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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조선일보] 목소리 -장문식

신춘문예 장문식............... 조회 수 1222 추천 수 0 2004.05.01 21:36:08
.........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 작품]

나는 창호가 좋다.
창호의 목소리가 좋다.
창호의 목소리는 칼날같이 날카롭고 무섭다. 그러나 창호의 목소리를 들으면 속이 시원하다. 자기의 생각을 힘있게 말하는 창호의 목소리는 거침이 없다.
특히 우리 학급의 정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창호의 생각이 나와 같다는 것을 느낀다. 아니, 같은 것이 아니라 나보다 항상 더 바르게 보고 바른 말을 하고 있다.
˝정수 자식은 너무 잘난 척을 해서 큰일이야. 저의 집 부자인 것을 꼴심으로 뽐내는 것이 얄밉단 말이야. 선생님도 그렇지, 그런 정수 하나 버릇을 못 고치고 오냐 오냐 하니 답답해 죽겠어.˝
창호는 이렇게 선생님에 대한 생각도 거침 없이 말한다.
우리 반 정수는 창호의 말대로 너무 잘난 척을 해서 얄밉다.
정수네 집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자다. 다른 집에 비해 몇 십배는 부자다.
그래서 정수의 생활도 보통 아이들에 비해 몇 십배는 더 흥청거린다.
귀공자같이 깔끔하게 차려 입고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큰 인심을 써서 꼼짝을 못 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아무래도 비위에 거슬린다.
제 돈 가지고 제가 마음대로 쓰고 제가 잘난 척하는데 그것이 뭐가 미움의 까닭이 될 수 있느냐? 만약 그런 것을 미워한다면 미워하는 사람의 못된 시기심이고 삐뚠 마음의 고집 때문이라고 누가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얄미운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정수는 놀 때도 아이들을 제 마음대로 골라서 논다. 많은 아이들이 정수하고 가까이 친하고, 놀고 싶어한다. 그것은 정수하고 놀면 사탕과 과자를 많이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수는 제 말을 고분고분 잘 듣고 따르는 아이들만 골라서 놀며 대장 노릇을 한다.
그런 정수가 주는 것 없이 미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자 하나 사탕 한 개를 얻어먹기 위해 정수에게 알랑을 떨며 붙어 노는 아이들도 한심스럽게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선생님도 정수에게 강하지 못한 것이 이상하다.
정수 어머니는 학교에 자주 찾아온다.
선생님은 정수 어머니가 오면 출입문까지 나가서 반갑게 맞고, 갈 때도 골마루까지 나가서 몇 번이나 인사를 한다.
선생님이 모든 어머니에게 그렇게 친절하다면 정말 존경할 일이다. 그러나 정수 어머니에게만 특별히 그렇게 친절한 것은 아무래도 보기에 안 좋다. 더군다나 선생님과 정수 어머니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보면 비위가 뒤틀린다.
자랑거리도 아닌 것을 가지고 정수가 잘 한다고 추어올리는 선생님과 정수 어머니의 대화는 낯이 간지럽다.

정수는 저의 어머니가 학급에 왔다 가면 더욱 생기가 난다. 거칠 것이 없는 제 세상같이 마음대로 떠들고 장난을 친다. 그러나 선생님은 못 본 척 그대로 둔다.
˝선생님도 참 이상하단 말이야. 정수 자식을 따끔하게 꾸중을 줘서 버릇을 고쳐 줘야 할 선생님이 아무 말을 안 하니 답답한 일이야. 선생님은 선생님의 목소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칭찬도 하고 꾸중도 서슴없이 해야 되는데 우리 선생님은 그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 같애.˝
˝맞아. 정수를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야.˝
창호의 말에 나는 맞장구를 쳤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약하게 하고 아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빼 놓은 것은 정수 자식의 농간이야. 목소리를 흐리게 돈과 과자와 사탕을 쓰는 정수 자식도 좋지 않지만 거기에 힘 없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딱한 사람들이지.˝
˝맞아.˝
창호의 힘찬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맞장구가 나왔다.

어느 일요일 나는 창호와 함께 강가에 나가 고기를 잡았다. 강물을 따라 내려가면서 고기를 잡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창호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 준비가 안 된 우리는 그대로 비를 함빡 맞았다.
그 날 밤 나는 감기 몸살을 얻어 밤새도록 앓았다.
이튿날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누워 있었다.
대낮에 학교에도 못 가고 방 안에 누워 있는 것도 보통 갑갑하고 심심한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제 같이 비를 맞고 돌아온 창호는 어떤지 궁금했다.
나는 혼자 누워서도 학교에서는 지금쯤 몇째 시간이고 무슨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학교 생활이 모두 끝날 시간이 되었다.
˝문식아-˝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우리 반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하루 종일 생각나던 우리 반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웠다.
아이들은 무엇인가 한아름이나 되는 보따리를 들고 내가 누워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하루 학교에 안 나갔는데 병 문안을 온 친구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스런 생각도 들었다.
˝문식아, 어디 아프냐?˝
˝감기인가 봐.˝
˝어제 비 맞고 감기 들린 사람이 많은 모양이더라.˝
˝우리 반에 나말고 누가 또 감기 들렸니?˝
˝우리 반엔 없지만......˝
˝창호 오늘 학교에 왔디?˝
˝응.˝
나는 창호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창호는 역시 나보다 모든 점에서 강한 아이 같았다.
˝야, 이거 먹어 봐.˝
˝뭐를 이렇게 많이 사 왔니?˝
아이들이 풀어 놓은 보따리에는 과자와 사탕과 빵과 요구르트가 가득했다.
아이들이 찾아온 것은 반가웠는데 그 많은 물건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나 저희들이나 돈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이 많은 것들을 사자면 한 사람 앞에 몇 백 원씩은 내야 될 것이라는 것은 짐작으로도 얼른 알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큰돈이 아닐 수 없다.
과자 봉지, 사탕 봉지, 빵 봉지를 모두 뜯어서 나누어 먹었다. 아이들은 제각기 나에게 먹으라고 집어 주는 바람에 쉴 사이 없이 먹었다.
달고 맛있는 사탕과 과자는 친구들의 정성과 함께 내 몸으로 들어가 쌓였다.
한참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먹으며 떠들고 있는데,
˝문식아-˝
나를 부르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 왔다.
˝정수가 왔나 봐. 꽃을 사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아이들은 주인이나 맞는 듯 모두 우르르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어느새 정수는 꽃집에서 파는 가지각색의 꽃을 한아름 꽃병에 꽂아 안고서 방문을 들어섰다.
˝문식아, 많이 아프냐?˝
˝괜찮아.˝
정수의 목소리는 퍽 걱정스러운 듯 꾸민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의 목소리도 그렇게 반갑지 않았지만 반가운 척 꾸민 것이었다.
보통 때 정수의 행동이 못마땅했다고 이렇게 병 문안을 온 그를 반갑게 맞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오지, 그 비싼 꽃을 왜 사 가지고 오니?˝
˝까짓 것 비싸긴 뭐가 비싼 것이니?˝
정수의 버릇은 오나가나 변함이 없었다. 돈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고, 누구를 무시하는 그 태도, 그 말씨 때문에 나의 창자는 또 한 번 꿈틀 비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의 정수는 손님이기에 잘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야, 이 사탕하고 과자 좀 먹어. 얘들이 이렇게 많이 사 왔지 뭐니?˝
하며 나는 사탕을 하나 집어 정수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가,
˝이것 모두 정수가 산 거야. 우리가 무슨 돈으로 이렇게 사겠니?˝
하면서 실토를 하듯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다 싼 거야. 얼마 안 되지만 너나 많이 먹어.˝
정수는 인심을 쓰듯 나에게 권했다.
˝......˝
나는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목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은 조금 있다가 일어섰다.
˝몸 조심해라. 내일 또 올게.˝
정수는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야, 나는 내일 일어나 학교에 갈 거야.˝
˝무리하면 안 돼.˝
˝아니야, 난 내일 꼭 갈 거야.˝
내일 학교에 갈 만큼 감기 몸살이 나을지 모르지만 정수의 문병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꼭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오래 아파 누워 있고 정수가 자꾸만 문병을 오면 나는 결국에 가서 다른 아이들처럼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만큼 약해질 것 같았다.
친구가 아프면 찾아가서 걱정을 해 주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런데 정수의 문병은 왜 이렇게 뒷맛이 좋지 않을까? 마음보다 물건을 가지고 온 때문일까? 병 문안을 핑계 삼아 내 목소리를 약하게 하기 위한 수단을 부린 때문일까?
어찌하였든 기분이 개운치 않아 있는데,
˝문식아-˝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창호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웠다.
창호는 하늘색 들국화를 꺾어서 빈 사이다 병에 꽂아 들고 방문을 들어섰다.
˝왜, 어디 아프냐?˝
˝응, 어제 비를 맞고 감기 들었나 봐. 너는 그 비 맞고 아무렇지도 않니?˝
˝응, 괜찮아.˝
˝역시 너는 나보다 강하구나.˝
˝뭘......˝
˝참, 이 과자 먹어.˝
나는 조금 전에 먹다 남은 과자와 사탕을 창호 앞에 내놓았다.
˝누가 왔다 갔니?˝
˝응, 정수하고 손태하고 종호하고 영길이하고......˝
˝이 과자는 정수가 사 오고?˝
˝응.˝
˝저 꽃도?˝
˝응.˝
이상하게 대답을 하는 내 목소리는 자꾸만 가늘어져 뱉어 내기에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야, 우리 이거나 먹자.˝
창호는 과자 그릇을 밀치고 주머니에서 무엇을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한쪽 주머니에서는 밤이 나오고, 한쪽 호주머니에서는 방금 딴 싱싱한 대추가 나왔다.
˝정수가 요새 또 아이들한테 인심 쓰는 모양이더라. 제 편을 만들기 위해 먹는 것을 사 주며 꾀는 것은 좋지 못한 짓이야. 그리고 과자 몇 개, 사탕 몇 개를 얻어먹고 정수가 하자는 대로 따라 행동하는 아이들도 좋다고 볼 수 없어.˝
˝......˝
창호의 목소리는 칼날같이 날카로웠다. 그래서 나는 얼른 응수를 하지 못했다.
조금 전에 정수가 사 온 과자와 사탕을 나도 먹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느 새 내 목소리를 약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야, 이거 먹어.˝
창호는 밤을 까서 내게 줬다.
우두둑 우두둑 씹히는 밤은 제 맛을 다 내고 있었다. 과자처럼 만들어진 맛이 아니었다. 제가 갖고 있는 꾸밈 없는 본래의 맛 그것이었다. 그것은 꾸며서 만든 맛보다 좋았다.
내가 창호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까닭도 바로 그런 것 같았다.
제가 생각한 대로 거침없이 쏟아 놓는 창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어느새 약해진 목소리를 다시 살리기 위해 창호가 가지고 온 밤과 대추를 자꾸만 먹었다. ⓒ장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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