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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동아일보] 바람개비 -한상남

신춘문예 한상남............... 조회 수 1835 추천 수 0 2004.04.25 13: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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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신춘문예]

빨간 고추가 마당에 널릴 때쯤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영감, 이 나이에 이사가 웬말이유. 난 정말 이 안골마을을 떠나기 싫수. 뒷산의 온갖 나물이랑 약초도 그렇고 가을이면 알밤이랑 도토리, 그걸 다 어떡하구......˝
˝거 참 아이들 듣겠수. 다 세상 따라 사는 게지. 빈 손으로 태어난 우리가 우리의 것이 어디 있소? 그저 필요한 만큼 빌려쓰다 빈 손으로 가는 게 인생길이잖소. 이 곳에서 우리가 그간 잘 누리고 살았으니 더 필요한 이들에게 내어 주는 건 당연한 일 아니요?˝
진지 드시라고 알리러 할아버지 방으로 왔던 나는 할아버지 음성에서도 잔잔한 슬픔이 묻어나는 걸 들었습니다.
˝엄마, 우리 정말 이사할 거예요?˝
주영인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묻습니다.
˝그래, 이곳이 재개발지역이라 곧 집을 비워야 한다는구나.˝
아빠가 말씀하십니다.
˝주영인 아파트 사는 아이들이 부럽다구 했잖아.˝
엄마가 눈을 곱게 흘기며 말씀하십니다.
˝싫어, 우리 강아지 아롱이랑 다롱인 어떡하구, 또 꽃이랑 나무들은 어떡할 거야?˝
˝우리 주영이 마음도 이 할미 마음과 똑 같구나. 아파트란 곳이 어디 채소 한 포기라도 가꿀 수 있길 하나 땅을 마음대로 밟고 살수 있길 하나... 난 그 생각만 하면 숨이 콱콱 막혀 오는 것 같구나.˝
할머니는 슬며시 수저를 놓으십니다.

화훼마을이라 불리던 우리마을에서 꽃이랑 채소 모종이 비닐 하우스 밖으로 쫓겨나던 때부터 할머니 가슴은 죄여 왔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동네를 드나들더니 비닐 하우스 안에 방을 만들었습니다. 부엌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도 만들었습니다. 마을 아이들은 꽃대신 이사온 사람들의 세간을 구경하러 다녔습니다. 비닐 하우스마다 번호가 매겨졌습니다. 마을 입구에 경비초소가 세워지고 노란 완장을 찬 아저씨가 거길 지켰습니다.
더러 꽃이랑 채소 모종이 비닐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긴 했어도 할머니 가슴은 여전히 콩당 콩당 뛰었습니다.
˝아버님 아이들 학교문제도 그렇구. 저두 통근하기에 좋은 두정거장 떨어진 나리아파트로 정했습니다.˝
˝그래! 참 잘 됐구나. 난 이 동네를 훌쩍 떠나면 어쩌나 했는데 정말 잘했다.˝
엄마가 이곳 저곳 아파트를 알아보러 다니실 때 먼 곳으로 이사할까봐 조바심을 하셨던지 할머니는 반가워 하십니다.
이삿짐이 대충 정리되고 나서 할아버지를 따라 안골마을 뒷산 약수터로 물을 길러 떠나는 할머니는 꼬마 손에 들려 도는 바람개비 모습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마을이라 어찌나 쓸쓸한지..., 사루비아가 담 밑에 가득 피어 우리 빈집을 지키고 있더구나.˝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처럼 할머니 가슴에 그리움이 잦아듭니다.
작은 엄마랑 고모가 자주 다녀가셔도 안골마을에 계실 때처럼 할머니는 좋아하시질 않습니다.
˝할머니가 가꾼 무공해 채소를 들려 보내시지 못해 섭섭하시지요?˝
˝에구 녀석두......˝
속마음을 들켜버린 할머니 볼이 발갛게 달아오릅니다.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주변을 돌다가 담 밖을 바라보던 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됐다 됐어. 바로 이거야!˝
보물을 발견한 톰소여처럼, 보물섬을 발견하고 좋아했던 짐과 실버처럼 나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고모는 들국화와 갈대를 한아름 안고 오셨습니다. 아빠는 커다란 케익을 들고 오셨습니다.
˝어머님. 이게 봄에 안골 뒷산에서 뜯어 말린 산나물이예요. 많이 드세요.˝
˝그래 에미가 수고 했구나. 너희들도 많이 먹거라.˝
오랫만에 할머니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어머니. 이건 자석 벨트입니다.˝
아빠가 선물을 드립니다. 주영이가 내민 예쁜 꾸러미 속에서 땡글땡글 영근 알밤과 도토리가 또르르 굴러 나옵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뒷산에서 주어온거예요. 할머니 생일 축하합니다.˝
˝그래, 고맙다. 귀한 선물이구나. 영감은 선물 준비 안했수?˝
할머니가 웃음 가득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건너 보십니다.
˝있지. 있구 말구. 임자가 호박죽 맛있게 쑤어 이웃들에게 솜씨 자랑하라구 이걸 준비했지.˝
늙은 호박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배꼽을 드러낸 채 방 가운데서 웃고 있습니다.
˝오늘이 할머니 생신인가 보군요. 축하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엄마가 차려주신 음식을 받으시면서 경비 아저씨가 고마워하십니다.
˝할머니 제 선물도 받으셔야지요.˝
나는 할머니 손을 잡았습니다.
˝그럼, 그래야지.˝
˝오빠, 할머니께 드릴 선물이 뭐야?˝
주영이가 살며시 묻습니다.
˝따라와 보면 알아, 할머니 이쪽으로 오셔요.˝
달님이 화안히 웃으시며 앞장 서 갑니다.
˝아이쿠, 이럴 수가... 우리 강아지가 기특하기도 하지.˝
할머니는 내 어깨를 보듬어 주십니다.
˝거 참, 우리 준이가 할머니 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는구나.˝
할아버지도 칭찬 하십니다.
˝나는 우리 준이가 할머니 선물을 미쳐 준비하지 못했나 해서 은근히 걱정했는데......˝
아빠와 엄마가 눈을 맞추고 웃고 계십니다.
˝와! 우리 오빠 최고다.˝
주영인 어느새 저 만큼 뛰어갑니다.
아파트 담밑 쓰레기와 잡초더미 사이로 가지런히 손질된 밭이랑이 보입니다.
´할머니 생신을 축하합니다.´
조약돌이 달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커다란 막대기에 꽂힌 내가 만든 바람개비가 알싸한 가을바람에 신나게 돌고 있습니다. ⓒ한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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