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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동아일보] 노루 -조대현

신춘문예 조대현............... 조회 수 1681 추천 수 0 2004.04.19 23: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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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길수야, 오늘 낮에 이장님이랑 마을 어른들이 우리 집엘 오신다더라. 집 안팎 깨끗이 쓸고, 부엌에 나가 노루 먹이도 듬뿍 주려무나!˝
개털 벙거지를 쓰고 마당으로 나서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언짢은 기색이 담겨 있었다.
´체, 이장님이 우리집엘 뭣하러 와!´
길수는 입 속으로 소리나지 않게 중얼거리며 아버지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뜰 앞에는, 낮은 돌각담을 넘어 갈참나무가 우거진 산등성이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흰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길수네 집은 깊은 산골이다. 이장님이 사는 마을에서도 7마장 정도는 산비탈을 기어 올라와야 길수네 토담집이 있었다. 이 곳에서 길수 아버지는 이장님네 산을 관리해 주고, 그 값으로 산비탈에 있는 화전밭을 얻어 부쳐 먹고 살았다.
마당으로 나선 아버지는 종가래(눈치는 기구)와 싸리비를 찾아 들고 마을로 내려가는 비탈길의 눈을 치기 시작했다. 낮에 올라올 이장님과 마을 어른들이 오기 쉽도록 길을 트는 것이었다.
길수는 눈 쓰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어깨를 바라보고 섰다가 얼른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검불(마른 풀)을 지펴 아침밥을 짓고 계셨다. 그리고, 그 옆 부엌 한 구석 풀더미에 어린 노루가 네 다리를 얌전히 꺾고 앉아 마른 풀을 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길수는 찔끔 눈물이 나왔다.
˝쳇, 이장님이 왜 우리집에 오는지 나는 다 안단 말야. 다 안다고!˝
길수는 아예 큰 소리를 내어 이렇게 투덜거렸다. 그래도 어머니가 들은 체를 해 주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더 큰 소리로, 엄마 들으라는 듯이 짜증을 부렸다.
˝보나 마나 저 노루 잡아먹으려고 오는 거지, 그렇지?˝
그제서야 군불을 지피던 어머니가 달래는 투로 길수의 말을 받았다.
˝그러니 어쩌겠느냐. 이장님이랑 마을 어른들이 벌써부터 저 노루한테 눈독을 들이고 계시는 걸. 이제 날씨도 좀 풀리고 눈길이 트일만하니까 오늘 우리 집으로 오신다는 게 아니냐.˝
˝쳇, 그럴 줄 알면서 왜 마을에다 알렸느냐 말야? 노루 잡았다는 얘기는 왜 해?˝
˝아이고, 애도! 얘긴 누가 얘길 해. 엊그제 사냥하러 왔던 사람들이 보고 가서 마을 사람들한테 말을 한 거지!˝
˝씨, 난 몰라. 죽어도 저 노루는 안 내놓을 테니까 그런 줄 알아!˝
길수는 찔끔거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고 풀더미에 앉아 있는 노루 곁으로 다가갔다.
노루는 그들의 얘기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여전히 다리를 얌전히 꺾고 앉았다가 다가오는 길수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눈망울 속에 깊고 처량한 그림자가 어린다고 길수는 생각했다.

노루가 길수네 집으로 오게 된 것은 열흘쯤 전이었다.
그 날따라 산 속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한낮 무렵에 벌써 정강이까지 차 오르던 눈이 저녁 때가 되어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쏟아졌다. 거기다가 밤이 되면서부터 심한 바람과 추위가 몰아닥치는 바람에 멀고 가까운 골짜기에서는 밤새도록 나뭇가지 꺾어지는 소리가 ´따악 딱-´하고 들렸다.
이튿날, 날이 밝아 눈을 쓸러 밖으로 나왔던 길수는 돌담 밖 개천가로 가는 눈길을 쓸어 내려가다가 눈더미 위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멈칫 비질을 멈추었다.
노루였다. 밤새도록 추위와 배고픔에 지쳤는지 노루는 길수가 다가가도 도망갈 줄을 모르고 눈 속에 파묻혀 꺼먼 눈알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길수는 얼른 주위의 눈을 헤쳐 내고 노루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노루는 온몸에 얼어붙어 옴쭉달싹을 하지 못했다. 오른쪽 앞다리 무릎에는 어디서 다쳤는지 깊은 상처가 나 있고, 그 곳에는 피가 벌겋게 얼어붙어 있었다.
˝아버지, 노루여요! 노루가 다쳐 쓰러져 있어요.˝
길수는, 안마당의 눈을 치고 있는 아버지의 힘을 빌려 그 노루를 집 안으로 안아 들여왔다.
노루는 이제 태어난 지 1년 밖에 안되는 새끼인 것 같았다. 눈이 쏟아지니까 먹이를 찾으려고 산 밑으로 내려 오다가, 그만 눈에 미끌어져 다리를 다치고 쓰러진 모양이었다.
길수는 부엌 한 구석에다 마른 풀은 깔고 그 위에다 노루를 눕혔다. 그리고 구들 아궁이에 불을 활짝 지펴 공기를 따습게 하고 더운 물을 떠다 먹였다.
한낮이 훨씬 넘어서야 새끼 노루는 얼어붙었던 다리를 꼼지락꼼지락하며 코 끝으로 더운 김을 푸푸 내뿜었다.
그 날 저녁부터는 길수가 낟가리에서 날라다 주는 마른 풀을 덥석덥석 받아 먹었고, 제법 다리를 펴 일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다친 다리 때문에 이내 앞 무릎을 꿇고 주저앉곤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앞다리의 상처는 저절로 아물어 붙었다. 그리고 햇볕이 두터운 한낮에는 길수를 따라 눈이 쓸린 앞마당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상처가 다 아물었는데도 산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를 않는 것이었다. 아마 포근한 잠자리와 맛있는 먹이 때문에 정이 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것을 보고 길수는 결심했다.
´옳지. 이놈을 내가 집에서 길러 볼 거야.´
그래서 아버지에게 허락까지 얻어 목에 작은 굴레를 만들어 씌우고 송아지처럼 끌고 다니며 놀곤 했는데, 그것이 그만 산 아래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 날 한낮이 되자 정말 털 점퍼를 입은 이장님이 마을 어른들 서너 명과 함께 산 속 길수네 토담집을 찾아 올라왔다.
이장님은 마당에서 어정거리는 노루 새끼를 보고 군침부터 쩝쩝 다셨다. 아버지는 이장님 앞에서 연방 고개를 굽신거리며 손님맞이를 하기에 바빴다.
˝이 추위에 험한 눈길 올라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아버지는 곧 어머니를 시켜 솥에 더운 물을 끓이게 하고, 길수더러는 뜰에 낫 가는 숫돌을 찾아 놓으라고 이르셨다.
물이 더워지자 아버지는 부엌에서 쓰는 식칼을 들고 나와 뜰에서 싹싹 칼을 갈기 시작했다.
길수는 부엌 안팎을 들락거리며 애가 닳아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안돼, 안돼! 노루를 죽이면 안된단 말야!˝
길수는 우선 만만한 어머니부터 붙들고 떼를 썼다.
˝엄마, 노루를 잡으면 안된다고 엄마가 얘기를 좀 해 줘!˝
어머니는 아궁이에서 내치는 연기에 이마를 찌푸리며 도리어 짜증을 내셨다.
˝아이구, 얘가 날 보고 이러면 무슨 소용이 있나! 네가 아버지한테 바로 말씀을 드려 보거라.˝
˝글쎄, 엄마가 얘길 해 달라니까. 아버지는 내 말 같은 건 듣지 않는단 말야!˝
˝그런 걸 낸들 우짜란 말이냐?˝
˝그래도 엄마가 좀 얘길 해 달란 말이야.˝
길수가 자꾸 떼를 쓰자 어머니는 안되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조용한 말로 아들을 달랬다.
˝얘야, 아버지도 네 맘을 왜 모르시겠느냐? 짐승도 정이 들면 사람과 똑같아서 차마 죽이기 안됐다는 것을 아버지도 다 알고 계시지. 그렇지만 이장님네 신세를 지고 있으니 어쩌겠느냐. 벌써 며칠 전부터 알고 저렇게 찾아까지 오신 걸. 그러니 이번만은 네가 꾹 참고 가만히 있거라.˝
˝씨, 난 몰라. 모른단 말야!˝
길수는 어머니한테 떼를 써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밖으로 나와 다시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이장님이 보는 앞에서 칼을 갈던 아버지는 벌써 길수의 눈치를 알아채고, 길수가 다가가기도 전에 버럭 고함을 지르셨다.
˝데끼, 이놈! 너는 안에 들어가 있거라. 애들은 이런 거 보는 게 아니여!˝
길수는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뒤로 물러섰다. 이장님과 같이 올라온 마을 어른들은 벌써 노루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느라고 목에 맨 굴레를 단단히 잡고 서서 아버지가 칼 갈기를 마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씨, 저건 내 노룬데...!˝
길수는 어른들 서슬에 눌려 방 안으로 쫓겨 들어오면서 애꿏은 문짝만 쾅 메박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길수가 방바닥에 머리를 쓸어박고 혼자 훌쩍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어른들이 노루를 몰고 개천가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틈으로 내다보니, 이장님과 마을 어른들이 노루를 끌고 나가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끓여 내온 더운 물을 한 옹배기 들고 그 뒤를 따라 나가고 있었다.
아마 개천가에 나가 노루를 잡으려는 모양이었다.
길수는 그만 더 참지 못하고 화닥닥 밖으러 뛰쳐 나갔다.
얼음을 깨고 웅덩이를 만들어 놓은 물가에서 어른들을 벌써 아기 노루의 목덜미를 단단히 잡고 서서 목 찌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루피가 몸에 좋다고 언제나 산 노루의 목부터 찌르는 어른들의 버릇을 길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길수는 그 옆까지 다가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아버지에게 떼를 써 보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날이 새파란 칼을 든 채 무서운 눈으로 길수를 노려 보았다.
˝이놈, 어서 저리 가지 못해?˝
아버지는 눈으로 그렇게 야단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길수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징징 우는 소리로 떼를 썼다.
˝아버지, 제발 노루를 죽이지 마셔요, 예? 그 노루는 제가 키울 거여요!˝
그 때까지도 노루는 제가 죽게 된 것도 모르고 순한 눈으로 길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보게, 어서 쿡 찌르게!˝
이장님이 옆에서 아버지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장님의 손에는 피를 받아 마실 사기그릇이 쥐어져 있었다.
˝안 돼요, 안 된단 말여요!˝
길수는 더 참지 못하고 후닥닥 달려들어 아버지의 바지가랭이를 잡고 늘어졌다. 그 바람에 아버지가 칼을 놓치고 뒤로 벌렁 넘어졌다.
길수는 짬을 주지 않고, 노루를 잡고 있는 마을 어른들 앞으로 뛰어들었다.
˝아이쿠, 이 녀석이...?˝
어른들이 노루를 놓치고 얼음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때를 기다려 길수는 다시 노루의 작은 엉덩이를 힘껏 후려쳤다.
˝임마, 가! 어서 도망가란 말야!˝
그제서야 놀란 아기 노루가 눈 쌓인 산비탈로 껑충껑충 뛰어 달아나고 있었다. ⓒ조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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