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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불꽃의 깃발

창작동화 이원수............... 조회 수 1427 추천 수 0 2004.05.01 21: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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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찍이 나무들의 마음이라는 걸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나무는 동물들과는 달라 살아 있긴 해도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 이상한 책 한 권을 구해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아주 낡은 옛날 책이라 글자도 잘 알아보기 어려운 것인데, ´수목의 혼´이라는 이름의 한문으로 된 책이었습니다.
수목의 혼이라니, 정말 나무에게 혼이 있다는 말일까?
식물학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심령에 관한 책이나 심지어 외국의 요정 이야기까지 들추어보았지만, 수목의 신은 있어도 혼에 대한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은 허망한 얘기라고 덮어 버릴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 속에 있는 얘기들 가운데에서 한 가지만 여기 옮겨 보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나무에는 각각 혼이 들어 있지만, 그것은 나무의 씨앗이 처음 생길 때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무의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나무의 혼이 될 혼은 그 씨앗 곁에 웅크리고 앉아서 씨앗의 움이 트고 싹이 나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무사히 자라게 되면 그 나무 속에 들어가서 나무의 혼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죽으면 나무의 혼은 집 없는 나그네처럼 헤매다녀야 합니다.
그런 나무의 혼이 본디 어디서 온 것인지? 그 책에는 사람의 혼이 인간 세상을 떠나 나무의 세상으로 간 것이라 했지만, 어떤 사람의 혼이 나무의 세계로 가게 되는 것인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혼 가운데 어린 혼과 나이 많은 혼이 있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어린 혼은 사람으로 치면 어린이고 늙은 혼은 노인입니다. 나무의 크고 작은 것에 관계 없이 나무에게 있는 혼은 어린 혼도 있고 늙은 혼도 있다니, 참 별난 일이지요.

어느 곳에 수목이 우거진 산이 있었습니다. 긴 골짜기를 메운 나무들, 나무들은 서로 가지를 맞대고 소곤거리며 즐겁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꼭대기에 우뚝 외로이 서 있는 전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산꼭대기는 온통 바위로 되어 있어서 나무라고는 없었고, 바위 틈에 풀이 조금 나 있을 뿐인데, 용케도 그 전나무는 바위 틈에 뿌리를 박고 자라서 훤칠한 키와 멋진 가지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자리와 단단한 바위산에 서 있는 것도 자랑할 만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너무도 너무도 외로운 나무였습니다.
꼭대기는 바람이 세어 사시로 온몸에 거센 바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름에는 물이 모자라 목마른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곁에 아무도 없으니 평생을 정답게 얘기하는 친구 하나 갖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혼이 하필이면 어린 혼이었습니다. 어린 혼 중에도 소녀의 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어린 소녀의 나무 혼이 얼마나 쓸쓸하고, 또 힘겨운 생활을 해야 했는지 알 수 있지요.

어느 초여름, 온 산의 나무들이 새 옷을 갈아 입고 즐거운 잔치를 벌인 것처럼 우쭐우쭐 춤추는 5월이었습니다.
꼭대기의 전나무는 혼자 바람에 시달리며, 눈 아래 한창 즐거운 나무들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휘이휘이 휘파람을 불며 온 바람이 속삭였습니다.
˝전나무야, 가엾고도 가엾구나. 저 골짜기로 가고 싶지 않니?˝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전나무는 가지를 떨며 말했습니다.
˝좋은 수가 있다. 저 아래 전나무 혼과 바꾸자고 해볼 생각 없니? 이 자리는 높은 데니까 혹시 오고 싶어하는 혼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람님, 그렇게 바꿔 줄 혼만 있다면......˝
전나무는 귀가 번쩍 뜨인 듯 말했습니다.
˝내가 알아보지.˝
바람은 휘이휘이 휘파람을 불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바윗돌 아래로 한참 내려가면 큰 전나무의 숲이 있었습니다. 그 숲의 전나무 한 그루가 바람의 얘기를 듣고 자리를 바꿔 줄 결심을 했습니다.
˝저 꼭대기 나무의 혼이 그렇게 어린 소녀라면 내가 바꿔 주지요. 어린 것이 얼마나 외롭겠소.˝
그 전나무 혼은 나이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노인은 어린 아이가 꼭대기에서 외로이 사는 것이 가엾어, 친구가 많은 자기 자리로 옮겨 오게 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람은 그 노인의 하는 말에 적이 감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정직했습니다. 꼭대기의 소녀 나무를 위해 노인 나무를 험한 자리로 가게 하기가 마음에 꺼림칙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꼭대기는 바람이 세고 물이 귀하오. 살기가 꽤 힘들 것이오.˝
˝그런 건 나도 짐작하고 있소. 하지만 어린 것이 그런 데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늙은 내가 가 있는 게 낫지요.˝
이러면서 노인은 이제라도 꼭대기로 옮겨 갈 준비를 했습니다.
곁에 있던 나무들이 놀란 듯이 모두 만류했습니다.
˝영감님, 괜한 생각을 하시는구려. 꼭대기가 뭐 높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거기 가면 평생 고생이지...... 무슨 재미로 사시려고 그러시오?˝
˝아이들이야 저런 데서 좀 고생하면 어떻소? 노인네가 괜히 힘에 겨운 일을 떠맡으시려 드시니, 참 딱합니다.˝
옆의 나무들의 얘기를 듣고, 노인 나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높은 데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고생이 될 걸 몰라서 그러는 것도 아니오. 그저 이만큼 살아 왔으니 웬만한 일은 견디어 낼 만해서 그러오.˝
노인의 말에 바람이 한마디 속삭였습니다.
˝할아버지, 저 꼭대기에 위험한 일이 또 하나 있어요.˝
˝위험한 일이라니?˝
˝날씨가 험해지면, 뇌신(벼락의 신)이 내려오기를 잘하지요. 요행히 잘 지나치면 모르지만 까딱 잘못하면 벼락을 맞게 된단 말씀이어요.˝
˝벼락......?˝
노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벼락을 맞으면 어떻게 되나? 벼락을 맞은 나무는 허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불에 타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끝장이 나고 맙니다. 나무가 타 죽거나 허리가 부러져 죽거나 하면 나무의 혼도 죽습니다. 다행히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죽은 나무에서는 집 없이 헤매는 혼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번갯불에 데어서 병신이 될지도 모릅니다. 팔이 꺾여서 외팔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위험한 일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노인은 한참 생각하다가 바람에게 물었습니다.
˝요새, 일기가 불순할 것 같소?˝
˝서쪽에 바람이 세고, 번개가 심한 것 같은데......˝
˝그럼, 저 꼭대기도 위험하겠구려?˝
˝그야, 위험하지요.˝
˝그럼 오늘로 이사를 하겠소.˝
˝꼭대기 나무와 바꾸겠단 말인가요?˝
˝그렇소.˝
바람은 이윽히 노인을 바라보았습니다.
노인은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번개가 치고 바람이 세어지면, 산꼭대기의 어린 것이 변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소? 어린 것이 여태 그런 곳에 있은 것도 안 될 일이었소. 바람님은 곧 좀 기별해 주시오. 지금 바로 자리를 바꾸자고 그 어린 혼에게 일러 주시오.˝
그날로 꼭대기의 소녀와 산허리의 노인은 자리를 바꾸었습니다.
꼭대기의 소녀가 친구 많은 곳으로 오게 되어 기뻐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외롭던 긴 세월에 비해 새로운 곳은 정말 사는 것 같은 곳이었습니다.
˝여기는 정말 아늑해서 좋군요. 밤에도 푹 잠이 깊이 들 것 같아요.˝
소녀는 곁에 있는 나무들에게 만족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럼, 꼭대기 한 그루 외로운 전나무로 옮겨 간 노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노인은 소녀가 살던 전나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녀의 몸이 들어 있던 곳에 들어갈 때, 이상한 향기를 맡았습니다.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었습니다.
˝어린 것아, 인제 풍성한 곳에서 잘 살아라.˝
이렇게 축복의 말을 중얼거리며 노인은 소녀의 자리에서 그날 밤을 마음 편히 잤습니다.

며칠이 지난 날 아침, 전날의 그 바람이 달려와서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영감님, 어떻게 하면 좋지요? 오늘은 벼락이 이리로 떨어질 모양인 데......˝
노인은 태연히 대답했습니다.
˝좋소, 어린 것은 저 아래로 갔으니까.˝
˝아니, 영감님이 불을 맞게 되면......˝
˝난 맞아도 이제 한이 없소.˝
˝......˝
˝내가 만일 죽게 되거든 그 어린 혼에게 잘 전해 주시오. 벼락을 면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잘 자라라고......˝
하늘이 갑자기 험상궂어졌습니다. 천 마리 만 마리 날랜 말이 달리듯, 하늘 저편에서 구름이 몰아쳐 오고 있었습니다. 바람은 더 머물러 있을 수 없어 노인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갔습니다.
우르릉 우르릉......
먼 천둥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바람은 나팔 소리를 내며 급행 열차처럼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저녁이나 된 듯 어두웠습니다.
온 산의 나무들이 몸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우르릉 꽝! 우르르르......!
가까운 데서 뇌성이 울렸습니다. 이때 별안간 딱! 하고 귀를 찢는 소리가 났습니다. 온 산의 나무들이 깜짝 놀라 꼭대기를 쳐다보았습니다.
꼭대기 전나무는 바람에 찢길 듯이 날리는 빨간 깃발이었습니다. 활활활활 깃발은 수평으로 날리고 있었습니다. 날리는 깃발이 찢겨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세찬 바람에 찢겨지는 깃발은 불이요, 불타는 전나무의 가지였습니다.
˝아! 전나무가 탄다, 전나무가......˝
˝아! 할아버지...... 할아버지!˝
전날 이사를 온 소녀가 두 손을 꼭 맞잡고 발을 구르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불꽃 속에서 할아버지는 불타는 옷소매를 저으며 대답해 주었습니다.
˝아가, 잘 있거라, 잘 있거라.˝
꼭대기 바위산에 한 그루, 검은 줄기만 남은 전나무가 서 있습니다. 멋진 가지와 잎사귀를 다 태워 버린 검은 나무입니다. 그 아래 산허리에 무성한 숲, 그 숲에 한 그루의 전나무가 날마다 검은 숯의 나무를 쳐다보며 오늘도 자라고 있습니다. ⓒ이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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