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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동아일보] 하느님의 호주머니 속에는 -김운경

신춘문예 김 운 경............... 조회 수 719 추천 수 0 2004.04.19 23: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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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동아일보신춘] 하느님의 호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아빠가 걸어 가실 때는 짤랑짤랑 동전소리가 납니다.
오빠의 호주머니에는 유리구슬이 가득하고요, 미나의 주머니에는 예쁜 머리빗이 들어 있습니다.
미나는 아파아트 오백 일호에 사는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입니다.
요즈음 미나에게는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하느님의 호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하느님의 호주머니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미나는 베란다 위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엄마의 치마 앞에는 굵은 핀이 꽂힌 주머니가 달려 있었습니다. 미나는 엄마의 주머니를 보며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 호주머니엔 뭐가 들어 있어?˝
˝저금통장이 들어 있지. 그건 왜?˝
엄마는 젖은 손을 닦으며 미나의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럼 하느님 호주머니엔 뭐가 들어 있어?˝
미나의 말에 엄마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는 저금통장을 꺼냈습니다.
˝미나야, 하느님 주머니에도 이런 초록색 통장이 들어 있어. 하지만 엄마 것하곤 딴 판이지. 엄마 것은 돈을 저금하는 것이고, 하느님 것은 착한 일을 저금하는 통장이란다. 그러니까 미나가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착한 일을 많이 저금하는 것과 같은 거야. 하느님은 통장을 보고 누가 착한 일을 많이 했나를 알 수 있단다.˝
˝엄마 것도 있겠네.˝
˝그럼, 엄마 것도 있고 말고.˝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다른 것도 주머니에 넣고 계실 것 같았습니다.
˝다른 건 없어요?˝
˝다른 건 네 이모에게 물어 보렴.˝
엄마는 대야에 들어 있는 물을 버리며 말했습니다.
미나는 이모의 방으로 갔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이모는 아주 멋장이입니다. 이모는 거울 앞에 서서 두꺼운 코오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모, 하느님 호주머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요?˝
미나의 말에 이모는 잠자코 머리를 빗으며 말했습니다.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왜 몰라요?˝
미나는 떼를 쓰듯 이모의 팔을 잡아 당겼습니다. 그러자 이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생각난 듯 말했습니다.
˝거울, 그래 손거울이 들어 있을 거야.˝
˝피, 그건 아닐 거야.˝
˝아니라니? 하느님 손거울이 얼마나 신기한지 너 알기나 하니?˝
이모는 미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 눌렀습니다.
˝하느님이 가지고 있는 거울은 이런 거울하곤 달라. 어떤 것이냐 하면 마음을 비춰 주는 거울이야.˝
˝마음을 비추는 게 뭔데?˝
미나는 거울 속의 이모를 쳐다보았습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은 하얗게 보이고 마음이 나쁜 사람은 까맣게 보이는 거야. 이젠 알겠니?˝
말을 끝낸 이모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층계 쪽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미나는 이모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손거울이 깨지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미나는 아파아트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계단 아래서는 쿵쾅쿵쾅 망치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수위 아저씨가 망그러진 의자에 못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위 아저씨는 미나를 보더니,
˝미나구나. 거기 서 있지 말고 이리 들어오려무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나는 수위 아저씨가 고치는 의자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너도 못질을 하고 싶으냐?˝
아저씨는 미나를 보고 웃었습니다.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잘못하면 손을 다쳐. 넌 그냥 구경만 하는 게 좋겠다.˝
아저씨는 미나를 난로가에 앉게 해 주었습니다. 난로는 빨갛게 달아 있었습니다. 미나는 아저씨에게 또 물어보았습니다.
˝아저씨, 하느님 호주머니에 뭐가 들었는지 아셔요?˝
아저씨는 미나의 말이 뜻밖이라는 듯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았습니다.
˝글쎄, 네 엄마는 뭐라 하시더냐?˝
˝엄마는 통장이 들어 있대요. 이모는 거울이 들어 있다 그러고요.˝
아저씨는 껄껄 웃으시며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네 엄마 말씀이 맞다. 네 이모 말도 맞고. 그런데 어떤 통장이라고 하시던?˝
˝착한 일을 저금하는 통장이래요. 거울은 마음이 까만가 하고 비춰 보는 것이고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옳지, 옳지.˝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뭐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미나는 주전자 뚜껑을 만지며 물었습니다.
˝내 생각엔...˝
아저씨는 잠시 주머니를 뒤적거렸습니다.
˝내 생각엔 열쇠가 들어 있을 것 같구나.˝
˝무슨 열쇠인데요?˝
˝천국에 가는 열쇠와 지옥에 가는 열쇠겠지.˝
˝저렇게 생겼어요?˝
미나는 수위실 벽에 걸린 커다란 열쇠를 가리켰습니다.
˝저렇게 생기진 않았을 게야. 하느님 주머니 속을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천국의 열쇠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지옥의 열쇠는 아주 무섭게 생겼을 게다.˝
아저씨는 벽에 걸린 열쇠를 하나 하나 쳐다보았습니다.

이 때 계단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미나야, 너 여기서 뭘 하니? 아저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엄마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미나를 데리고 시장에 갔습니다.
엄마가 물건을 사는 동안 미나는 과일가게 앞의 사과 상자에 앉아 수위 아저씨의 말을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나야, 너 뭘 그렇게 생각하니?˝
돌아다 보니 과일 가게 아줌마였습니다.
˝하느님 호주머니에 뭐가 들었는지 아줌만 알아요?˝
˝글쎄, 난 그런 건 모르겠다. 저이에게 물어 봐라.˝
아줌마는 개털 점퍼를 입은 아저씨를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아저씨는 들고 있던 주판을 탁탁 털며,
˝뭐라고?˝
하고 잘 들리지 않는 듯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얘가 하느님 주머니에 뭐가 들어 있느냐고 묻쟎아요.˝
아줌마와 미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아저씨는
˝글쎄다, 글쎄...˝
하며 가게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주판을 저울 위에 얹으며 기쁜 듯이 말했습니다.
˝맞아. 저울이야, 저울. 미나야, 저 저울을 봐라. 눈금이 보이지?˝
미나는 아저씨가 가리키는 앉은뱅이 저울의 눈금을 보았습니다.
˝하느님 주머니 속에도 저런 저울이 들어 있단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 가면 우선 하느님은 사람들의 죄를 저울에 달아 본단다. 물론 죄가 무거운 사람일수록 벌을 많이 받게 되는 거지.˝
˝죄가 없는 사람은요?˝
미나는 저울을 보며 다시 물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없어. 다 조금씩 있지만 자꾸 용서를 빌고 착한 일을 하면 죄가 없어지는 거야. 이젠 알겠니?˝
아저씨는 기분이 좋은 듯 미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온 미나는 크레용으로 하느님의 호주머니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초록색 통장과 손거울, 열쇠와 앉은뱅이 저울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집어 넣으면 하느님의 호주머니는 너무 불룩해져서 보기가 흉할 것 같았습니다. 미나는 하느님의 호주머니에는 좀 더 예쁘고 멋진 것이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나는 하느님의 호주머니를 그리다가 크레용을 손에 쥔 채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깨어나 보니 집안에는 전등이 켜져 있었고 밖은 차츰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미나는 창가로 가서 턱을 괴고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에는 지금 막 나온 새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을 보고 있는 미나의 귀에 갑자기 ´살각 살각´ 하고 가느다란 철사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돌아다보니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소리는 밤 하늘에 별이 나타날 때마다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미나의 눈은 빛나고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미나는 하느님의 호주머니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지금 막 한 쪽 주머니에 뜨거운 해를 집어넣고, 다른 쪽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별을 꺼내 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살각 살각´ 아무도 모르게 하느님은 밤 하늘에 꽃씨를 뿌리듯 별을 던지고 계셨습니다.
미나는 세상에서 제일 먼저 하느님의 호주머니를 본 소녀가 되었습니다.  ⓒ김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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