추잠자리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사슴은 조심히 소라를 물고 어둠 속을 걸었습니다. 어둠 속에 큰 길이 길게 누워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마차가 달가닥 달가닥 굴러 오고 있습니다.
˝사람이야! 미안해. 소라야, 다시 보자.˝ 소라 껍데기를 길 가운데 버리고 사슴은 바위 뒤로 숨었습니다.
마차 소리가 가까이 굴러 왔습니다. 달가닥 달가닥 .... 묵직한 쇠 바퀴가 소라 껍데기 위로 지나갑니다. ˝아, 아.˝ 소라 껍데기는 조각조각 부서졌습니다. 사방이 갑자기 환해집니다. 달구지 소리가 어느 새 물결 소리로 찰싹이며 멀어져 갑니다.
˝아, 아....˝ 소라는 파도의 발목을 붙잡고 어디론가 떠날 때의 기분입니다. 아니, 지금 떠나고 있습니다. 숨어 있던 사슴은 보았습니다. 소라 껍데기를 버렸던 그 분명한 자리에 눈부신 빛 물결이 출렁이는 것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반짝거리던 빛 물결이 한 덩이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소라 껍데기의 믿음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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