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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동아일보] 멧돼지와 집돼지 -조장희

신춘문예 조장희............... 조회 수 1620 추천 수 0 2004.04.19 23: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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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며칠을 두고 함박눈이 계속 내려 쌓였습니다. 흰 눈에 덮인 산은 골짜기와 언덕도 구별이 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것이 다복솔이고 어느 것이 바위인지도 물론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눈 덮인 산 속을 헤매던 멧돼지는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도토리 한 톨 줍기는 고사하고 나무 뿌리 하나도 제대로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멧돼지는 할 수 없이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마을이 보이는 동산에 이르자 구수한 냄새가 났습니다. 더욱 배가 고파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다니고 있어 먹이를 찾아 쉽사리 마을로 들어설 수도 없었습니다.
멧돼지는 못 견디게 배가 고팠지만 동산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밤이 되자 마을로 들어선 멧돼지는 코끝에 감겨드는 구수한 냄새를 따라 어느 한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은 바로 집돼지 우리였습니다.
배가 고픈 멧돼지는 우선 우리 주변에 떨어져 있는 쌀겨며 무쪽 등 음식 찌꺼기를 허겁지겁 주워 먹었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집돼지가 잠을 깼습니다.
˝아니, 아닌 밤중에 웬 놈이야?˝
선잠을 깬 집돼지가 깜짝 놀라 소리 쳤습니다.
˝쉿! 난 멧돼지야. 산엔 눈이 어찌나 많이 쌓였는지 먹을 것을 찾을 수가 없어 닷새를 굶었더니 허기져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먹을 것을 좀 나눠 주지 않겠니?˝
멧돼지는 집돼지에게 통사정을 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저녁에 먹다 남긴 것이 저 죽통에 꽤 남아 있으니 네가 먹으렴. 오늘 밤에 내가 남긴 먹이가 죽통에 얼어붙으면 내일 아침 우리 주인에게 한바탕 야단을 맞을 텐데, 마침 잘 됐다.˝
집돼지는 선선히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집돼지가 들어 있는 우리는 단단한 나무 판자로 둘러쳐져서 멧돼지가 쉽게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이쪽 귀퉁이의 판자가 낡아 있어. 한번 힘껏 밀어 봐.˝
집돼지는 뜻밖에도 선선히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멧돼지는 집돼지가 가르쳐 준 대로 있는 힘껏 밀치고 우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곤 죽통에 남아 있는 먹이를 모두 쓸어 먹었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집돼지의 주인이 돼지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러곤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눈이 그렇게 많이 내려 쌓이더니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여기까지 내려왔구나. 우린 횡재를 했어.˝
집돼지 주인은 멧돼지가 우리 안으로 들어갈 때 떨어져 나간 낡은 판자 대신 튼튼한 새 판자를 갈아 댔습니다. 그러곤 여기저기 우리를 더욱 단단히 손질을 해서 멧돼지가 쉽사리 도망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집돼지의 우리 속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멧돼지는 먹고 사는 데엔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때맞춰 주는 먹이를 배불리 먹고 토실토실 살이 쪄 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멧돼지는 좁은 우리 안에서 지내기가 불편해졌습니다.
산비탈을 마음껏 달리고 싶었습니다. 가랑잎을 헤치고 도토리를 줍고, 좀 힘이 들지만 땅을 파고 칡뿌리를 캐는 등 먹이를 찾아 애쓰던 것이 이제 와서는 큰 재미로 생각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멧돼지는 우리를 빠져 나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끝으로 힘껏 판자를 밀쳐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사리 뚫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멧돼지는 단념하지 않고 계속 우리의 판자에 부딪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코에는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고, 그렇게도 소중히 간수했던 엄니도 한 개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얘, 멧돼지야. 너는 무엇이 부족해 이 우리를 빠져 나가려고 그러니? 주는 먹이나 받아 먹고 편히 누워 낮잠이나 자면, 바로 그게 낙원이 아니냐?˝
제가 누어 놓은 똥무더기 위에 질펀히 드러누워 있던 집돼지가 거슴츠레한 눈으로 멧돼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넌 시원한 산바람과 향긋한 풀꽃 향기를 맡아 보지 못해서 그래. 탁 트인 하늘 아래 가파른 산비탈을 땀 흘리며 달리는 기분은 또 어떻고.˝
멧돼지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집돼지는 디룩디룩 살찐 몸뚱이를 돌려 누우며 아예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멧돼지는 계속 우리를 빠져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판자 하나를 간신히 뜯어 놓으면, 그 이튿날 주인은 더욱 두꺼운 새 판자를 갈아 대고 굵은 대못을 땅땅 뚜드려 박아 놓곤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기운이 돌자 향긋한 산 냄새가 실려 와 멧돼지의 코끝을 간질렀습니다. 멧돼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 밤 멧돼지는 온몸을 던져 우리의 판자에 부딪혔습니다. 한 번, 두 번......, 열 번, 스무 번...... 마침내 우리의 판자벽 한 귀퉁이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멧돼지는 가쁜 숨을 고르면서 집돼지에게 말했습니다.
˝자, 마침내 나갈 길이 뚫렸다. 너도 이 기회에 나하고 함께 산으로 가자. 주는 대로 받아 먹고, 먹은 자리에 싸고, 또 그 위에 드러누워 디룩디룩 살만 찌워 봤자 그게 누구 좋은 일 시키는지 아니? 금년 봄 이 집 주인 환갑 잔칫상에 오를 게 뻔하지. 자, 집돼지야, 나하고 함께 아지랑이 감도는 저 산으로 가자.˝
˝아유, 난 골치 아파. 그런 복잡한 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귀찮게 굴지 말고 갈 테면 너나 가거라.˝
집돼지는 냄새 나는 검불 더미에 코를 박은 채 귀찮다는 듯 일어서지도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멧돼지는 혼자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멧돼지가 이제 산으로 가면 힘들여 일해야만 먹이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면 여러 힘센 짐승들과도 싸워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에 갇혀 주인이 넣어 주는 먹이나 편안히 받아 먹던 때와는 다른 많은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뛰쳐나온 멧돼지의 힘살은 팽팽하게 당겨졌습니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멧돼지는 산을 향해 힘차게 달려갔습니다. ⓒ조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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