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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부산일보] 기와 속에 숨어사는 도깨비 -임현주

신춘문예 임현주............... 조회 수 1537 추천 수 0 2004.12.05 19:00:01
.........
기와 속에 숨어 사는 도깨비

임현주

바람이 건둥건둥 부는 늦가을 절간이야.
용마루끝 망새기와에 아버지 도깨비가 하늘을 보며 눈이 부신 듯 찡그리고 있었어.
아침 서리가 채 녹지 않은 그늘엔 빨갛게 발이 시린 굴뚝새가 모이를 쪼고 있었지.
엄마 도깨비도 도깨비 무늬 기와에 몸을 꼭 맞춘 채 눈썹을 치켜세우는 연습을 하고 있었어. 요즘들어 멧새들이 달려들어 엄마 도깨비 얼굴에 똥을 누고 달아나는 일이 잦기 때문이었지.
˝요즘엔 어떻게 된 까닭인지 새들도 도깨비를 안 무서워해요.˝
˝흠, 흠......˝
˝허긴 옛날처럼 도깨비 방망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요술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새들인들 눈치를 못 챌까.˝
˝그래도 이렇게 기와 무늬에 감쪽같이 숨어 지낼 수가 있잖아요. 또 아주 조그맣게 오그라들 수도 있고.˝
˝오그라들기만 하면 뭐해요? 장승만큼 커다랗게 늘이지도 못 하는데.˝
˝하긴 위험한 것들은 옛날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우리 요술 힘은 이제 다 빠져 버렸으니 아이 키우기가 점점 힘들긴 하오.˝
엄마 도깨비는 여간 걱정이 아니었어. 멋모르고 뛰어 다니는 아기 도깨비가 마음에 쓰였지. 그래서 엄마 도깨비는 짬만 나면 타이르곤 했어.
˝아가야, 그저 사람 조심이 제일이란다. 요즘 사람들은 돈에 아주 눈이 멀어버렸거든. 까딱 잘못해 사람들 눈에 띄었다간 넌 유리로 된 동물원에 갇히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단다.˝
엄마 도깨비는 아기 도깨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를 했지만 아기들은 다 그렇잖아? 듣는둥 마는둥 말이야.
아기 도깨비는 정말 심심했어. 나비들은 모두 도롱이가 돼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달려있고, 쥐며느리는 한 번 된바람이 불어 추워진 후론 배추밭엔 얼씬도 않는거야.
풍경에 매달린 바람판 붕어를 절간이 떠나가도록 마구 흔들어도 심심했어. 아무도 듣는 이가 없었거든.
그래도 심심한 아기 도깨비는 돌부처님의 코를 뜯어먹으면서 놀았어. 아무나 뜯어먹어도 화내지 않는 부처님의 코를 뜯어먹는 일도 얼마나 지겹겠니?
그래서 이번엔 애기 스님의 옷자락을 슬그머니 잡아 당겼지. 애기 스님은 뒤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곤 법당으로 총총 들어가는 거야. 조심조심 향합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말이야.
˝에이. 재미없어.˝
아기 도깨비는 도로 기와 무늬 속으로 선뜻 들어가기가 좀 그랬어. 아버지 도깨비에게 붙들리면 또 글자 공부를 해야 하거든.
´심심한데 법당앞 은행나무 잎이나 죄 날려버려야지. 공책이 다 없어지면 글자공부 안 해도 되고 좀 좋을까?´
그 때, 저쪽 아래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거야. 아기 도깨비는 법당 앞마당에 있는 은행나무 위로 냉큼 올라갔지.
글자를 삐뚜름하게 쓸 때마다 따오곤 해서 이젠 노란 은행잎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어.
심심하던 차에 얼마나 신이 났겠니?
가만히 내려다보니까 노란 모자를 똑같이 쓴 유치원 아이들이 소풍을 온 것이었어.
아기 도깨비는 눈살을 찌푸렸어. 지난 봄에도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소풍을 왔었거든.
그때 일이 생각난 거야.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자리는 과자 봉지로 어질러져 숫제 쓰레기통이 되고 말았어. 법당앞 돌부처님도 이맛살을 찌푸렸을 정도였어. 그래서 아기 도깨비는 이 꼬마 아이들을 골려 줘야겠다고 마음먹었지.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법당에 올라 절을 하는 아이 뒷모습을 보았어. 그땐 그만둘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 그러나 씹던 껌을 잔디밭에 퉤 뱉는 아이를 봤을 땐 단숨에 날아가 알밤을 한 대 놔주고 싶었어.
그치만 건너편 망새기와에서 숨을 죽이고 아기 도깨비를 지켜보는 아버지 도깨비 눈길이 아파서 꾹 참고 있는거야.
몸집이 다른 애들보다 좀 작은 듯하고 얼굴이 파리한 아이 하나가 조무래기들 틈새에서 빠져 나왔어. 은행나무 아래로 오더니 발밑을 내려다 보는거야. 아기 도깨비는 깜짝 놀랐지. 쟤가 도깨빈줄 알아보고는 돌을 던지려고 그러는가 싶었어.
´붙들려 가면 유리로 된 통에 갇힌다고 했는데.´
용마루 끝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눈을 부릅뜨고 입술에 손을 대고 있었어.
´꼼짝 말라는 거겠지.´
그런데 아이는 아무도 밟지 않은 은행잎을 주워 가방 속에다 넣었어. 그리고는 나무 위를 바라보았어. 아기 도깨비는 어쩐지 기분이 좋았어. 꼭 자기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금세 친해질 것도 같았지. 촉촉하게 젖은 눈 속에 아기 도깨비의 눈 부처가 들어있는 걸 본거야. 그리고 저 아이는 유리로 된 동물원에 가두거나 할 것 같지도 않
았어. 저 만큼쯤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어.
˝은비야!˝
아이는 깜짝 놀랬지. 칼끝처럼 생긴 젊은 여자가 붉으락 푸르락거리며 달려왔어.
˝넌 또 여기서 뭐하는거야? 한참 찾았잖아.˝
˝난 엄마 갖다 주려고 나뭇잎을 주웠을 뿐인데......˝
˝다들 기다리고 있잖아. 길을 잃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리곤 아이의 가방 속에 든 단풍이 고운 은행잎을 홱 쏟아버리는거야. 아이는 어깻죽지를 손아귀에 쥐인 채 질질 끌려갔어.
아기 도깨비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냉큼 나무에서 내려와 은행잎을 주워 들었어. 아이에게 꼭 은행잎을 돌려주고 싶어졌거든.
오늘 아침에 산열매의 즙으로 삐뚤삐뚤하게 써 놓은 글자가 아기 도깨비의 눈에 보였어. 싱긋 웃음이 나왔어.
꼬마들의 줄 꼬리를 따라 절간 문을 나설때였어. 양쪽에 사천왕이 네 사람이나 서 있잖아. 사천왕에게 들키는 날엔 이 기와 무늬 속에서 더 살 수 없다고 했는데....... 부들부들 떨리긴 했지만 아기 도깨비는 용기를 냈어.
˝사천왕님, 안녕하세요?˝
˝아니, 넌 도깨비가 아니냐? 너희들 도깨비는 여기에 올 수가 없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군. 이 쇠방망이가 보이지도 않느냐?˝
˝전 이 은행잎을 전해 줘야 해요. 은비라는 애가 엄마에게 드리려고 주웠는데 선생님이 다 버렸어요. 벌써 저만치 가버렸잖아요. 다녀와서 얘기해 드릴게요.˝
˝얘, 도깨비야, 게 섯거라!˝
˝나중에 얘기 드린다니까요.˝
아기 도깨비는 눈을 홉뜬 사천왕이 손을 쓸 새도 없이 달아났어.
똑같이 노란 모자를 쓴 고만고만한 조무래기들이라 몇 번이나 은비를 잃어버리기도 했어. 은행잎이 구겨질까봐 은행잎 한 번 보고, 가닥머리를 땋은 은비 한 번 보고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골목을 얼마나 누볐을까? 은비가 길 쪽으로 조그만 창이 나 있는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단다. 아기 도깨비는 뙤창에 코를 대고 방안을 보았지.
방안은 아주 어두웠고 무슨 노랫소리가 났어. 은비가 들어가는 문소리가 나더니 불이 켜졌지. 노랫소리가 끊어지고 은비는 아버지와 어머니 손을 잡고 다시 집을 나가는 거야. 은비 어머니와 아버지는 눈이 먼 사람이었어. 아기 도깨비는 유리에 입김을 불어 은행잎을 붙여 놓고 뒤를 밟았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구름다리에 멈췄어. 마련해온 짐을 챙겨 놓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손을 꼭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뜻은 잘 모르겠지만 참 슬픈 가락이다는 생각을 했지.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다녔지만 아무도 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진 않았어.
가끔 누군가가 동전을 집어 던져 주었지만, 저 바구니에 동전을 채우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금 신나는 노래가 나오잖아. 도깨비는 냉큼 소리가 나는 상자 위로 올라가 춤을 추었어. 누가 맨 먼저 보았는지 모르지만 한사람 두사람씩 발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듣기 시작했어.
˝저게 인형인가?˝
˝세상 참 좋아졌어. 무선 조종 인형같은데 진짜 도깨비가 춤추는 것 같잖아.˝
은비 어머니와 아버지는 장님이니까 아기 도깨비가 보일 리가 없었겠지. 다른 날과는 뭔가 다른 걸 느끼긴 했지만 말이야.
은비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추운데서 떨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아무도 없는 쪽으로 손을 저어 보시곤 그냥 노래를 부르셨어.
노래가 끝날 무렵, 파란색 뿔바구니엔 동전이 거의 차 있을 뿐 아니라 거침없는 박수 소리도 나왔단다. 아기 도깨비는 어깨가 으쓱해졌어. 거리엔 사람들이 뜸해지고 은비 아버지는 주섬주섬 짐을 거두셨어. 아기 도깨비는 슬슬 겁이 났어. 누군가에게 꼭 붙들려갈 것 같았거든. 그래서 살짝 짐 속으로 숨었지. 어두운 거리를 빠꼼히 내다보니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졌어.
´지금쯤 내가 유리 동물원에나 있는 줄 아시겠지.´
은비는 문을 지쳐 놓고 잠들어 있었어. 아까 뙤창에 붙여둔 은행잎은 어디다 뒀을까? 바람에 날아갔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창에 코를 박고 안을 꼼꼼히 들여다 보았지.
은비는 은행잎을 실에 꿰어 주렁주렁 달아놓았어. 아기 도깨비가 써 놓은 글자들이 아무렇게나 이어진 채로 말이야.
기, 도, 깨, 비, 고, 다, 아, 야, 맙.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마에 부딪치는 은행잎을 만져 보고 냄새를 맡으시는 걸 보고 아기 도깨비는 절간으로 갔어. 문앞에서 기다릴 사천왕을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어.
쇠방망이로 맞는 건 둘째치고, 절간 지붕에서 살 수가 없다는 게 가슴이 저렸어. 햇수로는 셀 수도 없을 만치 오래 살았거든.
눈치만 보고 기둥에 기대어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 지 먼저 사천왕님이 부르는거야.
˝아기 도깨비야.˝
˝얘? 저어어......˝
근데 말이야. 사천왕 손에 든 쇠방망이는 저만치 내려져 있고 부릅뜬 눈은 탈처럼 웃고 있는 거야.
˝잘했다구. 잘했어. 종일 고단했겠구나.˝
꾸벅 절을 하고 법당 앞뜰로 가서 용마루 끝을 보았지. 엄마 도깨비랑 아버지 도깨비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어. 문득 아기 도깨비 콧마루가 시큰해졌어.
코가 다 떨어져 나간 돌부처님도 빙그레 웃고, 풍경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던 바람판 붕어도 한쪽 눈을 찡긋 감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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