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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동아일보] 우리들의 강강술래 -정임조

신춘문예 정임조............... 조회 수 1605 추천 수 0 2004.04.25 13: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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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신춘문예]

교문을 나선 참이는 학교에서 방안까지 한달음에 달렸다. 얼마나 급했는지 할아버지께 인사를 한다는 것이 그만 방문고리에 이마를 찧고 말았다.
˝원 녀석, 누가 쫓아오기라도 한다더냐 허허허.˝
아프다고 엄살 피울 겨를도 없이 제 방으로 달려가는 참이를 따라 나오며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타임캡슐이 뭔지 아세요?˝
가방을 팽개쳐 놓은 채로 정신없이 서랍을 뒤지던 참이가 난데없이 물었다.
˝그게 뭐냐? 이 할애빈 처음 듣는 소리구나. 무슨 약 이름 같기도 한
데......˝
할아버지는 공연히 흠흠흠 헛기침을 하며 참이 곁에 앉았다.
˝타임캡슐이란 것은요. 그 안에 물건을 넣어서 땅 속 깊이 묻었다가 이 다음에 후손들이 열어보게 하는 거예요. 이 타임캡슐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후손들이 이 시대를 알게 되는 거죠. 서울의 나이가 600살 되는 기념으로 타임캡슐을 묻어서 400년 후에 열어보게 한대요. 400년 후면 서울의 나이가 천살이 되니까 서울 도읍 천 년이 되는 날 열어볼 건가봐요.˝
˝그건 그렇지 400년 후면 이성계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들어온 지 천 년이 되는 해이지. 그런데 그 안에다가 대체 뭘 넣는다는 게냐?˝
˝음,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우리가 보는 교과서도 넣고 도시락도 넣었대요. 버스표나 텔레비전 광고도 넣구요. 아무튼 지금을 후손들에게 알리는 것 600개가 들어갔대요. 그런데 그 안에는 꼭 좋은 것만 넣는 게 아니고 부끄러운 일에서 생겨난 것도 넣었대요. 우리가 살았던 때를 보고 후손들은 더 잘 살라는 뜻으로요.˝
˝그런데 넌 무슨 일로 그렇게 법석이냐?˝
˝저도 지금 타임캡슐 안에 넣을 물건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우리 학교도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50년 후에 열어볼 타임캡슐을 만들기로 했거든요. 우리 학교 나이가 꼭 100살이 되는 해에 5학년 1반 친구들이 모두 모여 열어볼 거예요. 할아버지, 정말 굉장하죠?˝
˝50년 후에 열어본단 말이냐? 가만있자 50년 후라...˝
그때까지 무심코 듣고 있는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50년 후라면 네학교가 개교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은 지도 꼭 100년이 되는 해로구나.˝
˝그래요, 할아버지?˝
˝그렇구나, 올해가 광복 50년이니...... 벌써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세월 참 빠르기도 하구나.˝
˝그럼 할아버지도 50년 전에는 우리 선생님처럼 젊은 청년이셨겠네요.˝
할아버지는 담뱃불을 붙이고 긴 숨을 쉬었다. 또 북에 둔 고향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참이가 할아버지로부터 얘기를 100번도 넘게 들었지만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고향, 황해도 해주. 그런 참이에게 비하면 몇 천백일을 살고도 두번 다시 갈 수 없는 고향을 둔 할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종종 보아온 참이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 타임캡슐에 뭘 넣었으면 좋겠어요?˝
˝글쎄다. 한번 생각해 볼까?˝
할아버지는 때마침 찾아온 복이 할아버지를 따라 노인정으로 나갔다.
참이는 서랍을 뒤지던 손길을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세번째 서랍 속에는 참이가 그림 일기장부터 지금까지 써온 일기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하나 둘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것이 이제는 형의 사진첩보다 더 묵직해졌다. 참이는 모처럼 지나간 일기장을 읽어보다가 3학년 때의 일기장을 꺼냈다. 그 일기장 속에는 3학년때 전학을 와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짓궂은 장난질 때문에 속상했던 일부터 그 친구들과 가까워지는 것까지 모두 모두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2년 전에 묻어뒀던 타임캡슐을 연 셈이네.´
참이는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밤이 늦도록 책상 구석구석을 뒤졌다.

다음날 아침 교실 안은 돼지 저금통을 흔들어 대듯 시끄러웠다. 모두들 그 타임캡슐 이야기로 한껏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선생님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제서야 뚝 멈췄다.
˝왜 이렇게 소란이냐? 어제 서울로부터 여러분이 낸 성금으로 산 타임캡슐 모형품이 도착했다. 오후에 다함께 모여 묻는 일만 남았다. 자, 다들 갖고 온 것을 책상에 올려 보도록 해라.˝
아이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저마다 갖고온 것을 책상에 올려 놓았다. 운동회 때 달리기에서 일등을 하여 받은 공책을 갖고온 친구도 있었고 작아서 못 신게 된 색동고무신과 한복을 가져온 친구도 있었다. 참이도 그 틈에 일기장을 올려 놓았다.
˝선생님, 선생님은 타임캡슐에 뭘 넣으실 거예요?˝
호기심 많은 정아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물었다.
˝음, 선생님은 말이야. 지난 봄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을 넣을 생각이다. 우리 5학년 1반 모두의 얼굴이 있으니까 너희들 5학년 때 모습이 모두 그 속에 들어가는 거지.˝
˝선생님, 그 사진은 안돼요! 저는 눈을 감았단 말예요!˝
정아가 울상을 짓자 아이들은 모두 와 하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하하, 정아가 눈을 감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마 정아를 더 오래오래 기억할 수가 있을 걸. 그런데 정아 넌 무엇을 가져 왔니?˝
˝저는 이 병 안에 저희집 샘물을 담아 왔어요. 우리 동네에 털실 공장이 들어섰잖아요. 그 뒤로 저희 동네 개울물도 옛날처럼 맑지도 않고 수돗물도 믿고 먹을 수가 없게 됐어요. 아직 샘물은 괜찮지만 엄마가 조금 있으면 샘물도 못 먹게 될지 모른대요. 저는 우리 동네 샘물 맛을 50년 후까지 지킨다는 약속으로 샘물을 담아 왔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을 감았다며 투정부리던 정아가 의젓하게 설명을 하자 아이들은 모두 두눈이 휘둥그레졌다. 선생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락기를 갖고 와서 비싼 것이라며 자랑을 늘어놓던 복이가 슬그머니 책상 밑으로 감추는 것이 보였다.
˝선생님, 저는 떨어진 양말을 가져왔어요. 어제 체육시간에 공차다 신발이 벗겨지는 바람에 구멍이 났지 뭐예요. 저는 이 양말을 50년 동안 보관해 두었다가 국가대표 축구 선수를 이끄는 감독이 되어 후배 선수들한테 자랑할 거예요.˝
˝선생님 저는 꽃씨를 가지고 왔어요. 지난 가을에 토방에서 받아둔 코스모스씨, 분꽃씨, 봉숭아꽃씨, 무궁화꽃씨도 가져왔어요. 저는 50년 후에 이 꽃씨를 뿌려 우리 동네를 온통 꽃밭으로 가꿀 거예요. 그때 윗마을 아랫마을 모두가 꽃동산이 될 거예요.˝
걸핏하면 하교길에 참이가 사는 윗마을 아이들이 다니는 길목을 가로막고 싸움을 걸던 경수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선생님, 50년 후면 선생님은 몇살이세요?˝
˝어휴! 그것도 몰라. 참이네 할아버지처럼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시는 거지.˝
지팡이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할아버지가 걷는 흉내를 내자 교실 안은 웃음판으로 바뀌었다.
˝그럼 우리는 50살을 더 먹으니까 61살이 되겠네요.˝
˝그렇구나. 환갑이 되는것 말고 또 있어요. 50년 후에는 우리나라가 광복 100주년을 맞는대요.˝
˝아. 정말 그렇구나. 참이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구나. 우리나라가 광복 100주년이 되는 해에 너희들은 어른이 되어 환갑을 맞고 또 학교는 백 살이 되는구나. 50년 후가 이렇게 뜻깊은 해가 될 줄은 정말 몰랐는 걸.˝
아침부터 타임캡슐로 들떠 있던 아이들은 그날따라 수업 중에 선생님의 지휘봉으로 꿀밤을 먹는 횟수가 많았다. 선생님은 정신을 집중시키느라 책으로 교탁을 몇번이나 두드렸는지 모른다. 그런 분위기는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가라앉았다.
도시락을 빨리 먹고 공차기를 하자는 아이들의 손을 뿌리친 참이는 일기장을 읽을 생각으로 교실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방금 나간 복이가 헐레벌떡 뛰어와 참이를 불렀다. 할아버지가 와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학예회나 운동회가 아니면 학교에는 좀처럼 오는 일이 없던 할아버지가 학교를 찾아왔다는 말에 궁금해졌다.
창문밖을 내다 보았더니 전나무 그늘 밑에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할아버지, 웬일이세요?˝
˝응, 딴 게 아니고......˝
할아버지는 저고리 소매 깃에서 비누갑만한 작은 상자를 꺼냈다.
˝할아버지, 이건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민요음악 테이프잖아요.˝
˝그래. 이 할아버지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노래테이프란다. 참아, 이 할아버지의 테이프를 그 타임캡슐에 넣어줄 수 없겠니?˝
˝네? 이걸 타임캡슐에 넣으라구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나무에 세우더니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참이는 마침 날아온 공을 힘껏 발로 차보내며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참아, 어제 네가 한 말을 듣고 이 할아버지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단다. 음......50년 후라, 이 할아버지가 기다린 50년 동안은 통일이 되지 않았지만 참이 네가 앞으로 기다릴 50년 안에는 분명 남과 북이 하나가 될 것이라고 이 할아버지는 믿고 있단다.˝
˝할아버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지금부터 50년 전에 해방이라는 큰 경사가 있었으니 앞으로 50년 안에는 헤어졌던 민족이 만나는 통일이 이루어질 것 아니냐.˝
˝그런데요?˝
˝이 테이프 속에는 강강술래라는 음악이 들어 있단다.˝
˝강강술래요? 보름날에 손을 잡고 둥글게 춤추며 부르는 민요말이에요?˝
˝그래 강강술래란 우리가 전쟁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한 아주 지혜로운 민속놀이지. 함께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모두 하나가 되게 하는 춤이기도 하고. 참아, 할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단다. 통일이 되었다 해도 너무 오랜 세월을 떨어져 있다 보니 사람들이 진정으로 화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때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남과 북의 사람들도 진짜 하나가 되어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테이프를 갖고 왔단다.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니?˝
참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5학년 1반 타임캡슐을 전나무 밑에 묻고온 참이는 50년 후로 시간 여행을 떠나 있었다. 북쪽의 친구들과 남쪽의 친구들이 둥근 보름달 아래서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는 꿈이었다.
˝술래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곁에사람 보기좋게 강강술래
먼데사람 듣기좋게 강강술래.˝  ⓒ鄭任祚(정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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