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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동아일보] 달아, 달아, 둥근 달아 -이대호

신춘문예 이대호............... 조회 수 1444 추천 수 0 2004.04.25 13: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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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동아일보신춘]

보름달이 동산 위에 둥실 떠올랐습니다.
유월이어서인지, 밤바람도 보드랍습니다. 달빛이 나무 잎사귀마다 좌르르르 미끄럼을 타고 산골 마을로 쏟아져 내려옵니다.
˝힘 안 들지요?˝
한식이는 뒤에서 할머니의 허리를 두 손으로 밀며 말했습니다.
˝후훗, 전에는 아비가 밀고 산꼭대기를 올라갔는데...... 너도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니까 다 컸다.˝
할머니는 연방 웃음을 흘렸습니다.
˝할머니 시작해요.˝
˝뭐를?˝
˝아이, 우리가 늘 부르던 행진곡 말여요.˝
˝후훗, 그래 그래.˝
˝제가 먼저 부를께요.˝
˝오냐.˝
˝달아, 달아......˝
˝두웅근 달아!˝
한식이와 할머니는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 가며 발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민둥산! 이 산은 전에 나무 한 그루 없던 대머리산이었습니다. 그런 산을 마을에서 공동으로 목초지로 만들어 소를 기릅니다. 그다지 높지 않은 민둥산 꼭대기에는 돌이 작은 집채 만큼 쌓여져 있습니다. 한식이 할머니가 40년이 넘도록 보름날 밤마다 쌓아 놓은 것입니다.
할머니는 처녀 적에 이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쪽 강원도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랬다가 아들 하나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6·25를 만났으며 1·4후퇴 때 남편과 헤어져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헤어질 때
˝윤수를 데리고 어서 몸을 피하라우. 빨갱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잡으러 다니니까, 함께 삼팔선을 넘다가 들키면 우리 셋이 몰살 당할 게 뻔하디 않아?˝
하고 재촉하였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이런 약속도 하였습니다.
˝통일이 되면 꼭 찾아갈 게. 그 날이 올 때까지, 당신은 민둥산 꼭대기에 보름 밤마다 올라가서 열성으로 하느님께 기도드리라우. 죽으면 넋이라도 찾아 가리다.˝
그리하여 젊은 아내, 즉 한식이 할머니는 갓난 아들을 업고 눈보라 속을 헤치며 친정 마을로 피난을 왔습니다.
한식이 아버지인 윤수는 외가에서 무럭 무럭 자랐고, 장가 들어서 어엿한 농군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할머니는 삼팔선을 넘어 온 뒤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보름 밤마다 민둥산 꼭대기에 올라 가서 북녘을 향해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느님, 부디 통일이 되어 제 남편이 돌아 오게 해 주소서!˝
할머니는 산꼭대기에 올라갈 때마다 돌을 주워다가 쌓았습니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던 것이, 이제는 커다란 돌단이 되었습니다.
˝에구구, 좀 쉬어 가자.˝
할머니는 풀밭에 주저 앉았습니다.
˝할머니를 업고 올라 갈까요?˝
한식이는 그 자리에 섰습니다.
˝괜찮다. 이리 와 앉거라.˝
˝예.˝
˝녀석두, 할아버지 모습을 쏙 빼다 박았구나.˝
할머니는 한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또 할아버지 생각을 하시지요?˝
˝에휴, 그 때, 빨갱이놈들을 피해 다니시다가 붙잡혀서 돌아가셨는지 원...˝
˝돌아가시면, 넋이 되어 꼭 저 산꼭대기로 찾아 오신다고 했쟎아요?˝
˝그래.˝
˝저 돌단에 한 번도 안 나타나셨으니까, 살아 계신 게 틀림없어요.˝
˝그렇겠구나.˝
˝틀림없다니까요! 할아버지는 살아 계셔요. 그리고, 통일이 되면 꼭 찾아 오실 거여요. 오늘부터는 저도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서서 기도하겠어요.˝
˝고맙다.˝
할머니는 쭈글쭈글한 손등으로 눈언저리를 닦았습니다.
바로 그 때, 한식이는 산꼭대기를 쳐다보며 외쳤습니다.
˝할머니! 저기 좀 보셔요! 할아버지가 찾아 오신 거 아니어요?˝
˝어디?˝
˝저 돌단 위에......˝
˝아니, 이 영감이!˝
과연, 민둥산 꼭대기의 돌단 위에 웬 할아버지가 서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한식이가 벌떡 일어나 외치자, 그 할아버지는 금새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할아버지가 없어졌어요!˝
˝하, 할아버지가 도, 돌아가신 모양이구나. 그래서 넋이 되어......˝
할머니는 풀밭에 쓰러져 신음 소리를 내었습니다.
˝할머니, 정신 차리셔요!˝
한식이는 할머니를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고오, 불쌍한 영감. 빨갱이놈들을 피해 다니느라고 고생만 하다가...˝
할머니는 통곡을 하였습니다. 한식이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려고 허겁지겁 집을 나섰습니다.
신경통이 다시 도진 할머니는 아랫목에 반듯이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습니다.
˝할머니, 이젠 산에 올라갈 필요 없겠네요?˝
한식이는 할머니 옆에 바싹 다가앉아 말했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져서야 되겠니?˝
할머니는 약간 비뚤어진 입을 힘겹게 움직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뭘......˝
˝나처럼 된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이니? 북쪽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이 할미는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죽을 때까지 산꼭대기 돌단 위에 올라가서 기도할란다.˝
˝그럼 저도 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기도하겠어요.˝
한식이는 코허리가 찡하여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두어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웬 할아버지를 모시고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방 안으로 덥석 발을 들여 놓으며 쉰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신경통에는 침이 제일이지.˝
할머니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습니다.
˝아이구, 싫어!˝
한식이가 할머니에게 다그쳐 물었습니다.
˝왜요, 할머니?˝
˝왜 하필이면, 원수 마을의 침장이를 불러와?˝
할머니는 등을 돌려 모로 누웠습니다.
침을 놔 주러 온 할아버지는 한식이네 마을과 오래 전부터 틀어져 버린 북리에 삽니다.
남리와 북리는 돌팔매질을 하며 싸움을 한 뒤부터 원수처럼 지내었습니다.
두 마을사람들은 민둥산을 사이에 두고 서로 왕래도 잘 안 하고, 혼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예전에, 우리 북리가 먼저 돌싸움을 걸었소이다. 청년 대장이 바로 나였소. 때문에 북리와 남리는 그 뒤 원수 사이가 된 것이오. 나는 그 죄를 평생토록 씻지 못하고 늙은이가 되었소. 민둥산에 흩어져 있는 돌멩이만 보면, 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픕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고개를 숙인 할아버지가 울음 엉긴 소리로 사죄를 하였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내 죄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구려. 민둥산에 흩어져 있는 그 몹쓸 돌을 하나하나 주워다가 쌓는 한식이 할머니에게 제일 먼저 용서받고 싶었소. 그래서, 오늘밤에 산꼭대기로 올라갔다가, 한식이가 외쳐 부르는 바람에 그만 얼굴이 빨개져서 도로 내려 갔소이다.˝
˝뭐, 뭐라구요?˝
한식이는 잽싸게 할아버지의 말 끝을 휘어잡았습니다.
˝그럼, 아까 돌단 옆에 서 계시던 분이 바로......˝
˝이 할아버지였단다.˝
할머니는 어디서 그런 기운이 솟았는지 벌떡 일어났습니다.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는 아직도 살아 계셔요! 아까 돌단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이 할아버지였어요.˝
한식이는 할머니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방문이 열리고, 할머니는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한식이는 운동화를 바꿔 신은 것도 모른 채, 따라 가서 할머니를 업었습니다.
˝어서 가자!˝
˝예!˝
또 한 사람, 민둥산 너머 북리에 사는 할아버지도 한식이를 놓칠세라 뒤따랐습니다.
할머니와 한식이의 행진곡이 달빛 속에 짙게 어우러집니다.
˝달아, 달아......˝
˝두웅근 달아!˝
˝한민족이......˝
˝노올던 달아!˝
˝저기, 저기, 저 산너머......˝
˝부모 형제 울고 있다아.˝

산토끼 한 마리가 돌단 위에서 앞발을 모아 들고 있다가, 사람들이 올라 오는 것을 보고는 얼른 자리를 피해 주었습니다. ⓒ이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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