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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동아일보] 서울 가는 길 -황일현

신춘문예 황일현............... 조회 수 5271 추천 수 0 2004.04.25 1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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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동아일보신춘]

벌판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껍게 내려앉은 하늘에서 성긴 눈발이 비껴 날리더니 곧 송이눈으로 펑펑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금세 벌판은 뿌연 안개꽃으로 활짝 피어났다. 꿈틀대며 가로지른 개천둑도 송이눈이 쌓여 긴꼬리를 뿌연 안개꽃 속에 감추고 있었다. 어디선가 이따금 팽팽한 전깃줄이 뿌릉뿌릉 빈 벌판을 울렸다.
안개꽃 자욱한 눈발을 헤치고 두 아이가 나타났다. 벌판의 끝에서 불려온 아이처럼 온통 눈투성이였다. 귀까지 가려 쓴 털모자에 눈가루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중 한 아이는 키가 훌쩍 컸고 한 아이는 그보다 한 뼘쯤이나 작아 보였다. 추위 때문인지 손목을 소맷부리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들은 눈 위에 깊숙한 발자국을 찍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뽀드득거리는 발자국 밑으로 너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성아야, 정거장은 아직두 멀었어?˝
작은 아이가 키 큰 아이에게 물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피-. 또 거짓말.˝
˝아냐. 이번엔 진짜야.˝
큰 아이는 자신의 말을 확인이라도 시켜줄 듯 건너야할 벌판의 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비껴 날리는 짙은 눈발뿐, 벌판은 꽁 막혀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질은 눈발에 가려 집 모퉁이가 보이지 않을 때부터 작은 아이는 꼭 그렇게 물어 왔다. 그때마다 큰 아이는 번번이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정말, 정거장까지는 얼마나 더 걸어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작은 아이가 발을 굴렀다.
˝춥니?˝
˝아니.˝
그러나 큰 아이는 퍼렇게 언 작은 아이의 뺨을 보았다.
오늘 아침 눈길로 잡아 이끈 것은 작은 아이 쪽이었다.
간밤에 몹시 춥다 싶더니 세상이 온통 새하얀 눈꽃으로 변해 있었다. 첫눈이 내린 것이었다. 작은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큰 아이의 손목을 자꾸만 잡아 끌었다. 엄마를 찾아 나서자는 것이었다. 눈발이 쉴 새없이 얼굴을 들이쳤다.
두 아이는 더욱 몸을 웅크리고 걸었다. 저절로 턱이 맞부딪쳐졌다.
˝조금 쉬었다 갈까?˝
작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트막한 둔덕 밑으로 내려섰다. 낮은 둔덕이긴 했지만 제법 바람막이가 그럴듯했다. 발을 구르며 눈가루를 털어냈다.
작은 아이가 둔덕 밑에 쪼그려 앉자, 큰 아이는 몰아치는 눈발 속으로 잽싸게 달려나갔다. 조금 후에 눈발 속에서 짚뭇을 한아름 부둥켜 안고 나타났다. 어디서 뽑아 왔는지 말뚝까지 함께였다.
큰 아이는 짚가리를 쌓아 올린 후 그 위에 말뚝을 개어 올렸다. 그러고는 성냥을 그어 댕겼다. 불씨가 몇 번 까물거리더니 허연 연기와 함께 불길이 확 일어났다. 눈송이가 부나방처럼 불길 위에 쉴새없이 떨어져 내렸다.
두 아이는 짚뭇을 나란히 깔고 앉아 조막손을 뽑아 불길에 손가락을 펴 널었다. 불기운이 점점 퍼져 나갔다.
˝너, 엄마 얼굴 알아보겠니?˝
불쑥 큰 아이가 물었다.
˝것두 모를까봐.˝
˝어디 말해봐?˝
˝요기에......˝
˝요기에?˝
큰 아이의 재촉에 작은 아이는 깊숙히 내려쓴 털모자를 밀어 올렸다. 그러자 초승달 눈썹 위에 까만 콩점이 드러났다.
˝나처럼 요기에 콩점이 있구......˝
˝또?˝
˝......˝
작은 아이는 더이상 엄마의 얼굴이 안 떠오르는지 울상을 지었다.
˝에이, 바보. 벌써 잊어 먹었니?˝
˝...쉰 밤도 더 넘었는데... 그럼, 어떻게 해. 잘 모르겠단 말야.˝
˝에이구 바아보. 요렇게 쌍꺼풀지구. 요렇게 보조개가 패이구 얼굴은 요렇게 둥그스름하구......˝
큰 아이가 공중에 엄마 얼굴을 그려 나가자 작은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큰 아이의 손끝을 지켜 보았다.
˝또 무얼 물어볼까?˝
˝이젠 뭐든지 다 물어봐.˝
˝그럼... 엄마 이름?˝
˝엄마 이름? 헤헤헤... 이점순.˝
작은 아이가 눈썹 위의 콩점을 가리키며 웃어댔다.
˝어디 계시게?˝
˝서울 계시지.˝
˝뭐 타구 갔게?˝
˝눈송이 타구 갔지.˝
하다 말고, 두 아이는 똑같이 고개를 꺾어 올렸다. 여전히 하늘에는 안개꽃이 뿌옇게 피어 있었고 종이꽃같이 눈송이가 하얀 점을 빽빽이 찍으며 나풀거리고 있었다.
편지를 찾아내기 전까지만 해도 작은 아이는 엄마가 하늘나라에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북망산천 가는 길이 이다지도 험하더냐.
요령잡이 아저씨가 요령을 쥐어 흔들며 구슬피 목청을 뽑자, 상두꾼들이 입을 모았다.
어허이 넘자 어허이
큰 아이는 눈물을 또옥또옥 떨구며 상여 뒤를 따랐다. 마을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찼다.
상여가 들길을 지날 때였다. 작은 아이가 자꾸만 옆구리를 찔렀다.
고개를 들었을 때 허옇게 핀 개망초꽃이 눈을 찔렀다. 상여에 매달린 종이꽃 하얀 수술이 바람에 날려 너울너울 춤추듯 망초꽃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아야, 꼭 눈송이 같다, 잉. 엄마가 하늘로 올라가는갑다, 잉?˝
작은 아이가 귀바퀴에 더운 입김을 불어 넣어줄 때까지 큰 아이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후 작은 아이는 엄마가 눈송이를 타고 하늘에 오른 거라고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엄마의 고리짝에서 누렇게 빛바랜 편지를 찾아낸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처녀 때 아빠로부터 받은 편지였다. 엄마가 가신 곳이 하늘나라에서 서울로 변한 것은 바로 그 때부터였다.
˝성아야, 이번엔 내가 물어볼 게.˝
˝뭐든지 물어봐.˝
˝음, 아빠 이름?˝
˝김천식.˝
˝어디에 계셔?˝
˝하늘 나라.˝
˝언제?˝
˝아주 오래 전에. 내가 너보다 더 어렸을 때.˝
˝어떻게?˝
˝부사리(황소)에 떠받쳐서.˝
˝성아는 어떻게 그리 잘 알아?˝
˝음, 엄마가 말해 줬거든.˝
˝참, 아빠두 엄마와 함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거야.˝
˝왜?˝
˝주소가 다르거든.˝
˝그래두 같은 봉투에 함께 적혀 있는데......˝
작은 아이는 시무룩해졌다.
˝......˝
큰 아이는 말문이 막혀 고개를 떨구었다. 정말이지 작은 아이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성아야, 찾아갈 수 있어?˝
˝그럼.˝
˝서울은 넓다던데? 이 벌판보다 더. 옆집 사람두 잘 모르구 지내구......˝
˝아무리 넓어두 주소만 알면 걱정없는 거야.˝
큰 아이는 주머니 속에서 누렇게 빛바랜 편지봉투를 꺼내들었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산129-12 강석장 씨 방 이점순>
큰 아이는 작은 소리로 띄엄띄엄 읽어 내려갔다.
˝성아야, 어쩌다 날 잃어버리면 어째?˝
작은 아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빤히 바라봤다.
˝그러니까 손을 꼬옥 잡고 다녀야지.˝
큰 아이는 작은 아이의 손을 꼬옥 그러쥐었다. 작은 아이가 몸을 기대어 왔다.
˝그래두 잃어버리면?˝
˝그럴 땐 주소를 대야돼.˝
˝그럼 성아가 한번 물어봐.˝
작은 아이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큰 아이는 물어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 주소?˝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산......˝
˝바아보! 산 백 이십 구에 십 이번지야. 다시!˝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산......˝
˝다시!˝
˝서울 특별시 구로구 가리봉......˝
˝천천히 다시!˝
˝서울특별시 구로......˝
˝다시!˝
˝서울특별......˝
˝이 바보야! 다시!˝
큰 아이는 괜히 눈물이 자꾸 나오려고 해서 버럭 고함을 질렀다.
˝......˝
˝......?˝
큰 아이가 흘끔 돌아다봤을 때 작은 아이는 이미 깊은 잠에 곤히 빠져 있었다. 하늘을 날아 오르는 꿈이라도 꾸는지 자꾸만 입술을 벙긋거렸다. ⓒ황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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