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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마지막 선물

창작동화 김혜리............... 조회 수 1254 추천 수 0 2004.07.17 22: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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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품]

마지막 선물

金慧里

바람이 휴지 조각 하나를 끌고 갔다.
구름은 파란 하늘에다 뭉게뭉게 구름탑을 쌓고, 햇볕이 긴 나무의자 위에서 낮잠을 자는 한낮.
참새떼들은 포플러나무 위에서 역 마당으로 내려뛰기 연습이 한창이다.
˝호오! 녀석들˝
낡은 역 건물의 문이 열리면서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가 나왔다. 손에는 꽃삽이 들려 있었다.
˝시끄러워서 기적 소리를 토옹 못 듣겠구나!˝
곧바로 꽃밭 속에 들어간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참새떼들이 할아버지를 찾으러 포플러나무 위로 날아 올랐다.
꽃밭에 있던 코스모스와 국화가 푸른 잎으로 재빨리 할아버지의 등을 가렸다.
구경하던 잠자리들이 시치미를 떼고 천천히 그 위를 날았다.
˝이런 이런˝
하루만 지나도 꽃밭속의 잡초들은 꽃보다 더 잘 자라 있었다.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풀 한 포기에게도 조용히 타일렀다.
˝올해도 많은 꽃을 피워 내야 한다.˝
둘러 서 있는 코스모스들이 알았다는 듯 한들거렸다.
그 바람에 할아버지의 등이 조금 보였다. 참새떼들이 서로 먼저 할아버지를 찾았다고 시끄럽게 재잘거렸다.
이 꽃밭 외에도 할아버지에게는 손수 만든 꽃밭이 두 개나 더 있었다. 그 꽃밭 속에는 여러가지의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난쟁이인 민들레와 함께 사이좋게 꽃을 피웠다.
뒤를 이어 채송화, 봉숭아꽃이 여름을 알리면, 토끼풀은 하얀꽃을 내밀어 아이들을 불렀다.
˝이건 할아버지 시계예요˝
할아버지의 팔목에는 아이들이 만들어준 꽃시계가 웃고 있었다.
돌아가는 아이들의 몸에도 꽃반지, 꽃목걸이, 꽃머리띠가 얹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꽃밭에 있는 모든 꽃들을 사랑했다. 그 중에서도 코스모스꽃을 더욱 좋아했다. 그래서 역 근처에 빈 땅만 있으면 코스모스를 심었다.
가을이 되면 이곳 풍전역은 코스모스꽃에 묻혀 있었다.
사람들은 수많은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어느 땐 생각에 잠긴듯 꽃 앞을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이˝
풀을 뽑던 할아버지가 꽃밭 속에서 허리를 폈다.
˝점심 도시락이에요˝
˝오냐 오냐. 우리 준호로구나˝
할아버지는 목에 둘렀던 흰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준호는 도시락이 든 가방을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우리 준호, 그동안 할아버지 점심 나르느라 수고 많았지?˝
준호의 머리를 쓰다듬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풀 냄새가 났다.
˝아아뇨. 할아버지가 있는 이곳이 좋았어요˝
준호는 할아버지의 옷소매에 묻어 있는 풀잎을 떼어 내었다.
˝기특하기도 하지. 지금껏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었으니......˝
˝......˝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게 쉬운 것은 아니란다. 그런데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도시락을 들고 오는 우리 준호를 보면서 말이다. 이 할아버지는 무척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단다. 오직 한 길을 걸어온 나를 닮은 것 같아 기쁘기도 했었고 말야˝
할아버지는 들고 있던 도시락을 옆에 내려놓았다.
˝잠깐 있거라˝
할아버지는 손을 씻으러 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준호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할아버지의 도시락은 지난해 봄부터 나르기 시작했었다.
˝힘들지 않니?˝
집에서도 엄마가 가끔씩 물었었다. 그러나 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역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지만, 할아버지와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식사를 하는 동안, 준호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파랑새호와 제비호 열차를 구경했었다. 그럴때 가끔씩 어린 아이들이 플랫폼에 앉아 있는 준호를 보고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식사가 끝나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준호를 데리고 역 마당에 있는 꽃밭을 한 바퀴씩 돌았었다.
˝이리 온˝
잔디 위에 점심 도시락을 펼쳐 놓은 할아버지가 준호를 불렀다.
포플러나무 속에 들어가 있던 참새떼들이 다시 재잘거리며 역 마당으로 내려 뛰기를 시작했다.
˝할아버지, 정말 다음 토요일부터는 이곳에 안 나와요?˝
준호는 할아버지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으응˝
할아버지는 준호가 좋아하는 오징어 반찬을 준호의 입에 먼저 넣어 주었다.
˝난 할아버지가 이곳에 계속 다녔으면 좋겠어요. 꽃밭도 있고......또 힘센 기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허허허! 녀석, 이 할아버지가 기차를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는 줄 알았어?˝
할아버지가 크게 웃는 바람에 준호의 얼굴이 빨개졌다.
˝반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자랑을 많이 했단 말이에요˝
˝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자랑 할 게 뭐가 있다고......이제 할아버지는 준호하고 놀 시간이 많아져서 더욱 좋은 걸˝
할아버지는 정말 그랬다.
˝그런데 얘들이......기차도 안 서는 역의 역장은 역장이 아니래잖아요˝
준호는 뾰로통해 있었다.
˝할아버지가 기차를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보여 줬어야 하는 건데......˝
준호가 계속 중얼거렸다.
˝옳지 옳지. 우리 준호를 위해서라도 이곳을 그만 두면 할 일이 있다. 교통 할아버지! 어떠냐?˝
입 안에 들었던 오징어를 삼키려다 말고 준호는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교통 할아버지요?˝
˝그래.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너희들을 위해 신호등이 되는 거지. 이렇게 말야˝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힘있게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 팔을 접는 시늉을 했다.
˝호루라기도 불면서요?˝
˝아암˝
준호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학교 앞에서 교통 경찰 아저씨를 매일 봐요˝
˝그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불던?˝
˝네.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한번 불면, 달려오던 자동차가 대번에 멈췄어요˝
준호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커서 교통 경찰관이 될 거예요˝
˝좋지˝
˝할아버지처럼 역장이 되고 싶었는데, 기차가 서지 않아서......˝
준호가 발등을 내려다보며 금세 말 끝을 흐렸다.
할아버지는 준호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우리 준호가 교통 경찰관이 되면 말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안심하고 찻길을 건너 다닐 수 있을 게다˝
준호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 아저씨처럼 멋있는 옷과 모자를 쓰고, 호루라기를 신나게 불어 보고 싶어요˝
˝허허허허˝
잠자리들이 할아버지의 웃음 소리를 듣고 역 마당을 날아 다녔다.
˝할아버지, 꼭 교통 할아버지가 되어야 해요. 네?˝
˝그럼 그럼. 약속하고 말고. 자˝
할아버지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엄지 도장도 찍자˝
준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와! 우리 할아버지는 교통 할아버지다˝
준호는 팔짝팔짝 뛰면서 낡은 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이제 정년 퇴직을 일주일 남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풍전역은 타고 내리는 사람이 자꾸만 줄어 들어, 이미 6개월 전부터는 아예 기차가 서지 않는 곳이 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이곳의 마지막 역장인 셈이었다.
˝어느새 30년이 흘렀군......˝
사람들로 붐빌때의 역 모습이 바로 엊그제 같았다. 할아버지는 다 먹고 난 빈 도시락을 가방 속에 챙겨 넣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기차가 들어와요˝
준호가 두 팔을 흔들며 빨리 오라는 신호를 했다.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서서 역 건물로 향했다.
˝잘못 보지 않았니?˝
이곳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모두 떠난 뒤, 6개월 동안 한번도 기차가 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요˝
준호가 도리질을 했다. 그러고 보니 기적 소리는 할아버지를 찾고 있었다.
짧은 사이였다. 할아버지는 모자까지 쓰고 플랫폼에 나와 있었다.
덜커더엉 쿠웅! 덜커더엉.
할아버지는 들어오는 기차를 향해 차려 자세로 서 있었다. 준호는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준호도 할아버지처럼 차려 자세로 서서 기차를 바라보았다.
˝준호야˝
서 있는 기차의 출입문으로 고개를 내미는 아이가 있었다.
˝어? 경수야˝
지금껏 반 아이들과 싸워서 한번도 진 일이 없는 아이였다.
˝어딜 갔다 오니?˝
˝엄마랑 외할머니댁에 갔다 와˝
경수는 새로 생긴 다음 역에서 내리기 위해 출입문에 먼저 나와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야˝
준호는 기관차 옆에 서 있는 할아버지를 가리켰다.
바라보는 경수의 눈이 커졌다.
잠시 후 할아버지의 손 신호에 따라 기차는 풍전역을 떠났다.
˝우리 반 친구가 할아버지를 봤어요˝
준호는 할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았다.
˝정년 퇴직의 선물이었어......˝
할아버지는 기차가 사라진 철길쪽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참새떼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텅 빈 역 울타리 안에 가득 퍼지고 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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