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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동백꽃 할머니

창작동화 조대현............... 조회 수 1386 추천 수 0 2004.05.01 21:37:52
.........


5동 408호. 동백꽃 할머니가 사시는 집입니다. 지훈이네 아파트 복도에서 건너다보면 베란다가 마주 보이는 집입니다.
지훈이가 동백꽃 할머니를 알게 된 것은 지난 봄부터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아파트 단지 화단 옆을 지나는데 어떤 할머니가 동백나무 화분을 땅바닥에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보나 마나 화분을 들어서 좀 옮겨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눈치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못 본 체 그냥 지나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훈이가 다가가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할머니, 이 화분을 어디로 옮기실 건가요?˝
그러자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하며 지훈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래. 이 화분을 저 화단으로 옮겨야 할텐데 난 힘이 부쳐서...˝
지훈이는 얼른 가방을 내려놓고 화분을 번쩍 들어 안았습니다. 길거리에서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칭찬받을 때의 기쁨, 그것은 지훈이만 아는 짜릿한 비밀입니다.
제법 묵직한 화분을 화단까지 옮겨다 놓고 씨근씨근 숨을 고르고 서 있는데 할머니가 가방을 들고 따라와 안쓰러운 목소리로 지훈이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런 고마울 데가... 집에서 마당까지는 옆집 애기 엄마가 내려다 줬는데, 이걸 또 어떻게 화단으로 옮기나 하고 걱정을 했더니 네가 도와 주는구나. 나이도 어린 것이 착하기도 하지!˝
할머니는 그러면서 또 뭔가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듯 손에 든 조그만 모종삽을 만지작거렸습니다.
˝할머니, 이걸 어떡하실 건데요?˝
이번에도 지훈이가 먼저 묻자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단의 흙바닥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응. 여기 땅을 파구 이 화분을 통째로 좀 묻을까 해서!˝
˝이걸 왜 묻어요?˝
˝응. 아파트 안에서야 어디 나무가 제대로 자라야지. 그래서, 봄에 내다 땅에 묻었다가 가을에 파 들이면 아주 탐스러운 꽃이 핀단다.˝
´아, 그렇구나!´
지훈이는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관리실에 가서 큰 삽을 빌려다가 화단의 흙을 파고 동백나무 화분을 땅 속에다 묻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돌아서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지훈이를 다시 불러 세웠습니다.
˝아가, 나 좀 잠깐 보고 가렴!˝
˝뭐, 또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아니, 그런게 아니구...˝
할머니는 치마 앞섶을 뒤적뒤적 하더니 돈을 꺼내 지훈이에게 주려고 하셨습니다.
˝자, 이건 수고한 값이니 과자나 사 먹어라.˝
˝아이! 괜찮아요,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굳이 돈을 주려고 따라 오는 할머니를 뿌리치고 지훈이는 후다닥 아파트 안으로 뛰어들어 왔습니다. 할머니는 달아나는 지훈이의 등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서 계셨습니다.

그 이튿날, 학교에서 돌아온 지훈이가 집으로 들어가려고 아파트 복도를 걸어 가고 있는데 건너편 5동 408호 베란다에 어제 그 할머니가 나와서 서 계셨습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지훈이가 건너다 보고 손을 흔들자 할머니도 지훈이를 알아보고 마주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뭐라고 말을 하시는 것 같았지만 거리가 떨어져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지훈이와 할머니는 날마다 창가에서 마주보고 손을 흔드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지훈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 되면 일부러 베란다에 나와 기다리고 섰다가 지훈이를 맞이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날은 화단에 나와 동백나무 화분을 돌보시는 할머니와 마주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할머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동백나무가 가을부터 꽃망울을 맺기 시작하여 눈 오는 겨울에 붉은 꽃을 활짝 피운다는 것.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와 같이 사시는데 둘 다 직장에 나가, 낮이면 늘 할머니 혼자 집을 보신다는 것. 할머니도 지훈이 같은 손자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등...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의 플라타너스 잎이 누렇게 시들어 떨어지고, 화단의 사르비아 꽃이 마지막 붉은 빛을 자랑할 무렵, 학교에서 돌아오던 지훈이는 또 화단에 나와 계시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봄에 묻었던 화분을 집 안으로 파 들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지훈이는 할머니의 청을 받기 전에 제가 달려들어 화분을 파다가 할머니의 4층 아파트 안에까지 날라다 드렸습니다.
화분을 날라다 드린 지훈이가 돌아서 나오는데 할머니가 등 뒤에서 물으셨습니다.
˝아가, 어머니께선 뭘 하시누? 직장엘 나가시나?˝
˝아뇨, 저의 어머니는 늘 집에 계세요.˝
˝그래? 암, 그래야지!˝
할머니는 그러면서 어딘지 쓸쓸한 눈으로 지훈이를 바라보셨습니다. 할머니네 아파트틑 지훈이네 집보다 더 넓고 화려해 보이는데도 어쩐지 안이 썰렁해 보였습니다.
동백나무를 파 들인 그 이튿날부터 날씨는 갑자기 싸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마다 밖을 내다보면 앙상한 나뭇가지에 서리가 하얗게 끼고, 어떤 날은 바람도 몹시 불었습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밖에 나오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훈이가 학교에 갔다 돌아올 때 쯤이면 어김없이 베란다에 나와 손을 흔들어 주곤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모습이 베란다에서도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바람이 몹시 불어 전깃줄이 끊어지고, 그 바람에 아파트 전체에 불이 들어오지 않던 그날부터인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지훈이가 버릇처럼 건너편 할머니네 베란다를 바라보았지만 웬일인지 할머니가 나와 계시지 않았습니다.
첫 날은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이튿날 또 그 이튿날... 여러 날이 지나도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어디 가셨나?´
내일쯤은 한 번 할머니네 집엘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한 바로 그날, 학교에서 돌아오던 지훈이는 뜻박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할머니가 사시는 5동 입구에 하얀 영구차 한 대가 와 머물고 있고, 오늘따라 할머니네 집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렸는데, 위에서 곤돌라가 내려와 그 앞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
베란다 위에서 마침 까만 나무상자가 여러 사람에게 들려져 나와 곤돌라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곧 땅으로 내려져, 영구차로 옮겨졌습니다.

그날 아파트 단지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습니다. 할머니가 1주일 이상이나 앓아 누우셨는데됴 그 아들과 며느리는 할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킬 생각을 않고, 빈 집에 할머니를 혼자 둔 채 문만 잠그고 직장엘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면서 곱지 않은 눈으로 5동 408호를 힐끗거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지훈이도 어쩐지 가슴이 꽉 막혀오는 기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건너편 아파트를 바라보면 이쪽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 할머니가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었는데... 이제 그 할머니가 세상에 안 계시다고 생각하니 지훈이는 밥을 먹다가도 목이 꽉 메이곤 했습니다.

할머니의 시신이 화장터로 옮겨졌다가 다시 시골 산에 가 재로 뿌려졌다는 소문을 들은 지 며칠 뒤, 지훈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하고 있는데 아파트 관리실 아저씨가 찾아와 문을 두드렸습니다.
˝웬일이세요?˝
지훈이와 엄마가 놀라서 나가 보니 관리실 아저씨는 꽃망울이 다닥다닥 맺힌 동백나무 화분을 안고 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쪽 5동 408호집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이 화분을 이댁 학생한테 전해 주라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해서요. 아마 생전에 이 댁 학생하고 인연이 깊으셨던 모양이지요!˝
그러면서 관리실 아저씨가 집 안에 들여놓고 간 동백나무 화분을 지훈이도 어머니도 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
˝......˝

그 해 아파트 단지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아마 하루도 눈이 그칠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창밖에는 흰눈이 계속 날려 쌓이는데 따뜻한 방 안에서 동백나무는 어느새 붉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 꽃을 볼 때마다 지훈이는 어느 산에 가 재로 뿌려졌을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자꾸 먼 산과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조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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