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동심의 세계는 모든 어른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동화읽는 어른은 순수합니다

동화읽는어른

[창작동화] 염소 배내기

창작동화 신기옥............... 조회 수 1248 추천 수 0 2004.10.17 23:13:35
.........
염소 배내기
신기옥

비가 멎자 햇살이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져 내립니다. 동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정자나무 밑으로 모여듭니다. 그러나 단발머리 순아는 멀찌감치 서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만 봅니다.
순아는 몸이 불편한 아이입니다. 어른들은 순아와 같은 아이를 ´지체부자유아´라고 부릅니다.
봉이할아버지는 그런 순아가 가엾습니다.
˝순아 나왔구나. 왜 친구들이랑 같이 놀지 않고?˝
할아버지는 순아의 손을 잡아끕니다. 순아는 쭈볏거리며 선뜻 따라나서질 않습니다.
˝그럼 이 할애비 따라 염소나 매러 갈까?˝
순아는 대답 대신 활짝 웃습니다.
˝그래, 염소도 갇혀만 있어 갑갑할 게다.˝
할아버지는 염소 우리로 순아를 데리고 갑니다.
비가 들이쳤는지 우리에 깔려있던 마른 풀들이 축축히 젖어 있습니다. 염소는 말뚝을 뱅뱅 돌아 고삐줄을 칭칭 감아 놓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조심스레 한 겹 한 겹 풀어냅니다.
˝메헤에에에-˝
고삐가 늦춰진 염소는 고맙다는 듯 인사를 합니다.
할아버지는 아직 물기가 채 걷히지 않은 언덕을 올라갑니다. 순아도 힘들게 자박거리며 뒤를 따라갑니다.
할아버지는 제일 양지바른 곳을 찾아 말뚝을 박습니다.
˝순아야, 이리 와서 이걸 좀 봐라.˝
할아버지는 쪼그리고 앉아 염소의 불룩한 배를 쓰다듬습니다. 순아는 조심조심 염소 곁으로 다가갑니다.
˝너도 한 번 만져 볼래?˝
순아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듭니다.
˝염소가 새끼 낳으면 순아 한 마리 줄까?˝
항상 혼자만 노는 순아를 할아버지는 측은하게 여겨왔던 터입니다.
˝왜? 할애비가 공짜로 주겠다는데도 싫으냐?˝
좋아라 할 줄 알았던 순아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할아버지는 다시 묻습니다.
˝하-할아버지이-, 내가 부-부-불쌍해서 그냥 주려는 거죠?˝
빤히 쳐다보는 순아의 눈동자가 샘처럼 깊습니다.
˝불쌍하긴 순아가 왜 불쌍해? 이뻐서 주려는 게지.˝
˝어-엄마가 고-공짜로는 얻지 말랬어요.˝
˝그럼 어떡한다......난 순아한테 염소를 한 마리 주고 싶은데.˝
˝그-그럼 빌려 주세요.˝
˝빌려달라고? 옳아. 배내기를 하잔 말이구나.˝
박꽃처럼 맑은 순아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메헤헤에에-˝
염소는 새끼를 떼어주기 싫다는 듯 울어댑니다.
˝하긴, 그저 얻는 것은 값어치가 없지. 내가 노력해서 얻어야만 귀하게 여겨지는 법이야.˝
할아버지는 순아가 기특합니다. 할아버지는 순아에게 염소를 빌려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빨리 염소가 새낄 낳았으면......˝
순아는 날마다 할아버지집에 들러 염소의 배를 살핍니다.
아이들이 정자나무 아래서 살구를 받습니다. 참 재미있어 보입니다.
순아는 담 밑에 숨어 살구돌을 손등에 올려봅니다. 살구돌은 손등에서 재빨리 미끄럼을 탑니다. 속이 상합니다. 순아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봅니다.
그때였습니다. 자지러지는 염소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순아는 벌떡 일어나 할아버지집 염소 우리로 갑니다.
˝메헤에에에- 메헤에에-˝
염소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기적거리며 울어댑니다.
할아버지는 일찍 들일을 나가셨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어떡하지?˝
순아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가슴이 벌렁댑니다.
˝메헤에에에- 메에에-˝
순아는 아무래도 할아버지를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해가 질 때쯤이면 할아버지가 놀을 등에 지고 내려오던 언덕으로 갑니다.
˝순아야, 왜 무슨 일이 있냐?˝
때마침 돌아오던 할아버지가 순아를 보았습니다.
˝하-하-하-할아버지, 염 염소가.˝
˝뭐? 염소가?˝
할아버지는 순아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내닫습니다.
˝아이구나, 이런! 벌써 새끼를 다 낳아버렸구나. 고생했다, 고생했어.˝
할아버지는 미안한지 자꾸만 자꾸만 어미염소를 쓰다듬습니다. 어미염소는 꼬물거리는 아기염소의 몸을 혓바닥으로 핥아줍니다.
아기염소는 모두 두 마리입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어미 가슴 밑을 파고 들기만 합니다.
˝순아야, 젖 떼면 이 중에서 맘에 드는 놈으로 한 마리 가져가거라.˝
순아는 아직까지 털이 젖은 채로 있는 아기염소를 살짝 건드려 봅니다. 아기염소를 들여다 보는 것이 행복합니다.
˝지금 미리 점 찍어 놓아라. 그래야 고놈과 더 정이 들지.˝
할아버지는 아기염소 두 마리를 하나 하나 손바닥에 들어 올립니다.
˝흠, 요놈은 수놈이로구만.˝
할아버지는 한 마리를 내려 놓고 또 한 마리를 들어 올립니다.
˝오호, 요놈이 순아 가져갈 암놈이로구나. 어디 한 번 보자. 어? 다리가 왜 이러냐?˝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암놈을 이리저리 살핍니다.
어찌된 일인지 한 쪽 다리가 구부러져 제대로 펴지질 않습니다.
˝그 참. 이상한 일이네. 아무래도 요놈은 제구실하기 글렀구먼.˝
할아버지는 무척 실망한 얼굴입니다.
˝하-할아버지, 그래도 나-난 새끼 낳는 암놈으로 할래요.˝
˝몸이 부실해서 제구실도 못할텐데?˝
˝그-그래도 좋아요.˝
할아버지는 순아의 고집을 아는 터라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합니다.

할아버지는 순아네 집 마당 구석에 염소 우리를 만듭니다. 순아는 좋아서 입이 함지박만해 집니다. 슬레이트 지붕도 만져보고, 구석에 있는 말뚝도 흔들어 봅니다.
˝자, 이제 염소만 이리로 데려오면 되는 거다.˝
할아버지는 바닥에 마른풀을 얼기설기 깝니다.
˝아직 젖 떼기에는 이르지만 순아는 문제없이 키울 거다.˝
몇 달이 지나자 아기염소는 제법 똘똘해졌습니다.
아기염소의 까만 털에서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이제 순아는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아도 됩니다. 풀을 뜯어다 먹여주고 다리 운동도 시켜줍니다. 다리를 절긴 하지만 이제 뒤뚱뒤뚱 걷기도 합니다.
순아는 아침밥을 먹기가 바쁘게 염소를 데리고 풀밭으로 나섭니다.
그때입니다. 큰 길가에 서 있던 아이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병신이 왜 하필이면 병신 염소를 키울가?˝
순아는 귀밑이 후끈 달아오릅니다. 창피한 생각에 염소는 내버려 두고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아이들이 하던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울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아니, 순아야. 염소는 어떡하고 너 혼자 왔냐?˝
엄마는 어리둥절해 하며 묻습니다. 그러나 이내 순아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안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바깥으로 나갑니다.
엄마는 순아가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으리란 걸 다 압니다.
˝순아야, 아이들이 놀린다고 한길에 염소를 두고 오면 어떡하냐?˝
˝나-나 저 염소 안 키울래.˝
순아는 아직도 채 가라앉지 않은 울음을 삼키느라 훌쩍거립니다.
˝그게 될 말이냐? 염소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아-아-아이들이 병-병신이라고 놀린단 말야.˝
˝아이들이 놀려도 그렇지.˝
엄마는 한참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다 무겁게 입을 엽니다.
˝순아야, 엄마는, 엄마는 말이다...... 순아가 몸이 불편하지만 한 번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귀찮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꿋꿋하게 키우려고 노력했단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일렁입니다.
순아는 순간 아무말도 못한 채 고개를 푹 떨굽니다. 부끄러워 엄마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순아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갑니다.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어느덧 아기염소는 자라 어미염소가 되었습니다. 다리를 절면서도 씩씩하게 잘 놉니다. 순아는 염소가 풀을 뜯는 동안 풀밭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봅니다. 꽃목걸이를 만들어 염소의 목에 걸어주기도 합니다.
순아는 더없이 행복합니다. 볼록해져가는 염소의 배를 볼 때마다 자꾸만 입이 벌어집니다.
˝하-할아버지, 얼마나 더 기-기다려야 할까요?˝
순아는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묻습니다.
˝어디 보자.˝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날을 짚어 봅니다.
˝이제 며칠 안 남았구나. 그런데 고놈 참 기특하지. 그런 몸으로 새끼를 배다니.˝
할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순아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염소의 배를 만져봅니다. 그럴 때마다 염소는 메헤거리며 순아를 뱅뱅 돕니다.
여름밤은 별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보름일까?´ 달님이 한 뼘이나 올라와 있습니다.
˝달님은 엄마, 달님 옆에 있는 저 별은 나... 아버진... 낮에만 뜨는 해님이라서 만날 수가 없어.˝
순아는 혼자 고생하는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염소가 새끼를 낳고 또 새끼가 커서 새끼를 낳으면... 아빠대신 엄마 옷도 사 주고 화장품도 사 줘야지. 할아버지는 담배를 사드릴까?˝
순아는 마음이 설레입니다. 벌써부터 부자가 된 듯한 기분입니다.
그때입니다.
˝메헤에에에- 메헤에에에-˝
갑자기 염소가 울어댑니다. 순아와 엄마는 염소 우리로 갑니다.
˝새끼를 낳으려나 보다, 순아야. 순아는 저리가 있거라.˝
˝왜-요?˝
˝누가 보고 있으면 새끼를 편안하게 못 낳는 단다.˝
엄마는 짚을 바닥에 두텁게 깔아줍니다.
염소의 울음소리는 한동안 그칠 줄을 모릅니다.
˝몸도 불편한 것이... 제대로 낳을 래나.˝
엄마는 걱정이 되어 몇 번 씩이나 우리를 왔다 갔다 합니다. 순아도 속이 탑니다.
달이 한가운데 떴을 때쯤에야 염소 우리가 조용해졌습니다.
˝순아야, 이리와. 암놈하고 수놈, 두 마리 다 건강해.˝
˝어- 어디? 저- 정말!˝
순아는 어미 염소를 꼭 끌어안고 얼굴을 부빕니다. 어미염소는 지친 듯 순아의 품에 스르르 기댑니다.
철없는 아기염소들은 그래도 꼬물꼬물 엄마품을 파고 듭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3 창작동화 [창작동화] 내 얼굴 찾아줘요 신충행 2004-10-24 1256
162 기타 [실화동화] 부둥켜안은 형제 신충행 2004-10-24 1247
161 창작동화 [창작동화] 혜수와 당나귀 열차 심강우 2004-10-21 1615
» 창작동화 [창작동화] 염소 배내기 신기옥 2004-10-17 1248
159 에니메이션 [에니매이션] 하늘에 별이 몇개야? 이동화 2004-10-14 1244
158 에니메이션 [에니매이션] 욕심쟁이 동동이 [1] 이동화 2004-10-11 1850
157 에니메이션 [에니매이션] 까마귀와 여우 이동화 2004-10-10 1269
156 에니메이션 [에니메이션동화] 화가난 크레파스 이동화 2004-10-09 1427
155 창작동화 [창작동화] 진주가 된 가리비 박숙희 2004-09-25 3030
154 창작동화 [창작동화] 꽃샘눈 오시는 날 선안나 2004-09-25 1013
153 창작동화 [창작동화] 하늘처럼 큰 나무 성기정 2004-09-25 655
152 창작동화 [창작동화] 고슴도치 만세 조성자 2004-09-25 1542
151 창작동화 [창작동화] 푸른 비단옷 김지은 2004-09-25 1301
150 창작동화 [창작동화] 바람속 바람 김지은 2004-09-21 2160
149 창작동화 [창작동화] 길 최인걸 2004-09-21 982
148 창작동화 [창작동화] 가문비나무의 여행 손상렬 2004-08-30 1248
147 창작동화 [창작동화] 철수의 좋은 생각 손상렬 2004-08-30 1592
146 창작동화 [창작동화] 참새와 고목나무 손상렬 2004-08-30 1854
145 창작동화 [창작동화] 이사간 까치 손상렬 2004-08-30 1503
144 창작동화 [창작동화] 거짓말쟁이 여우 손상렬 2004-08-30 1869
143 창작동화 [창작동화] 강아지 꺼벙이 손상렬 2004-08-30 1296
142 창작동화 [창작동화] 돌려주세요 손상렬 2004-08-30 1475
141 창작동화 [창작동화] 병아리 뿅뿅이 손상렬 2004-08-30 1899
140 창작동화 [창작동화] "난 못해! 난 싫어!" 손상렬 2004-08-30 1481
139 창작동화 [창작동화] 뿌리 깊은 나무 손상렬 2004-08-30 1883
138 에니메이션 [에니메이션] 화가 난 크레파스 이동화 2004-08-18 2174
137 창작동화 [창작동화] 청개구리의 꽃잠 최정희 2004-07-17 2376
136 창작동화 [창작동화] 은모래 이야기 file 강정용 2004-07-17 4763
135 창작동화 [창작동화] 마지막 선물 file 김혜리 2004-07-17 1254
134 창작동화 [창작동화] 다시뜨는 별 file 신경자 2004-07-17 1695
133 신춘문예 [1998조선일보] 종 속에 숨었지 -손혜수 file 손혜수 2004-07-17 1307
132 에니메이션 [에니메이션] 개미가 크냐 두꺼비가 크냐 이동화 2004-07-03 1301
131 에니메이션 [에니메이션] 어리석은 하인 다람지 2004-06-28 1717
130 에니메이션 [에니메이션] 이사가는사자 다람지 2004-06-28 1720
129 에니메이션 [에니메이션] 빈 수레가 요란하다 다람지 2004-06-23 1687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